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서인의 만화는 어떤 특정 계층- 특히 감정적이고 무지한자들 -을 설정해서 그들의 위선을 까발리고 조롱하는 것이 주된 패턴이다. 문제는 그 폭로와 조롱의 대상이 항상 약자라는 것이다. 그는 어떤 프레임에서든 항상 강자의 옆에 딱 붙어서 그들의 지배를 받고 있거나 받았던 자들을 비웃고 폭로한다. 대일본제국, 선진국 일본에 붙어 미개한 조선인을 비웃으며 조선인들이 상대적 약소국 출신 사람들에게 행한 폭력 등을 들추며 '너희도 일본과 다르지 않아. 더 열등한것만 빼면' 이란 식의 메세지를 전달한다. 정부 입장에서 국민을, 재벌의 시각에서 중소기업을, 사측 입장으로 노동자를, 가멸은 이의 자리에서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위선, 어리석음, 추함 등을 폭로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시선은 보는 이를 강자의 정서에 이입하도록 함으로써 자신보다 못난, 열등한 자들을 볼 때 소인배들이 느끼는 상대적 우월감, 쾌감, 선민의식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비록 한국인이지만 일본에 열폭하는 저열한 인간은 아니지'
'나는 광우병 선동 따위에 놀아나는 어리석은 인간이 아니지'
'나는 비록 가난하지만 노력도 안하고 부자 욕만 하는 빨갱이는 아니지'
등 의 생각을 하며. 자신이 소속 집단에서 소외된 원인을 열등함, 반사회적 성향 탓이 아니라 우월함, 냉철함 탓으로 돌리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 윤서인과 그의 팬들-일베에 특히 많을 것으로 추정-은 이런 이유로 세상의 약자들을 찾아 그들의 약점을 까발리는 행위를 많이, 즐겁게 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 행위를 문제시 하는 이유는, 단지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잔인한 소인배들에 대한 혐오감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사회와 자기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 때문인 것이다. 살인을 범죄로 처벌하는 이유는 피해자가 선하기 때문이 아니다. 소소한 인격적 결함이 있었든, 돈을 떼먹었든 어쨌든 간에 개인간의 알력을 사사로운 폭력으로 해결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혼란으로 이어져 모두가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당화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대형재해의 피해자들,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서는 것은 그들이 완전무결하거나 티없이 맑고 선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균형이 깨짐으로써 야기될 혼돈을 막기 위해 서는 것이다.
윤서인과 그 추종자들의 왜곡은 이러한 공공선을 위한 움직임을 개개인의 자의식 과잉에 의한 허세나 이기적 이익추구로 폄하함으로써 독자들의 정당한 사회비판, 참여 욕구를 저하시키고 양비론 등의 정치, 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함으로써 사회적 병폐들에 대한 개선의지를 저해한다
이상이 내가 그의 만화와 추종자들을 싫어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