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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콘크리트 살인사건(잔인,19금주의)
게시물ID : panic_585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친노가어때서
추천 : 17
조회수 : 17767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3/10/08 04:11:12
출처 엔하위키:http://mirror.enha.kr/wiki/%EC%97%AC%EA%B3%A0%EC%83%9D%20%EC%BD%98%ED%81%AC%EB%A6%AC%ED%8A%B8%20%EC%82%B4%EC%9D%B8%EC%82%AC%EA%B1%B4

* 잔인하고 성적 묘사가 포함되어있으므로 심약자의 읽음을 추천드리지않습니다
* 출처로 직접 들어가 읽으시는 것을 더 권장드립니다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女子高生コンクリート詰め殺人事件
東京都足立区女子高生監禁リンチ殺人事件
Contents
1 개요
2 사건의 발단
3 사건의 전개
4 피해자가 당한 일들
5 사건의 결말
6 피의자에 대하여
6.1 범인의 인적 사항
7 관련 미디어

1 개요 ¶

일본에서 15~18세 되는 소년들이 원한도 없고 만난 적도 없었던 여고생을 하교길에 납치하여 수개월간 감금하며 여러 명이서 온갖 고문과 성폭행으로 학대하고 끝내는 살해한 뒤 공사장 인근의 드럼통에 넣어 콘크리트로 묻어 은폐하고 나서 평상시와 똑같이 일상을 보낸 엽기적인 성범죄 결합 집단 살인 사건.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사건.

2 사건의 발단 ¶


[JPG external image]

피해자의 사진.


[GIF external image]

범행이 이루어진 소년 C의 2층집. 현재는 철거되었다.

1988년 11월 25일, 소년 A는 자전거로 아르바이트에서 귀가 중이었던 소녀를 발견한다. 소년 A가 공범이었던 소년 C에게 소녀를 발로 차도록 지시, 소녀는 도로 옆의 도랑에 자전거와 함께 넘어진다. 공범 C는 소녀를 발로 찬 뒤 도주, 그 후 소년 A가 나타나 '위험하니 데려다 주겠다. 나도 아까 그 녀석에게 칼로 위협당했다' 며 말을 걸어 소녀를 데려다주게 된다.

하지만 소녀의 집에서 10분쯤 남은 어두운 창고 앞에서 난 야쿠자의 간부다. 야쿠자가 너를 사고로 위장해 차로 치어 죽이기로 되어 있다. 얼마 뒤 차도 이리로 오겠지만 한 번 하게 해 주면 용서해준다며 호텔에 데려가 강간, 그 후 '원래는 야쿠자가 너를 죽이기로 되어 있었지만 넌 내 여자친구와 닮았으니 살려주고 싶다. 너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윗선과 잘 얘기해 볼테니 그 때까지는 여기에 있어라' 라며 그들의 아지트(소년 C의 2층집)로 끌고 가 수 시간 폭행을 가했고, 신고를 한다거나 하면 야쿠자가 가족을 몰살할 거라고 위협, 도망을 저지하려 했다.
[편집]
3 사건의 전개 ¶

11월 30일, 소녀를 집에 보내지 않고 오랜 시간이 흘러 혹시 소녀의 부모님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까 걱정된 소년 A. 소년 A의 제안으로 피해자의 부모에게 '가출했으니 찾지 마. 친구의 집에 있으니 실종신고는 취소해 줘'라고 먼 지역의 공중전화로 5일에 걸쳐 3회씩 전화하게 하며, '경찰서도 멀리 있고, 근처에도 야쿠자가 너를 감시하고 있다' 고 협박했다.

소년 C의 모친은 피해자를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고, 분명히 소녀가 집에 있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소년 C의 모친이 부엌에 있었을 때 현관에서 소녀를 데리고 들어와, 모친은 '이제 늦었으니까 돌아가세요'라고 말했지만 대답하지 않고 2층에 올라갔다. 소년 C의 부친도 소년 C가 내려왔을 때 '빨리 돌려보내'라고 말하는 등 소년 C의 부모님도 그 당시에는 소녀가 집에 있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다음날, 그 아이는 돌아갔다고 말해 소년 C의 부모님은 의심을 품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피해자가 학대당하던 바로 옆방에는 C의 형이 살고 있었음에도 그는 모른 척했다. 그 형에 그 동생

한 번은 소년 C의 모친이 소녀가 계속 집에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피해자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댁에 이런 이름의 딸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고, 피해자의 모친은 '지금은 없습니다. 그쪽은 누구십니까' 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소년 C의 모친은 주저하다가 가짜 이름을 대고 바로 끊어버려, 피해자의 부모는 가짜 이름을 토대로 수사를 벌여야 했기에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소년 C의 모친에 의하면 식후 텔레비전을 보거나 같이 패미콤(게임)을 해 사이가 좋은 걸로 알고 있었고, 소녀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는 등 불량한 소년 C의 친구인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소녀는 소년 C의 모친의 설득에 의해 귀가하게 되지만 밖에는 소년 C와 소년 C의 형이 대기하고 있어 실패, 결국 소녀는 소년 C의 부모님이 잠드는 것을 기다려 전봇대를 타고 올라 2층의 소년 C의 방으로 돌아온다. 그 뒤 그 소녀를 집단 성폭행한 뒤, 무참히 폭행하는 등 그 소녀는 단지 스트레스를 푸는 기계가 되어 버렸다.

그 여학생은 하루 18시간 이상의 폭행과 성적 고문을 당했고, 집에 돌려보내달라고 요구하면 그 폭행은 더욱 심해졌다. 처음에는 '살려 줘'라고 했지만 감금 말기에는 '죽여 줘'라고 말할 지경까지 되었다. 또한 가해자 소년들이 폭행할 때 틀어 놓은 타케다 테츠야의 '성원(声援)'이라는 노래의 가사인 '힘내, 힘내'를 때때로 혼잣말하며 자신을 다독였다고.

감금 초반에는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3,000엔으로 요리배달을 시켜 먹이거나 소년 C가 소녀의 칫솔 등을 사 주거나 하는 등 나름의 배려를 해주었으나 감금이 지속될수록 소녀의 상처나 화상이 심해짐에 따라 식사, 목욕에 대해 전혀 배려하지 않게 되었다. 12월 하순까지의 식사는 컵라면, 빵, 우유, 계란 등 집에 있던 것을 소년 C의 형이 먹였지만, 그 이후부터는 쇠약한 탓도 있어 하루에 우유를 한 컵 먹일 뿐이었다.

12월 초, 소년 A등 4명이 낮잠을 자고 있던 틈에 피해자는 1층에 내려와 경찰에 신고하였지만 곧 소년 A가 눈치챈다. 그 뒤 전화가 끊어지고 구타, 경찰이 역탐지하여 다시 소년 C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소년 A는 걸려온 경찰의 전화에 장난 전화였다며 무마시켰다.

그 뒤로 그 소녀에게 가했던 것들은 실로 귀신과 짐승도 차마 하지 못할 일이었다.

더군다나 피해자가 풀려나면 경찰에 신고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 자살로 위장해 죽이자느니, 분쇄기에 넣자느니, 콘크리트에 넣어 바다에 던지자느니 하는 대화를 웃음 섞어가며 진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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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피해자가 당한 일들 ¶

주의 : 심신이 온전한 사람들은 열람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소년 C는 집에 "재미있는 것이 있다"며 아는 사람에게 공언해 소년 C의 주위의 100명 정도는 소녀의 감금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재판 기록에 나와 있는 것만으로도 10명이 직접 폭행, 강간에 관여하였다. 어떤 여자는 소녀의 얼굴에 '화장'이라며 매직으로 수염을 그리기까지 했다.
소녀의 성기에 성냥을 삽입해 불을 질렀으며, 손, 발, 정강이, 무릎 등에 라이터 기름을 발라 불을 지른다. 엄청난 고통에 소리지르면 입과 코를 때렸다. 그리고 다시 불을 질렀다. 상처가 아물 틈이 없이 화상을 입어 끝내 상처가 곪아 썩는 냄새가 나게 된다. 이 행위로 인해 소녀는 이미 자력으로 일어서지 못하게 된다. 마지막에는 상처가 곪아 온 방안에 피가 튈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천장에도.
아주 사소한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아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으며, 화상으로 소녀가 악취를 풍기자 소년 A는 소년 C의 부모님이 눈치챌까 두려워 아래층의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그때부터는 종이팩에 일을 보게 했다.
술을 억지로 다량 먹여 고통스러워 하며 토하는 모습을 즐기곤 더럽다며 폭행하고, 항문과 성기 등에 불꽃놀이용 폭약을 꽃아놓고 터뜨렸으며[1] 고통스러워 하는 여학생에게 웃으라고 강요하며 웃지 않으면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저항하면 폭행당하기 때문에 이후에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게 되고, 어떤 일을 해도 반응이 없기까지 했다.
소녀의 안면을 구타해 코 높이까지 부어오르게 하고, '뭐야, 너 얼큰이가 됐구나'라며 놀렸다. 또한 그 볼과 눈 부분에 촛농으로 양초를 고정해놓고 소녀의 성기와 항문에 온갖 이물질과 벌레 등을 삽입하였으며, 심지어 페트병까지 넣었다. 그리고 폭행으로 그것을 몸 안에서 깼다.
소녀는 매일같이 만약 풀려나면 경찰에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겠다며 믿어줄 때까지 뭐든지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소년은 '알몸으로 춤과 노래를 해라', '미친 짓을 해보라'는 등 엽기적인 것들을 시켰다.
영양 실조와 스트레스로 장기에 큰 손상을 입은 피해자가 배를 감싸며 쓰러졌다. 소년 A의 얼굴을 보며 제발 물을 마시고 싶다고 부탁했다. 소년 A는 마지못해 물, 콘스프, 포도빵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소녀는 이미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음식물을 소화해 낼 수 없었던 상태. 우유를 먹였지만 토해 버린다.
소녀가 용변용 팩의 소변을 흘렸다고 소년 A는 격노, 사과하는 피해자의 하복부를 수십회 구타하고 소녀의 상의를 전부 벗기고 혹한(12월)의 베란다에 내몰아 여러개의 담배를 억지로 피우게 하였다. 이에 견디지 못한 소녀가 구토하자 소년 A는 따뜻하게 해 준다며 이미 혼자서는 서지도 못하게 되어버린 다리에 라이터 기름을 바르고 점화하였다.
소년 A는 가수 코이즈미 쿄코의 테이프를 틀어 가사의 '예-이!'에 맞추어 소녀의 옆구리를 박자에 맞추어 구타했다. 소녀는 신음소리를 내면 더 맞기 때문에 억지로 고통을 참아 얼굴이 찡그려지면, 소녀의 표정을 보며 소년들이 재미있어 하였다.
소녀는 자신이 배설한 소변, 대변 심지어 맞아서 나온 혈흔에 살아 있는 바퀴벌레까지 먹어야 했다. 이 시점에서는 이미 상처가 곪고 피가 멈추지 않아 피해자의 피를 보고 더럽다며 자신들의 손발에 비닐봉지를 쓰고 구타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일상적으로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일삼았다. 12월 5일 열차추돌 사고(츄오 소부센 히가시나카노역 열차 추돌사고. 당시 사망 인원은 기관사+승객 1명.)가 일어나 소년 A는 '저 열차에 네 아버지가 타고 있어서 죽었다고 뉴스에서 봤다. 알고 있었냐'라고 말하며, 피해자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어떤 기분이냐'라고 물어 슬프다고 대답하니, '사실은 거짓말이야'라고 하며 이후 A, B, C 세 명은 '죽었다', '아냐, 살아 있어'라고 반복하며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학대했다.
정녕 이게 인간으로서 할 짓인가?
[편집]
5 사건의 결말 ¶

1989년 1월 4일, 소년 A는 마작 내기에 크게 실패해 10만엔을 잃은 후 소년 D의 집에 가서 일행과 합류한다. 피해자의 상태가 심각해짐에 따라 이미 피해자를 처리하기 귀찮은 물건 정도로만 여기게 되어 C의 집에 가지 않고 방치해 둔 소년들이었지만, A는 마작에서 진 분이 풀리지 않고 10시에 개장하는 사우나에 가기 전, '마작에서 진 것도 다 그 녀석 때문이다. 오랜만에 그 녀석을 괴롭히러 가자' 고 제안해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무려 2시간에 걸쳐 소녀를 폭행한다.

소녀가 카세트에 머리를 부딪혀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감했지만, '꾀병이다' 라고 말하며 폭행을 계속하고, 사우나에 간 후 다음 날 한 소년에게 '피해자의 상태가 이상하다' 는 연락을 받는다.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C의 자택에 가서 피해자의 사망 사실을 안 뒤 모두가 미친 사람처럼 소리내어 웃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즐거워서 웃은 게 아니다' 라고 하지만...

소년 A는 소녀를 이불로 싼 뒤 여행용 가방에 넣어 껌 테이프로 말아 근처의 공장에서 훔친 드럼통에 넣고 차에 실은 뒤 일하던 타일 공장에서 조달해 온 콘크리트를 흘려넣고 벽돌 등으로 고정했다. 굳이 콘크리트를 넣은 까닭은 공구리 괴담을 사실로 믿어서인듯. 다큐에 따르면 만화에서 힌트를 얻었다고도 한다. 이 때 백주대낮에 당당히 피해자를 콘크리트에 매장한 장소는 놀랍게도 소년 A의 집 앞 주차장이었고, 들키지 않기 위해서인지 드럼통을 차에 실은 채로 매장했다고.

드럼통을 처리하기 위해 검은 쓰레기 봉투에 넣어 다시 껌 테이프로 밀봉한 후, 소년 A가 빌려온 왜건을 운전해 바다에 버리려 했지만 무서워져 도쿄의 매립지에서 도로 틈의 풀숲에 버렸다.(바다에 버렸다면 영영 미제사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소년 A는 이때 드라마 '톤보'의 마지막 회 비디오를 찾고 있었다. 피해자가 납치된 날,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보기 위해 아르바이트에서 빨리 귀가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 일을 몇 번인가 피해자가 말한 적이 있어서, 같이 넣으려고 했던 것이다. 꽃다발과 함께 비디오를 넣으려고 했지만 '범인을 특정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는 소년 B의 만류로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서 소년 A는 '피해자가 불쌍하다기 보다는 저주받기 싫어서…'라고 말하며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JPG external image]

범인들이 시체를 유기한 장소 사진.

이런 엽기적인 사건이 밝혀진 것은 사건 발생 4개월 뒤인 1989년 3월 29일이다.

네리마 소년 감별소에서 아야세 경찰서 수사관이 1988년 11월 8일에 있었던 강간, 절도등의 혐의로 잡힌 소년 A를 조사했을 때, 담당 형사가 무심코 한 "너 사람을 죽이면 안 되잖아?"라는 질문에 공범인 3명이 자백했다고 착각하여 모든 사건 내용을 자백하였다.

담당형사는 자백의 내용을 반신반의한 채 도쿄 코토쿠와카스 15호지 해변 공원 정비 공장 현장공터로 향했다. 현장에는 시체를 묻었던 드럼통 한 개만 있었으며, 드럼통의 콘크리트 틈새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어 즉시 크레인으로 매달아 올려 경찰서로 가지고 갔다.

다음날 오후 경찰서 내에서 콘크리트를 해체, 안에는 보스턴백에 채워진 이불 2장에 휩싸인 여자의 시체가 들어있었으며, 사후 2개월 이상 경과에 부패가 진행되고 있어 상태가 나빴다.

피하 지방의 두께는 통상의 6% 정도로 극도의 영양 실조 상태에다 원래 51kg이었던 체중은 36kg으로. 또한 피해자의 위에서는 바퀴벌레와 다량의 정액, 소변 등이 발견되었다.
손발은 묶인 채였고 안면은 눈의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하반신은 안면보다 더한 상태였다고 한다. 얼굴의 일부 뼈는 으스러져 있었고 가슴에 수많은 바늘이 박혀 있었으며 하반신도 심하게 손상되었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새끼손가락의 손톱이 벗겨져 있었고, 왼쪽 유두는 펜치 같은 것으로 집혀 손상되었으며, 제대로 붙어 있는 치아는 하나도 없었고, 뇌 또한 축소되고 약간 녹아 있는 상태였다. 고막 역시 심하게 손상되어 최후에는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사인은 구타에 의한 외상성 쇼크 또는 위의 토사물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되었다. 소녀는 사망하던 당일, 2시간에 걸친 폭력이 끝나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괴로워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했다고 한다.

시신의 상태는 이미 안면이 심하게 함몰 및 변형되어 있었고 부패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외관으로 확인은 절대 불가능했던 상태. 그러나 남아 있는 지문이나 치열을 조합해 11월 25일 밤 아르바이트 후 귀가 도중에 행방불명이 된 사이타마 현 미사토 시 타카스 1번지의 현립 야시오 고교 3학년 후루타 준코(古田 順子, 17)인 것이 확인됐다.

소녀가 야시오 시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뒤 귀가하지 않아 요시카와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던 부모는 무사히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렸으며 부친은 일을 쉬어 가면서까지 행방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사건 후 관련인들의 진술에서 소년 C의 부모는 여학생이 2층에 있는 것은 알았지만, 소년 C가 두려워 이를 묵살하였고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진술하였다. 자랑이다 사건이 발각되기 직전, 소년 C의 방과 베란다는 바닥과 커튼 등을 모두 새 걸로 바꾸고 모친이 깨끗하게 청소했기 때문에 후에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도 방 안의 증거는 사라진 상태였다고.

소년 A의 부모는 이 사실이 밝혀지자 충격을 받고 집과 전재산을 팔아 5,000만 엔을 피해자 부모에게 건넸으나 피해자의 부모는 거부. 피해자의 모친은 사건 내용에 충격을 받고 쓰러져 장시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충격적인 것은 소년 B의 생모가 아들의 인생의 망가진 것이 피해자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피해자의 묘를 때려 부수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는 것. 대를 이은 천하의 개쌍놈들이 아닐 수 없다.

초반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자 일부 찌라시들은 소녀의 얼굴이나 수영복 사진 등을 그대로 노출하며 행실이 불량한 아이였고 소년 그룹의 동료 중 하나였다는 등 헛소리를 그대로 기사로 내놓는 천하의 개쌍놈급 짓을 하기도 했다. [2]

케이크 만들기가 취미였던 피해자는, 어머니와 얼마 후인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만드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고, 부모를 공경하는 아이였으며 졸업 여행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피해자는 범행을 당하기 전 미성년자 성폭행범에게 집요하게 교제를 전제로 한 스토킹을 당하고 있었으며,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이 남자가 소년들 일행에게 정보를 주고 그녀를 협박했고, 소년들은 계획적 범행인 게 탄로날 게 두려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3]

피해자의 친구의 말에 따르면 성적은 톱클래스였고, 더군다나 피해자가 살해된 1월 5일의 얼마 뒤인 1월 18일은 피해자의 생일이었기에 18살의 생일을 맞이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4년 뒤에 일어난 이치카와 4인가족 살해사건의 범인은 이 사건의 범인들이 징역형을 받은 것을 가지고 자신의 범행은 별거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쪽은 다수의 사람을 살해했고 범행 당시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이미 벗어난 점이 고려되어 사형이 선고되었다.

사실 우연한 계기로 범인들이 자백을 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한 채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소년들의 주변인은 모두 피해자를 목격하거나 정보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방관했고, 심지어 폭행과 강간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단 한 명이라도 경찰에 신고했으면 피해자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또한 이 사건은 지극히 평범한 주택가의 한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흉악 사건이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난 뒤 증거도 없이 묻힐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단 한 사람이라도 용기 있게 대처했으면 피해자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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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피의자에 대하여 ¶

주범인 소년 A는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흉악함 때문에 1심에서 17년, 2심에서 20년형이 확정되었고, 나머지 3명에 관해서는 각각 5~10년, 5~9년, 5~7년을 선고했다.고작? 재판기록에 따르면 실제론 이 소년들 이외에도 10여명의 가해자가 더 있지만 그들은 직접 가담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대부분 약식 기소되어 가볍게 처벌받는 것으로 끝났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법정에서도 그들은 피해자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발언하였고, 소년 A는 반성조차 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욕설까지 퍼부었다. 소년 A가 눈물을 흘리기는 했으나 그것은 피해자에 대한 반성의 눈물이 아니라 바보같이 잡혀 버린 내 자신이 불쌍해서 흘린 눈물이었다고 한다. 천하의 개쌍놈들.

피해자의 부모는 피고인 측의 면회 신청 및 성묘를 절대 거절하고, 그 비통한 심정을 재판소에 토로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재판의 증언 당시 피고인에 대한 원 판결의 과형은 너무 가볍다고 하였다.[5]

현재 소년 A를 포함한 4명은 출소하였지만 대부분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다고도 한다. 이 중 한 명은 또 다시 폭행 사건을 저지르고 교도소로 들어갔다.

공범 중 한 명은 나중에 참회한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애초에 참회할 거였으면 그런 짓에 참여하지 않는 게 옳지 않았을까?[6]

20여 년 후, 한국에서 성남 지적장애 소녀 살해 암매장 사건이라는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다. 단 이 경우는 상대가 면식범인데다, 부지불식간에 납치당한 일본 사례와는 경위가 좀 다르다.

참고로 이 사건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족 단위로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인과응보 이사를 갈 때마다 해당 지역에 정체가 밝혀져 버려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으며 죄값을 치르고 있다고. 인과응보 그리고 사건 명칭으로 검색하면 범죄를 저지른 4인방의 인적 사항(본명 + 출소 후 개명한 이름, 사진 등)을 해당 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7] 2ch에서 꾸준히 해당 사건의 스레가 작성/유지되는 걸 보면 이런 상황은 앞으로 계속될 듯. 까놓고 말해서 보복이 허용되거나 제대로 제재받지 않는 사회였으면 우발적인 살인도 아니고 계획살인에 그 죄질이 극히 흉악하여 누가 봐도 인간이기를 포기한 게 분명한 만큼 피해자 가족까지 갈 것도 없이 같이 살고 있는 마을 주민들에게 맞아 죽거나 그게 아니라도 아예 사회의 일원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죽은 사람처럼 드러나지 않게 살아야 했을 것이다.

굳이 인터넷 할것 없이 방송에서 잊을만 하면 그때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 때문에 웬만한 일본인들이라면 이 사건을 잘 알고 있으며, 용의자들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다. 아무리 얼굴을 모른다고 해도, 가족들과 용의자의 사진은 이미 퍼질 대로 퍼진지라 마음만 먹으면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동네에서 어느 한 사람이 우리 동네에 그 범인과 가족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일본사회 특성상 그 동네의 모든 사람이 알아버린다. 용의자들은 일본을 떠나지 않는 이상 사회에서 지속적인 경계 및 멸시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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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범인의 인적 사항 ¶

주요 범인 4명은 다음과 같다. 단 이들에 대해 일반적인 비난과 멸시 이상의 신체적인 공격을 가하거나 정도가 지나친 언어 폭력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공권력이 나설 수도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소년 A: 미야노 히로시(宮野 裕史, 1970년 4월 30일생), 주범격으로 범인 소년들의 리더격. 요코야마(横山)로 성을 바꿈. 2007년 이후 가와구치 시의 해체 업체 미야우치해체공업소(宮内解体工業所)에서 일하고 있다. 거주지는 가와구치 시 하스누마 298번지 사카에하이츠 201호(埼玉県川口市蓮沼298 栄ハイツ201). 2013년 일본에서 보이스피싱 피의자로 체포되었다. 어차피 밝혀질 사실이라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콘크리트 살인 사건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말했다고. 그러나 묵비로 일관했기 때문에 1월 31일,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소년 B: 오구라 유즈루(小倉 譲, 1971년 5월 11일생), 카미사쿠 조(神作 譲)로 개명. 2004년에 폭행죄로 체포되어 복역중. 이 사건으로 이름을 개명하고 중국인 여성과 결혼하여 중국으로 건너가려 했으나 이혼으로 실패한다.[9]A가 없을 때는 그가 리더 역할이었다고 한다.
소년 C: 미나토 노부하루(湊 伸治, 1972년 12월 16일생), 2006년에 루마니아인 여성과 결혼하여 오사카로 이사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결혼한 상대가 리히텐슈타인 국적이라고도 한다. 2007년에는 간병인 자격을 취득했고, 네야가와의 한 파칭코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소년 D: 와타나베 야스시(渡邊 恭史, 1971년 12월 18일생), 히키코모리로 살아가고 있다고 알려진 한편 용접공, 공조 장치 설치 등의 일을 전전하고 있다는 제보도 있다. 요코하마 카나자와 구에서 누나(기혼)의 집에 얹혀 사는 듯.
공범으로는 남성 17명, 여성 1명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실제 살인과 학대에 적극 가담하지는 않아 처벌이 가벼웠다.

공범 중 망보기 역할이었던 소년의 인터뷰에 따르면 '탈출시킬 찬스도 있었고, 아주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들이 무서워서 하지 못했다'라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A 일행은 '사람을 샌드백처럼 장소 가리지 않고 어떻게 저 정도로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때렸고, 피해자는 울면서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소녀가 '나,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라고 묻자, 공범 소년은 그들이 무서웠기 때문에 '명령받아서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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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련 미디어 ¶

1989년에 방송된 다큐멘터리: # 초반에 소년 A의 모친이 기자의 질문에 당황하며 도망치는 모습이 보인다.
1995년의 비디오 다큐멘터리(부제: 망가진 17세들~壊れたセブンティーンたち~): 1, 2, 3, 4, 5, 6, 7 재연 영상도 있으므로 일본어를 잘 모르더라도 보면 사건의 이해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영화 콘크리트[10]
진 현대엽기전[11] : 영화보다도 더한 막장.하지만 작가가 서문에 이런 사건이 있었음에도 묻히고 있는데다 이런 일을 세상에 알려서 다시는 같은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기 위해 본 작품을 그렸다고 쓰여있다. 작가의 전작들에 비해 작가의 고어 묘사나 성적묘사가 절제되어 있고 다큐나 현장추적같은 느낌의 상황설명을 위한 나레이션이 많으며, 초점이 가해자들의 잔인함과 비인간적인 행동을 담담하게 묘사하여 독자 입장에서는 비교적으로 냉정하게 비판욕 할 수 있게 하도록 한 시도로 보이나, 사건 내용의 변형이나 생략도 많고, 여체가 중점적으로 묘사되는 등 일반적 성년만화나 료나물의 오락적 요소도 여전히 적게나마 남아있어 다큐멘터리 만화로서는 부족한 편. 작가 본인은 '다른 사람들이 이런 잔인한 사건을 다룰 수 없으니 나라도 작품을 통해 세간에 알려서 이런 일이 다시는 없게 해야겠다'는 의도로 그린 듯하나, 정작 사람들의 반응은 작가가 작가라서 그런지 "이런 끔찍한 사건까지 만화로 그려서 팔아먹으려고 하냐 미친X" 정도. 또한 앞서 언급되었듯이 작가의 말에 비하면 세간의 눈은 아직도 피해자를 주시하고 있기도 하다. 의도는 좋았을지 모르나 그 의도대로의 결과를 낳진 못한 작품.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
천사의 나이프
미야베 미유키의 크로스파이어[12]
IWGP 시리즈 2권 <소년 계수기> 中 '물 속의 눈동자' 편(치하야 여고생 감금 사건이라는,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사건이 등장한다. 성폭행 후 성기에 불을 붙여서 화상을 입히거나 하는 등, 비슷한 부분이 많다.)
소년탐정 김전일 시즌2의 켄모치 경부의 살인의 중심 소재인 3년 전의 사건의 모티브. 다만 청소년들도 보는 만화다 보니, 해당 작품 내에서의 3년 전의 사건은 실제 사건에 비교하면 애교로 보일 정도.
가젯토의 노래 '체온(体温)'
일본 영화 지옥: 지옥 탐방을 다룬 이시이 테루오 감독의 1999년작 고어 영화. 이 영화에서 이 사건의 범인들은 옴진리교 교주와 함께 지옥에서 최고의 벌을 받으면서 말 그대로 장기자랑에 인수 분해를 당한다. 이 사건에 대한 감독의 분노가 드러나는 장면. 사실 실제 그들의 미래이기도 하다.
17세.(17歳。)[13]: 후지이 세이지가 글을 쓰고 카마타 요지가 그림을 그린 합작. 부제는 '여고생 감금 살인 사건'.
타코츠보야의 <이웃집 마법소녀>
아메리칸 크라임 - 단 일본의 콘크리트 살인사건을 다룬 작품은 아니고, 미국의 콘크리트 살인사건이라 할 만한 '베니체프스키 대 인디애나' 사건을 다룬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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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검 당시 소녀의 대장에 심각한 화상이 있었다 한다.
[2] 이런 일부 언론의 악영향으로 일본에는 아직도 피해자를 불량 소녀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진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그녀의 억울함을 알겠습니까?'라는 책에서는 '피해자는 언론에게 다시 한 번 살해당했다' 고 표현하기도 했다.
[3] 소녀의 스토커가 사실은 소년 그룹과 아는 사이고 정보를 들은 소년들은 흥미를 느껴 그녀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했고, 주범은 소녀의 스토커가 야쿠자의 두목이라는 거짓말로 그녀를 협박했다는 설이다. 이 설에 대한 근거로 소년들이 평소 강간에 쓰던 차를 사용하지 않아 소녀를 협박할 자신이 있어 보였다는 점, 그들이 평소 활동하던 아야세에서 5km나 떨어진 미사토 시까지 일부러 온 것이 석연치 않다는 점, 소녀의 집 근처가 인적이 드문 창고 앞이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한 점 등이 언급된다.
[4] 실제로 논픽션 라이터 후지이 세이지가 사건의 주범들과 공범, 목격자들을 직접 만나 탐문한 것을 바탕으로 엮은 책 '소년의 거리(개정판: 17세의 살인자)'에 따르면 사건 관계자 대부분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여자아이를 납치한 것은 알았지만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신고하겠지' '소년들의 보복이 두려웠다.' '집에 돌려보냈다는 말이 미심쩍었지만 범인과는 친구였기 때문에 믿었다.' 라고 말했다. 주범들의 명령에 따라 피해자를 강간하고 폭행한 소년 들 중 일부도 자신의 죄가 밝혀질 게 두려워 신고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자신만 죄책감에 시달리는 게 두려워 친구를 범행에 끌어들인 소년까지 있었다고. 이를 바탕으로 후지이 세이지는 '피해자를 살해한 것은 주범들이지만, 직접 범행에 가담하지 않은 그들 한 명 한 명의 무관심과 약한 마음 역시 확실하게 피해자의 살해에 가담했다.' 고 결론내렸다.
[5] 다만 청소년 보호법의 적용뿐만 아니라 사형 판결을 내리는 일본 사법부의 관행에 비춰 보았을 때 판사들이 사형 판결까지 나올 성질의 것이 아니라 판단했다는 말도 있긴 하다. 다수를 살해하거나 유괴살인 혹은 살인 전과가 있는 상황에서의 추가적인 살인은 사형 선고가 원칙이지만 그 외의 살인에 대해서는 가급적이면 사형 선고를 회피하는 것이 일본 사법부의 관행이었기 때문에 청소년 보호법의 적용과 더불어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도 별 차이는 없어서 간혹 나오는 사형 집행 기사를 보면 사형수 대부분이 2명 이상의 사람을 죽이거나 살인 재범, 유괴살인 등을 저지른 범죄자들이다.
[6] 물론 이는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감형받기 위한 연기 혹은 사이코패스들이 죄를 낮추려는 행동 중 하나일 수도 있다.
[7] 아예 한국어판 위키백과에선 피해자와 가해자 4인방의 실명, 출소 후 개명한 이름까지 항목에 적고 있다. 일본어판 위키백과 사용자들이 '실명 게재는 일본 법을 위반하는 행위이므로 실명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위키미디어 메타(모든 언어판 위키백과를 총괄하는 사이트이다)에서 부결되었다.
[8] 다만 이러한 일본 사회의 행태가 너무 지나치다는 평가도 없진 않다. 물론 이번 사건 같은 경우야 그렇게 되더라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죄가 크지만 일반적인 범죄자조차도 일본 사회에서는 가족 단위로 매장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9] 자신의 애인을 뺏었다는 이유로 이소노 타카토시라는 사람을 납치, 폭행했다가 체포되어 재판 결과 징역 7년이 선고되었다. 이때 카미사쿠는 이소노에게 '나는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있다. 경찰은 나의 장난감이니 무슨 짓을 해도 풀려날 것이다'라고 협박했고 콘크리트 살인 사건에 대해 '사실 그 때 후배들을 끌어들인 내가 진짜 주범이다. 그 때는 정말 재밌었다'고 말하며 자랑했다고 한다(물론 오구라 유즈루 본인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어서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만일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진짜 주동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내려지지 않은 셈이다).
[10] 2003년 출판된 논픽션 17세, 악의 이력서를 바탕으로 2004년에 제작된 영화. 제작사에 수많은 협박 전화 등이 와서 개봉이 미뤄졌으며, 당사는 '희망이 없는 청소년들의 미래를 그린 의도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유감'이라고 말했다.
[11] 이 사건 외에도 혼혈소년 연속 살인사건, 나고야 임산부 살해사건 역시 다루고 있다. 또 이 작품은 1980년대에 출판된 실제 엽기사건들을 다룬 만화 '현대엽기전' 시리즈의 후속작이기도 하다.
[12] 초반에 등장하는 고교생 그룹의 살인 사건이 이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13] 모티브는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이지만 후지이 세이지가 여러 청소년 범죄에 대해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재해석되었다. 청소년 범죄는 어째서 일어나는가, 왜 아무도 피해자를 구하지 못했는가, 법과 사회의 문제점, 어떻게 하면 같은 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까 등에 대해서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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