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를 잡을 손이 축축해져 왔다.
미드를 외치고 묵묵히 딩거를 픽한 뒤, 스펠을 힐과 진급을 들자 나머지 4명이 팀원들은 나를 트롤로 취급하며 욕을 쏟아낸다. 4인 친구팟인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닷지를 해야하는가 토론하다가 시간이 아까우니 그냥 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나는 것 같다.
이정도에는 기죽지 않는다. 이미 딩거를 플레이하면서 수십... 아니, 수백번도 더 겪었던 일이 아닌가. 여기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저들은 나를 그저 충으로 인식하고 날 비난할 것이다.
게임은 시작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팀은 내가 딩거를 픽했음에도 티모나 카르마 등을 픽하여 '어차피 진 게임 나도 트롤이다!' 하는 심정으로 플레이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다른 라인에서 던지지 않기만 한다면...
그때, 시작한지 4분여정도 되었을까, 라인을 밀며 파밍에 열중하다가 바텀에서 올라온 레오나와 정글 누누, 그리고 브랜드에 합동 공격에 당해 퍼블을 내주고 말았다. 힐은 쓸 겨를도 없었고, 써봤자 어차피 죽을 것이기에 2인 갱이 오는 순간 내 손은 이미 마우스를 떠나 담배를 집어들고 있었다.
좋지 않다...
역시나 채팅창은 금새 저럴줄 알았다며 나를 비난하는 글들로 가득찼다. 미아콜도 해주지 않은 바텀에서 코르키와 럭스가 나를 가장 심하게 까는 걸 보고 순간 욱할뻔 했지만 여기서 내가 화를 낸다면 더더욱 걷잡을수 없게 된다. 침착해야 한다...
그러나 퍼블 어시를 먹고 바로 마을을 가서 초신속을 구매한 레오나가 봇으로 빠르게 달려와 칼을 꽂아넣자 마나가 없던 코르키와 럭스가 베인에게 더블킬을 내준다. 다행스럽게도 샤코가 탑에서 싱드를 도와 적 쉔을 따서 한점 만회하긴 했지만 바텀은 이미 반쯤 게임을 던진 듯 싶었다. 그러면서 틈틈히 '레오나가 미드에서 퍼블어시를 먹고오지 않았다면 내가 죽었을리가 없다'라는 주장을 우리 부모님의 안부를 물으며 격한 어투로 쏟아내기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탑은 쉔을 상대로 밀리지 않고 싱드가 잘 성장하고 있었으며, 샤코 또한 냉정한 판단력으로 지금 상황에서 믿을 것은 탑뿐이라는것을 인식했는지 연이은 탑 갱킹으로 쉔을 내리 두번을 더 잡아내며 쉔을 망하게 하고 있었다.
그사이 봇에서 누누에게 갱킹을 당해 봇이 둘다 죽고 타워가 밀리긴 했지만 스코어는 3대 5. 타워 하나 차이. 이정도면 충분히 해볼만 하다. 단 한번의 기회만 온다면...
그때 미드에서 브랜드가 아래쪽으로 이동하는것이 보였다. 바텀에서 두명이 죽었고 타워도 밀었으니 이건 분명히 용을 잡으러 가는 것이다. 뒤를 보니 우리편 대포 미니언이 오는것이 보인다. 기회가 왔다.
E-W로 라인을 빠르게 밀고 공성미니언에 진급을 쓴 후 상대 미드 타워앞에 터렛 두개를 박자 미드 타워가 순식간에 날아간다. 적들도 당황했으리라. 이에 멈추지 않고 탑으로 올라가 싱드상대로 타워 허그를 하고있는 쉔에게 접근해 터렛과 로켓을 날려주고 쉔을 무난하게 잡아내며 탑 타워까지 밀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탑에 2차 타워에 매섭게 핑을 찍는다. 싱드와 함께라면 2차타워또한 순식간에 철거할 수 있다. 적은 용을 먹고서 타워가 두개 순식간에 날아가자 당황했는지 부랴부랴 포탈로 귀환해 탑을 막으러 온다. 하지만 미드에선 진급 미니언이 아직도 살아서 미드 타워를 두들기고 있고 바텀에선 코르키와 럭스가 프리파밍을 하며 타워를 깨고있는 상황. 나쁘지 않다.
적들은 타워가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맵을 분주히 돌아다닌다. 그 이면에는 '타워 몇개 밀렸지만 그래봐야 우리가 이길거다.'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이미 성배에 존야가 갖춰진 상황. 라인에 터렛을 박아서 라인을 관리하며 샤코와 내가 백도어로 상대의 정신을 흐트려트린다면 승산은 아직 우리쪽에 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용이 리젠될 타이밍이 오고 적들이 용쪽으로 이동하는것이 보인다. 기회다. 나는 빠르게 탑으로 올라가 탑의 미니언을 밀어버리고 적의 억제기 타워까지 진입했다.
하지만...
용앞에서 5명이 용을 잡는것을 본 샤코가 매섭게 파고들어서 가차없는 강타로 용을 스틸하고 장렬하게 산화한것까진 좋았는데, 남은 팀원들이 어물쩡대다가 레오나에게 물려서 3:5의 싸움이 벌어졌다. 탑 타워는 이미 밀었고 억제기만 남은 상황, 터렛 두개만 억제기 옆에 남겨둔 뒤 빠르게 귀환을 타서 미드로 진격하는 적을 막으러 나간다. 코르키는 발키리로 잘 도망쳤고, 럭스만 죽은 상황. 하지만 적들은 궁극기와 스펠이 거의 다 빠졌고 우리는 아직 탱커의 중심 싱드와 딜의 중심 코르키가 살아있다. 1차타워를 무난하게 부슨 적들은 파죽지세로 2차타워까지 밀고들어온다. 타워 옆에는 나와 싱드만이 남아서 버티고 있는 상태.
궁극기가 없는 싱드와 고인 딩거. 둘을 본 적들은 코웃음을 치며 레오나와 쉔을 앞세워 다이브를 했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기다리던 상황이다. 궁을 켜자 터렛 두대는 얼음탄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적들은 터렛을 무시한 채 나와 싱드를 잡으려 했으나 유체화를 켠 싱드는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기에 나를 점사하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할때까지 버티다가, 존야를 발동시키고 적들이 당황하는 사이 본진에서 피를 채운 코르키와 살아난 샤코가 들어와 겁도 없이 타워 안쪽으로 들어온 적들을 학살했다. 존야가 풀리자 다시 한번 나를 죽이고자 딜이 들어왔으나 힐스펠을 켜서 한번 더 살아남고 적은 몰살. 간신히 브랜드만 살아남아 도망가려 했으나 럭스가 뒤이어 나와서 데맛씨아를 정확하게 꽂아넣어 에이스를 띄우며 분위기가 급격히 반전되었다.
탑 억제기는 이미 밀었고, 미드도 2차타워까지 밀었으니 거침없이 진격하여 상대의 미드 억제기까지 부수고, 그 뒤 버프몹을 빼먹고 바론을 시도하자 적이 부랴부랴 달려나와 막으려 했으나 한타에서 킬을 주워먹고 삼위일체를 뽑아낸 코르키의 딜량은 무시무시해서, 우리도 셋이 죽긴 했으나 살아남은 싱드와 샤코가 무난하게 적의 넥서스타워를 밀고 마무리.
점수창이 나오자 팀원들은 '이걸 이기네' 라며 서로 자기가 잘했다고 우쭐대고 있다. 씁쓸하게 웃으며 담뱃갑에 손을 가져갔지만 텅 비어있다. 지갑을 챙겨 밖을 나가려는 찰나, 채팅창에 올라온 싱드의 한마디.
'딩거 처음보는데 생각보다 쎈듯'
뒤이어 샤코도 한마디 거든다.
'장인인가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비난하던 럭스도
'베인이 딩거 궁 킨데다가 앞구르기 하더라ㅋㅋ'
'딩거가 고인이라고 애들이 무시하고 들어오는데 그게 사실 딩거 패시브임 딩거 OP!'
갑자기 담배 생각이 없어져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한번 더 하기를 누르며 생각한다.
사람들이 딩거를 무시하고, 욕하고 까도,
딩거를 플레이하는 나에게도 비난과 리포트가 쏟아져도,
딩거를 플레이하고부터 승률이 급격하게 떨어졌음에도,
나는 여전히 딩거가 좋다.
그리고 오늘... 조금 더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