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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고의 이야기.
게시물ID : bestofbest_584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초보글장이
추천 : 204
조회수 : 91681회
댓글수 : 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1/10/29 23:12:57
원본글 작성시간 : 2011/10/15 00:56:47
여자고등학교, 현재 정상적인 내 나이의 여성 청소년이라면 있어야 할 곳.
그래서 난 지금 오전 9시40분에 아직 잠이 다 깨지 않은 채로 책상 앞에 앉아있다.
1교시였던 국어는 지금 막 끝난 상태였다. 다시 말해, 쉬는 시간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정상적인 내 나이의 고등학생이라면 보통 공부하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을 좋아한다.

"..."

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

"야 이 새끼야!!"

멀찌감치에서 들려오는 욕설. 또다. 오늘도 또 시작이다. 오늘은 어떤 일로 저 아이를 괴롭히려는 걸까.
욕설의 근원지를 향해 돌아볼 필요도 없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한껏 불량한 티를 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세 명의 '양아치'들이 다가온다.
난 그들을 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도 나를 보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들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내 뒤에 앉아있는 연희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세 명의 양아치는 나를 지나쳐 연희 앞에서 멈춰선다.
나를 지나치는 길에 내 책상을 툭하고 건드려서 공책에 쓰던 글씨가 삐져나갔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은 뭐가 그렇게 기분이 안좋으세요 김연희씨???"
"이런 XX이. 너 내 눈에 띄이면 죽여버린다고 했어 안했어??"

뒤에서 욕설과 함께 그 세 명이 연희의 머리를 툭툭 내리치는 것이 들린다. 물론 보이지는 않는다.
난 돌아보지 않고 있다.

"..."

그리고 연희도 아무말 하고 있지 않다.

"어라 이런 XXX가. 너 지금 우리 말 무시하냐??"
"역시 넌 매일마다 처맞아야 하루가 시작되는거지??"

그리고 바로 강렬한 타격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이어 와장창하고 의자와 책싱이 넘어지는 소리가 난다.
이어, 뒤에서는 주먹과 발이 누군가의 몸을 가격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주위에서는 꺄악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지만, 이를 말리는 사람은 없다.

"..."

하지만 맞는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맞을 뿐이다.
그렇게 쉬는 시간의 대부분이 모두 때리는 소리와 간혹 들리는 신음으로 채워졌을 때, 갑자기
양아치 중 한 명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깔깔거리며 웃으며 이야기한다.

"야, 우리 이거 사물함에 들어가는지 볼까?"

그리고 이어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사물함의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양아치들의
불평이 이어진다.

"이거 왜이렇게 무거워!"
"야, 너 살 안빼면 죽여버린다?"

불평과 깔깔거림, 그리고 사물함의 삐걱소리가 멎었을 때가 되어서야 난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 곳에는, 사물함 2층에 반쯤 들어가서 고개를 숙여버린,
내 친구가 있었다.

"......!!!"

그리고 양아치 세명은 깔깔거리면서 교실 문을 나간다.
어느새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은 다시 치고 있었다.
하지만 사물함에 몸이 반쯤 들어간 연희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아니, 연희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마치 죽은 것처럼.

나는 조용히 일어난다. 그리고 연희가 있는 사물함 쪽으로 들어간다.

"..."

나는 너에게, 힘이 되어줄 수 없다.
나는 힘이 세지도 않고, 누군가에 강하게 맞설 용기도 없다.
나는 맞는 것도 무섭고, 욕을 얻어먹는 것도 무섭다.
따돌림도 무섭다.
문득 연희를 본다. 연희는 여전히 고개를 들고 있지 않다.

"..."

하지만, 난 최소한의 한 가지는 해줄 수 있다.

"소희야?"

내 옆자리의 짝꿍이 나를 보고 말을 건다. 그리고 난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희가 들어가있는 사물함의 바로 옆에 몸을 꾸겨넣는다.

"...!"

아프다. 온 몸이 비틀어져버릴 것 같다. 이대로 다시 나올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하지만 그래도 연희가 들어가있는 정도까지, 끝까지 나를 들이밀어본다.

"..."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너와 같이 아픔을 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너의 옆에 있어줄 수 있는 것 뿐이다.
너는 내 친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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