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일어난지 얼마나 지났는지 이젠 기억도 나지않는다. 하지만 이젠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비참함에 납득을 하고 있었다. 한때 위대하고 강하다고 불렸던 그녀는 이젠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 날 이후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그 날 이후로 세상의 비참함을 깨달아버린 것이였다. 이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했다. 재능있는 이는 모든 것을 가지고 노력하는 이는 고통만을 누리는 것. 그 곳이 바로 이퀘스트리아의 법칙이였다... 그 사실을 너무 확실하게 깨달아버린 것이였다. 이젠 더이상 위대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트릭시가 바로 그 포니였다.
"난 위대하지도 못하고 강하지도 못해.... 난 큰 곰 자리를 무찌르지도 않았어... 난... 난.. 그러니까..내 말은... 난... 난 거짓말쟁이야..."
이퀘스리아의 포니들은 좋은 소문보단 나쁜 소문을 더 반기었다. 포니들은 어떤 포니가 어떻게 해서 잘됬는지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이 세상의 포니들은 자신보다 뒤떨어지는 포니가 누구인지를 더 알고싶어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것은 트릭시 자신이 너무나 뼈저리게 느낀 사실이였다. 한때 트릭시가 최선을 다해 펼쳤던 마술 공연은 그 이름이 유명해지기까지 너무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녀가 그 보라색 포니에게 망신을 당했다는 소문은 숨 한번 쉬기도 전에 퍼져나갔다. 마치 하늘 위의 무지개를 어떤 포니든지 볼 수 있는 마냥 포니들은 이제 트릭시가 더이상 위대하지도 강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이 때문에 트릭시의 순회공연은 더이상 화려함에 매료된 탄성 소리도, 위대하고 강한 트릭시를 위한 박수소리도 들리지않았다. 대신 그 풍만해야할 무대를 채우는 것은 포니들의 거슬리는 비웃음과 기분나쁜 소삭임뿐이였다. 그녀가 아무리 태연하게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더라도 포니들의 관심은 똑같았다. 오늘도 그런 무대였다. 거슬리는 비웃음 소리가 그녀의 목을 간지럽히고 기분나쁜 속삭임들이 그녀의 귓가를 멤돌았다. 포니들의 미소가 가득한 얼굴 속엔 그녀에 대한 열광과 즐거움보단 그녀가 그저 그런 포니에 불과하다는 비아냥만이 풍겨올 뿐이였다. 무대 위에 처절하게 올라와있는 한마리의 마술사 포니는 그 상황에서도 태연함을 유지하였다. 그녀는 아무런 미동없이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대사를 외치며 마술을 마무리 지어갔다. 트릭시가 그렇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 뿐이였다. 트릭시는 위대하고 강한 마술사이기 때문이였다. 비열한 웃음소리와 스멀 스멀 뿜어지는 속삭임에 굴복해서는 아니되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패배라고 트릭시는 생각했다. 그러나, 무대가 끝났을 때에도 위대하고 강한 한마리의? 마술사 포니에게 환호성과 박수를 치는 포니는 아무도 없었다.
트릭시는 마치 자신이 타르타로스 끝 자락에서 고독한 싸움을 하는 마법사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트릭시만의 착각이였다. 자신은 그 누구보다도 위대하지도, 강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이상 트릭시는 마법사는 커녕 마술사란 말도 창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는 아무 생각없이 그녀의 보금자리 안에 허무함에 떨며 누워있었다. 그날따라 더욱더 그러했다. 긴 시간동안 어두컴컴한 어둠이 덮히는 밤이 올때면 그녀는 스스로를 위안했다. 무대 위에 선 자신의 화려함에 환호성지르던 여느 포니들의 미소를 생각하며 그 어둠 속을 달래었다. 두 눈을 감을때면 혼자가 아니였다. 언제나 관객들과 함께였고 엄마와 함께였다. 그럴때면 가슴 속 응어리져버린 허무함이란 덩어리가 눈녹듯이 녹아내리곤 하였고, 그녀의 등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담요의 온기에 매료된 채 가벼운 떨림에 이어진 설레임과 춤을 추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젠 그것마저 느낄 수 없었다. 두 눈을 감을때면 보여야할 포니들의 미소는 온데간데 없었다. 추악한 미소와 교활한 속삭임 그리고 어둠 속에 더 어둡게 웃고있는 많은 눈들과 입들이 탐욕스럽게 그녀를 핧아대었다. 그럴때면 겁에 질려 곧바로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눈을 떠봐야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트릭시는 그걸 알면서도 다시 찡그리던 두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힘없이 허공만을 바라보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하였다.
"아무도.. 없구나..."
그녀의 보금자리를 가득 메운 것은 허무한 어둠뿐이였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허덕거리는 허무함은 고요한 발걸음으로 그녀의 등 하나 하나를 쓰다듬어 내리며 그녀를 비아냥거리듯이 감싸안았다. 그녀의 유일한 단짝인 담요도 더이상 따뜻하게 느겨지지않을 정도로.. 달갑지않은 포옹에 힘없이 엎드린채 트릭시는 아무런 말도 하지않았다. 허공만을 바라보는 두 눈은 깊게 생각에 빠졌다. 그 날... 위대하지도 강하지도 않다고 느껴졌을 때, 트릭시는 보이지 않던 앞이 보였다. 보라색 망아지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따뜻한 부모님의 시선은 항상 그 포니를 따뜻하게 감싸주었고, 듬직한 스승의 품은 언제나 그녀에게 일어설 힘을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에겐... 트릭시에게 정말로 없는 것 중 하나가 있었다. 바로, 친구들이였다. 마치 끈으로 단단히 묶은 듯한 그 유대감이란... 너무나 부러웠다.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 부러웠다. 자신에게 있는 것은 이젠 아무것도 없었다. 위대하고 강한 트릭시는 이제 공허한 어둠 속에 감싸버린채 신음하고 있고, 어떤 포니도 이제 트릭시를 바라지않았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지자 트릭시는 참고있던 그것들을 결국 토해내었다. 어둠만이 가득찬 고요함 속에 가녀린 울부짗음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모든 것이 지루하게 느껴질 쯤, 마술사는 죽는거야. 모든 것이.... 모든 포니가 아무런 여운이 느끼지않을 때... 위대하지도 강하지도 못하니까...."
노력이란 것은 너무나 힘들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신에겐 그 결과물이 결코 보이지않았다. 그런 결과물을 알아주는 것은 다른 포니들뿐이였고, 그녀는 그것을 절실히 바라왔다. 재능이란 것을 물려받지않은 그녀는 언제나 모든 것을 위해 앞만을 달려왔다. 그러나 그것의 결과물이 정말 이것뿐이라면 세상은 정말로 잔인한 곳이였다. 위대하고 태양의 지배자이신 셀레스티아님도... 자비롭고 달의 지배자인 루나님도... 그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두 포니조차도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트릭시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알고싶어졌다. 그러나 그 해답은 너무도 뻔했다. 스스로 그것을 알고있단 것을 알자. 그녀는 스스로가 떨림을 멈추었다.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가진 것도 없었다. 이제 트릭시를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였다. 그걸 알고있으면서 인정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비참했다. 비참해지니 더이상 무서워할 필요도 없었다. 세상의 그 어느 포니도 트릭시의 존재를 원하지않았다. 아니, 아예 트릭시의 존재를 신경쓰지않듯이 반복되는 무대, 반복되는 패턴, 반복되는 트릭, 반복되는 대사들을 시작으로 그녀는 애초에 위대하지도 강하지도 않았던 것일지 몰랐다. 어둠 속에 허무함들이 그녀를 쓰다듬기를 멈추었다. 아니, 어쩌면 이젠 더이상 그것이 느껴지지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트릭시는 떨림이 멈춘 자신의 몸을 아주 조심스럽게 일으켰다. 그리곤, 어둠과 허무만이 차있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천천히 나왔다. 밖은 안보다 그나마 좀 더 밝았다보름달이 그녀를 주시하는 듯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녀는 문듯 망설이다 이내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달리고 또 달려나갔다. 밤은 길었다. 그것을 알듯이 그 길고 지루한 밤 하늘 위에서 보름달은 묵묵히 그 한마리의 포니를 멍하니 지켜볼 뿐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