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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서의 5 18
게시물ID : sisa_4171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임위
추천 : 11
조회수 : 46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7/23 13:19:52
 
역사로서의 5 18이란 책이 있습니다
 
책 제목이 "역사로서의 5 18" 입니다
 
이 책을 읽고 "5 18 광주사태는 김대중을 위시한 내란소요사태, 폭동"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군요.
 
 
하지만 그 모든 폭동사태를 정당화시켜주는 논리가 있습니다
 
바로 독재에 대한 저항이죠
 
그 최종목적이 "민주화" 였다면 그 과정의 폭력성은 무마되는게 일반적인 역사평가의 정론입니다
 
 
전쟁중에 사람 죽이는 것도 "살인" 이죠
 
하지만 아무도 "살인"에 포커스를 맞춰 평가하진 않습니다
 
적에 맞서 나라를 지킨다는 커다란 명분이 그보다 위에 있는 본질이기 때문이죠
 
 
5 18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말싸움할 때 간단하게 이렇게 이야기를 꾸려 나가면 됩니다
 
 
 
 
 
 
 
< 5 18은 왜 민주주의 운동인가 >
 
 
박정희가 처음에는 직선제를 따라서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이었지만
 
나중에는 유신헌법을 제정하여 사실상 독재정치를 하다가 부마항쟁 같은 민중저항에 이른 사람이다
 
그 와중에 부하에게 총살당했는데
 
박정희 정권 부통령이던 최규하가 헌법에 따라 대리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다
 
최규하 정권은 박정희 정권의 후신이므로
 
민주화를 갈망하는 각지에서는 "최규하 물러가라"는 구호가 등장했던 것이다
 
역사로서의 5 18이란 책에서는 최규하 정권을 헌법수호정권으로 미화하던데
 
최규하 정권은 박정희 독재정권에서 파생된 정권이기에
 
국민들이 직접 뽑은 권력이 아니다
 
따라서 이에 저항하는 것은
 
비록 그 당시 최규하 정권이 헌법상으로 정국을 장악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박정희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
 
즉, 5 18 사태는 부마항쟁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민중저항" 이었고
 
그 최종목표는 "직선제 -> 민주주의 실현" 이었다.
 
 
그 와중에 전두환이란 인물이 등장했고
 
비록 전두환이란 인물이 1980년 6월 이후에 알려진 군부실세라 하여도
 
박정희에 이은 최규하, 그 대물림된 정권의 군부실세 전두환은
 
한 덩어리로 보는게 타당하다.
 
즉, 역사로서의 5 18이란 책에서는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을 딱 딱 끊어서 이분법으로 몰고 가지만
 
박정희의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
 
부마항쟁의 연속성으로 그 시대의 전체 그림은 묘사하지 않았다.
 
 
과정의 폭력성이 있더라도
 
그 목적이 "민주주의 실현" 같은 국가 공익적 목적이었다면
 
그 과정의 폭력, 심지어 살인행위 조차도 "면죄부"가 된다.
 
 
만일 5 18 광주사태의 소요 목적이
 
북한에 협력하여 적화통일을 하려는 것이었거나
 
김대중 개인을 독재자로 추대하려는 것이었다면
 
5 18 광주사태는 "폭동이나 내란"이 맞다
 
 
하지만 그 소요 목적이
 
"민주주의 실현" 이었다면
 
그것은 "민주화운동"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운동이라는 표현은
 
비폭력/폭력을 구분하는 기준 단어가 아니다.
 
정당한 "항쟁"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의 표현인 것이다.
 
 
5 18의 목적은 무었이었는가
 
북한과의 연대인가
 
김대중 왕만들기인가
 
민주주의 실현이었는가
 
 
역사로서의 5 18 증언록에도 나와 있지만
 
"전두환이가 독재를 하려고 한다."
 
"전두환이 집권하면 박정희처럼 독재를 하려고 한다."고 우려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어디에도 "북한의 통일 사업에 일조해야 한다."는 광주시민의 증언은 나와 있지 않다.
 
정황상 간첩들이 유언비어를 만들어 내란을 획책했다는 증거가 있지만
 
혹여 정말로 북한에서 개입하여 5 18 사태를 이용해 적화통일을 시도하려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당시 현지에 살던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과는 관련이 없다.
 
사기꾼이 순진한 사람 등쳐먹으려 이용했다고
 
그 순진한 사람마저 사기꾼이 되는가?
 
유네스코에서도 그 폭력적인 기록물들을 모두 다 검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는 것은
 
적어도 "민주화에 대한 기여"로 보는 것은
 
그 목적이 어떠한 "내란"에 있지 아니하고
 
민중에 의한 "직접 민주주의 요구"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5 18은
 
그 최종 목적이 "민주주의 실현"이었으므로
 
그 과정의 폭력성이 논란의 중심이 될 수 없다.
 
그 과정이 더욱 폭력적이고 심지어 내전으로 치달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민주화운동"이 되는 것이고
 
만일 그 때 성공했다면 "민주혁명"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과정보다는 그 목적이 무엇인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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