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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의 결혼식
게시물ID : wedlock_58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쿤앤쉔
추천 : 41
조회수 : 3697회
댓글수 : 192개
등록시간 : 2016/12/05 19: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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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jpg
여자들은 누구나 자기의 결혼식은 특별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거 같다.
그런데 대부분 그러하지 못한다.
경제적이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다들 비슷하게 사니까.
결국 비슷한 스튜디오에서 비슷한 웨딩사진을 찍고
비슷한 결혼식장에서 15분 내외의 비슷한 식을 올린다.

여자친구도 역시나 특별한  결혼식을 하고 싶어 했다.
문제는 우리도 남들과 비슷한 경제력이라는 것.

결혼식에 대해 생각해보니 그간 하객으로 참석하며 느꼈던 것들이 떠올랐다.  
판에 박힌듯한 웨딩사진
허례허식에 쓰이는 돈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걷는 축의금
먼 길 찾아와 금세 돌아가야 하는 짧은 결혼식
결혼식은 보지도 않고 식당으로 향하는 하객들

이런 결혼식은 정말 싫은데...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 두 가지는 잔머리와 부지런함.
이걸 최대한 이용해 봐야겠다.
우리를 포함한 모두가 재밌고, 즐겁고, 인상 깊다고 느끼게끔 식을 치러봐야지.
마치 잔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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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일출을 보며 청혼)
청혼을 일찍 한 탓에 결혼식까지는 10개월의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웨딩촬영에 '겨울 - 봄 - 여름'의 모습을, 결혼식엔 '가을'의 모습을 담자 했다.

오빠 웨딩촬영을 세 번이나 하게? 비용이 꽤 나올 텐데...
무료로 찍어주겠다는 작가님이 있으셔서 괜찮아
누군데요?
나요 ㅋㅋㅋ
...
오빠 못 믿음?

단호하기는... 시간 많으니까 일단 찍어보고 맘에 안 들면 스튜디오 가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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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로 촬영을 하려면 드레스가 필요했다.
여자친구가 열심히 쇼핑몰을 찾아보더니 사진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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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메리 앤 마리)
오빠 어때?
와 이쁘다
그치? 이쁘지?
응 모델이 이쁘네
...신랑 입장할 때 목발 짚고 싶어?
죄송합니다.

사진만으로는 알 수가 없어 직접 입어보고 고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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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 시범 삼아 묶어준 건데 촬영할 때는 이빨 꽉 깨물고 쪼이라고 했음...)
오빠 나 어때?
사진이랑 너무 다른데?
아 그래?
응 모델이 너무 달라
...신랑 입장할 때 휠체어 타고 싶어?
죄송합니다.

만듦새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사진촬영하기엔 충분한 정도였다.
17만 원에 구입.
 
 
 
5.jpg
 
(강릉의 겨울)
고향과는 달리 서울은 도통 눈이 쌓이질 않아서 겨울 느낌이 나려면 눈이 내릴 때 찍어야 했다.
유독 눈이 안 오는 겨울을 보내며 초조해질 무렵 가게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눈이 오기 시작했다.
시간은 새벽 4시.
세 번째 시도만에 겨우 전화를 받은 여자친구에게 웨딩촬영할 테니 준비하라 해뒀다.
여자친구가 사는 원룸에 도착하니 새벽 5시.
좋아 눈은 아직 온다.
신부화장하고 기다리는 여자친구에게 드레스를 입히고는 동이 틀 때를 기다렸다.
눈아 제발 많이 와라...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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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이따 회사 가야 하는데 새벽부터 깨우더니만 눈도 안 오고 춥고... 아오..)
창문 너머 어슴푸른 빛이 돌 때쯤 옥상에 올라갔다.
그러나 눈은 이미 종료.
젠장...
준비한 게 아까워서 웨딩촬영을 강행하기로 했다.
겨울 느낌은 털 모자님이 해주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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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안 오고 배경이 이쁜 것도 아니니 점프샷으로 컨셉을 잡자 했다.
여자친구에게 폴짝폴짝 뛰라고 주문하고는 셔터스피드와 조리개, iso를 세팅.
좋아 이제 촬영 시작!!

오빠 이거 거지같이 나오면 바로 스튜디오 가는 거임
오케이.  어? 근데 내 얼굴은 원래 거지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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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일하던 복장 그대로)
타이머를 맞춰놓고 하나, 둘, 셋 점프!!
찍는 순간을 맞추기가 참 어려웠지만 한겨울의 아침의 추위를 느끼지 못 했을 정도로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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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찍고 확인하며 깔깔대고
다시 찍고 확인하며 신나하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래. 서로가 즐거운 결혼식이라는 게 이런 거지.
과정도 결과물도 만족스럽다.

거지같이 생기긴 했지만 스튜디오는 안 가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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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촬영은 고향에서 찍기로 했다.
차가 없는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데 드레스를 입은 채 다니기엔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
고향에 가면 차 있고 사진도 잘 찍는 친구(형 차에 중 2병 사진 전문)가 있다고 여자친구를 안심시켰다.
 
 
 
11.jpg
 
둘이 찍을 땐 몰랐는데 촬영이라는 게 이렇게 어색한 거구나 싶었다.
전방 100미터에서도 보일법한 드레스를 입고 있으니 제법 시선이 몰렸다.
 
 
 
 
12.jpg
 
(강릉 남산의 봄은 참 좋다)
그런 와중에 들리는 아줌마의 대화.
어머 신부 이쁘네~
그러게 미인이네
근데 신랑은 누구야?
저사람인가?
에이 아니겠지

아줌마!! 다들려요!!! 다들린다고!!!
 
 
 
13.jpg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랬던가.
촬영한지 다섯 시간쯤 지나자 슬슬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14.jpg
(나 처럼 얼굴을 좀 망가뜨리면서 먹으란 말야. 오빠는 원래 망가져 있었어)
이날 촬영을 다섯시간만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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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촬영도 고향으로 왔다.
강릉엔 바다도 있고, 차있는 형을둔 친구도 있으니까.
 
 
15.jpg
촬영초기의 어색함을 덜고자 친구가 몸개그를 시전.
 
 
 
16.jpg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을 찍고싶었으나, 아무리 찾아도 절벽은 없었다.
결국 모래사장에서 대신함.

물론 이후에도 촬영계획이 계속 있기에 바다에 뛰어드는 척만 했다.
 
 
 
17.jpg
여자친구도 여잔데 이런사진 하나쯤 찍어야 한다며 친구가 강요했다.
결국 여름 촬영중 이 사진을 가장 맘에 들어 하더라.
 
 
18.jpg
(잇힝~ 바다다♡)
해가 질 무렵 마지막 촬영은 바다에서 했다.
 
 
19.jpg
2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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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진심이 담긴거 같아)
 
 
 
22.jpg
 
(내가 가장 맘에 들어하는 사진)
여름 촬영을 끝으로 웨딩사진은 마무리가 됐다.
세번의 촬영에 들어간 비용이라고는 드레스와 버스, 그리고 술값 뿐.
그에 비해 굉장히 만족스런 사진들에 우리끼리도 할수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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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예물예단의 차례.
양쪽 부모님과 상의끝에 예물예단은 일절 없는걸로 합의 했다.
(식장입고 오실 옷만 각자 사드리기로 했다)
남은건 결혼반지 인데...

일전에 커플링을 사러 을지로의 금은방은 죄다 돌아다녀보고,
쇼핑몰도 두루두루 살펴봤지만 맘에드는걸 찾을수 없었다.
 
 
 
23.jpg
그래서 직접 디자인해 공방에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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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밀아트)
공임비 10, 재료값 5.
합이 15만원에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커플링을 만들었었다.
 
 
 
 
25.png
25.jpg
(출처 - 해밀 아트)
청혼반지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었다.
다만 문제는 내가 일할때 반지를 빼고 있어야 한다는것.
커플링은 빼고 있었지만 결혼반지는 그러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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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원히 뺄수 없는 반지를 만들었다.
각각 3만원씩 합이 6만원에 결혼반지를 획득.

문신이 너무 아파 나이 서른둘먹고 울뻔했다는게 함정.
여자친구는 전혀 안아파 했다는게 안함정(관우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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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촬영과 예물예단은 잘 끝냈고 이제 결혼식만이 남았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결혼식을 위해 그간 봐왔던 결혼식을 떠올려 봤다.

오래도록 연락이 안되던 사람들이 뜬금없이 연락해 삥뜯기듯 낸 축의금
먼길 찾아간 식장인데 15분만에 끝난 결혼식
워낙 경황이 없기에 제대로 인사도 못한 신랑신부
항상 보아온 그저그런 식에 흥미를 잃고는 곧장 식당으로 향하는 어른들

기타 별로라 생각되던 일들을 처리하면 독특하고 즐거운 결혼식이 될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세운 기준은
1. 직계가족과 친한 친구만 부른다.
2. 부모님 에게도 꼭 불러야할 지인만 초청하길 부탁드린다.
3. 식을 올릴만한 마당이 있는 펜션을 빌리고, 하객 모두와 술한잔 하며 하룻밤을 보낸다.

결혼식을 올릴 지역은 여자친구의 고향쪽으로 정했는데, 직계가족만 50명이 넘기 때문이었다.
부산 인근에 마당이 넓고 경치가 좋은 펜션과 괜찮은 웨딩플래너(일 잘하고 저렴한)를 구하기 위해 온 사방 뒤지고 다니길 수개월.
마침내 딱 적당한곳을 찾았다.
 
 
 
27.PNG
 
(금액의 빨강 글씨는 필수조건)
웨딩플래너가 운영하는 펜션이 있네?
게다가 사진작가 출신이야?
 
 
28.jpg
 
진해 외딴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펜션.
야외라 날씨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맑았다.(사실 비가 와도 추억이 될꺼라 생각했다)
10월초라 조금 쌀쌀하긴 했지만 날벌레가 적은게 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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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상당히 넓고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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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장모님 근처에서 식을 올리기에 온가족이 먼길 떠나는 수고를 덜긴 했지만,
하루 보낼 손님받을 준비를 하셔야 해서 많은 고생을 하셨다.
 
 
 
 
31.jpg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신랑 입장(머리도 옷도 평소 그대론데 가슴에 단 코사지 하나로 신랑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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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입장(신부대기실이 따로 없기에 언덕밑에서 차를 탄채로 올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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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없는 식이라 노련한 사회자가 필요했다.
남자인 친구들 중에는 내가 가장 먼저 결혼을 하는거라 친구들 전부 경험은 전무.
결국 전문 MC를 섭외했다.
신부를 업거나 소리지르는 일련의 행동 등등
신랑을 창피하게 만드는 요구는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드렸다.
(입장할때 만세삼창은 시키더라)
 
 
 
34.jpg
 
(신부에게 쓰는  편지)
사랑하는 **에게
드디어 결혼이네요.
오래동안 만나며 마냥착한 아이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마냥 착한 아줌마네요.
니가 그럼 그렇지라는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내요.
네 저도 사랑해요.
부산 아가씨와 강릉 청년이 우연히 서울에서 만나 여기까지 왔다는게 참 신기하고 감사해요.
어렵게 만난 인연인 만큼 오래오래 노력하며 잘 살아요.
결혼한다고 하자 사람들은 어떤 시점에서 결혼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냐고 물어봐요.
제 대답은 상항 같아요.
제게 **보다 더 좋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을 때라고.
그 생각이 확신이 되었을때 청혼을 했고 확신이 현실로 실현되어 참 기뻐요.
**이도 그런 확신을 가지고 결혼 하는거 맞죠?
난 아닌데? 라는 표정이네요?
네 저도 사랑해요.
나이는 내가 더 많은데 가끔 자기가 더 어른스럽게 행동할때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고 노력할때
참 감사하고 내가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비가올때 내리는 비를 막아줄순 없어도 함께 맞아줄순 있어요.
힘들때 슬플때 기쁠때 함께 웃고 울며 따뜻하게 살아요.
항상 엉뚱한 쪽을 가르키는 완전길치 **지만 내가 네비게이션이 되서 바른 방향으로 안내해줄께요.
부모님의 울타리를 벗어나 이제는 우리가 울타리가 될 차례네요.
기대도 되고 부담도 되지만 자기와 함께라면 왠지 잘 해낼수 있을거 같아요.
**의 로망이 이루어 지는 이때를 오래도록 기억하며 행복하게 살아요.
나의 신부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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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축가)
이자식이 우리 결혼식을 망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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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의 중간중간 사회자가 하객에게 질문하고 대답을 받으며 노련하게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가장 오래된 부부에게 결혼생활이 어떤거냐 물었을때 길게 내쉬던 한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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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신부가 주연인 1부가 끝났다.
40분 가량의 쉬는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하객들이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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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가 시작되었다.
이때는 신랑 신부가 함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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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주연이된 2부는 어머니들의 눈물바다가 됐고
슬플때 꺼내보면 좋은 장모님의 움짤을 얻게 되었다.
 
 
 
40.jpg
 
부케는 여자만 받으란 법 있나!!
받고 싶은 사람 모두 나오라 했더니 남자들이 우글우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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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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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이 끝나고 모두들 펜션에 모여앉아 술한잔 하며 피로연을 시작했다.
우리를 포함한 모두가 재밌고, 즐겁고, 인상깊다고 느꼈을까?
응 이정도면 된거같다.
마치 잔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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