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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카카오 이석우 대표의 부친이 노태우 정권 이수정 전 장관이었네요..
게시물ID : sisa_5879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risoul
추천 : 6
조회수 : 182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4/20 00:08:22
서울대 문리대 4.19 선언문 다들 아시죠?

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깊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킴으로써 이성과 진리, 그리고 자유의 대학 정신을 현실의 참담한 박토(薄土)에 뿌리려 하는 바이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명문입니다.

당시 정치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던 '이수정' 씨가 작성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필연적으로) 그는 5공때 고위관료, 노태우때 문화부 장관을 역임합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0253.html

하지만 이수정은 나중에 ‘출세의 길’을 추구하게 된다. <한국일보> 기자를 하다가 70년대 초 해외공보관이라는 걸 하면서 나라의 녹을 먹기 시작했다. 물론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원로 언론인 남재희의 말을 들어보면 당시 윤주영 문화공보부 장관이 해외공보관 제도를 처음 만들면서 기자 20~30명을 한꺼번에 채용한 적이 있는데 이수정도 이때 합류했다고 한다. 정권에 순치된 것일 수는 있으나, 최소한 4·19를 팔아 특권을 누린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 지점이 분기점이었다. 그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 언론인 강제해직 때 그는 문화공보부에 근무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역할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잘려나간 동료 기자들의 눈에 그는 ‘부역’을 하고 있었다. 해직 언론인들은 1996년 허문도, 권정달 등 다른 다섯 명과 함께 그를 검찰에 고소했다. 물론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됐다. 그는 전두환·노태우 정부 시절 대통령 정무1비서관과 공보수석비서관을 거쳐 문화부장관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4·19 선언문 작성자로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던 청년이 군부독재 아래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선봉에 선 것이다. 자유의 종을 난타하던 타수가 자유의 종을 깨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이수정 전 장관의 아들이 이석우 대표였네요. 허허..

(4.19 이후 ) 6년 뒤 이수정은 아들을 낳는데, 그 아이가 다음카카오 공동대표 이석우다. 


아이러니합니다.
역사가 반복되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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