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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스압][bgm]기타큐슈 감금 살인사건
게시물ID : panic_533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전설의코딱지
추천 : 20
조회수 : 838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7/22 21:15:23



http://mirror.enha.kr/wiki/%ED%82%A4%ED%83%80%ED%81%90%EC%8A%88%20%EA%B0%90%EA%B8%88%20%EC%82%B4%EC%9D%B8%EC%82%AC%EA%B1%B4
출처- 엔하위키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6DiyF



kita_murder.jpg

방송에서 보여준 관계도

2002년 일본에서 드러난 충격적인 감금살인 사건. 충격적이고 교묘한 살인수법을 자행했으며 어찌보면 이아고식 살인이다. 너무 충격적인 범행 내용이라 일본 정부가 언론 통제를 한탓에 기타큐슈 지역에서만 알려졌고 그나마도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고. 다만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예전에 비해서는 위키에 관련 항목이 작성될 정도로 많이 알려졌다.

목차

1 사건의 시작
2 오카타 준코 학대
3 토라야 부녀 감금살인 사건
4 여성 감금폭행 사건
5 오카타 일가 감금살인 사건
6 토라야 딸의 탈출과 재감금
7 발각
8 사건의 수법과 살인방식
9 재판 과정

사건의 시작 


이 사건의 범인인 마츠나가 후토시는 1961년생으로 기타큐슈 고쿠라시에서 태어났다. 매력적인 남자였다지만 반항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학교에서 잦은 말썽을 일으켰다가 결정적으로 여중생을 임신시킨 사건으로 다른 학교로 전학처분을 받은후 19살 나이에 결혼을 했다. 부모가 이불사업을 했기 때문이 마츠나가는 그런 가업을 물려받아 1983년에 "월드"라는 회사를 차리고 이불판매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마츠나가는 보통의 사업가들과는 다른 막장의 극치를 보여주었는데 소비자들에게 싸구려 이불을 고가로 강매를 하는가 하면 손님 맞을래요? 직원들에게 할당량을 강제로 부과하고 채우지 못하면 폭행과 폭언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거나 자기 기분이 나쁘면 아무 직원이나 방음처리된 방에 감금시키고, 전기충격을 가했다는 믿지 못할 일까지 저질렀다. 그러나 그럼에도 직원들은 회사를 나갈 생각을 할 수 없었는데 마츠나가가 "내 뒤엔 야쿠자가 있어. 사표? 쓰기만 해봐. 내가 야쿠자 시켜서 너와 너의 가족들 다 죽여버릴테니깐."이라고 협박을 가한 탓이었다.

한편,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한 탓인지 결혼중에도 다른 유부녀들과 관계를 맺는 막장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9명의 주부들과 막장행각을 벌이다가 1980년, 마츠나가가 졸업앨범을 보고 동급생인 오카타 준코에게 전화를 걸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오타카 준코가 마츠나가와 관계를 시작한 이유는 "매력적인 남자."여서 였는데 준코는 그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고도 사랑에 빠져 불륜을 저지르게 되었다.

준코는 몰랐다. 이 만남이 자기를 연쇄살인 및 인생 영구파탄의 길로 이끌게 될 거라는 것을....

오카타 준코 학대 


오카타 준코는 마츠나가보다 한 살 아래로 1962년생이다. 당시에 단기대학을 나와 유치원 교사로 일하던 중이었다. 준코가 마츠나가와 사귄다는 것을 알게된 준코의 부모인 오카타 타카시게와 오카타 시즈미는 준코에게 마츠나가와 헤어질것을 종용했다. 그런데 마츠나가가 어찌된 영문인지 오카타 타카시게 일가의 재산 현황은 물론 시즈미 본가 재산의 현황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오카타 시즈미는 이에 불안감을 느끼고 사립탐정을 고용해서 마츠나가의 뒷조사까지 해가며 마츠나가를 경계했었다. 그러나 마츠나가는 직접 타카시게와 시즈미를 만나서 예의바른 청년의 모습을 보이면서 말빨로 두 사람을 완전히 회유하는데 성공했다.

처음 준코와 마츠나가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으나 준코가 우연히 예전에 사귄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내면서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마츠나가는 이때부터 준코를 마구 폭행하고 학대한것. 마츠나가는 준코에게 이전에 쓴 일기장을 모두 가져오라고 한뒤 일기장을 보면서 내용을 캐묻고 폭행을 가했다.

폭행이 지속되자 괴로워진 준코는 어떻게 하면 날 믿겠느냐고 하소연하자 마츠나가는 담배로 너의 팔뚝을 지져서 내 이름을 새겨라라고 어처구니 없는 말을 태연하게 지껄였고 준코는 결국 그대로 해야만 했다.

마츠나가의 학대를 견디지 못한 준코는 결국 1985년 2월, 부모님의 집에서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나 자살은 실패로 돌아갔고 자살기도 이후 마츠나가는 더욱 준코를 학대하고 아예 친가에서 나오게 하고 유치원 교사 일도 그만두게 했다. 더 중요한건 이때 마츠나가는 아직 이혼도 안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로 인해 준코는 마츠나가에게 절대복종하는 상태가 되었고 이는 더 큰 불행을 낳게 되었다.

토라야 부녀 감금살인 사건 


마츠나가가 하던 막장 사업은 견디다 못한 고객들과 직원이 경찰에 고발하면서 1992년 막을 내렸고, 마츠나가는 사기죄와 공갈협박죄로 지명수배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1996년 1월, 마츠나가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전에 가짜 회사를 차리자고 자신에게 제안한 전직 부동산 회사 직원 토라야 쿠미오를 떠올렸다. 마츠나가는 준코를 데리고 기타큐슈시에 몰래 들어가 토라야 쿠미오와 그의 17살된 딸(이름은 밝혀지지 않았다)을 감금했다.

마츠나가는 토라야가 저지른 사소한 범죄들을 약점삼아 이를 이용해 토라야를 학대하고 고문하는 인간말종의 짓거리를 저질렀다. 토라야를 욕조에 묶어두고 전기고문을 하는것이 마츠나가가 가장 즐겨하는 짓이었다. 

달이 넘어가 2월 26일, 학대와 고문에 시달리던 토라야는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마츠나가는 준코와 토라야의 딸에게 토라야의 시신을 토막낼것을 지시했고 두 여자는 시신을 토막낸뒤에 바다에 갖다 버렸다. 마츠나가는 토라야의 딸에게 토라야가 사망하기 직전에 토라야의 팔을 아주 세게 물도록 강요한뒤에 그것을 사진으로 찍었다. 이는 토라야의 딸에게 아버지의 학대에 가담했다는 죄의식을 심어주려는 목적이었다. 이후 토라야의 시신을 처리하고 이 딸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며 정신적으로 학대를 가하는 인간말종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해서 멘붕상태에 빠진 딸은 무기력해졌고 마츠나가는 그녀를 계속 감금하고 감시했다.

여성 감금폭행 사건 


마츠나가는 이전에 토라야를 통해서 한 유부녀를 알게 되었다. 마츠나가는 교토대를 나와서 카와이 학원의 강사라고 자신을 위장한 뒤 사귀었고 그녀는 3살된 작은딸과 함께 마츠나가,준코와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마츠나가의 악마성이 어디로 가지 않는지 1996년 12월 30일부터 1997년 3월 16일까지 마츠나가와 준코는 이 여성과 작은 딸을 방에 감금하고 매일 폭행했다. 또한 560만엔을 갈취했다.

3월 16일 새벽에 이 여성은 방의 창을 열고 밑으로 뛰어내려 탈출에 성공했다. 이 여자가 탈출하자 마츠나가와 준코는 서둘러 그곳을 떠났고 남겨진 그녀의 어린 딸은 어차피 증언을 할 수 없어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그녀의 전남편 집 앞 대문에 버려두었다.

이 여성은 이후 오랜기간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오카타 일가 감금살인 사건 


토라야를 살해한뒤, 마츠나가는 돈이 필요해 준코를 오이타현 유후인쵸에서 호스티스로 일하게 했다. 하지만 준코는 마츠나가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했고 이런 기미를 눈치챈 마츠나가는 준코에게 토라야를 살해한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냐라면서 협박해 준코를 다시 자신이 사는 맨션으로 오게 했다. 

그러나 1997년 4월, 마츠나가를 견디다 못한 준코가 도망치자 마츠나가는 준코를 붙잡기 위해 준코와 자주 만나던 준코의 여동생 오카타 리에코의 귀에 들어가도록 마츠나가가 자살해서 장례까지 마쳤다라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결국 이 헛소문은 리에코의 귀에 들어갔고 리에코를 통해 마츠나가가 죽은걸로 착각한 준코는 다시 돌아왔지만 그런 준코 앞에 나타난 것을 멀쩡하게 살아 있는 마츠나가였다.

차라리 이때 도망쳤던 준코가 경찰에 자수해 범행에 대해서 실토했다면 이후 일어날 더 큰 비극은 막을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마츠나가에 의해 정신적으로 지배된 상태였던 준코는 결국 다시 마츠나가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말았다. 마츠나가는 교묘하게도 준코가 자기 외에는 갈데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유후인쵸 직장의 사장이나 동료들에게 갖은 험담을 퍼붓는 전화를 걸도록 강요했다.

이후 마츠나가는 준코의 부모와 여동생을 준코의 문제로 상의할게 있다면서 불러냈고 도피자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돈을 뜯어내기도 했다. 또한 준코의 아버지인 타카시게에게 토라야 살해현장의 배관을 교체하도록 해서 증거인멸에 가담한 혐의를 안게 했다. 준코의 부모와 여동생이 이때 명확한 태도를 취해서 경찰에 신고했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딸이 살인을 했다는 이유로 세상에 드러나서 체면이 깎이고 싶지 않았던 부모와 여동생의 잘못된 생각이 일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이건 일본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인데 미국 등 다른 서방국가의 경우 범죄자를 엄벌하긴 하지만 그와 별도로 범죄자 본인의 책임과 가족의 책임을 명확히 구분하고 최소한의 선을 긋는데다 범죄가 아닌 다른 문제는 이해해 주는 반면 일본은 범죄자의 잘못. 아니 지적장애나 발달장애, 사회성 부족 등의 못난 면조차도 가족의 불명예인 양 취급하며 사회 전체가 따돌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언니의 문제때문에 준코의 여동생 리에코가 자꾸 집을 나서자 리에코의 남편인 오카타 카즈야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마츠나가는 카즈야를 만나서 이런 의심을 알게 되었고 더욱이 데릴사위로 들어온 카즈야가 장인 타카시게가 주기로 한 땅을 받지 못했고 리에코가 낙태를 한 경험이 있다는 것까지 알게되자 교묘하게 장인과 아내에 대한 의심을 부추겼다. 이에 카즈야는 점점 장인과 아내에 대한 의심이 커져갔고 마츠나가는 마치 좋은 이해자인양 굴면서 "당신은 속아서 결혼한거야. 속인건 그들이니까 마구 때려도 상관없어"라고 폭력을 가할것을 부채질했다. 결국 카즈야는 마츠나가의 꼬드김에 넘어가 사실 확인도 해보지 않고 장인,장모와 아내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즈야가 마츠나가에게 리에코가 방에 더블사이즈 침대를 두어서 방이 비좁아졌다고 푸념하자 마츠나가는 되려 리에코 편을 들면서 카즈야를 몰아세웠다. 믿었던 마츠나가가 이렇게 나오자 당황한 카즈야는 마츠나가에게 잘보이려고 했고 이를 이용해 마츠나가는 카즈야에게 토라야 살해현장의 욕실 타일을 새로 바르게 하여 증거인멸에 가담시켰다. 이후 마츠나가는 카즈야에게 증거인멸에 가담한것을 교묘하게 되풀이해 언급하여 카즈야에게 공범의식을 심어주었고 카즈야가 오카타 일가를 거느리게 해 저항이 나오지 않도록 만드는 치밀한 행보를 보였다.

카즈야가 "애들을 놔두고 오쿠라에 오는게 걱정이다"라고 말한 입방정(...) 때문에 마츠나가는 카즈야에게 애들을 데려오게 했다. 8월의 여름 마츠리를 핑계로 카즈야의 큰딸 아야와 작은 아들 유키를 오쿠라의 마츠나가가 사는 맨션에 데려올수 있었고 이후 이들을 원래 다니던 초등학교와 보육원에 보내지 않았다. 카즈야의 일가 4명은 서류상으로는 구마모토시로 이사간것으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오쿠라에 살고 있었던것. 

마츠나가는 이제 오카타 일가를 맘껏 이용했다. 카즈야는 아예 마츠나가에게 면허증과 차 열쇠를 맡기고 필요할때마다 말해서 받아야 했고 필요한 돈도 일일히 마츠나가에게 보고해서 돈을 받고 차용증을 써야 했다. 쿠루메시로 갈때도 카즈야는 마츠나가에게 전화를 걸어서 일일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를 보고해야 했다.

돈이 부족해지자 타카시게에게 농협대출을 받게하고 시즈미는 소비자 금융에서 돈을 빌렸으며 리에코와 카즈야는 사표를 쓰고 퇴직해서 퇴직금을 받아 고스란히 마츠나가에게 갖다 바쳤다. 이런 일련의 행보에 다른 친척이 의심을 품게 되자 아예 절연장을 보내서 고립시켜버렸다.

결국 더이상 돈을 빌리거나 마련하기가 어렵게 되자 마츠나가는 오카타 일가 6명을 전부 감금한뒤 고문을 가해 서로가 말하는 것을 들려주었다. 상황이 이지경이 되었음에도 마츠나가에게 약점을 잡혀 놀아나게 된 오카타 일가는 서로 싸우고 의심하는 상태가 되었고 결국 이들은 마츠나가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1997년 12월 21일, 마츠나가는 준코에게 지시해 타카시게에게 전기고문을 가했고 그 과정에서 타카시게가 사망했다. 

해를 넘긴 1998년 1월 20일, 시즈미가 거듭된 전기고문에 미쳐서 괴성을 지르자 마츠나가는 준코와 리에코, 카즈야에게 지시해서 준코가 등으로 몸을 눌러붙이는 사이에 카즈야가 목을 졸라 살해했다.

1998년 2월 10일, 리에코가 거듭된 전기고문으로 청력이 약해져 말을 잘 못듣는 상황이 되자 마츠나가는 리에코가 이상해졌다는 생트집을 잡아 카즈야와 딸 아야에게 리에코를 죽이게 지시했다. 이에 다시 준코가 리에코를 등으로 누르는 사이에 카즈야가 목을 졸라 살해했다.

카즈야는 거듭된 전기고문과 식사제한으로 인해 몸이 쇠약해진 상태가 되었고 마츠나가는 카즈야를 욕실에 감금했다. 결국 1998년 4월 13일, 카즈야는 욕실에서 굶어죽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어른들이 모두 죽게 되자 카즈야의 딸 아야는 마츠나가에게 "절대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겠다. 남동생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겠다. 집에만 돌아가게 해달라"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마츠나가는 "시체가 여기저기 흩어져서 경찰이 금방 눈치채게 될거다. 유키가 아무 말도 안하면 좋겠지만 그럴것 같지는 않고... 유키가 불쌍하니까 엄마(리에코) 곁에 가게 해주면 어떨까?" 라고 은근히 유키를 죽일것을 꼬드겼다. 아야는 결국 마츠나가의 교묘한 말에 넘어가서 1998년 5월 17일, "엄마에게 데려다 주겠다"라고 아야가 유키에게 거짓말을 한뒤 준코와 아야는 유키를 목졸라 살해했다. 이때 아야는 겨우 10살에 불과해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채 마츠나가의 악마적인 범행에 이용되어 가족을 살해하고 시체를 토막내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던것.

이후 혼자 남은 아야의 입을 막기 위해서 마츠나가는 준코에게 "저녀석은 자백할것 같으니까 해치워야 한다"라고 말하며 준코에게 살해를 지시했다. 결국 아야에게 전기고문이 가해지고 먹을것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채 6월 7일 준코에 의해서 목이 졸려 살해되었다.

6 토라야 딸의 탈출과 재감금 


한편 사건 이후 몇년 동안이나 마츠나가에게 감금되어 있던 토라야의 딸은 2002년 1월 30일에 마츠나가가 감시를 잠시 느슨하게 한 틈을 타서 키타큐슈에 살던 토라야의 부모(즉 이 여자에겐 조부모) 집으로 도망쳤다. 이후 그녀는 조부모의 집에서 약 보름정도 살면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국민건강보험에도 가입하는등 생활의 기반을 쌓아나갔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도 마츠나가와 연애중이던 토라야의 딸의 큰어머니가 그녀의 행방을 까발렸고 마츠나가는 바로 집에 쳐들어와 그녀를 다시 잡아 갔다. 다시 잡혀간 그녀는 전기고문을 당하거나 펜치로 꼬집히는등의 학대를 당했다. 그러나 위험 인물이라는 게 명백해져 제거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지금까지의 행태와 달리 무슨 생각에서인지 죽이지는 않은 채 가둬놓기만 했고 결국 이것이 마츠나가를 파멸로 이끌게 된다.
(실제로 마츠나가는 오카타 일가의 살해를 목격, 가담한 아야를 증거 인멸 목적으로 살해한 바 있다)

발각 


2002년 3월 6일, 토라야의 딸은 조부모집에 몰래 전화를 걸어 자신이 감금된곳을 알리며 도움을 청했다. 전화를 받은 조부모는 경찰에 신고했고 다음날인 3월 7일, 경찰이 들이닥쳐 마츠나가와 준코를 체포했다.

처음 마츠나가와 준코는 모든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자신들의 신원도 밝히지 않았으나 준코가 가지고 있던 사진첩으로 이들의 신원이 드러났다.

처음 경찰은 이사건을 마츠나가와 준코가 토라야의 딸을 감금한 사건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토라야의 딸이 아버지가 마츠나가와 준코에 의해 살해되었다라고 경찰에 진술하면서 수사는 급반전 되기 시작했다. 또한 토라야의 딸은 오카타 일가 6명도 마츠나가와 준코에게 살해되었고 시체는 토막내져 바다에 뿌려졌다고 폭로했다.

경찰은 이에 살해현장으로 의심되는 곳의 배관까지 잘라서 수거된 DNA 감정을 의뢰했으나 건진게 없었다. 마츠나가가 치밀하게도 모든 피해자들의 시신을 토막내서 바다에 던져버리고 배관과 타일을 모두 갈아버렸기 때문에 도무지 물적 증거를 찾아낼수가 없었던것. 게다가 마츠나가는 설령 물적증거가 있다고 해도 자신이 직접 살해한것이 아니라고 우길 참이었다. 

경찰의 수사가 난항에 부딛쳤을때 결정적으로는 준코의 자백이 수사에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 준코는 마츠나가의 지시에 의해서 7명을 살해하고 시체를 토막내서 바다에 버렸다고 자백한것. 비록 물적 증거는 없었으나 오카타 일가가 학대를 받으면서 작성한 사실확인서나 시체를 토막내는데 사용한 톱과 날의 구입일자를 알수 있는 영수증, 마츠나가가 살던 맨션의 다른 거주자의 증언등 정황증거들이 차곡차곡 모여갔다. 

처음에는 마츠나가와 더불어 한목소리를 내던 준코 역시 이렇게 되자 그에게서 풀려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마츠나가에게 등을 돌렸다. 준코는 차라리 감옥생활이 더 편하다 라면서 "식사도 할수 있고, 화장실에도 맘대로 갈수 있고, 독서할 시간도 있다"라고 말했다. 역으로 마츠나가의 감금이 얼마나 지독했는지를 반증한다고 할수 있을 듯.

마츠나가가 토라야의 딸을 살려둔 이유도 후에 해명이 되었는데 마츠나가는 토라야의 딸에게 네명의 아이를 돌보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이 아이들중 두명은 마츠나가와 준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고 나머지 두 아이는 쌍둥이로 다른 여성의 가정 불화를 이용해 맡은 아이들이었다. 마츠나가는 이 아이들의 어머니에게 양육비 명목으로 2500만엔을 뜯어냈다고 한다. 

(하지만 토라야의 딸이 도망친데다 신고까지 생각하고 있던 상황에서도 죽이지 않은 이유는 이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완전 범죄라고 생각을 했어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이유는 마츠나가 본인만 알 텐데 현재 사형수로 구치소에 수감중인 그는 현재까지는 이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그밖의 피해자들로 마츠나가가 사기죄로 지명수배되자 마츠나가의 강요로 함께 도피생활을 하던 월드의 전 직원이 있었는데 이 직원은 학대를 견디다 못해 결국 도망쳐버렸다. 후에 마츠나가가 붙잡혔지만 이 직원은 마츠나가를 다시 대면하기도 싫다면서 피해진술을 거부해 이 직원을 학대한 혐의는 기소되지 못했다. 

또한 마츠나가의 동창생 여성도 있는데 역시 유부녀였던 그녀는 결혼을 미끼로 마츠나가에게 1160만엔을 뜯겼다. 그후 1994년 3월 오이타현 벳푸만에서 투신자살했다. 그러나 이는 마츠나가의 타살이라는 주장이 있다. 경찰이 수사했으나 증거를 찾지 못해 기소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녀의 1살된 딸도 죽었는데 겉으로 보면 사고사지만 워낙 그 과정이 부자연스러워 피살 가능성이 있는 거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어 기소되지 않았다. 기소되었다고 해도 둘의 형량이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그리고 토라야의 딸이 돌보던 쌍둥이 아이들의 엄마도 있는데 마츠나가는 이 여성을 풍속점에서 일하게 하면서 양육비 명목으로 2500만엔을 뜯어냈다. 그녀도 피해진술을 거부해 이 혐의도 기소는 되지 않았다.

사건의 수법과 살인방식 


실로 마츠나가가 사건에서 쓴 수법을 보면 어느 쓸데없는 자존심 내세우는 신세계의 신 뺨치는 수준이다. 아니 라이토는 그래도 최소한 자신의 신념과 정의에 충실하여 일을 추진했으니 그저 자신의 지배욕에 눈이 멀어 사람이기를 포기한 마츠나가와 비교하는 것은 그에 대한 모욕. 현생한 이아고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 약점 잡기: 마츠나가는 우선 상대에게 교묘한 말로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한 다음 상대가 자신의 약점을 술술 털어놓게 만들었다. 그리고 상대의 약점을 알게된 마츠나가는 이를 이용해서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조종할수 있었고 돈을 쉽게 뜯어낼수 있었다. 마츠나가는 이런 사람을 "자본주"라고 불렀다고. 토요타 마사요시에 의하면 마츠나가의 자본주가 된 사람들의 특징이 순수한 성격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사가 풀려있다, 적당히 유복한 집안이다, 아이가 있는 사람이다라고 한다. 전형적인 사기꾼의 사고방식.
  • 학대: 상대의 약점을 잡은 마츠나가는 이를 이용해서 상대를 학대했다. 특히 마츠나가가 즐겨 애용한 학대 수법은 바로 전기고문으로 마츠나가가 원래 운영하던 회사의 직원이 전기공고 출신이라 그에게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전기고문을 해나갔다. 원래는 거의 장난 수준의 아주 약한 전기를 흘려서 찌릿한 느낌을 나게 하는 수준에 불과했으나 마츠나가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서 학대에 아주 잘써먹었다. 니가 일본의 이근안이라도 되냐 마츠나가는 이를 직원들에게 애용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토라야나 토라야의 딸, 오카타 일가들에게도 애용하기에 이르렀다. 5살의 유키만이 전기고문을 피했지만 10살 아야나 감금폭행했던 여성의 3살짜리 아이에게까지도 전기고문을 가했다고 하니 정말 인간 말종이다.
  • 각서: 마츠나가는 피해자들에게 갖가지 각서를 쓰게 만들었다. 이는 약점을 잡거나 학대를 가해 쓰게 한것들이었다. 각서의 내용은 크게 세가지였는데 첫째는 상대방이 마츠나가를 위해 미래에 뭔가를 하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으로 그 내용의 대다수는 마츠나가의 생트집을 실행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피해자가 과거의 약점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마츠나가는 이를 이용해서 피해자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구실로 삼았다. 셋째는 마츠나가가 피해자들에게 뭔가를 해주겠다는 내용의 각서로 상대방에게 마츠나가는 이 각서의 내용을 지키겠다는 식으로 믿게 만들었다. 또한 각서의 내용에는이 각서는 절대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작성했다라는 내용이 첨가되어 있거나 문서의 내용을 낭독하는것을 테이프에 녹음해 마츠나가는 후에 재판과정에서 각서들은 모두 평온한 과정에서 작성된거라고 우기는데 이용되었지만 이미 돌아가는 꼴을 다 파악한 재판부는 당연히 이를 믿지 않았다. 
  • 생활 제한 규칙: 마츠나가는 약점을 잡거나 학대를 하여 피해자들로 하여금 생활을 제한하는 규칙을 지키게 강요했다. 이 규칙이란게 얼마나 아스트랄한지 추운 겨울에도 얇은 한겹 옷만 입게 했으며 기분이 나쁘면 아예 윗옷을 벗도록 하는 짓거리도 서슴치 않았다. 게다가 옷을 한벌만 주고 세탁도 가끔만 하도록 했다. 또한 집안을 다닐때도 방과 방사이도 못다니게 하는가 하면 방사이를 다닐때에는 포복전진을 의무화시키는 막장 행각을 벌였다.

    잠을 잘때는 이불없이 신문지를 깔고 자야했으며 부엌에서 자야했으며 코골이가 심하면 자물쇠를 채운 욕실에 가두었다. 그나마도 잘수 있는 시간은 한낮의 서너시간에 불과했다고 한다. 마츠나가가 허락할때만 대화를 할수 있었으며 식사는 말 그대로 막장의 극치. 하루 한번이나 잘해야 두번정도 마루에 신문지를 깔고 거지 형국으로 먹어야 했다. 제한 시간은 7-15분 정도. 다른 피해자가 감시자로서 타이머를 재야 했다. 식사의 내용은 매우 불량해서 음식점에서 배달하거나 편의점에서 사오는 간단한 것들이었다고. 그밖에도 화장실을 갈때도 마츠나가의 허락하에 다른 이성 피해자가 보는 앞에서 배설을 해야 했으며 마츠나가의 허락하에서만 모든 물건을 쓸수 있었고 외출도 극도로 제한되어 외출시에는 마츠나가에게 일일히 전화를 걸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고해야 했다고 한다. 마츠나가는 지리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경과시간을 미리 계산한뒤에 모처에 언제까지 도착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이런 규칙을 위반하면 기다리고 있는것은 마츠나가의 학대와 고문이었다. 반면 마츠나가는 가끔 좋은 음식점에서 배달을 시키거나 외식을 시키기도 하는 당근책(...)도 베풀어서 피해자들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 마츠나가에게 더욱 복종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그가 뒤틀린 형태로 실행하여 비참한 결말로 이어지긴 했지만 본인의 선택에 따라서는 사회적 출세도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상당한 수준의 지능과 지혜를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마인드 컨트롤: 마츠나가의 마인드 컨트롤 수법을 보면 거의 아사하라 쇼코를 뺨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자가 작심하고 사이비 종교라도 차렸다면 옴진리교보다 더 무서운 사이비 종교가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당시는 옴진리교 때문에 사이비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있어서 범죄로 눈을 돌린 것일 수도 있다. 진실은 마츠나가 본인만이 알 것이다. 

    우선 마츠나가를 정점에 두고 피해자들을 서열화 시켰다. 전기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최저의 인간이라고 규정했고 사소한 이유로도 마츠나가의 기분 내키는대로 전기고문이 가해졌다. 또한 마츠나가는 피해자들에게 다른 피해자를 욕하거나 비방하면 좋아하는것 처럼 굴고 그러면 상위의 인간이 되는 것처럼 각인시켜서 서로를 비방하고 욕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오카타 일가가 마츠나가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이유였다. 이로인해 피해자들은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고 서로 일치해서 마츠나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기는 커녕 오히려 마츠나가의 인정을 받는 상위의 인간이 서로 되려고 발버둥 쳤다. 누군가가 하위의 인간으로 떨어지면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안도했고 마츠나가의 관심을 얻으려고 그에게 절대복종했다. 이쯤되면 서로가 가족인지 원수인지 조차도 분간이 안될정도.

    사람들이 경악한 이유가 어떻게 오카타 일가는 서로를 아무렇지도 않게 살해하고 시체를 토막낼수 있었을까 였는데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결국 오카타 일가는 마츠나가에게 관심을 받고 인정받는것에만 혈안이 되어버려서 이미 가족이란 개념은 저멀리 아스트랄로 날려버리게 된것이라는 것. 이 때문에 마츠나가는 손대지 않고 살인과 시체처리를 손쉽기 할수 있었다.
  • 살인과 사체처리: 마츠나가는 철저하게 자신이 직접 손을 대지 않고 피해자들끼리 서로를 살해하고 사체를 처리하도록 유도했다. 이때의 유도방식은 거의 이아고의 현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 살인을 지시할때도 명확한 언어로 하지 않고 피해자가 죽일수밖에 없겠다라는 말이 나오도록 유도하게 해서 후에 재판에서 자신은 살인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우기는데 이용했다. 사체는 토막을 내고 잘게 부수도록 해서 공중 화장실등에 버리거나 바다에 던졌다. 마츠나가는 이런 시체처리 방식을 "나만의 오리지널. 해산물 조림을 만드는 것을 응용했다"라고 태연히 진술할 정도. 또한 배관과 타일을 교체해 직접 증거를 인멸했다. 결국 이 사건은 직접증거 없이 범인들의 진술과 정황증거에만 의존해야 했던것.

재판 과정 


준코는 모든 사건의 살인 범행에 대해서 토라야와 자신의 아버지는 상해치사를 주장했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반면 마츠나가는 7명의 죽음에 대해서 무죄를 주장했다. 일본 사법체계상 범인들이 서로 다른 주장을 펼때에는 분리심리를 하는것이 일반적이지만 준코가 마츠나가 저인간을 끝까지 지켜보고 싶다라고 주장해 병합심리가 계속 진행되었다.

마츠나가는 토라야의 살해는 전적으로 준코의 짓이고 오카타 일가의 죽음은 자신과는 무관하다. 내가 7명을 죽일 동기가 어디있냐 사람이 사람 죽이는데 이유가 있냐, 나는 토라야와 타카시게의 사망현장 외에는 있지도 않았다, 타카시게의 살해직전에 아이들은 여관으로 옮겼기 때문에 아이들은 타카시게의 살해를 못봤다라면서 살인죄와 상해치사죄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또한 마츠나가는 시즈미와 리에코가 자신과 성적관계를 맺고 있어서 모녀지간에 날 두고 싸움을 벌인 결과로 난 휘말린것 뿐이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진술도 해 방청객의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마츠나가의 진술중에는 타카시게의 회사설립은 빚이 많아서 무리였다, 무직상태이던 리에코가 빚을 어떻게 지나, 타카시게의 살해를 목격한덕에 토라야의 딸이 사건 경위를 소상히 진술한거다 라는등의 모순적인 진술도 많아서 본인이 재판 진행중에 진술을 자꾸 고치는 일도 여러번 있었다고 한다. 또한 7명을 살해한 잔인무도한 범행에도 태연하고 마치 만담을 말하는듯한 느낌에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고 한다. 

1심 재판에 화상회의 방식으로 증언한 토라야의 딸은 "나에게는 마츠나가와 준코가 모두 악마로 보였습니다. 내게 원수를 갚는 길은 저 둘에게 사형이 내려지는 것 뿐입니다." 라고 진술했고 1996년부터 97년 사이에 감금당했다가 탈출했던 여성은 역시 화상회의 방식의 증언을 했지만 마츠나가가 전기고문을 가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정신적 충격으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면서 재판장이 잠시 정회를 선언해야 했다. 재판이 속개된후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제발 마츠나가를 죽여주세요"라고 겨우 한마디를 할수 있었다고 한다. 

리에코의 시어머니이자 카즈야의 어머니 또한 법정에 증인으로 나서서 준코를 노려보면서 "내 손녀가 집에 돌아가게 해달라고 애원할때 애까지 낳았다는 너는 아무 느낌이 없었느냐"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2005년 3월 2일, 검사는 최후진술로 "선악의 개념이 없는 입안자 마츠나가와 오로지 충실하게 실행한 실행자 준코는 차바퀴의 양쪽 축이라 할만한 관계로 전락했다. 희대의 연쇄대량살인으로 두 피고의 죄는 일본 범죄사상 최악의 중대한 범죄다. 돈줄로서 이용가치가 없어진 피해자들을 입을 막고 7명을 말살한 귀축의 소행을 저지른 두 피고인에게는 극형을 가하는게 마땅하다"라고 하며 두 사람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또한 마츠나가와 준코의 관계를 채찍질 하는 마부와 달리는 말에 비유하기도 했다.

2005년 9월 28일, 1심 재판부인 후쿠오카 지방법원은 판결로 "마츠나가의 증언은 서로 불일치하며 모순이 많기 때문에 마츠나가의 지시에 의해서 7명이 살해된것이 인정된다. 준코의 경우 아버지의 경우는 소생시키려고 했다는 정황이 인정되어 상해치사가 인정되지만 토라야의 경우는 명백한 살인이다"라고 평가하고 이외의 살인 행위도 모두 유죄로 인정하여 두 사람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마츠나가는 항소했고, 준코의 경우는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다며 판결에 승복하려 했으나 폭력 및 지배구조의 문제로 인해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닌 상황에서 마츠나가와 동일하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변호인단의 설득에 항소에 동의했다.

2심에서는 준코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부각되었다. 변호인단은 준코가 가정폭력과 성폭력의 피해자로서 마츠나가에게 복종하게 된것인만큼 감형해달라는 논지를 폈다. 이에 성폭력 피해자 단체에서 준코의 감형을 탄원하는 탄원서가 올라오기도 했다. 

2007년 9월 26일, 후쿠오카 고등법원은 마츠나가에 대해서는 사형의 원심을 유지했지만 준코는 카즈야가 전직 경찰관으로서 살해에 가담한 점. 그리고 폭력으로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닌 점과 비록 검거된 이후라고는 하지만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자신의 범행을 반성하는 점 등을 들어 기존 판결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마츠나가는 다시 항소했고 준코의 경우는 검찰이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2011년 12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마츠나가와 검찰의 항소 모두를 기각하면서 마츠나가와 준코의 형이 확정되었다. 최고재판소는 준코에 대해서도 "사형을 생각할수 있지만 장기간 학대를 당했다는 점에서 지시에 순응적일 수밖에 없는 심리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물적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에 적극 협력해서 진상을 밝히게 된 것으로도 (교화의 여지가 있으므로)생명을 박탈하여 사회로부터 영구적으로 격리시킬 이유는 없다."라고 결론내렸다. 다만 한 최고재판관은 "오카타 준코 피고인의 사정이 딱하다는 점은 인정되며 모든 것을 피고에게 유리하게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서 찾아볼수 없는 흉악한 범죄의 중대성을 감안한다면 이런 경우는 안타깝지만 부득이하게 사형을 내릴 수밖에 없다"라고 반대의견을 내긴 했었다고 한다. 

2013년 현재 마츠나가 후토시는 사형이 확정되어 구치소에 수감 중이며 집행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오카타 준코는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논픽션 작가인 토요타 마사요시는 이 사건을 다룬 논픽션 "사라진 일가"를 집필했다. 평론가 미야자키 아키라미가 이책을 높게 평가하면서 영화화 되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하기도. 또한 추리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신도 휴우키의 소설 "서로 죽이는 가족"은 이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양상이 조금 다르긴 하나, 우리나라에서도 이 사건을 연상시키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세간에 엄청난 이슈를 불러일으킨 기계교 사기 사건이 바로 그것. 기계교 사기 사건도 희생자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범행을 더 확대하기 전에 잡혔다는 점을 빼면 교묘한 말로 손대지 않고 가족을 파탄냈다는 점에서 이 사건과 유사하다.









엔하에서 보이길래 퍼왔는데 와...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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