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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인을 위한 자작 단편소설 <세상에 남자들만 존재한다면>
게시물ID : readers_58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emmemeow
추천 : 2
조회수 : 23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1/09 20:39:07

웃기진 않아요ㅠㅠ 궁서체는 아니지만 진지한 소설이에요

혹시나 기대하고 들어오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세상에 남자들만 존재한다면

 

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쯤 전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한 자녀를 키우며 평범한 아내와 함께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직장을 다니고 평범한 퇴근을 한 후 저녁식사를 한 남자의 삶이 평범해지지 않게 된 - 어쩌면 지구상에서 가장 끔찍한 사건으로 남을 - 그 일의 시작이.

 

저녁식사를 마친 남자는 7살짜리 딸이 그린 자신의 그림을 보며 활짝 웃고, ‘기분이다! 아빠가 오늘은 자기 전에 책 읽어 줄게!’ 하고 약속했다. 그리고 곧장 샤워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딸의 방에서 함께 책을 읽고 잠든 딸의 이불을 다시 한 번 고쳐 덮어준 뒤 빙그레 웃으며 안방으로 들어왔다.

 

“잠들었어?”

 

다정하면서 조금은 섹시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어두운 방 안에 창틀 사이로 조그맣게 새어나오는 달빛이 그녀의 부드러운 표정을, 사랑스러운 얼굴을, 요염한 자태를 비추었다.

 

“응, 오랜만에 책 읽어줬더니 너무 좋아하더라.”

 

“그러니까, 평소에 좋은 아빠 노릇 좀 자주 하시죠?”

 

“에이, 알았어. 오늘처럼 일찍 퇴근만 한다면야 뭐든 못하겠어?”

 

“으이구 핑계는.. 얼른 자자. 늦었어.”

 

다음 날,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났다. 울리지 않는 알람에도 불구하고 7시 30분에 맞춰 눈을 뜬 남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내와 딸 모두 사라진 것이다. 누가 납치해 간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경찰서에도 전화하고, 밤사이 집 안에 흐트러진 곳이나 남겨진 자국이 없나 찾아보았지만 애초에 처음부터 아내와 딸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들의 옷가지도, 화장품이나 장신구, 수첩, 핸드폰, 가방 등 그 어떠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겪게 된 것은 비단 이 남자뿐만이 아니었다.

 

여자(남자의 아내와 딸을 포함한, 생물학적으로 모든 여성)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금세 이 남자를 비롯한 모든 남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기의 가족이 사라졌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여자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인류가 멸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졌을 때, 남자의 냉철한 분석력과 판단력은 단적으로 그 빛을 발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가 한순간에 전부 사라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는 것은 어딘가에 여자가 단체로 갇혀있거나, 아니면 남자들만의 세계가 펼쳐진 것처럼 어딘가에 여자들만의 세계가 존재할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아주 희박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한 명이 여자는 존재해야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고 남자는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을 하게 되자 갑자기 남자는 하나의 난자와 수정하기 위해 수백만, 수천만, 아니 수억 마리의 라이벌과 경쟁하는 단 하나의 정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 감정은 생물학적인 본성으로, 어쩔 수 없이 남자의 이성으로 판단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마음 속 깊은 어딘가에서 끓어오르는, 마치 운명의 수레바퀴가 지금 막 돌아가기 시작한 것 같은 사명감이었다.

 

하루 빨리 여자를 찾아내야 한다. 그 여자가 자신의 아내나 딸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어쨌든 생물학적으로 여성이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남자들로만 득시글거리는 소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다간 한 순간에 모두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이러한 생각 역시 비단 이 남자만 한 것이 아니었다. 부자들은 너도나도 가진 돈을 모두 쏟아 부어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총 동원해 여자의 소재지를 찾아다녔다. 정치인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여성 대책 위원회’를 소집하였고, 통계학자들은 앞으로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채 1년이 걸리지 않는다고 (사소한 숫자에 목숨을 거는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362일 22시간 47분이 걸린다고’) 주장하였다. 인류학자들은 어쩌면 여성이라는 존재 없이도 인류가 존속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진화의 시작에 열광했고, 생물학자는 남성이 식물의 배아법이나 출아법 같은 자가생식을 본떠 어떠한 무성생식의 가능성이 있는지, 또는 성전환 수술을 통해 남성에게도 인위적인 생식 기능을 부여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연구하였다.

 

신기하게도, 사라진 것은 여자와 그들의 물건들뿐만이 아니었다. 여자의 존재와 더불어 남자가 만들어낸 모든 파괴적 위력을 지닌 살상무기(칼, 총, 수류탄, 탱크, 미사일, 심지어 핵이나 고의로 변종시킨 바이러스까지)가 사라졌기 때문에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군대는 전부 해산되었고, 그들은 정부에서 마련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고, 며칠 후에는 각자 저마다의 삶의 형태를 만들어 나갔다. 만약 이러한 살상무기가 있었다면 인류의 멸망은 단 1초도 안돼서 끝났을 것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다행이고, 어떻게 보면 불행이었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사회적 위치나 경제적 능력, 또는 전문성이나 학문의 깊이 내지 미래에 대한 조예 같은 건 하나도 없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일단 목숨부터 연명해야 하므로- 그저 전처럼 회사를 다니며 하루하루 두려움에 떨 뿐이었다. 물론 남자가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매일매일 뉴스를 열심히 시청하며 어떤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는지 관심을 가졌고,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핸드폰과 인터넷을 오가며 각종 사이트나 어둠의 경로들을 통해 여성에 대한 다양한 루머들 속에서 진실을 찾아 헤매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루머들에서 신뢰성을 제거하면 남는 것은 ‘여자가 어딘가에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라는 하찮은 위로와 추측뿐이었다.

 

14일 전,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여자가 사라진지 약 일주일쯤 지났을까, 사회적으로 남자의 양기가 너무 과하기 때문에 음기인 여자가 균형을 잃어 그 자취를 감추었다는 새로운 사상이 떠돌기 시작했고, 이는 잃을 것 하나 없는 거리의 부랑자들이라는 큰 지지 세력을 얻었다. 이 사상은 점점 그 세력을 확장시키고, 미성숙한 청소년이나 한창 피 끓는 나이로 현실에 대해 분개하는 젊은 남자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거의 일주일도 채 안돼서 이 사상은 거의 종교화되었고, 결국 교주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세상의 평화와 음양의 질서 유지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약 100만 명의 신도들을 자살하게끔 인도하였다. 문제는 이 사상을 믿지 않더라도 남자들은 점점 미쳐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진전도 없는 여자에 대한 연구와 논란은 마치 끝이 없는 은하계를 찾는 것만큼이나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게 되었고, 냉철함과 이지적 판단력, 상황 분석 및 문제 해결에만 특화되어있는 남자들의 인내심은 점점 한계에 이르렀다.

 

7일 전쯤인가, 결국 이러한 사상은 모든 남자들에게 확산되었으며, 자살과 살인이 비일비재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죽음을 기다리며 사는 삶은 이미 삶이 아니다. 그 삶은 이미 두려움과 공포 그 자체이며, 절망과 비참함, 체념과 낙담,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 수 없는 분노로 이어진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고, 별 것 아닌 일에 시비를 걸고, 걸핏하면 싸우고, 심하면 그 자리에서 한, 둘쯤은 아무렇지 않게 죽이면서 남자들은 점점 이성을 잃고 ‘살인 병기’가 되어갔다.

 

종족의 유지에 대한 본능적 필요성과 합리적 선택이 역설적으로 종족의 멸망으로 치닫는 과정 속에서도 가장 평범한 삶을 살았던 이 남자는 ‘나 하나만이라도 희망을 갖고 지금 이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사건이 일어난 때부터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자세히 일어난 일들을 적고, 자신이 적은 것을 다시 읽고, 또 다시 고쳐 적고 그것을 읽는 행동을 반복하였다.

 

하지만 해결방법에 대한 실마리나 단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고, 3일 전쯤부터는 글을 쓰는 일마저도 힘들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참 용한 것이었다. 분노 뒤에 찾아온 자포자기의 감정을 바탕으로 지구 멸망에 대한 목소리가 커져가면서 세상은 큰 혼란에 빠졌고, 주어진 문제를 풀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합리적 판단력의 한계에 부딪혀 남자들의 이성(理性)은 아무 쓸모가 없어졌다. 그러자 그 어떤 상황에서도 깨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하던 남자들의 자신감, 자존감, 열정, 희망, 의지, 고통에 대한 인내력, 정신력 등 모든 감성적 측면이 산산조각 나게 되었다.

 

즉, 여자보다도 더 비극적인 감정에만 사로잡힌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치 우울증 환자나 염세주의자, 비관주의자 사람처럼 더 이상 사람들은 살고자 하는 의지 없이 눈동자의 초점과 희망을 잃은 채 집에서 누워있거나 잠을 자거나 하는 일 외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생산 활동은 고사하고 정말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회는 낮밤의 구분도 제대로 되지 않으며 마치 숨을 쉬지 않는 시체처럼 차갑고, 어둡고, 고요했다.

 

하지만 남자는 좌절과 절망, 슬픔과 무기력함이 온 몸을 뒤덮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손을 놀려 꾸준히, 느리지만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타이핑을 하고,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음식을 먹으며 목숨을 연명해갔다.

 

바로 어제 밤 10시 쯤, 남자는 결국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결론에 도달했다. 수억 개의 정자 중 난자를 만날 수 있는 단 하나의 정자는 자신이 아니었다는 것, 아니 어쩌면 난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 휴지나 콘돔 속에 ‘배출’된 - 상황에 처한 정자가 살기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 외에는 경우의 수가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이었다. 이러한 결론에 다다르면서 남자는 (이미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이지만) 가장 큰 에너지를 소모할 정도로 슬퍼하였다.  다시 말해 자기도 모르게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며 낙담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제대로 먹을 것도 없는 집 안에서, 남자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침대 위에 누워 그 때와 비슷한 모양의 달이 비추는 어두운 방 안에서 한참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캄캄한 지금의 상황에 대해, 희미해진 과거의 기억에 대해, 그리고 흐릿한 미래의 희망에 대해.

 

그리고 오늘, 22시 47분, 인류의 마지막 남자는 이 글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숨이 다했음을 느꼈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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