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다음 학기부터 수업에 들어갈 수 있는 거죠?"
엄마는 조금 성난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캔틀롯의 빠릿빠릿한 일상에 적응된 엄마에게는
도저히 이 느긋한 시골선생의 말투가 적응되지 않는 까닭이었다.
"네에."
또다시 느긋하게...
그러나 느긋함이 느껴질 뿐 질질 끄는듯한 말투는 아니다.
마치 자판기처럼,
'툭'
이렇게 엄마와 선생의 보이지 않는 실랑이를 보고 있자니
내가 참으로 한심하고 비루해 보였다.
"그럼 학생?"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이제 끝나는구나 하는 마음에 선생을 바라보았다.
"예?"
그리고 재빨리,
"왜요?"
하고 말을 덧붙였다.
별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지만
안 그래도 나는 지금 이 늘어지는 상황에 상당한 짜증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고
'왜요?'라는 이 한마디를 덧붙임으로써
이 느긋해 빠진 선생을 당황하게 할 심산이었다.
그런데...
"자 여기..."
"어...어?"
선생은 방금전 까지의 느긋한 말투와는 다르게
내 발굽을 빠르게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어찌 해볼 틈도 없이 선생의 따스한 품에 안겼다.
그리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깨닫기도 전에
선생은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선생의 입술은 달콤하고 따스했다.
마치 그녀의 허벅지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꽃들처럼...
나는 선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제 선생님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 나를 가르칠 사람은 이 아름다운 암말이었고,
난 그녀의 의지대로 배워 나가야할 몸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선생님에게 몸을 맡기기로 했다.
"저... 학생?"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앞발굽이 축축했다.
"네...네?"
"그 발굽을 여기 종이에 찍어주세요."
나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앞발굽에 뭍은 인주를
종이에 닦듯이 찍어냈다.
순간, 극도의 창피함이 머릿속을 덮쳐왔고,
나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자리를 뛰쳐나가고 싶었다.
옆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얼굴
그 표정은 내가 캔틀롯에 있을 적에
가짜 지네로 엄마에게 장난칠 때 보던 표정 그대로였다.
나는 수치심에 고개를 떨구었다.
엄마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
'짝!'
"악!"
나는 내 뺨을 타고 흐르는 강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엄마가 나의 뺨을 갈긴 것이다.
어째서일까 의문하기도 전에 나는 고통에 뺨을 손으로 감쌌고
얼굴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갔다.
빨간 사과처럼...
이건 아마 내 마음속 깊은 수치심 때문일 것이다.
그 수치심은 악취로 변해 나를 감싸올 것이다.
마치 썩은 사과냄새처럼...
방금전에 봤던 그 '애플 블라블라'였던가
그 포니에게도 사과 냄새가 났었지...
그러나 그 냄새는 악취가 아니었다.
향긋한 사과꽃과 같은 향기였지
어쩌면 그 녀석은 지금 나와 같은 일이
똑같이 벌어져도 멋쩍게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그저 가련한 한 마리 캔틀롯 포니가 아닌가
나에게 이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어찌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아...
이것이 운명의 데스티니...
"어머나! 웬 벌레람!"
엄마가 벌게진 내 뺨을 쓸어내렸다.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납작해진 파리 같은 것이 떨어져 있었다.
"사과 파리네요. 해롭진 않아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다.
"내일부터 방학 시작해서 6주 후부터 2학기가 시작입니다.
그동안은 집에서 혼자 공부시키시고요.
이거, 여름방학 숙제인데 여기 적혀있는 대로 해오시면 됩니다."
선생님은 서류들을 봉투에 넣으며 말했다.
어머니는 나의 방학숙제가 적인 표를 받아들더니
내가 미처 볼 틈도 없이 반으로 접어
가방에 쑤셔 넣었다.
엄마는 선생님이 자기에게 무례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했는지
조금은 화나 있는 표정이었다.
시장의 아내라는 위치에서 조금만 수틀리면 소리부터 지르는 엄마였기에
그럴수밖에.
"다음에 보죠"
음... 엄마?
혹시 정말 화난거야?
엄마 딴에는 화를 낸다는 목소리였겠지만
화나면 소리만 질러오던 엄마에게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화가 난 목소리를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
그렇지만 엄마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는
도저히 누군가에게 화가 났다는 걸 보여주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엄마는 지금 충분히 자기 성깔을
보여 줬다고 생각했는지
몹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교무실의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열린 문 사이로
'애플 블라블라'가 사과나무(교문이라고 해야 할까)
뒤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아니 혼자가 아니다!
수천만 배는 더 귀찮아 보이는
하얀색 필리하고
그보다 수십억 배는 더 귀찮아 보이는
튀긴 닭껍질색(아니 주황색인가?) 필리하고
같이 우리 쪽을 바라보는 게 아닌가!
나는 될 대로 되라 하고는 입으로 욕지거릴 내뱉으며
엄마를 따라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