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베오베간 "87년생 친구들 있어요?" 라는 글을 읽고 문득 떠올라서 이렇게 글을 써.
89년 또는 빠른90년생 친구들아 잘있어?
우리가 벌써 25살이나 되었다는게 믿겨져? 20대 중반이야.
어른들이 보시기엔 아직도 어리다싶지만
우리는 어느새 이렇게... 어른이 되어버린거야.
그래서 잠시 어린시절을 생각해볼게.
다들 88올림픽 기억나? 아..우리는 그때 어머니의 난자에 불과했지.
동네 형들이 어렸을때 어리다고 놀릴때 항상 이런말을 했었어
"야, 너는 88올림픽 봤냐? 쪼끄만게"
근데 생각해보면 그 형들
도 그때 막 태어났거나 옹알이 시절에 불과했었...
어쩌면 부모님께서 올림픽때 흥에 겨워서 우리가 태어나게 되었는지도 몰라.
우리가 진짜 올림픽의 아이들이라고도 볼 수 있는거지. 암 그렇지.
그리고 96년. 우리는 "국민학교(!)"에 입학해.
내가 굳이 국민학교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거때문에 말이 많았었거든
나는 분명히 국민학교때 입학을 했는데 그시절에 무슨 국민학교냐는거야.
가정통신문이라도 남은게 있더라면 증거를 제시할텐데. 한번 찾아봐야겠어.
아무튼 우리는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초등학교"로 바뀌어.
일제의 잔재에서 벗어나자는 노력의 과정. 맞지?
나 근데 국민학교 입학식날 나 방구꼈다가 바지에 똥쌌어.
방구끼니까 엉덩이가 되게 따뜻했었어. 마치 온수에 엉덩이를 담근 기분...:D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98년)때 정보화교실이라고 처음으로 교실에 컴퓨터가 들어왔어.
진짜 완전 신기방기. 사실 그당시엔 컴퓨터가 그렇게 많이 보급되지 않았잖아.
피시방..도 없지 않았어?
내가 처음 접한 컴퓨터는 아버지가 누나 공부하라고 96년도에 사주신 팬티엄3. 486이었어.
그땐 그게 비쌌는지도 몰랐는데 그당시 아버지 한달 월급이 넘었다고 하시더라고.
그저 내겐 게임기일뿐이었어. 물론 우리 누나에게도 마찬가지야.
부팅할 때 "뚜두두. 뚜!" 라는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
그리고 98년 월드컵이 열렸지. 그냥 TV틀면 명보형과 용수형이 나온다는 것에 신났어.
용수형 헤딩슛 따라하려다가 참 많이도 골대 박았지.
죄다 최용수고 김병지가 홍명보고 그랬어. 다른 월드컵 영웅들도 많지만
내가 기억에 가장 기억에 남는건 이 세형들뿐이야. 아직도 내겐 최고의 월드컵 영웅이고!!
그리고..아..잊을 수 없는걸 빼먹었네.
IMF. 다들 기억나? 그때 피부에 와닿았었어? 나는 어려서 잘몰랐어.
그냥 어머니가 사주시던 쵸키쵸키 아이스크림을 더이상 자주 먹지 못한다는 것에
슬퍼했을 뿐이야. 부모님께서 "요새 힘들다"라는 말과 그렇게 통장을 보며 자주 싸우셨던 기억밖에 안나. 그리고 아버지가 집에 엄청 늦게 들어오셨다는거.?
아,,하나 더. 정말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친구 집에만 가면 친구 아버지가 있는거야.
그래서 친구한테 부럽다고 했었는데 친구 아버님이 참 멋쩍은듯이
급히 집을 나가셨던 기억이 나. 그땐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이제서야 이해가 가네.
그렇게 IMF의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새천년을 맞이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2002년 중학생이 되었어.
와..2002년하면 뭐겠어. 첫 중간고사지.
...그래, 2002년 월드컵이지 당연히!!!
시험이고 뭐고간에 우린 월드컵 신나게 봤잖아.
보러간 애들은 진짜 다들 부러워했지. 아..그때 그 "Be the Reds"티. 참 잘도 입고다녔었는데.
아직도 상상만해도 가슴이 두근거려. 아파트 단지나 집앞 호프집에선 스크린에 화면 띄어서
단체로 응원하고 그랬었는데.
"오! 필승 코리아!", "짝짝! 짝짝짝! 대~한민국!".
골이 터지면 옆집 앞집, 윗집, 아랫집 할 것 없이 온동네가 "우와아아아아악!!!!!"
함성소리에 떠들썩했지. 우리 그때 참 즐거웠었지?ㅎ
근데 그 이후에 2006년, 2010년 월드컵은..별로였어. 왠지 우리들의 순수한 응원과 열정이
변질되고 상업화 되어버린 것만 같았어. 그냥 나는 그랬다구ㅋ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게 두가지가 있어.
그때 당시에도 월드컵에 다소 묻힌 두가지 커다란 사건이 있었어.
다들 기억나지? 제2차 연평해전. 그리고 효순이 미선이.
정말 2002년에 커다랗게 이슈가 되었었잖아.
특히 효순이 미선이 사건은 광화문 촛불시위로 번졌고 월드컵때 시청에 응원하기 위해
모여들었듯이 미국에게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촛불 하나씩 들고 모두 모였었잖아.
난 그때만 생각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때 접한 촛불시위. 이게 내인생의 첫번째 시위였어.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어버린 우리. 성적 전선에 뛰어들었어.
인서울, SKY란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어.
그와 동시에 우리는 두발자유화와 야자 폐지를 외쳤지. 물론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 세대는 우리의 발언할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참여했던 것 같아.
주변에 어른들이 우리가 투표권을 얻기만 하면 이 나라 기대 된다고 하셨었거든.
공부를 가끔 미친듯이 하다가 우리는 2007년에 수능을 보았어.
뭐 난 수능을 잘본 편이 아니었고 원하는 대학도 떨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다음해에
재수를 하게 되었어.
내친구들은 전부 다 대학에 갔지만 말이야.
2008년 하면 뭐가 생각나? 난 이명박 대통령하고 광우병 파동이 생각나.
이명박 대통령때문에 진짜 전국이 시끄러웠던 것 같아.
쥐새끼때문에 못살겠다고. 이게 다 이명박때문이라고. 일종의 주문이었던 것 같아ㅋㅋㅋ
아 진짜 정말 힘들때! 우리 모두 외치는거지. "이게 다 쥐새끼때문이야!!!"
그러면 그냥 힘든게 조금 참을만 했어.
그리고 광우병 파동. 또하나의 촛불시위를 일으켜낸 사건이었어.
조작이다, 선동이다. 뭐다 말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건
재수학원에서 저딴거에 휘둘리지말고 니네 공부나 해라. 라고 했던거야.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고 그걸 표현해내지 못한거. 그리고 그것에 굴복했던 나의 모습이
참 가슴 아프게 생각이 나.
두번째 수능을 마치고, 대학교 신입생이 되었고
어느새 우리는 성인이 되었어.
술집에 들어가 당당하게 민증을 내밀고 술을 마시게 되었고 투표권을 얻어
투표를 하게되었지.
남자아이들은 하나둘씩 군대에 가서 이등병 약장을 달았고 빨리 입대한 친구들은
어느새 상병, 병장을 달았어.
누구는 입대를 말하고 누구는 전역을 말하고 하나둘씩 연락이 끊기기 시작했고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들의 모습은 정말 많이도 바뀌었어.
보란듯이 직장에 취직해서 돈을 벌고 사회에 뛰어든 친구들.
이제 막 전역하고 복학해서 꿈을 키우는 친구들.
아직도 무얼 해야할지 몰라서 불안감을 안고있는 친구들.
어느새 가장이 되어서 아빠, 남편 소리 듣고 있는 친구들.
사회의 냉혹한 현실에 상처입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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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아, 너희는 지금 무얼 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