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천우진 기자, 정선은 기자, 김승미 기자, 지선호 기자, 박혜정 기자, 이상미 기자] "막노동하러 몰려오는 사람은 늘어나고, 일자리는 더 줄어드니..." 추석 밑인 9일 새벽 5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서울 종로구 행촌동 성심인력개발에 어둠을 뚫고 어깨에 가방을 멘 수십 명의 일용직근로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미 인력사무소 안팎은 30~40명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 연령대는 40~50대. 간간이 20~30대의 젊은층도 눈에 띄었다. 20분이 지났을까. 수십 명에 불과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몇 배로 불었다. 일부는 복잡한 사무실을 피해 밖에서 담배 한 모금을 내뿜으며 대기했다. 안에서 소장이 이름을 부르면 10여 명씩 무리지어 공사현장으로 이동했다. 남은 이들의 화제는 단연 '날씨'다. 비가 내려 혹여 허탕치고 돌아가지 않을까하는 염려가 역력했다. 이곳을 드나든 지 10년이 됐다는 최모씨는 "꾸준히 나오는 사람들은 비가 와도 내부공사 하러 가기도 하는데, 나처럼 드문드문 나오는 사람은 아무래도 순위에서 밀린다"며 "추석 밑인데 벌어놓은 돈이 없어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옆에선 "요즘 같아선 굶어죽기 딱 좋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는 "힘든 일이라 매일 나올 수도 없어 사나흘 번 돈으로 일주일 산다"고 늘어놓았다. 그는 소장이 부르자 급히 담배를 비벼 끄고는 승합차에 올라타고 사라졌다. 경기 성남시 수정구 모란역 근처 인력시장도 분주했다. 새벽 5시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던 60대 김모씨가 한마디 건넨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었는데 무슨 일감이 있겠어." 올해로 40년째 공사장 철근 설치 일을 하고 있다는 그다. "나야 기술이라도 있지 잡부(단순일용직)들은 일 얻기가 더 심해"라고 푸념했다.모란시장 인력시장은 하루 100여명 이상 모여들지만 일자리를 잡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된다.
연이은 지방 건설사 부도와 아파트 미분양 등으로 이곳 인력시장에 불황이 불어 닥쳤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런 판국에 올해는 폭염과 장마가 이들을 더욱 괴롭혔다.변덕스러운 날씨가 더해지면서 지난달에는 사나흘밖에 일하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아침 6시가 넘어가자 50대 이모씨는 연신 담배만 피워댔다.오늘도 공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초조해 보였다. 20년간 건설현장에서 철근일로 잔뼈가 굵은 그는 천호동 집에서 새벽 3시에 출발해 매일같이 성남 모란 시장으로 출근한다. 그는 "최근 5~6년 중 지금 부동산 경기가 가장 안 좋아. 지방 미분양이다 건설사 부도다 해서 일이 있어야지"하고 한탄했다. 젊은 30대도 눈에 띠었다. 그는 "군대도 안가고 이 일만 17년째"라면서 "고향이 제주도인데 이번 추석엔 못 갈 것 같다"고 말끝을 흐렸다. 서울 북창동 인력시장에서는 식당 등으로 일을 나가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건물 아래 앉아 '팔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50대의 김모씨는 "식당에서 그릇닦기나 허드렛일을 한다"며 "일당은 8~9만원 선인데 20~30년 경력 되는 사람들이 그 정도"라고 말했다. 어느 인력시장에서나 건설 일용직들이 받는 생존 위협은 한계 수위를 넘는 듯 보였다. 2만달러시대가 다시 열렸다고 온 국민이 축배를 드는 2010년 건설 일용직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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