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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의 '동교동계' 왜 이럴까?
게시물ID : sisa_5865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회학도
추천 : 11
조회수 : 903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5/04/15 18:3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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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 나온 정치인들은 대개 '동교동계'로 알려진 정치인들이다. DJ를 정지적 지도자로 따라는 일군의 정치인들을 가르키는 말인데, DJ의 자택이 동교동에 있었기 때문에 흔히들 동교동계 정치인으로 불려지고 있다. 신민당 때부터 함께한 정치인들인데, 통일민주당에서 분리 창당했을 때 주역이었던 정치인들이 동교동계 핵심으로 볼 수 있다. 설훈, 박지원 의원은 현직 의원이고, 유신 당시 투쟁을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의의 범위를 줄이기 위하여 임의 제외시켰다. 


1. DJ 이후의 동교동계. 뭔가 '이상'하다.


   그런데... 2012년을 기점으로 동교동계가 '이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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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한광옥과 한화갑은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을 한다. 단순히 시대정신의 변화로는 볼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서 상도동계와 함께 투쟁해 왔던 동교동계 주역들의 박근혜 지지 선언은 당시 민주당 내부에 황망함을 선사했고, 지지했던 국민들에게는 분노를 선사했다. 지지선언을 보면 그다지 내용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들의 자리 욕심을 비판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저 사람들만을 비판했다. 그 때 당시 김옥두 전 의원의 공개 편지가 많은 위로를 주었다. (내용이 길어서 첨부 파일로... 내용은 정말 읽어볼만 합니다.) 주된 내용은 고인이 된 DJ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기술 되었다. 


   여기에 한광옥까지 박근혜 지지선언을 한다. 이걸로 끝이 아니라, 한화갑은 현재 종편에서 야당 내 최고 권력자 출신으로서 야당을 비판하는 이데올로그가 되었고 한광옥 의원은 국민대통합 위원장으로서 보은을 받았다.


   그래서 대충 이야기가 정리될 줄 알았다. 당시 의리를 지켰던 김옥두와 권노갑은 DJ의 유산이며, 선당후사 정신을 지킨 정치인들로 평가 되었다. 그러나 2015년 2.8 전당대회에서 동교동계가 문재인 당대표와 각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박지원 의원은 대북송금특검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고, 동교동계와 호남을 뭉치도록 만들었다. 문재인 의원의 당선이 너무나 확실시 되던 판은 급변하기 시작하고, 문재인 의원은 어렵게 당대표에 당선 된다. 심지어 권리당원 선거에서는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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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도 괜찮았다. 박지원 의원만 많은 비판을 받았다. 20대 총선과 19대 대선을 향한 당대표 선거에서 철지난 지역감정과 DJ라는 정치적 상징을 자신의 당선을 위해 가지고 온 모습은 엄청난 비판으로 돌아왔다. 저격수 이미지로 젊은 층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지지도를 가지고 있던 박지원 의원은 젊은층 내부에서 동교동계 막내로서의 인기와 지위마저 상실 하였다. 


   그러나 2015년 4.29 재보선을 앞두고 뜬금포가 터진다. 서울시 관악을, 성남시 중원, 광주 서구을과 같은 선거구가 재보선 지역이 되자 동교동계의 몸값이 높아졌다. 원래 호남민심이 굳건한 지역인데다가 정동영-천정배라는 무소속 거물들의 출마까지 이어지면서 새정연이 전패할 수도 있다는 여론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동교동계는 지원을 거부했었다. 믿었던 권노갑 상임고문마저도 지원유세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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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계 재보선 지원 확정 현장. 뒤에 전병헌 의원님인가? 되게 귀엽게 나왔네...)



   다행히 지원 승낙 답변이 나왔다. 그러나 권노갑 상임고문의 발언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당의 운영은 주류 60에 비주류 40이다" 여기에 이훈평 전 의원은 "워낙 그쪽이 거짓말이 많았다. 어떻게 믿느냐"라는 말까지 나왔다. 충격이었다. 새누리당은 아무리 집안에서 피터지게 싸워도 선거 때면 똘똘 뭉친다. 지난번 대선에서 이재오 의원과 정몽준 의원의 박근혜 지지 투어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번 재보선에서 오세훈, 김문수, 이정현 모두가 선거 지원유세를 적극적으로 다니는 것도 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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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의원들 예전부터 느끼는 건데... 진짜 행복하게 웃어.)

 




2. 동교동계의 반란. 원인은 '시간'


   YS를 근간으로 하는 상도동계는 정치적으로 깔끔하게 은퇴했다. 물론 막내들이었던 서청원과 김무성은 아직도 격전을 벌이고 있지만, 친박계와 김무성 중심의 비박계의 차기 권력 논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상도동 내부 논쟁으로 볼 수는 없다. JP계 역시 운정회를 중심으로 여전한, 오히려 YS나 DJ를 넘어서는 초장기 영향력을 발휘 하고 있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들 중 좋은 평가가 많은 대통령인 DJ 아래로 뭉친 동교동계는 왜 이렇게 소란스러울까. 본인 나름대로의 해답은 '시간'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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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피디아에 정리된 한국 정당의 계보이다. 100%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만들기도 힘든데 참 잘 만들었다. 어찌 되었든, 빨간 네모가 '상도동계'의 역사이다. 지금의 서청원, 김무성까지 당내 핵심 세력이기 때문에 새누리당까지 범위에 넣었다. 반대로 파란색이 '동교동계'의 시간이다. 겉보기에는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본인이 주목하는 부분은 '권력을 소유한 시간'이다.


   3당 합당 이후 상도동계는 대부분의 시간을 여당으로 지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도 본인들이 집권하던 정당이 의회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17대에 잠깐 빼앗겼을뿐이다. 물론 3년차에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사라져버린 정당이 되었지만... 


   상도동계는 1990년부터 2015년. 25년간을 사실상 집권했다. 그들은 좋은 표현으로는 본인들의 가치를 실현할 시간이 많았다. 나쁜 표현으로는 해먹을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동교동계는 그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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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교동계의 집권은 처음부터 완전하지 못했다. 15대 대선에서 DJPT 연합으로 국민의 정부가 탄생한다. DJ 특유의 통큰 정치로 총리와 내각의 일부를 자유민주연합에게 내주었다. 원내교섭 단체 구성을 위해 국회의원을 빌려주기도 했다. 3김 시대의 종결을 원하던 여론에 의해서 동교동계 정치인들은 그 흔한 장관 한번 못해봤다. 아마도 DJ라는 카리스마적 계몽군주의 존재가 있었기에 그나마 참았을 것이다. 아니면 정권재창출 이후의 권세를 원하면서 참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망가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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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대통령에 수립된 참여정부에서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의원을 중심으로 정풍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새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새로운 체제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동교동계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물론 경선과정에서 동교동계가 이인제 당시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후보 흔들기를 함으로써 이미 민심을 잃은 면도 있지만 정권재창출 이후 정치적 저격이 있을 것이라고는 본인들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천정배-정동영은 현재 무소속, 반새정연 전선을 통해 선거를 치루고 있다. 추가 아이러니 하게도 당시 주목을 덜 받았던 신기남 의원은 전당대회 총괄을 맡는 등 당내 입지가 굳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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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소추안에 찬성한 주요 정치인들. 전원의 이름과 당시 지역구는 검색해보면 싹 나옵니다)


   또한 역전재판을 시도했던 故 노무현 대통령 탄핵은 국민적 역풍을 맞고 동교동계의 대거 은퇴로 이어진다. 물론 살아남은 분들도 많다. 은근히 이 당시 이야기는 야당 내에서도 싸움이 없다. 지금 상황과 비교하면 참...


   그렇다. 상도동계가 25년을 권력의 중심에 있었지만, 동교동계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민주정부 10년에서 3~4년 밖에 권력에 중심있지 못했다. 서슬퍼런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 투쟁을 했지만 돌아온 과실은 아주 길게 보아야 5년이었을 뿐이다. DJ 사후 동교동계의 폭주는 이로 인한 자괴감과 분노 때문일 것이다. 


   좋게 표현하면 자신들의 가치를 실현할 시간이 없었고, 나쁘게 표현하면 해먹을 시간이 없었다. 동교동 폭주의 원인은 이곳에 있다고 본다. 일견 이해가 가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정말 멋있는 정치 집단으로 기억 되었을 것이다. 동교동계가 선택한 것은 역사의 평가 보다 현세의 감각이었다.








http://blog.naver.com/eunpyeong026 


정치, 사회에 관련한 글들을 저의 블로그에 꾸준히 올리고 있습니다. 오유는 첨부 파일기능이 없어서... 종종 찾아와서 읽어주시고! 비판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정리


1. 상도동계는 권력에서 25년, 동교동계는 5년. 아 열받네

2. 아. 아쉽다. 참 아쉽다. 이제 안 참아도 될듯 한데. 전쟁이다! (몇 차례 패배) 

3. 이제 다시 돌아왔다. 전쟁이다!

4. 역사의 평가 or 현세의 감각. 동교동계의 선택은 현세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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