이 여자의 정체가 뭘까?
아주 작은 체구의 여자였다. 태풍이라도 불면 휙 날아갈듯한 위태로움을 지닌 여자였다.
모자 쓴 경찰관이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그를 보고 있었으므로,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약간의 동질감이 섞인 내 시선을 잠자코 받아들였다. 그도 나하고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진짜 저 여자가 맞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처럼 자그마한 여자가 그런 비상식적인 짓을 하고 다녔다고?’
우리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라도 되는 양 머리를 수그리고 있는 여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여자는 양손에 수갑을 차고 얌전히 앉아있었다. 치렁치렁한 긴 머리카락들이 얼굴을 죄다 가리고 있었으므로 이목구비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만, 수갑이 헐렁하게 느껴질 정도로 손목이 가느다랗다는 것, 수그린 뒷목이 부러질 것처럼 앙상하다는 것 밖에는 볼 수 없었다. 우리 눈에 비춰지는 여자의 인상은 가녀림 그 자체였다.
“이보세요. 얼굴 좀 들어봐요. 연쇄 방화범, 어떻게 생겼는지 좀 봅시다.”
“……렇게…….”
“뭐라고요?”
“그렇게 부르지 말라구요.”
“허!”
경찰관이 코웃음을 쳤다. 그리곤 이내 “말을 말지, 말을…….”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그쪽은 어떻게 오셨다고요?”
그는 이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쭈뼛하며 좀처럼 열리지 않는 입을 뻐끔거렸다.
“네?”하고 되묻는 그의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짜증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저 여자를 고소하려고 왔는데요.”
“무슨 죄목으로?”
내 목소리를 알아들은 여자가 얼굴을 번쩍 들었다. 퀭한 눈이 나를 응시했다.
이유를 알 순 없지만 분명한 희열이 두 눈에서 느껴졌다.
“스토킹.”
나는 숨을 훅 들이 마쉬곤 나머지 말을 읊었다.
“저 여자를 스토커로 신고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 *
여자를 처음 만난 건 작년 시월, 가을이 끝났네 겨울이 벌써 시작되네 하며 시시때때로 말을 바꾸는 일기예보를 듣던 때였다. 그날은 유달리 아침부터 푹푹 쪘다. 가을이란 놈이, 여름과 겨울의 등쌀에 못 이기고 영양실조로 쓰러져버린 듯한 날씨였다. 반팔을 입을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낙엽이 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여름옷을 정리해서 넣어놓은 탓에 아침부터 옷더미를 뒤져야 했다.
향수로 온몸을 도배하고 나오긴 했으나 특유의 눅눅함은 떨칠 수 없었다. 박스로 봉해 집어넣은 여름옷 무더기에서 아무거나 꺼내 입고 나온 터라 곰팡내가 나를 뒤따라 다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은 마침 잘 돼가던 후배와의 데이트가 잡혀 있었기 때문에 유달리 신경 쓰였다.
나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티셔츠의 가슴부분을 끌어당겨 코를 벌름거렸다. 익숙한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안심되지 않아 재차 확인과정을 거쳤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자기 땀냄새나 맡는 미친놈으로 보일 행태였다. 하지만 이 시간, 이 동네엔 사람 그림자 보기가 하늘이 별따기만큼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거침없이 킁킁댈 수 있었던 거다. 마음놓고, 킁킁킁.
그때, 뒤쪽에서 탁탁탁탁! 급박한 발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축축한 머리칼이 한움큼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갑자기 따귀를 맞았다. 것도 젖은 머리카락 뭉치로.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나를 후려치고 달아난 여자를 잡으려고 했지만 이내 뻗었던 손을 거둬들이고 말았다. 여자는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넘어질 듯 위태롭게 휘청거리는 앙상한 두 다리와, 새카매진 발바닥이 괜스레 연민의 감정을 건드렸다. 나는 원래 그렇게 약해 빠진 놈이었다. 정에 약해 잘 이용당하고, 쉽게 분노한만큼 또 쉽게 분노를 사그라뜨리는. 그런 시시한 놈이었다. 그 기질이 발휘된 모양이다. 나는 조금 전의 분노도 잊고 멍하니 ‘저 여자 무슨 일일까’ 걱정하고 있었다. 기사도가 뛰어난 치는 아니었지만, 위태로운 여인을 엿보고도 태연히 지나칠 수 있을 만큼의 무심한 성정은 가지지 못했던 탓이다.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음을 깨달은 건 전철역에 거진 도착해서였다. 길거리에서 시간을 뿌리고 다닌 덕에 약속시간까지 빠듯하긴 했지만 이제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되었다. 운이 좋다면 곧바로 전철을 탈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경찰차 한 대가 쏜살같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십여미터 앞에서 멈춰선 경찰차에서 제복을 입은 경찰관 둘이 내리더니 일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가려고 했다. 경찰 중에 한명이 나를 붙잡아 세우지 않았다면.
“혹시 조금 전에 수상한 사람 못 보셨습니까?”
지극히 수상한 차림의 여자를 한명 보긴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은 서로 동행해주길 바랐다. 나는 머리로 시간을 계산했다. 아무리 더하고 빼도 다른 곳에 들렀다가 갈 여유가 없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시죠? 사건이라도 생겼나요?”
젊은 경찰관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번졌다. 하지만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를 따라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도 이를 예상하고 있겠지. 현대인이란 다들 자기 할일에만 관심을 할애하기 좋아하니까.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의 눈은 지나는 행인을 힐끔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들으면 안된다는 듯이.
“살인사건입니다.”
“설마, 그 여자가 범인이라는 겁니까?”
나는 여자의 가느다란 발목을 떠올렸다. 흙투성이가 된 발도.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맨발로 뛰어다니는 사람을 정상의 범주에 넣어야 되는지는 모호했지만 급박한 사정이 있다면 또 모를까, 살인범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살인범이 ‘나 사람을 죽인 놈이오’하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는 건 아닐 테지만.
“그건……조사해봐야 압니다. 조속히 수사를 끝마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는 겁니다."
“용의자라는 거네요.”
“함께 가주시겠습니까?”
다른 일도 아니고 살인사건이라니. 나는 잠시 후배와의 불투명한 미래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무게를 저울질 했다. 결과는 금세 판가름났다. 결과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대로였다.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경찰차 뒤에 몸을 싣고 경찰서로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되었다. 단지 뛰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고, 그 여자의 머리카락에 뺨을 한 대 얻어맞았을 뿐인데 중요한 증인 대우를 해주었다. 양 어깨가 무거웠다.
피해자는 40대 남성으로, 과다출혈로 인해 사망했다고 한다. 얼굴은 깨끗했다. 반면에 뒤통수는 처참하게 깨어져 있었다. 게다가 등허리에 깊은 자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경찰은 내가 그 모든 과정을 목격한 듯이 굴었다. 내가 목격한 거라곤 고작, 비틀거리며 뛰어가던 해골같은 앙상한 두 다리밖에 없었는데.
“저 여자분이 확실합니까?”
“확실히……저렇게 머리가 길었던 것 같습니다. 허리께까지 내려왔고, 또, 뒷모습이 저렇게 말랐었거든요.”
“얼굴은?”
“네?”
“그럼 얼굴은 못 보신겁니까?”
“순식간에 지나가서, 뒷모습만 보았거든요.”
“그래도 확실히 뒷모습만은 기억하신단 말씀이죠?”
“뒷모습만요. 하지만 범인일 가능성은 적지 않나요?”
“무슨 말씀이시죠?”
“그러니까,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잖아요. 이를테면……끔찍한 일을 당해서요. 누가 불러도, 붙잡아도 뿌리치고 도망칠 수밖에 없는 일 말입니다. 만약에 저 여자 분이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저 역시 누군가에 의해 용의자로 지목되지 않았을까요? 수상한 사람이라는 선입견에 의해서.”
“……신태주씨는 저희가 묻는 말에 사실 확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있네.
드라마가 애들 다 망친다니까.
젊은 경찰의 눈이, 그리 말하는 듯 보였다. 체증이 있는 것처럼 약간의 답답함을 느꼈다. 내가,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그려내기 위한 재료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은 탓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나를 보고 있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못난 얼굴은 아니다. 이목구비도 단정한 편이고, 입고 있는 옷도 구김없이 깨끗한데다 손톱 역시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문제는 저놈의 치렁치렁한 머리,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음침하게 빛나는 눈이었다.
그녀는 내가 마치 백마를 타고 자기를 구원해 주러 온 사람인 양 시선을 보냈다. 창백한 뺨 위로 떠오른 홍조는 그녀의 마음을 명백히 보여 주었다.
나는 떨떠름하게 시선을 원래 위치로 복귀 시켰다. 저 여자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불리하게 돌아가는 판국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게다가 내가 그 가운데에 서서 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답답했을 뿐이다. 저 여자가 아니라 60대 노인이 앉아있었대도 똑같은 말을 했을 터였다. 여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리고 일주일 뒤에, 여자는 풀려났다.
내 예상대로 여자는 무고했다. 일주일 만에 진짜 범인을 잡았다니, 기막힌 일이었다.
쓸쓸히 경찰서를 빠져나가는 여자를 보며 내가 다 분통이 터졌다. 그녀는 억울한 누명을 벗었지만,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그동안 당했던 일에 분개하며 소송을 걸 수도 있었고 매체를 통해 이 일을 세상에 알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녀는 침묵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곤히 잠을 자다가 요의를 느끼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람처럼,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아무일 없었던 듯 눈을 감았다. 참으로 갑갑한 사람이었다. 나만큼이나.
그 사건은 금세 잊혀졌다. 종종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이야기할 때도 있었지만 나와는 무관한 세계의 일이기도 했고 그 여자를 다시 만날 일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어렵잖게 머리에서 지울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여자가 나에겐 단 며칠만에 기억에서 증발 시켜버릴 수 있는 휘발성의 존재였는지도 모르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새벽녘이 돼서 귀가한 나는 내 자취방 앞에 어슬렁거리고 있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당시에 나는‘남자니까 괜찮겠지'따위의 핑계를 대면서 반지하방에 들어가 살고 있었다. 치안이 아주 형편없는 동네였다. 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소심한 사람이었으니까. 소심한 사람을 용감하게 할 수 있는 건 역시 돈이었다. 싼값이 작용하지 않았더라면 그 집에 결코 들어가지 않았으리라.
종종 지나는 행인의 시선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사내새끼 혼자 사는 집에 볼 게 뭐 있겠어 하며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내 창문 앞에 우뚝 서있는 그림자를 발견하고 나니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느꼈던 시선의 정체가 우연이 아니라 고의적인데다가 상습적인 것일 수도 있단 생각도 들었다. 일탈을 감행하는 일이 드문 내 생활패턴대로라면, 나는 비틀대며 귀가하다 불청객의 그림자를 발견할 게 아니라, 저 그림자가 지켜보고 있는 창문 안에서 곤히 잠들어있을 터였다.
경찰을 부르진 않았다. 우두커니 서있는 그림자는 아주 자그마했으니까. 여차하면 혼자서도 제압할 수 있겠다고 자만을 떨었던 것 같다.
“저기요.”
웅크린 채 내 방 창문을 응시하고 있던 그림자가 흠칫 몸을 떨었다.
“누구세요?”
후다닥!
의외로 아주 빠른 놈이었다.
“누구냐니까?! 야!! 너 누구야!!”
나는 달리던 걸 멈추고 허리를 굽혔다.
그림자가 서있던 자리에 무언가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진이었다.
게다가 사진 속에 찍혀 있는 건 바로 나였다.
정체모를 붉은 자국으로 얼룩덜룩한 사진 속에, 내가 있었다.
* *
“내가 왜 너 같은 놈을 쫓아 다니냐?! 내가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보여?!”
“……아가씨 할 일 없는 거 맞잖아요.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아가씨라고 부르지 마. 당신도!”
여자는 멀뚱히 서있던 경찰을 지목하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그동안 울분이 많이 쌓인 모양이었다.
“그럼 이름을 알려줘요. 그쪽이야 날 스토킹 했으니까 내 이름이며 나이며 다 알고 있겠지만, 난 당신 얼굴밖에 몰라요.”
“……너 같은 놈한테 알려줄 이름 없어.”
이때 우리의 대화를 묵인하고 있던 경찰이 끼어들었다.
“이봐요, 방화범씨.”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그들은 나를 내버려둔 채 투탁거리며 말싸움을 벌였다. 이미 익숙한 풍경인 듯, 동료 경찰들이 그들을 스윽 보곤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피했다.
나는 여자를 쳐다봤다.
어떤 사람을 스토커라고 신고하기 위해서 경찰서에 찾아왔는데, 미리 와서 앉아있다면?
정말 놀라운 일일 거다. 진짜 지독한 스토커라는 거니까. 내 동선을 모두 파악하고 있단 뜻이니까. 그런데 다른 죄목으로 잡혀 들어와 있던 거라면? 그렇다면 어떻겠는가. 나는 황당하다 못해 호기심이 동할 지경이었다.
이봐요, 아가씨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방화범이라니.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예요?
“저기, 스토커 씨.”
“!!!”
그녀가 사납게 눈을 치떴다. 나는 찔끔하면서도,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라며요?’하고 대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경찰관이 팔짱을 낀 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호칭을 정정하며 여자를 다시금 불렀다.
“……스토커 양?”
벌떡 일어나 목을 조를 듯 달려들었음은 당연했다.
“스토커라고 부르지 말랬지!”
나는 얼른 “미안해요”하고 여자를 달랬지만 마음속 의문은 여전했다. 진심으로 싫어하는 느낌이었다. 경찰관은 여자의 수갑찬 팔을 뒤에서 끌어 안 듯 붙잡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왜 도발을 하냐는 의미일 테지.
하지만 나는 나대로 심각했다. 스토커가 아니라면, 저 여자는 대체 왜 반년이나 날 따라다녔단 말인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장장 6개월이었다. 그 시간동안 누군가를 미행하고 관찰하는데 자기 모든 시간을 할애하다니. 저런 사람을 두고 스토커라고 하는 거겠지.
그런데 스토커란 말에 저렇게 질색을 하니, 대체 어떻게 불러야 좋을까.
저 경찰이 부르는대로 방화범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