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BS 방송화면 갈무리 |
새정치연합이 차기에 집권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었는가? 이에 대해 필자의 대답은 “아니오”다. 그러면 앞으로 집권 준비를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글쎄”다.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외교안보 분야는 최근 선거에서 영향력이 부쩍 확대되었다. 반면 사회경제분야는 최근 선거에서 거의 변별력을 상실했다. 사회경제분야는 막상 선거가 다가오면 누가 보수고 누가 진보인지 구분조차 힘들다. 색깔과 성향에 따라 표가 결집되는 의제는 주로 외교안보분야로부터 나오고 있다. 리더의 정치철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분야는 아무래도 정치와 외교안보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어떤 상황인가? 외교안보분야는 핵심역량이 완전히 붕괴되어 있고, 비전문가들의 즉흥적 주장이 난무하여 당의 결집된 의견이 무엇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며, 그 결과 중요 의제에 있어 발언권도 사라진지 오래다. 필자는 이제껏 이런 제1야당을 본 적이 없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복기해보자. 북방한계선(NLL) 문제와 관련하여 문재인 후보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몰랐다. 첫째,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내용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이걸 모르니 그 뒤에 이어진 남북 국방장관회담 내용이 무엇인지도 당연히 몰랐다. 둘째, 정상회담 대화록이 작성된 경위를 전혀 몰랐다. 언제, 어떻게, 누가 대화록 작성에 참여했고, 그 결과 무엇이 수정되었으며, 무엇이 첨삭되었는지, 몇 부가 작성되었는지 전혀 몰랐다. 셋째, 그렇게 해서 작성된 대화록이 어디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국정원인지, 국가기록원인지, 청와대 e-지원 시스템인지 뭐가 뭔지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가? NLL양보 논쟁, 대화록 조작 논쟁, 사초 폐기 논란 등 문제 같지도 않은 문제, 쟁점 같지도 않은 쟁점에 발목 잡혀 침몰했다. 계속 이어지는 말실수와 잘못된 방향 설정은 선거 이후에도 야권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있어 이 꼴을 봤더라면 거의 미쳐버렸을 것이다.
▲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삭제한 혐의로 기소된 백종천(72)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조명균(58) 전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 등이 지난 2월 6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밖으로 나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백 전 실장과 조 전 비서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해상 북방한계선(NLL) 관련 발언을 담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역사적 기록물로 보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지원 시스템상의 회의록을 파기하고 종이 서류는 파쇄·소각한 혐의 등을 받았다.한편 검찰은 회의록을 유출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던 정문헌(49) 새누리당 의원을 지난해 6월 약식기소하면서 김무성(64)·서상기(69) 의원, 권영세(56) 주중대사, 남재준(71) 전 국정원장 등 9명에 대해서는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 2015.2.6/뉴스1 |
그런 현상이 왜 일어났을까?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정상회담 대화 내용은 당시 회담에 배석했던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이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대화록 작성 경위는 최종 대화록에 직접 서명까지 한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잘 알고 있을 터이고, 남북 장관급회담 내용은 백종천 당시 안보실장이 잘 알고 있을 터이고, 대화록의 소재나 관리방법은 임상경 당시 대통령기록관장이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그 외에도 숱하게 많은 관련자들이 있는데 사실관계와 맥락을 밝히는데 이토록 무능하다는 말인가?
만일 2013년에 남재준 국정원장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야당은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었을 것이고, 대화록 초안을 폐기한 것이 재판까지 가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야당은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존재한다는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 공안기관이 야당을 탄압했다고 하지만 사실관계가 밝혀지는데 기여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비록 대화록을 공개하고 야당 인사를 고발한 그 동기는 불순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필자가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야당의 이런 무능함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보수정권과 공안기관의 탄압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며 자신의 무능에 대해서는 관대한 일종의 자기합리화가 습관이 되고 말았다. 결국 진실을 지켜내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문제로 시끄럽던 2013년. 정승조 합참의장을 비롯한 각 군 참모총장이 참석한 합참의 합동참모회의에서 “NLL 양보를 한 과거 정부에 대해 응징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참석자로부터 나왔다. 그러자 당시 합참의 고위 관계자가 “NLL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관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며 그 이유를 참석자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을 들은 각 군 총장들은 “NLL 문제는 이제 제기하지 말자”고 했다. 국방부와 합참에서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진실을 야당은 주장하지 못했다.(다음호에 계속)
▲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제안한 ‘서해평화특별지대’ 지도. ⓒ 윤호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좀 심하게 말하자면 지난 대선은 당시 민주당이 당선증을 반납한 선거였다. 선거가 있던 해의 초기와 비교하자면 연말의 대선은 이미 받아놓은 당선증을 선거관리위원회에 다시 반납하는 행사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열정을 갖고 헌신한 야권 인사들이 야속하다고 할런지 모르겠다.
이런 실상을 외교안보분야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2014년은 외교안보에서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무기한 연기되고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이 체결되었다. 동북아의 지정학적 변동을 초래할 미국의 사드 미사일 배치 논란이 발화되었다. 무기도입 비리와 함께 군 내부로부터는 전근대적인 총기난사와 집단구타, 장성들의 군기문란 사건이 터져 나왔다. 한국 안보의 근본지형이 흔들릴 미세한 충격파가 느껴지는 시기였다.
그런 안보 현안에 새정치연합은 단 한 번도 당론을 결집한 적이 없다. 대안은 단 한 건도 제시된 적 없다. 오직 세월호 심판론에 집중하며 외교‧통일‧안보분야에서 새정치연합은 완전 철군을 결정해 버렸다. 그 변변한 대책회의 한 번 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여긴 우리가 불리한 곳이니 떠들지 말자”는 인식이 저변에 확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소속 상임위 의원들조차 거의 정책에 관심이 없다. 오직 지역구 챙기거나 지역구 할당받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 즉 야당엔 주인이 없다.
▲ 지난해 8월 18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서거5주기 추모행사에 참석자들이 김 전 대통령의 육성 영상을 지켜보고 있다.2014.8.18/뉴스1 |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쌓아놓은 대북 화해협력 정책도 사실 보수정권이 위협하기 이전에 새정치연합 스스로 폐기처분했다. 이건 아주 오래된 일이다. 그 주된 사례를 살펴보자.
2008년부터 6월이 되면 2002년에 벌어진 ‘제2연평해전’을 빌미로 보수언론은 일제히 “햇볕정책이 해군 장병들 목숨을 앗아갔다”며 김대중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었다. 특히 <조선일보>를 필두로 “김대중 정부 당시 군 수뇌부가 북한 눈치를 보느라고 북한의 도발정보를 고의로 축소․왜곡해서 우리 장병이 사망했다”고 선동했다. 매년 이런 논리로 야당을 두들겨 패는 동안 정작 야당은 침묵하며 그 손해를 고스란히 감수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해전의 진실은 2002년에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던 전병헌 의원이 부하 O중령을 통해 상세히 규명했던 사안이고, 그 조사 결과는 당시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에게도 문서로 전달된 바 있다. 그 내용을 밝히며 소명을 해야 하는데 박지원, 전병헌 누구도 <조선일보>의 주장에 대해 단 한마디도 반박하지 않았다. 오직 야인이 된 임동원 씨 한 명만 소극적으로 방어하려다가 <조선일보>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만약 야당이 의지만 있었더라면 교전의 진실을 얼마든지 밝히며 맞설 수 있었는데 말이다.
▲ 노무현 대통령 환송 오찬장소로 환담하며 이동하는 남북양국정상 2007.10.04. ⓒ 노무현사료관 |
<조선일보> 보도를 근거로 사망한 장병의 유족들이 김대중 정부 당시 군 수뇌부를 고소했다. 그런데 2014년 11월에 법원은 “북한의 도발정보를 왜곡해서 장병이 사망했다는 근거는 없다”고 유족들에게 패소 판결을 했다. 이 판결문만 잘 검토해도 야당은 얼마든지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는데, 필자가 만난 야당 인사 누구도 이런 판결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아는 사람이 없다. 아예 관심을 끊어버리고 자신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 것처럼 행세한다. 햇볕정책의 가치와 정당성을 지킬 의사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막상 문제가 되면 그들은 재빨리 숨어버린다. 그 과정에서 이길 수 있는 싸움도 번거롭고 부담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포기해버린다는 데 문제가 있다. 2012년의 대선은 바로 그런 태도가 어떤 재난을 초래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NLL 문제를 먼저 제기한 측은 새누리당이 아니라 민주당이었다. 10월 4일 10․4선언 5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후보는 “2007년 정상회담 당시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이 경직되지 않았더라면 서해평화협력지대가 성사되었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을 보수 언론이 대서특필하며 대선에서 재앙이 될 NLL 문제가 최초로 정치쟁점화 되었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