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저런 길을 또 한참 가다가 한글이 좀 보여서 찍어 봤다. 간판에는 '길림성 안도현 송강진 인민정부'라고..
국민학교 다닐때 방공 교육을 많이 받은 영향인지 북한 어디인거 같으 느낌이..
동네 간판에는 한문과 한글이 같이 많이 적혀 있었다. 누구를 위한 간판인지 잘 모르겠지만 재미 있는 간판이 있어서 찍어봤다.
'맛나는 소탕집' 먹어보고 싶다. 소탕이니 우선 소는 들어가 있겠지..? 그치만 결국 슈퍼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싸고 맛있는
아이스크림 3개만 사먹었다
'국수잠식문엄', '배운냄비', '송강진서참외전문합작사'.. 뭐 하는 곳인지 대충 짐작만 할뿐..
전날 스마트폰 지도로 꼬불 꼬불한 길이 있어 산이 있을 거라 짐작을 했다. 자전거 타고 오르기는 힘든 길. 끌바로 한참을 오르다 찍었다.
화룡계? '계'가 한국에서 무슨무슨 '재'하는 고개라는 뜻인가?
스마트폰 지도에서도 보면 길이 갈리는데 오르막을 한참 끌바로 올라온 터라 조금만 더 올라가면 오르막이 끝날거 같아 그냥 직진했는데...
그냥 계속 오르막이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고.. 조기 오르막만 오르면 정상일꺼 같아 힘내 올라보면 또다른 오르막이 시작되고 계속 반복한다.
오르면서 보면 이제는 내가 오르고 있는 높이가 너무 높아서 다른 오르막이라고는 없을꺼 같은데 올라보면 산을 돌아 오르는 또 다른 오르막이다.
이러기를 20번, 아니 30번을 넘게 했을까? 기대하고 실망하고..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으나 점차 분노로 바뀌었다. 산에 길이라는 것이 산의
완만한 부분을 이어 이어서 차도 사람도 쉽게 넘을수 있게 만들어 놔야지 이거는 산에 토끼가 다니던 길을 이어서 넓혀만 놨나...
그러다가..
힘들어서 그런지 이런 저런 생각 하다가 가족 생각이 났고 엄마 생각이 났고 아버지 돌아가실때 생각이 겹쳐져 슬퍼져서 코가 찡한 눈물이 났다.
그렇게 얼마 동안 슬픈 생각들에 사로잡혀 산을 오르다 보니 화도, 깜깜해지면 어떻하나 하는 걱정도 사라 졌다. 깜깜해 지면 그냥 텐트치고
자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법륜 스님 말이 맞다. 이 산은 오랫동안 여기 이렇게 있었고 많은 중국 사람들은 이 큰 산을 힘들게 넘어
다니다가 도로가 닦여 좋아져서 잘 다니는 길을 내가 혼자 자전거 여행한답시고 쭐래쭐래 중국까지 와서 길이 어떻네 저떻네 하는게 우수운 거다.
오르다 보니 산림공원 안내가 되어 있다. 일반 산은 아닌가 보다.
높은 산이라 좋은 풀이 많은지 소들도 풀어 놓고..
또 한참의 오르막. 옆쪽으로 물이 졸졸 흐르는데 물이 깨끗하고 시원해 떠 마셨다. 약초 썩은 물 먹어 몸이 좋아지는 느낌??
이름 모를 이쁜 노랑 꽃도 피었고..
올라야 할 길.
올라 온 길. 힘들게 올라와서 찍었는데 이건 뭐 사진은 평지같이 나왔네. 내리막길 처럼 나온거 같기도 하고..
깊고 건강해 보이는 산림. 근데 이상하게 동물들이 안보인다. 이렇게 크고 깊은 산림이면 노루, 토끼, 다람쥐 같은 동물들이 많을 거 같은데
보지를 못했고 로드킬 당한 동물도 못봤다.
한참을 더 오르니 보이는 차들. 산에 임산물 채취하러 온 사람들이 타고 온 차량들이다.
차 짐칸에 임산물들이 가마니로 실려있었다. 그런데 일행중 누가 아직 오지 않았는지 아저씨들이 계속 숲쪽으로 뭐라 뭐라 크게 소리치고 있었다.
'개똥 엄마~ 개똥 엄마~ 빨랑 와요. 이제 가야 되' 예를 들자면 이런 느낌으로..
좀더 올라가고 있는데 배기량 크지 않은 오토바이를 타신 분이 내게 다가와 처음부터 한국말로 한국사람이냐고 물어보셨다. 아니 어떻게 아셨지?
아까 산을 내려 가면서 봤다고 하시면서 이것 저것 물어보신다. 바로 사진의 요기가 정상이고 자전거 브레이크는 잘 드는냐고 물어보신다.
내리막이 얼마나 경사가 심하다고 브레이크 잘 드냐고 물어보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르막이 끝이라니 너무 좋았다.
간단히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내가 오늘 화룡까지 갈 예정이라고 하니 시간도 늦고 가다가 고개가 하나 더 있어 어두워 질꺼라고 하시면서
그러지 말고 룡정방향으로 2시간 정도 가서 와룡소학교 교장선생을 찾아가라고 하신다. 이 분은 전 와룡소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계시다
퇴직하신 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수첩에 메모해 주신 내용. 교직 생활을 오래 하셨던 분 답게 보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그려 주셨다. 나는 이때 까지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우선 산부터 내려가 보기로 했다. 이때가 5시쯤..
좀 내려가다 보니 그래도 높은데라고 전망대를 만들어 놓아 사람들이 사진도 찍고 차를 세워 놓고 쉬었다 가고 있었다. 나는 바쁜 마음에
풍경 감상은 하지 않고 사진만 후딱 찍었다.
길게 뻗은 내리막길. 내가 오늘 12시 반부터 5시까지 끌바하면서 한 고생을 보상해 줄 길이다.
내리막은 브레이크 걱정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시원하게 내리 쏘는 맛에 브레이크 많이 잡을 일도 없었다.
역시 오래 오른 큰 산인 만큼 긴 내리막이었다. 20분 정도 내려오니 보이는 간판. 한글이 있어서 좋다. 그래도 아직 화룡은 멀고..
나무가 많은 산을 벗어 나서도 꾸준하게 이어지는 내리막을 시원하게 달린다.
한 30분 더 내려오니 라금걸 전 교장선생님이 메모해 주신 것처럼 룡정방향 안내판이 나왔다. 여기서 시간도 점점 늦어지고 산을 넘어 화룡까지
갈 자신이 없어 와룡초등학교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괜히 불쑥 찾아가 민폐 끼치는 것 같아 내키지는 않으면서도 예상치 않은 인연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여기서 부터 2시간 더 가야한다.
처음에는 논,개울, 밭이 있는 일반 시골길이더니 1시간 정도 가니 위 사진 같은 길이 이어진다. 앨리스가 들어간 토끼굴 처럼 마법같이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은 길. 평지 같은데 속도계는 25km 정도 꾸준하게 나왔다. 그리고 나온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동네 와룡촌. 내 어린시절 동네의 풍경이 거기에 있었다. 처음에는 진짜로 멍~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어른이 되어서 어린 시절 추억과 그 시절의 풍경을 생각으로만 오랫동안 하다가
그와 아주 흡사한 광경을 눈으로 다시 보게 되니 뇌가 일종의 혼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현대화 되지 않은 자잘한 논들과 논두렁만 해도 여느 중국의 그것들과 많이 달랐다.
물어 물어 찾아간 와룡소학교. 학교도 한국 80년대 시골 학교의 모습이다. 나는 학교조차 이런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누군가 예전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냐는 질문에 예전보다 더 행복한 시간을 만들라는 답변을 어디선가 봤었다.
나도 성인이 되어서는 큰 행복을 못 느끼고 어린시절 추억만 소중히 여겼었는데 내가 큰 결심을 하고 여행을 떠나와
이렇게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를 내가 직접 다시 찾은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행복한 순간을 만들고 있음을 느낀다.
학교 입구 우측 벽면. 좌측이 교장 선생님이 사시는 곳이라고 동네 분이 알려 주셨는데 묻이 큰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동네 주민들 10명 가운데 1명은 조선족인거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그냥 한국 시골사람들 같은 인상이다.
교장 선생님 기다리며 뻘짓..
학교 정문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흙 바닥에 보니 저렇게 개미지옥도 있다. 나뭇가지로 가미가 빠진 것처럼 살살 모래를 건들어 주면 개미 잡아 먹는 놈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