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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의 늑대 U-Boat 이야기.03
게시물ID : military_588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산들바람93
추천 : 12
조회수 : 1222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5/09/17 14:55:16









꽤 오래간만에 쓰네요 ㅋㅋㅋ



오류는 지적해 주시고

보충이 필요한 부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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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 초

1939년 말...


유보트들은 수적인 열세에도 큰 성과를 올렸습니다.


Otto Schuhart 함장의 U-29가 북해에서 (멍청하게 가던) HMS 커리지어스(항모) 격침 시켰고

HMS 커리지.jpg





Günther Prien 함장의 U-47이 영국 해군의 심장부에 잠입해

HMS 로얄 오크(전함) 격침 / 착저 시키는 엄청난 성과를 올립니다.

HMS RoyalOak.jpg




잠수함 전사에 남을 희대의 에이스이며...

유보트 전설을 시작하는 영웅의 탄생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전략적 큰 성과를 올렸음에도 ... (홍보도 개쩔게하고)

(로얄 오크 격침 후 되니츠는 히틀러에게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 받았지만... 흥칫뿡 그딴거 지켜지지 않음)


히틀러는 유보트의 유용성을 깨닫지 못 했고 잠수함 전력에 그닥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1939년 생산된 유보트는 30여척 가량으로 작전 중 손실된 유보트를 보충하는 정도 밖에 안되었죠.


성과를 올렸는데 성과금이 없...


열악한 지원 속에서 유보트들이 고분분투하던 중

전쟁 상황은 유리하게 전개 됩니다.



1940년초 노르웨이 침공 후

1940년 중반 나치 독일군이 노르웨이와 프랑스를 점령한 것입니다.


특히 프랑스의 항복은 연합국에 엄청난 손실이였죠.


노르웨이는 당시 화물선박의 숫자가 가장 많은 국가였습니다.

(다행이 많은 수의 선박이 영국으로 ㅌㅌㅌ 했음)


프랑스는 연합국의 주축으로 영국이 제일 믿고 있던 국가였는데 말입니다 ㄷㄷㄷㄷㄷㄷ

(근데 ㅄ 처럼 당했... 그것도 꼴랑 1달만에...)

(심지어 탱크도 프랑스께 더 쩔었던 시기...)


노르웨이 방면에서의 전투와 프랑스 덩케르트에서 연합군 철수 작전등으로

영국 구축함의 영향력이 일시적으로 감소한데다가...

(덩케르트 철수하면서 연합군은 그야말로 거지가 됨;;;)


프랑스의 항복으로 연합군 해군전력이 크게 줄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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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항복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

히틀러는 프랑스가 항복 문서 서명하는 장소로

어떤 기차 한 칸을 독일로 가지고 와 진행 시킵니다.

프랑스 항복.jpg


이 기차는 1차대전 때 독일이 항복 문서에 서명을 했던 그 기차 칸 입니다.

프랑스에게 굴욕을 준 것이죠.

(히틀러는 매우 신이났고 일본은 충격과 흥분했으며... 처칠은 담배를....

샤를 드골은 정부 ㄱㄱㄲ ㅅㅂ ㅄ ㅅㄲ들...이라고 외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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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에서 프랑스 서해안으로 이어지는 해안을 모두 장악한 나치 독일은

사실상 유럽대륙의 해안선을 장악한 것 입니다.

지도.jpg




대서양 그랜드 오픈!!!!



독일 해군 잠수함대 사령관 카를 되니츠는...

그 동안 갈고 닦은 구상하고 계획한 전술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독일의 유보트의 명성을 오늘날까지 이어가게 만든 전술입니다.


울프팩 전술

간단하게 설명하면..


유보트가 적함선을 발견...  주변 유보트 또는 잠수함대에 무전을 보내고 추격을 계속합니다.

어느 정도 숫자의 유보트가  모이면 한번에 다구리 공격하는 전술입니다.

(몇몇 약빤 함장들은 잠수함에 설치된 88mm/105mm 함포로 쏘는걸 선호하기도 함)


울프팩 전술로 유보트들은 마약 빤 마린 처럼 바다를 휩쓸었습니다.

1940년 6월부터 10월까지 약 300척의 상선이 침몰

유보트는 고작 6척 침몰


정말 어마무시한 가격대비 효율 성과를 올립니다.


이렇게 괴랄한 성과를 올려도 성과금 지원은 미미했습니다.


정찰을 통해 적함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기본인 전술에서 

항공전력의 도움이 있다면 더욱더 파괴력이 가중 되었을테지만

나치독일 공군원수 약빠는 뚱땡이 괴링은 해군에 비협조적이였다는 것이 연합군에겐 다행이였.....

히틀러는 말 할 것도 없...

(그리곤 런던 항공전에 공군을 갈아 넣음)



프랑스 항복으로 대서양 진출이 쉬워진 유보트들은

이 시기를 '행복한 시간' 이라고 부릅니다.


격침 성과는 나날히 쌓이고 피해는 경미...

유보트 승조원들은 훈장이 쌓이던 시기.


유보트 숫자가 조금만 더 많았어도

영국 굶어 죽일 정도로...

많이 쪼였...

(바다에선 보급품 수송선 짤리고 하늘에선 미친 항공력 소모전 ㄷㄷㄷ)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또 한가지 있었습니다.



영국 해군의 안일한 대잠 작전이였죠.



그들은 이미 1차대전에서 독일 유보트들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닥치고 지나가는 모든 수상함을 공격하는 뭐...그딴 작전입니다.

(닥공 때문에 런던 잠수함 조약이란게 생겼던건데..... 이건 걍 이야기 안 하는걸로 ㅎㅎㅎ)


수상을 역임하기 전 윈스턴 처칠은 해군장관으로...

유보트 색출에는 항공기가 와따임을 주장하며


항모들을 풀어 놓습니다.

풀어 놓은건 좋은데 함재기들이 유보트를 발견해도 제대로 공격 할만한 무기도 탑재하지 않았었죠.


그리고 크고 알흠다운 항공모함은 둔탱이라 유보트의 먹음직스러운 먹이감으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타겟이였습니다.


그 결과로 눈먼채로 항해하던 항모 한 척은 침몰... 또 한척은 피격 직전까지 몰리는 상황이 발생..


결국 대잠작전에서 항모를 제외 시킵니다.


1차대전 때 무제한잠수함 작전의 교훈을 잊은 채

수송선들은 대형선단을 이루지 않고

단독/소규모 선단 항해 또는 비루한 호위를 받으며 출항했고...

그들은 울프팩 전술의 희생양이 되곤 했습니다.


당시 영국 구축함들에 탑재되어 있던 아즈딕이라는 음파탐지기의 맹신으로 잠수함 따위 별거 아님 ㅋㅋㅋ 이라는 분위기도 있었구요.

(모든 구축함은 아니고...)


아즈딕은 확실히 획기적인 것이였지만... 탐지범위가 길지 않고

빠르게 항해하면 부정확해 지는 단점이 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국해군이 쓰던 거의 유일무이한 대잠수함 공격병기 폭뢰는...


유보트가 일반적으로 140m씩 잠수하던 때에 영국군 폭뢰는 90m가 한계심도였으니......... -_-;;;


쀵쀵 거리는 아즈딕 소리가 들리면 유보트는 꼬로록 잠수하면 끝.

(이후 개선과 신형 폭뢰로 교체)



1940년 유보트들은 발정난 개 처럼 맘껏 활개를 치고 다녔습니다.


그것도 작전 중인 잠수함은 꼴랑 15척 남짓한 숫자로 말이죠.




1940년 내내 탈탈 털리던 영국은...

모자른 구축함을 채우기 위해 미국에서 구축함을 수입/주문했고

꼬물.jpg

(얘들은 1차 대전 끝나고 전간기 때 미국이 살짝쿵 찍어냈던 구축함으로... ... 여튼 매우 구형 구축함..영국이 쪽수 채울려고 많이 수입했습니다.)



수송선을 보호하기 위한 호위 함선으로 플라워급 코르벳함 건조를 시작합니다.

(작고 빠른 선체!! 빠른 건조시간!!! 보다 싼 가격!!!)

K234.jpg

플라워급 코르벳함은 주로 영국연방의 캐나다 해군이 사용했고...

그들은 유보트 최전성기에 캐나다에서 영국으로 가는 항로 호위를 담당 했습니다.




영국해군은

수송선단의 항로까지 바꾸며

대대적인 편제 개편을 감행

항공기 전력 등을 포함 시키는 등 대잠능력을 끌어 올리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공돌이를 갈아 넣으며 반격을 하기 위한 작업을 착실히 진행 시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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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엔 영국의 반격과... 미군 참전에 대해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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