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묻었었는지, 희미한 핏자국의 군번줄을 쳐다보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봤다.
"이거...어디서 나셨습니까?"
"니가 수송기 타고 어디 갈 일은 없었을테고...누구한테 줬던거냐?"
"................."
"말 못하겠다...."
"하나만 말씀해 주십시오. 수송기 공중에서 폭발 한겁니까? 아님 추락 한겁니까?"
"추락 이었다. 조종사는 아닐테고...특전산가 보네. 걱정마라. 도착 했을 당시, 조종사는 죽어 있었지만 특전사들은 이미 탈출 한 것 같았다."
"네. 감사 합니다."
내 머리를 한번 가볍게 쓰다듬고, 가버리는 레스큐 고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담배 하나를 더 꺼냈다.
하얗게 날라가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며 하늘을 바라봤다.
내가 담배 한대 물고, 레스큐 고참과 대화 하는 도중에도. 하늘에선 여전히 전투기의 폭음 소리가 들린다.
"죽었겠지...살아 있을리가 없어..."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일주일 사이에 죽은 군인만 대충 잡아도 벌써 만명이 넘었다고 들었다.
삼손이 역시 육군 특전사. '고작' 군인 한명 죽었다고. 세상은 울어주질 않는다.
6.25때와 같은 역사는 되풀이 되고는 있지만. 지금 현재 그들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던가?
개개인의 이름을 기억해주는건 전시때 지휘를 잘 했던 장교 이거나, 혹은 정말 나라를 말아먹은 인간 이거나...
한낱 부사관의 이름을 기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이다.
아무리 몸이 부서져라, 싸우고. 또 싸워봤자...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이다.
이미 6.25때의 용사들을 우리는 그렇게 대했으니깐.
밤이 되었다.
역시나 다시 초소로 배치 되었다.
일주일 간, 병사나 같은 부사관 끼리 배치 되었지만.
이번엔 예비군 이랑 같이 배치를 받았다.
나보다 훨씬 전에, 입대하곤. 제대 했을것 같은 나이로 보이는 남자.
딱 봐도 나보단 대충 5,6살은 많아 보이지만.
어쨌든 현 계급은 병장 이다.
처음엔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초소에 배치되고, 밖을 지키는 육군들이 쉴새없이 공격하는 총소리를 듣고는..
"허억허억'
"어디 편찮으세요?"
"중사님 올해 몇살 이예요?"
"쉿. 목소리가 너무 커요. 전시중에 나이가 중요 합니까?"
헛소리를 지껄이는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뭔가가 이상했다.
오싹한 느낌도 들었다.
얼마나 거세게 공격을 퍼붓고 있는지, 활주로 근처에 있는 초소까지
총기를 난사하는 소리와. 어떤 공격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간간히 포를 쏘아대는 소리가 들리는 이 와중에.
나이를 왜 물어보는거지?
"아니, 저기요. 딱 봐도 내 여동생 뻘 인것 같아서요."
"군대서 계급이 아니고, 나이 따집니까?"
"나는요, 올해 벌써 34살 인데요. 밖에서 대기업 다녔거든요? 근데요. 이런 곳 에서 총 이나 들고.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니라고요. 내 연봉이 얼마인줄 알아요? 내가 무슨일 하는줄 알아요?
나 이래뵈도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대기업 다녔다구요. 알아요? 무식한 군인이 그런거나 알까요?"
이제보니....이 남자는 울고 있었다. 눈물은 끊임없이 흘리는데, 입은 해맑게 웃으면서 낄낄낄 거리고 있었다.
공포감을 이기지 못하는거군...
이해는 간다. 분명 일주일 전. 전쟁이 날때 까지만 해도, 월급날만 기다리며 퇴근도 못하고.
직장 상사한테 시달리며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죽도록 일만 하다가. 월급날엔 기분 내서
좋은 옷도 사보고, 좋은 음식도 먹어보고, 애인과 사랑도 속삭여 보고, 어쩌면 차곡차곡 저축되어 있는 통장을 보며
사소한 행복을 느껴 봤겠지. 그런데...하루 아침에 전쟁 이랍시고.
이런 지옥 한복판에 끌려 온것 같은 기분.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는거겠지.
하지만...
"당신 말대로, 난 무식한 군인이라 그런거 잘 몰라. 내가 아는건 단지 딱 하나.
당신이 지금 총을 잡고, 북한놈들 다 때려잡지 못하면 당신의 흰머리가 히끗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북한놈들에게 도륙되고, 사지가 절단 되겠지.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친구. 혹은 와이프가 강간되어
북한놈들 정액받이나 되고. 노리개로 전락 된다는거 하나만 알아. 그렇게 되는걸 원해?
그렇게 되는 걸 원치 않는다면! 정신 차리고 총 들고!! 북한놈들이나 맞추란 말야! 당신같은 사람들이
눈물이나 줄줄 흘리면 누가 대신 해 줄줄 알아? 여기서 제정신으로 버티는 놈 아무도 없어!
그냥 내가 안지키면, 나라 망 한다기에 정신 차릴려고 버티고 있는것 뿐 이라고!!!"
혹여라도 북한군에게 발각 될까봐 목소리 낮추라던 내가. 벌떡 일어나 이 남자 멱살을 잡고
쩌렁쩌렁 하게 소리를 질렀다.
젠장. 은폐, 엄폐 실패구만...
다행이도. 아무일도 없었다. 다만
치직치직- '1-8 무슨일 인가?' 하는 소대장의 무전 빼고는 말이다.
내가 멱살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서 인지, 이 남자는 잠잠해 졌고.
조용히 총기만을 꼭 안은채 경계는 서지 않고, 바닥만 내려다 보고 있다.
사주경계 하라고 윽박 지르기엔,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냥 내버려 뒀고.
그날 밤은 아무일도 없었다. 공군들 에겐...
다만 부대 인근을 지켜주던 육군들이 대부분이 전멸 되었다는 말 과.
그로인해 많은 북한군들이 우리 부대로 침입 했다는 소문.
이제 다 죽을 것 이라는 전투력 상실하는 얘기들이 무성했고.
그리고...그 남자는...
다음날 중대 근처의 나무에서 전투화 끈 으로 목을 맨체, 발견 되었다.
나 때문인가? 내가 어젯밤. 조금만 더 다독 거리거나, 기운이 돋는 말 이라도 해주었다면...
아니아니. 최소한 전쟁 금방 끝나니까 조금만 더 참아요. 라고 말을 해주었다면...
그랬다면 그 남자는 죽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겁에 질린 사람을 궁지에 몰아 넣은것 인가??
왜 하필...왜 난......
모두들 말을 잃었다. 북한국이 침투 했다는 얘기와, 우리중대 첫 사상자가 발생 했다는 얘기는...
점점 희망을 잃어버리게 하였다.
설상가상 이라고 했던가.
입맛은 없지만, 그래도 먹고 싸우기 위해. 식사를 배식 하는 집합소로 향했다.
흔히들 전시에는 전투식량만을 생각 하지만.
어느 부대던 간에 전시를 대비한 적어도 약 2년치 식량분은 비축해 두는 법 이다.
전투식량은 우리중대 처럼 배식장소가 너무 멀거나. 활주로에서 작업을 하다보니 밥 먹으러
올수가 없는 사람이거나. 육군이나 해병대들 처럼 전투를 하는 사람들이 빨리 간편하게 먹기 위한 것 이지.
교대로 밥을 먹을수 있다면, 취사병 들이 해주는 밥도 먹을수가 있는 것 이다.
다만 평시와는 틀리게 병사건, 부사관 이건, 장교건 다 한곳 에서만 먹는다는것 이다.
하지만...역시 모든 이 들이 약속이나 한 듯 침울하다. 이 많은 인원들이 모였음에도 조용하고.
먹고 살아야 한다는 본능으로 인해 나처럼 기계적 으로 식판에서 밥을 떠, 입으로 넣는 것 뿐 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내 동기를 만났다. 내 동기는...헌병 특기다.
아무말 없이, 내 옆으로 와 나 처럼 기계적 으로 밥을 떠 올리며 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어떠냐?"
"알면서 왜 물어보냐."
"나 어제 부대 밖으로 나갔다."
"그게 뭔 소리냐?"
"헌병이다 보니 육군이랑 같이 행동 할 때도 있는데, 장갑차 타고 밖으로 나갔다. 부대 인근 정찰하러..."
"어떻디?"
"사람들이...간간히 죽어 있드라...미처 대피 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나봐. 꼬맹이들도 죽어있고...
아줌마, 아저씨...젊은 여자들... 어떤 애기 엄마는 애기를 품에 안고, 탱크에 깔려 죽어있드라...."
"...............밥 이나 먹어."
"근데 어떤 여자는 강간 당했는지, 알몸으로 죽어있고... 여기저기 건물에 불도 많이 났고...."
"그만 하라고."
"근데 더 무서운건....우리 부대 에서 한참 가면 지하철 역 하나 나오잖아? 거기에 가스라도 넣었는지...
엄청 많은 사람들이 깨끗하게 죽어 있드라..."
"그만 좀 하라고!!!!!!!!!!"
소리를 꽥 지르며 벌떡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고.
그때서야 동기가 덜덜 떠는게 보였다.
어제와 같은 데자뷰 인가?
난 다시 옆에 앉아서, 동기의 손을 꽉 잡았다.
살아있는 사람의 체온이 느껴진다. 약간은 미지근 하면서도 따뜻한 그런 촉감.
그러자 동기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28살...어찌보면 많이 먹었지만, 어찌보면 애도 안낳아 보고, 결혼도 안해본 미성숙한 나이.
진정한 어른이 될려면 아이를 키워봐야 한다는데... 그래서 우린 아직도 어린가 보다.
강한 척 하고는 있지만, 겁에 질렸고. 살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을...
그래도 우리가 도망가지 못하고 버티는 이유는...
"그 모습들 잊지말고, 다 기억해놔. 절대 잊지마. 그래서 나중에 북한군 만나면... 똑같이 되갚아 주자"
대한민국 군인 이란 명예와, 우리 아니면 이 땅을 지킬 사람이 없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응..."
독하게 내뱉은 내 말에, 동기는 입술을 꽉 깨물고 억지로 대답을 하였다.
눈물은 흘리지만, 눈빛은 서늘해진걸 볼 수 있었다. 그래. 그래야 내 동기답지...
"씨발"
난 비릿하게 웃을수 밖에 없었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는데...
내가 이렇게 웃을수 있는건. 아마도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웃는게 가능 할지도 모르겠다.
대낮이다.
거의 작살이 나서 돌아온 전투기를 살리기 위해, 거의 발악하듯 항공기에 매달리고 있었다.
부대 밖을 지켜주던 육군들이 전멸되어, 많은 북한군이 우리 부대로 침투 했다는 소식을 들은지.
정확히 4일째 였다.
이젠 우리 중대에서도 사망사가 5명이 생겼고.
초소가 아닌, 활주로 에서 죽은 사람들 이었다.
하긴. 내가 북한군 이어도 활주로 부터 폭파 시키겠다.
하지만 다행이도 활주로엔 cct 들이 활발하게 돌아 다니며 정찰 및 방어를 해주었고.
그나마 정비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 이었다.
T.O가 적은 공군에서, 그것도 정비특기다 보니 겨우 5명 줄었지만 현저하게 활주로 로
정비작업을 할 사람이 모자르기 시작했고. 주,야간 교대로 하는 작업이다 보니...
결국 '나 혼자 고칠수 있을때 까지 고쳐보자' 하며 내 등뒤를 CCT 후배 한명에게 맡길 수 밖에 없었다.
나머지 요원들은 여기저기 정찰 이나 저격으로 빠졌고. 그 마저도 CCT 인원이 모잘라 레스큐와 함께 할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말 놀랬다.
순식간 이었다.
"나 뒤지면 전투기 고칠 사람 없으니까. 내 등 뒤 잘 부탁한다."
"걱정 마십시오. 대신 빨리 좀 부탁 드립니다."
란 대화를 나눈지 약 20분 이나 됐을까?
탕- 하는 단발마의 총 소리와 함께.
뒤를 돌아 보았다.
분명히 내 뒤를 맡아 주겠다던 CCT의 하사가 목에서 붉은 피를 왈칵왈칵 토하며
뒤로 넘어가 있는 것 이고.
나와 약 10보 정도의 거리에 내 키 만한 북한군을 볼 수가 있었다.
키는 나만 하지만, 몸무게는 나보다 더 적어 보이고... 흔히들 생각하는 고등색의 북한 전투복이 아닌.
위아래 까만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눈빛 만큼은...피에 굶주린 짐승이 생각 나는 눈빛 이다.
그리고 손에는...CCT 하사의 피가 묻어있는...군용단검을 들고 있었다.
침투 한지 좀 됐거나...우리 국군을 많이 죽였나 보군.
그러니 실탄이 없어서, 단검으로 CCT 하사를 죽였겠지.
정말 빡 돈다는게 이런건가 보다.
내가 빡이 돈건, cct 하사가 죽은 이유도 있지만...
하사가 죽으면서도 총기를 손에 놓지 않았단거에 눈이 돌았다.
그 하사는...분명히 단검에 숨이 점점 끊어져 가면서도, 나에게 알리기 위해 총을 쐈으니깐.
"씨발. 좆같네"
상황파악이 되자마자... 바로 사격자세를 취했으나...
미치겠군.
과연...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향해 쏠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그것도 21세기의 현실에서 말이다.
평범하게 자라, 평범하게 학교 다니다가, 좋은대학 들어가서, 취직하고...
전쟁과는 거리가 먼 이 시대에...
사람을 향해 쏘라고?
그게 말 처럼 쉽냐?
나도 알아. 나도 아는데...
저 개새낀 CCT 하사 죽인.. 씹어먹어도 시원찮은 개새끼 인데...
왜 내가 망설이는지 모르겠다.
난 이렇게 머뭇 거리는데. 저새낀 뭐가 그리 웃긴지 쳐 웃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씨발, 사격장 에선 사격표적지에 대고 갈겼지, 사람을 향해 갈겨 본 적도 없다고!
군인이면 사람한테 총 쏘는건 가르쳐 줘야 할 것 아냐!!!"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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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비가 무지 왔네요ㅠㅠㅠㅠㅠ
좋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근데 정말 제가 쓴 소설 볼 만 하긴 한가요?''
어차피 가상세계다 보니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보긴 하지만...
솔직히 맨날 실화를 바탕으로 글 만 쓰다가, 소설을 써보니 어렵네요.
이것이 바로 창작의 고통 인가봐요 ㅠㅠ
우리부대 근처엔 지하철이 없습니다ㅠ_ㅠ 앞으로 제가 무슨 내용을 적든.
그냥 소설 일 뿐이니, 진지 먹는 일은 없으면 좋겠네요^ㅡ^
다음편도 읽어 주실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