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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평론가들이 뽑은 2000년 이후 제일좋은 시
게시물ID : lovestory_574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평창수680m
추천 : 7
조회수 : 81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7/17 12:44:46

가재미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 

현 불교방송PD이자 시인인 문태준의 가재미라는 시입니다.

암투병중인 큰어머니에게 문병 간것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경북 김천의 소읍에서 어렸을때 함께 살던 큰어머니의 한평생을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2005년 발표당시 평론가들과 시인이 뽑은 올해의 가장 좋은 시로 뽑혔고

2010년 다시 젊은평론가들이 뽑은 2000년이후 제일 좋은시에 선정되었습니다.


읽을때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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