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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고시생의 S 그룹 입사 성공기
게시물ID : boast_61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술관소녀
추천 : 13
조회수 : 331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7/11 07:42:54
안녕하세요. 회사에 일찍 도착하여 이렇게 글을 씁니다.

무언가 생각을 정리하고 싶기도 하고, 시원한 아침 일찍부터 일하기는 아쉬워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현재 고시생이신 분들, 그리고 취업준비생이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씁니다.


도입은 짧게 하고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1. 고시생 입성기


저는 나름 경찰명문인 대학을 나왔습니다. 경찰대는 아닙니다.

서울에 있는 법대를 갈까 하였으나, 법대는 물먹고 서울에 있는 모 대학 영문과만 붙어서, 고집부려서 재수해서 이곳으로 입학하였습니다.

재수1년, 대학1학년과 2학년을 마치고 휴학 후 오스트레일리아를 다녀와 은행 인턴을 하다가 (경영학 전공) 3학년으로 복학하였습니다.

그리고 휴학없이 4학년 졸업 후 고시생이 됩니다.


1-2.

방을 얻어 아침7시~밤11시까지 수업을 들었습니다. 일찍 끝나는 날도 있고, 아침보강이 없는 날도 있습니다.

3개월반으로 이론반을 2번 듣고 마무리반 3개월을 듣고 나면 시험날이 됩니다.

매일 수업만 듣느라 복습할 시간이 없습니다. 간혹 병원이나 늦잠 등으로 학원을 빠지면 주말에 보강을 듣고, 인터넷강의를 사서 듣고,

그렇게 해서 완벽하게 필기된 책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학원 선생님은 이론반을 3번은 들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거기에 문제풀이 강의까지 다 같이 들으라고 합니다. 

저는 경찰시험이 아니라서 따로 체력시험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지만, 경찰,소방관 시험 보시는 분들은 이에 운동할 시간까지 필요합니다.

첫번째 해 시험을 '시험삼아' 보고, 두번째 시험을 준비합니다.

두번째 해가 되자, 책이 모두 바뀝니다. 법령은 개정되었다고 모두 바꾸어버리고, (형사소송법 등 ) 어떻게 된게 바뀔리 없는 역사도 새책으로 나옵니다.

전 과목의 교과서가 모두 바뀌어 예전 책으로 수업을 들으려고 하니 어디를 보라는건지도 감이 안 잡힙니다. (단어조차 교묘하게 바꾸고 쪽수, 단락, 내용등도 바꿈)

새 책을 사서 또 작년과 같이 열심히 강의를 듣고 필기를 합니다.



2. 방향전환


이놈의 고시생활은 끝날 줄을 모르고,

더군다나 그때 만났던 사람은 고시생활을 더욱더 험난하고 힘들게 했습니다.

힘이 되주는 말보다 비난과 조롱, 그리고 바람과 폭력까지....

고시생때는 연인이면 헤어지지 말고 없는 사람은 없이 지내라 하는데, 제 생각엔 아닐 인연은 빨리 끝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고시생활은 접다손 치더라도 마음의 상처는 입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쪽 부모에게 나에게 폭력 썼다고 전화하고, 그쪽 친구들한테 하소연하고 

그쪽은 또 나를 미친여자로 몰아가면서 아주 개같은 남자라는 이미지만을 저에게 남기고 떠났습니다.

술먹고서는 너는 공무원 되면 연금 나오니까 결혼하자 이런 소리도 하더군요... 폰팔이를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그분은 폰팔이였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고등학교때부터 꿈꿔오던 유럽으로의 발길을 준비합니다. 고교시절 미술을 좋아하는 학생은 불어를 배우란 말에 불어를 선택하고,

자연스레 대학생활 중 유럽에 갈 생각을 하였으나, 꿈을 좇다 보니 그런 것도 잊고 있었습니다.

저는 첫 해 시험을 보고 두번째 시험 중반에 영국 홈스테이와 민박, 호스텔 등등을 알아보며 루트를 짰습니다.

수업료를 내놨지만 학원을 가지 않았고, 그때부터 준비는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생활 내내 이날만을 기다리며 돈을 모아놓았고 (무려 고등학교때 들어놓은 적금도 포함) 고시생활 하느라 돈 쓸 일이 없어

그동안 이자가 몇십만원이나 붙어있었습니다. (정액적립식 펀드를 고시생활 내내 넣었고, 아예 큰 돈은 CMA와 거치식 정기예금(저축은행)에 넣어두었습니다.)

비행기표, 숙박, 거기서 지내는 동안 쓸 콘센트, 카메라부터 손톱깎이까지 아주 자취방을 옮기듯이 짐을 쌌습니다.


출발하기 3주 정도 앞두고 지금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기품있고 매너있는 그는 내게 점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친절한 그의 마음씨에 한번, 그리고 미술과 음악 이야기까지 모두 이해할 줄 아는 그는

나와 통하는 게 많았습니다. 재미있게 보았던 미드며 영드, 그리고 보통 사람이면 잘 모르는 미술사 속 이야기까지.... 

신기하게도 그는 공업계열인데도 이런저런 교양지식에 박학다식하였습니다.  

제가 경제학을 배우란 말에 대학 경제학원론 교재를 독파하는 모습까지 멋져보였습니다...

이건 유럽 다녀온 후에 일이군요... 아무튼 그는 제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겠다고 말하자 조심스레 그 이유를 물어보고, 전남자 이야기를 모두 하고 나서도 나를 감싸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제 곧 가야할 시간....

그는 내가 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저를 보러 왔습니다.

야근하고 나서도 밤 늦게라도 저희 동네에 와서 얼굴 보고 택시타고 가고, 아침에 바로 또 출근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항가는 날...

저는 머리를 자르고 그는 우리동네에서 인천공항까지 함께 가주었습니다. 밤비행기를 탄 후 그는 공항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아침 출근하였습니다.

출국하는 게이트 앞에서, 어떤 남녀가 진하게 키스를 하더군요.

우리는 가만히 고개만 어깨에 끼우는 약한 포옹을 하며 갔다 오겠다고 그의 어깨를 토닥였습니다. 그리고 왠지 얼굴을 볼 수 없어 그대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비행기 타기 전까지 통화했습니다.

그 비행기에는 멀리 오랫동안 이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가족들과, 친지들과, 연인과.... 다들 떨어져서 가는지 전화로 안부를 전하더군요... 

제 옆에는 몰타로 어학연수가는 대학생이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영국 땅에 도착....

영국은 좋았으나 같은 한국인이 더 싫었습니다... 이기적이고... 자기것만 챙기고...

제가 처음 있던 숙소에서는 한국인이 숙소 짐을 털어 도망갔습니다...

아이패드, 담배 (영국에서는 담배가 무척 비쌉니다... 숙박비 대신 담배 한보루를 받습니다....) 노트북 등등 돈되는 것은 모두 들고 날랐습니다...

군대도 갔다온 놈이... 저보다 딱 한 살 어리더군요...

그리고 여자애들... 서양인 보고 찬양하고 어떻게든 엮어보고 싶어하고... 그들은 정작 생각도 안하는데 자기 혼자.. 로망에 빠져서 ...

보통 무거운 짐을 갖고 있으면 잘 들어줍니다... 그런데 자기가 예뻐서 대쉬(?) 당한 것처럼.. - -

뭐 그것까진 뭐라 할 수 없겠으나...

마치 자기만 똑똑해서 이곳에 온 것인양... 자기만 굉장히 대단해서, 자립심이 자기만 굉장히 강해서,

혼자 이곳에 왔다, 내가 스스로 돈 벌어서 왔다는 것을 굉장히 강조... 그러면서 서양남자에게 기대는 꼴이란...

그런데다 이기적인 모습까지... 물론 조용하고 담대한 여자아이들도 있었지만... 정말 기억에 남을 정도의 한국 사람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는 미술관을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유럽의 모든 미술관을 다 가보는게 목표였습니다.

그게 목표인 저에게, 미술관 비싼데 뭐하러 가냐 (입장료가 12파운드, 1파운드가 1800원 정도.. ) 여기 왔으면 패러글라이딩 하고 클럽가서 술마셔야지.

라고 비아냥 거리는 한국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림은 책으로 보면 되는거 아니냐고...

그렇지만 조각은 입체이기 때문에, 직접 눈으로 봐야 합니다.  그림 또한 그 크기와 질감, 붓터치 등등을 눈으로 봐야 압도적인 아우라를 느낄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앞 뒤 양옆으로 본 사람, 다비드상의 뒷모습, 엉덩이를 눈으로 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으며 책으로 볼 수 없습니다..


저는 제가 직접 외국사이트에서 예약해서 갔는데, 여행을 민박팩으로 여행사로 온 여자들이 많더군요.

그 여자들도 외국 남자들과 대화 못한 것을 아쉬워 하더군요..

저는 각 나라마다 길 물어가며 다니다보니 명함을 주거나 이메일을 적어주는 외국인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저는...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정신이 피폐해져 지금 남자 외에는 친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고싶은 말은 다 하고 살다보니 영어는 늘었습니다.. 

각종 문의, 항의, 관공서 가기, 레퍼런스 등등... 정말 살기 위한 영어였습니다... 


참 다행인 것이,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화창한 날은 하늘이 돕는 것 같았고, 여행중엔 스위스에 하루 머물렀는데 

마침 그날이 미술관 무료관람인 날이라  나보고 럭키걸이라 하기도 하고, 

잠깐 머무는 한국사람이 아닌 그곳에 사는 한국교민들은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잘 도와주었습니다.

호의를 너무 바라고 오는 한국인은 경계하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한 최대한 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기차를 타는데 기차표를 펀칭하지 않아 (스스로 각자 펀칭기에 탑승전에 펀칭해야 합니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기차 칸 안에서 역장이 벌금을 물었을 때, 벌금을 대신 내준 고마운 분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막차였고, 한밤중이라 기차도 못탈까봐 무서웠는데 그런 난감한 일까지 당해, 그분이 벌금을 내고 난뒤 너무나 속상하여 울고 말았습니다..

무려 40유로였습니다. ... 선뜻 남에게 그정도 돈을 줄 수 없었을텐데... 

그때 옆자리 앉았던 남자와 우연히 숙소에서 또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같은 날 같은 기차 타고 같은 숙소에 들어와서,

저는 늦게 도착해서 여자방의 사람들이 전부다 자고 있어서, 다이닝 룸에서 캐리어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자기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왔으며, 너는 어디사냐 해서 한국이라 하니, 너는 왜 물건에 삼성이 없느냐 (이 질문 많이 듣습니다. 이거랑, 너희는 왜 북한이랑 사이가 나쁘냐... 이거 두 가지 많이 물어봅니다.) 그래서

삼성이 조금 일리걸 컴퍼니이다, 했더니 아 안다고 삼성이 가족그룹화하고 정부에 돈을 주고 가족승계한다.. 등등 많이 알고 있더군요.

그 학생만 좀 유별나게 많이 안 거고 보통은 한국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길가면서 길 물어보면 혼쾌히 그곳까지 같이 가주면서,

나는 한국에 안 가봤지만 꼭 가고 싶은 나라다, 라는 립서비스 정도는 해주었습니다...


그 남학생은 내일 아침 이곳에서 아침식사할때 보자고 했지만... 저는 안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후에 또 숙소에서 보게 되었는데...

저의 철벽기술로 또.. 페이스북 안 한다고 밀어보냈습니다.. 이메일을 남기고 갔지만... 그럴 정신도.. 여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로 넘어가서... 강도를 만나고, 다행히 돈은 안 빼앗겼지만 칼을 보고 너무나 놀라

한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언제 그놈들이 또 나타나 보복할까 두려워... 못나오자...

내남자는 비행기값을 보내 돌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어차피 학기도 끝났겠다... 원래 프랑스를 돌고 들어가는게 여정의 끝이었지만...

그리스에서 끝을 내게 됩니다...

그간..... 막차가 끊겨 헝가리에서 거리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다가 성추행을 당한 적도 있고, (엉덩이 만지기) 

그리스에서 강도를 만난 것까지 합쳐지니... 내남자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합니다... 눈물까지 나올 것 같았다 하니...

자긴 이역만리 먼 곳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나약함과 무기력함에 자기 자신이 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돌아와 잠시 휴식기간을 맞습니다..



3. 외국계기업 입사

여름이 되니 대학생들 방학이라고 여름시즌 대외활동과 인턴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불안감과 어머니의 자궁 같은 편안한 고국에 돌아오니 식욕이 당겼습니다.

내남자는 먹고싶은대로 마음껏 먹게 해주고 가고 싶은 곳 하고싶은 것 모두 하게 해주었습니다. 비행기값은 추궁해보니 어머님이 주신 것이었습니다...

나는 빚갚아야된다고 하지만 안그래도 된다고 자꾸 말리더군요...;; 

뭐 어쨌든... 고시공부를 더 할까.. 하던 찰라에, 집 근처 대학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뽑길래 지원했습니다.

캐셔일은 처음이었지만 시원한 서점에서, 점심시간에만 학생들이 몰리고, 아침과 오후에는 책도 읽고 공부도 할 만 했습니다.

공인중개사 공부하는 언니, 할리퀸 소설 읽는 여학생, 그리고 저는 미술도록을 가져와 읽다가, 영어회화를 까먹는 것 같아 회화를 읽고,

나중엔 서점에 있는 책 아무거나 꺼내 읽었습니다.

나름 오랜 학생기간으로 인해, 내가 사회 나가서 잘 할 수 있을까... 하던 걱정을 없애준 아르바이트였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함께 일 이야기도 하고, 학교 이야기도 하고, 간식타임도 많이 가졌던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였습니다.

학생(백수)기간이 오래되면 사회에 나가기가 겁이 나기도 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사람들과 말을 안하고 살아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고시생때 오유 정모도 나가봤었지만..... 사회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만나서 술이나 마시고.... 술값만 많이 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반기 독일계기업에 계약직으로 입사했습니다.

경영지원본부(홍보부)로 입사하여, 1년에 한번 있는 회사 경영성과 마무리 심포지엄을 주최하는 큰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화면에 띄울 영상부터, PPT, 브로슈어, 사내기사까지 다 제가 작성했습니다.

다행히 고시생때 따둔 자격증과, 유럽 다녀와서 쉬는 동안 자격증을 더 따서, 어느정도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사에서 오는 영문 브로슈어와 영문 PPT, 설명회 자료를 모두 한글로 번역하는 일을 하였는데, 

알고보니 이게 영문과 전공자를 뽑으려던 거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영어권 국가(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등 유럽) 로 많이 다녀와서 어느정도 도움이 되었나 했습니다. 영어성적과 영어면접도 요구했습니다.

초벌번역된 원고가 있긴 하였지만 너무나 국문과 어울리지 않아, 그것들을 좀더 국문법에 맞는 국문으로 바꾸고, 

영어 동영상 원본은 리스닝 후 한글 자막을 직접 넣었습니다.

경영 성과를 발표하는 것이라 회계용어들이 많았으며, 마케팅업무에서는 좀더 원활한 국문을 요구했던 것 같습니다.

제 사수는 33살에 경력10년차... 첫째아이를 낳고 3개월만에 다시 복직한 지금도 제 롤모델이신 분입니다.

한국 대학만 나오고 외국에 한번도 가지 않았는데 바이랭귀얼이 됩니다. 



4. S 그룹 입사

독일계기업에서의 일은 저에게 자연스레 입사공부와 경력 양 측면에서 모두 도움이 되었습니다.

SSAT에서 수학은 조금 연습하니 고교때 실력이 나왔고, 언어와 그외 나머지 부분은 평소 실력으로 하였습니다.

전산 자격증, 대학때 해외봉사활동 경력(일본), 수상경력(한국은행 통화정책 경시대회), 대외활동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교육 교사활동 등) 회장 경력(대학 학보사) 등과 

실전 프레젠테이션 능력, 마지막으로 신체검사.....


어떻게 이 부분이 가장 짧네요. 이때가 가장........ 쉽게 인생이 잘 풀렸던 때 같습니다.......

지금은..... 모든 고통과 노력이 보상받는 느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직장에서 부러움을 받으며, 넉넉한 월급으로,

행복하게 하는 지금.... ..



돈을 벌면 날파리들이 모입니다. 

멸시하던 친척들이 더러운 혀로 친한척을 하며 전화를 하기도 하고, 내 카카오스토리를 보며 영국에서 뭐했냐 졸업은 안하냐 시집은 안가냐 등등

그런돈 있으면 자기좀 줘봐라....

우리집에서 그렇게 불쌍한척하며 돈뜯어가고 뒤에선 우리부모님 멍청하다 무시하고 그러면서도 또 엄마보고 언니언니 거리며 돈돈 거리는 이모들이 엄마 동생이라는게.... 

이제는 내동생한테 돈빌려달라 하는게 우습습니다....

저는 이모들과 나이차이가 많지 않아 어릴때부터 욕하고 싸웠더니 그러진 않고 마음약한 엄마에게 우회하여 흉을 보더군요...

엄마는 왜 바보같이 듣고만 있는건지... 

고시를 합격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말대꾸를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뭐라고.....



한 가지 울컥하는 건,

아버지는 제가 고시 시작하는 것조차 반대했었고, 고시생활 중에는 이번만 하고 그만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내남자때문에 내가 고시를 포기한 것으로 화살을 돌리는 게.... 조금 밉습니다...

내남자는 아버지가 나를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다고 아량넓게 이해해주시지만....

아버지는 애초에 대학조차 안보내려고 했던 걸 겨우 설득해서 등록금 냈습니다...


물론 그 후에 지원해주시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대학생활 하고 돈 모을 수 있었던 건 다 부모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남들은 제가 영국가서 부자다, 집안이 잘산다 하지만....

휴학 후 은행 인턴하면서 야간에 치킨호프집 아르바이트 하면서 손님들 먹다 남긴 안주 주워먹고, 그거 싸가서 반찬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고시원방에서 살면서 햇반 하나로 이틀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비누 한 장으로 얼굴, 몸 다 씻고 (여잔데...) 

유럽 가서도 빵 하나로 한 끼 떼우며 지냈습니다....

그냥 고추장 푼 물에 스파게티 면 삶아서 먹기도 하고, 쌀 불려서 고추장이랑 먹기도 했습니다.

그 고추장마저 떨어져버리면, 슈퍼에서 파는 빵 하나로 또 떼웠습니다. 미술관 화장실에서 손으로 물받아 마시기도 하고, 그 물 떠와서

집에서도 마시고,.... 물도 돈이니깐... 

옷은 그냥 껴입고.. 파카 사입기도 아까워서... 



지금은 잘 먹고 잘 삽니다...

몸무게도 많이 늘었고... 혈당량도 높아지고, 빈혈도 없어졌습니다.. 이전처럼 감기에 걸리는 일도 이젠 잘 없고,

이게 다 내남자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이 사람 만나고 나서 다 잘되고, 더 건강해지고....

어쩌면 이 사람이 내게 더욱 긍정적인 기운을 북돋아줘서, 제가 더 힘내서 정신적으로 맑아져서,

일을 잘 풀리도록 잘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 아껴쓰는 습관이 있어 옷은 잘 안 삽니다... 회사 때문에 H라인 스커트만 몇 개 싸구려로 샀습니다... 오천원.. 만원짜리...

대신에 먹을건 이제 돈 안 아낍니다...

그렇게 먹고싶었던 것들... 이젠 참지 않고 다 먹습니다....

그래서 더 살이 찐 듯 합니다... 맞는 속옷도 없어지고..? -_-;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해주십시오.. ^^


드리고 싶은 말씀은,

고시생 분들 중에는 고시보다 더 좋은 게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시절부터 쭈욱 변치않고 계속 한 가지 꿈이었습니다... 검찰수사......

일부러 학교도 그렇게 갔고... 지금 생각하면 첫해에 영문과를 가는게 더 적성에 맞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 지금 학교가 좋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갔습니다...

요새 보니 고시생들 합격하기까지 기간이 기본 4년이더군요...

그에비하면 저는 1년...남짓... 짤막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너무 섣불리 그만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저보단 우리 부모님이 -_-; 많이 하십니다.... 이제와서;;

자신이 잘하는 게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남들보다 더 빨리, 현명하게 자신이 갈 길을 정해주신다고 합니다.

왜 빨리 성공시켜주지 않으냐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더 큰 길로 인도해주기 때문에 늦는 것이라 합니다.

제가 고3, 재수할때 이 말을 새겨듣고 공부했었습니다.


여기 크리스쳔이 아닌 분들에겐 반감되는 말일 수 있으나... 그냥 세상은 나를 늦게 알아봐준다...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저는 제가 검찰이 꿈이고, 검찰로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가 돈도 더 많이 받고.... 대우도 더 좋고... 일하는 것에서의 압박감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예전처럼 술 권하는 대기업 문화도 많이 사라졌고.... 특히나 사내 성희롱에 대해선 아주 민감합니다...

저는 대학시절 대학 교내 교지제작을 하였는데,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지금도 취미로 제 책을 만들고 있는데, 이게 독일계기업 근무할 때 유용하게 쓰였고, 이 곳 입사시에도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바이랭귀얼이 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나는 외국에서 살다와서 한국말을 잘 모른다는 것은,

창피함을 넘어서 쓸모가 없는 인재입니다...

국문과 영문을 모두 조화롭게 쓸 줄 알아야 써먹을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공적인 문서를 작성할 때 국문법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영어 번역은 그곳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단어마다 실제 그 뉘앙스를 알아야 합니다.

백날 사전 읽어봐봤자 연수 한번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기도 합니다...

물론 그 측면에서 그때 저의 사수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지요...



지금 회사에서는 예산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숫자와의 싸움... 이라고는 하지만 숫자 계산은 프로그램이 해주고,

눈이 예리해야 합니다.. 월초, 연초에 좀 바쁘고, 그 외에는 한가합니다...

부서마다 바쁜 곳이 다릅니다...

그리고... 상사도 잘 만나야 합니다...

저는 처음 회계팀에 지원했지만 어떻게 이 곳에 들어왔는데... 

회계팀 부장은 산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무려 휴일에 1박2일로........

가끔 상사들 중에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상사들이 사원들 데리고 자꾸 야유회 일정을 잡으시는데......

신입사원들은 연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부장은 다행히 산을 안좋아해서 다행입니다........ㅎㅎ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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