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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2012년이니까, 대략 9년, 10년전 즈음의 일이다.
당시 (사실 현재까지도) 나는 청와대 옆에 있는 한 교회에 다녔다. ‘청와대 옆’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이런 저런 일들이 많다거나 정치인들이나 유명인들과 만나게 되는 기회가 적지 않을 것 같지만 MB정부 이후 그 일대에서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는 걸 제외하면 사실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어느 일욜 아침… 대략 11시를 좀 넘겨 광화문에서 교회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 지역을 다니는 버스는 보통 승객들이 많다. 평일에는 경복고, 상명대, 국민대 학생 등, 지역 주민과 학생들이, 주말, 특히 일요일에는 등산객들로 버스가 항상 가득 찬다.
한데 그 날, 그 시간에는 버스에 유난히 사람이 없었다. 기사 아저씨와 나를 포함해서 기껏 네댓명 정도 되었던 거 같다.
그런데!
경복궁 역에서 어디선가, 특히 TV에서 많이 본 인물이 타는 게 아닌가?
문재인이었다! (당시 그는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차림새는 정장이 아닌, 면바지에 평범한 평상복이었고, 손에는 누런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하도 신기해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때 분위기와 정황을 자세히 기억한다).
우리가 함께 버스를 탄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는 서너 정거장을 가는 동안 내내 서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보다 먼저 버스에서 내렸는데 기사 아저씨에게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꾸벅 인사하고는 청와대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 짧았던 몇 분이 나에겐 그저 쇼크였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일요일 아침
평상복에 누런 봉투 하나 들고
지하철, 버스 타고 걸어서
청와대에 간다고??
그러나 그 무엇보다 신선했던 것은 내리면서 기사 아저씨에게 보여주었던 예의와 겸손이었다 (언급했듯이 당시 버스 안에는 미디어도, 사람도 없었다. 요즘처럼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전달될까 걱정할 필요도 없던 때였다).
그 땐 그저, ‘와 저런 관료도 있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이었으나
지금 나에게 가장 놀라운 것은
10년의 시간이 지나,
그 누런 봉투 버스 탄 아저씨가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것이다!!
난 내게 투표권이 생긴 이래 (10대 학생 시절에도 정치적 성향은 그랬지만) 내 맘에 드는 후보를 신나게 뽑는 선거보다는 ‘어느 한 정당’을 처절히 반대하기 위한 투표만을 계속해왔다.
그에 비하면, 지금도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내 마음에 드는’ 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지난 서울 시장 선거 등은 참여 자체가 불가능했으므로 패스).
사실, ‘10년전, 그 누런 봉투 버스 탄 아저씨에게 행운을 빈다’라기에 지금 내 심정은 너무나 절박하다 (내가 찍은 투표 봉투가 강동구청으로 온전히 갈지, 제대로 계수가 될지조차 걱정해야 하는 참담한 시국 속에서 ‘행운을 빈다’는 건 너무 여유로운 생각이다).
대신 요 정도는 소리 높여 외쳐보고 싶다.
“10년전 누런 봉투 버스 탄 아저씨가 부디 대통령이 되시기를, 그래서 10년전의 그 겸손으로 열심히 일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