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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퍼온글 기독경에 바벨탑은 없었다. 어느 기독교인의
게시물ID : sisa_58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신비인
추천 : 4/12
조회수 : 1107회
댓글수 : 59개
등록시간 : 2004/05/20 16:40:29
이 글은 제 홈에 길손님이 퍼와주신 글을 다시 옮긴겁니다. 지구라트가 바벨탑이였다고 
박박 우기던 그랬었다를 비롯한 기독교인들 뭐라 할지 정말 궁금하군요.

Name ccchung
Subject 성경에 바벨탑은 없다.
민영진의 성서 클리닉입니다
작성자 [ 정정조 ] - 2001년 07월 21일 오후 11시 38분에 남기신 글
ⓝ 성경에 바벨탑은 없다. 조회수 [ 56 ]
성경에 바벨탑은 없다(바벨탑과 구약성경)
지난 겨울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되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전'은 여러 모로 유익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어 이 글을 쓴다. 이 전시회에서 지구라트 모형물 앞에 "구약성서 창세기에 '바벨탑'이라고 불리는 높은 탑이 바로 이 지구라트이다."라고 설명 해 놓은 것에 대한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해서 지구라트는 성경 창세기 11장에서 말하고 있는 어떤 것과도 관계되고 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이제 그 문제를 하나 하나 살펴 보기로한다.
1. 성경에는 '바벨탑'이라는 단어조차 없다.
창세기 11장 4절을 보자.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다. 성과 대란 절대로 탑이 아니다. 성과 대는 서로 연결된 하나의 구조물이다. 성곽 몇몇 요소에 높은 전망대를 설치하여 적군을 감시하거나 효과적인 공격을 하기 위한 전술적 축조물이 바로 '대(=망대)'인 것이다.
우리 말 구약성경에서 망대라는 단어 44개 중 37개는 히브리어로 여기 창세기 11장에서 대라고 번역한 것 2개와 같은 단어인 '미그달'이다. 같은 단어를 같은 목적에서 사용한 단어 '미그달'을 여기 창세기 11장에서만 무슨 일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망대'라 하지 않고 '대'라고만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망대'이든 '대'이든 원래의 뜻은 마친가지이다. 다만 우리 말의 경우 '대'는 '망대'일 수도 있고 단순히 높은 장치물일 수도 있고 더우기 왕하 23:3과 대하 6:13 및 느 9:4 등에서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대도 있어서 탑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도록 돕고 있다.
다시 창세기 11장 5절을 보자.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그리고 8절을 보자.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 으신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이 성경을 보면 어디에도 탑을 쌓았다는 기록은 커녕 망대를 쌓은 것조차 찾아볼 수 없다. 망대는 높은 구조물이므로 성곽의 마지막 작업공정에 속한다. 따라서 성 쌓기를 그쳤으니 망대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때이다.
2. 지구라트는 무엇인가 ?
지구라트를 탑이라고 하는 것조차 우리 말의 한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치고 일단 지구라트를 '바벨탑'이라 하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다들 알겠지만 지구라트는 일종의 대형 신전제단이다.
그런 모양의 제단은 비록 바벨론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남미의 인디안들도 비슷한 제단을 자지고 있었으며 북만주에 우리 선조들도 그런 종류의 제단을 가지고 있었다. 에집트에서는 그것을 무덤으로 개조하였는 바 피라미트이다. 이것은 고대에 제단 밑에 무덤을 설치했던 고인돌의 변형에 더 가까운 것일 수 있다.
지구라트 상단부에는 특별히 장식된 방이 있으며 이 자리가 신전 겸 제사드리는 성별된 곳이다. 그 위를 다시 높이 올려 뾰죽한 지붕을 만들었다. 이는 원래 고대에 모든 민족들이 낮은 산 능선 바로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던 풍습과 일치하며 노아가 아라랏산에서 제사드린 것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바벨론이나 북만주에는 평지가 많고 산이 드믈기 때문에 산을 대신할 구조물이 필요했을 것이며 또 특별히 구별된 신성한 장소를 만들기 위하여 자연적인 산보다는 천체운행이나 우주적 원리들을 담은 구조물들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느부갓네살이 사용했던 지구라트를 '천지기초의 집'이라고 불렀던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한 마디로 해서 지구라트는 종교적 목적의 대형 신전제단이다. 우리 나라나 중국 또는 동남아와 인도 등에 널리 퍼져 있는 탑과도 다른 점이 있다. 이 탑들은 물론 종교적 목적의 축조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직접적인 신전이나 제단은 아니다. 부처의 사리를 넣었거나 고승의 뼈 또는 특별한 신능을 가지고 있다는 경전을 넣어두어 불력이 널리 퍼져 나가기를 기원하는 일종의 주물신앙적 축조물들로서 고인돌이나 피라미트에 가까운 목적의 것들이다.
3. 지구라트와 성경과의 관계
성서비평이 한참 열을 올려가고 있던 19세기에 벨하우젠 같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는 많은 성서비평가들이 이스라엘 고대사를 후진 문화 국가로 만들어가고 있었을 때 바벨론 일대가 발굴이 되었다. 이 무렵에는 이미 다윈의 진화론이 세계를 크게 흔들고 있던 때였다.
초기 발굴의 결과와 약간의 점토판 문자 해독에 힘 입어 이른 바 팬-바빌로니즘이라는 학설이 탄생하였다. 그 중요한 내용은 이와 같다.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 가 있었을 때 그들이 바빌로니아의 전설과 지구라트를 보고 본국에 돌아와 시오니즘을 일으키기 위한 광범위한 종교적 개혁을 서두를 때 그것을 약간 개조하여 성경에 넣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글들을 모세가 쓴 것이라고 속였다는 것이다.
이 학설이 사실이라면 이번 전시회에서 붙인 지구라트에 대한 설명은 적절한 것이다. 필자는 팬-바빌로니즘에 대한 오늘날의 관심에 대한 비평조차 부끄럽게 생각한다.
성경이 이렇게 엉성한 구조로 되어 있는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실현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면 나는 절대로 아무에게도 예수 믿으라고 권하지 않을 것이다. 조모씨가 4대째 기독교인의 집안에서 자라서 복음성가를 잘 불러 미국에 가서 신학을 하게 되었을 때 많은 신자들이 기뻐했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신앙을 버리고 가정이 파탄되어 돌아왔으며 현대판 기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신학의 결과가 신앙을 송두리채 파 헤쳤던 것이다. 슈바이쳐는 예수를 정신병자라 했으며 바울을 간질병 환자라고 단언하고는 예수대신 아프리카의 빈민들의 성자 구세주가 되었다.
필자는 이번 전시회의 주체자에게 그 지구라트에 관한 설명의 진위에 대하여 고고학적이든 물리학적이든 어떤 방법으로라도 증명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는 바이다.
4. 옛 전설과 지구라트
바벨론 일대의 지구라트는 발굴된 것만도 25개나 된다. 가장 오래 된 것으로는 우룩(=성경의 에렉)에 있는 것으로써 기원전 3,000년 이전의 것이다. 팬-바빌로니즘계의 학자들 중 상당 수가 성경의 것과 일치시키려 하고 있는 바벨론 지역의 에사킬라 북쪽에 위치한 에테메난키(=천지기초의 집)라 불리우는 마르둑 신전은 윗 부분이 망실된 오래 된 것을 느부갓네살의 부친때부터 복원하여 사용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벨론 남쪽 16킬로미터 지점에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비르스 니므롯이라고 부르던 곳이 있다. 여기에는 오래된 전승이 있다. 니므롯이 바벨론에 망대를 세우려다가 하늘에서 불, 또는 바람이 불어와 기초부터 무너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전설은 틀림 없이 바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신화에 대하여 극렬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성경을 왜곡시키는 빙거가 바로 신화들이기 때문이다. 천사타락설의 하늘에서 떨어진 마왕 루시포가 바로 로마신화에서 나온 것도 사실 아닌가.
이 곳은 발굴되기 전에는 허물어져서 작은 언덕 같이 보였던 곳이며 지금은 그 벽돌을 개발지역의 건축을 위해 거의 다 사용하여 흔적만 남게 되었다. 확인된 바로는 이곳은 니므롯과는 무관하며 보르십파라고 하던 도시의 나부신전이었다.
아마도 기원전 3천년 이전의 지역을 발굴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은 지구라트나 그에 관련된 더 많고 중요한 자료들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나 불행히도 대부분 물에 잠겨 있어서 발굴에 막대한 비용이나 최현대식 장비나 처리방법 등이 필요한 입장이며 무엇보다도 이라크를 위시한 아랍국들이 성경의 근거가 되는 고고학적 자료들의 출토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 발굴의 절대적인 방해가 되고 있다.
팬-바빌로니즘의 원래 진원지는 보르십파의 전승에서 출발하고 있다. 바울은 신화를 맹렬히 반대했는데도 일련의 학자들은 그것을 무시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성경이 이와 같은 엉성하기 짝이 없는 전승에 기초하고 있다고 감히 떠들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5. 어원학적 고찰, 발랄과 밥-일룸
보수주의 학자들 간에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마지막의 것이 있다. 바벨론의 어원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창11:9) '발랄(=혼잡)'과 무관하며 오히려 신들의 문이라는 뜻의 바벨론어 '밥-일룸'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보수주의 신학자들은 밥일룸을 왜 발랄이라고 고쳐 썼는지에 대하여 말하지 못하고 있으며 인문주의계의 신학자들은 구약성경을 마지막 편집한 서기관들의 얕은 꾀라고 과감히 말하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
생각해보자.
바빌로니아 유수때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의 전설을 듣고 이를 근거하여 본문을 조작하였다는 것은 너무나 조잡한 추론이다. 팔레스틴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에집트문명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통로였으며 두 문명에 버금가는 이른 바 오리엔탈 문명을 일군 자리이다.
잠언서의 일부가 에집트의 사자의 서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또 일부는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것이 이러한 문화교류의 터널에서 있음직한 이야기가 아닌가 ? 구약성경을 마지막 편집하던 시기라고 하는 그 BC 몇 세기경에 비단 그들 서가관 만이 그 바빌로니아의 전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인가 ?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남의 민족의 이야기를 성경에 넣는다고 누가 그것을 모세의 권위로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 ?
바벨론은 바빌로니아의 히브리식 발음이다. 바빌로니아는 유다를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가 있고 그보다는 일천이삼백여년 전에 그 유명한 함무라비가 활약했던 고바빌로니아가 있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우르에 있었을 때 함무라비를 만나보지 못했을 것이다.
고바빌로니아는 이스라엘 민족과는 역사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었으며 신바빌로니아만이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을 깊이 관여했었다. 따라서 성경에서 바빌로니아는 유대국 말기에 앗수르가 이스라엘과 함께 바빌로니아를 멸망시켰을 때부터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벨'이란 단어는 창세기 10장의 니므롯 이야기에서와 11장의 이른 바 바벨탑에서 단 두번만 나타나고 있다. 동일한 지역인 이곳을 성경의 모든 곳에서는 바벨론이라고 했으면서도 왜 여기서만 '바벨'이라고 했을까 ?
니므롯의 나라는 유프라데스강 하류의 '바벨' 등 몇 도시에서 시작하여 같은 강 상류지방의 도시들을 건설하였다. 성경을 보면 니므롯은 '바벨'을 건설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있던 도시 '바벨' 등에서 나라를 건설했던 것이다. 그리고 신도시 건설은 서쪽 지방에서 이루어졌었다.
성경에 니므롯이 구스의 아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이 지역에 일찍 남방민족이 왔었다는 역사적 추론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스메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바벨'은 니므롯보다 훨씬 먼저 있었다. 동방으로 이전하던 셈계의 후손들이 장자부족답게 통일제국 같은 꿈을 꾸었을 수도 있다. 인구가 급팽창하고 식량이 부족하던 그들은 큰 강 유프라데스 하류의 델타지역에서 대형 농경을 꿈꾸었던 것같다.
성경의 언어혼잡 사건이야 믿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고 천형의 땅으로 인식되어 폐허가 된 옛 땅 '바벨'에 오랜 세월 후 영웅 니므롯이 일대의 수렵군단을 이끌고 나타나게 되었다. 그들은 거기서 여호와의 은총 속에서 큰 나라를 이루고 고대문명의 기틀을 닦게 되었던 것이다.
생각해보자. 바벨론, 즉 바빌로니아는 기원전 19세기 이전부터 흥성해 왔던 바빌로니아 민족의 언어이며 '바벨'은 그들보다 훨씬 먼저 있었던 스메르 민족이 '바벨'이라고 전해주었던 초 고대의 언어에 해당하는 것이다.
바벨은 셈과 함과 야벳이 완전히 갈라져 멀리 떨어져 살게 되기 바로 직전의 노아 후손들의 언어이었으니 그것을 수천년이나 또는 그보다 더 먼 후대의 바빌로니아어 신들의 문이라는 뜻의 밥일룸과 직접 연결짓는 것은 절대로 타당치 않다.
앞에서 말했지만 바벨론의 어원은 '혼잡(=발랄)'이 아니라 '신들의 문(=밥-일룸)'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구약성경의 소위 바벨탑과 연결시키지 말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바벨탑이나 다른 아무런 탑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다는 것인가.
구약성경에서 바벨론이 처음 나타나기 시작하는 열왕기상 이하에서와는 달리 동일한 지역이면서도 바벨론이라 하지 않고 '바벨'이라고만 한 창세기 10장과 11장은 훨씬 오래된 기록이거나 오래된 전승에 대한 사실적 기록일 것이 틀림 없지 않겠는가 ?
6. 결론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고 이사야선지자는 외쳤다. 성경에는 바벨탑은 없다. 그리고 바벨탑은 다만 바벨론에만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전시회 주최자가 지구라트에 대하여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바벨탑이라고 한 말을 증명할 수 없으니 이에 대하여 사과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기를 바란다.
"이 지구라트가 한 때 팬-바빌로니즘계 학자들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바벨탑이라고 주장했던 그것이다."
온 세상이 바벨탑을 말해도 성경에는 그것이 없다. 그 지구라트는 온 세계에 퍼져 있는 대표적인 대형 신전제단일 뿐이다. 바벨탑의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의 것과는 상관이 없다. 다만 역사의 한 모퉁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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