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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Alive - 2 -
게시물ID : panic_589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윈스턴
추천 : 8
조회수 : 869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3/10/17 10:45:04
 종수와 민아는 남매라기엔 너무도 다른 삶을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종수는 첫 만남 당시에 보였던 시퍼런 문신을 보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 동네에서는 꽤 유명한 건달이었던 것이다.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폭력으로 먹고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지만, 성격이 불같고 남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까닭에 폭력사건이 끊이질 않았던 모양이다. 주먹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움받았던 것 같았으나, 내심 의리하나는 인정받는 모양인지라 친한 사람도 많았던 것 같다. 나름 동네의 유지 역할을 하고 있던, 거칠고 투박한 오빠와는 달리 여동생이었던 민아는 굉장히 영민하고 착했다.(본인 입으로 자신을 그렇게 표현할 때 인건은 웃음이 났다) 서울대를 입학했을 때, 종수는 정말로 싫다며 버티던 민아를 억지로 들쳐업고 마을을 두 바퀴나 돌며 자랑을 수다스러이 늘어놓았을 만큼 좋아했었다.
이만큼 사이가 좋았던 남매였던지라 생존을 위해 뭉치고 준비하기가 더 유리했던 까닭이라는건 인건이 유추해 본 상황이다. 번쩍번쩍하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던 민아는, 슬립타이저의 단체 가사상태의 사태가 터질 무렵엔 이미 그 약에 대해 꽤 많은 조사를 했던 모양이다. 성격이 유난스레 조심스럽던 민아는 슬립타이저가 출시되던 날부터 단 한번도 그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유난스러운 성격은 오빠인 종수에게도 미쳐, 동생을 철썩같이 믿던 종수도 밤 새 트럭운전을 하기때문에 슬립타이저의 힘이 절실했건만 민아와 같이 복용을 거부했다.
세계사회와 철저히 단절되어 있던 북한도, 슬립타이저가 출시되던 순간 인민들에게 의무복용시키기 위해 국가적인 투자로 슬립타이저를 사들일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슬립타이저를 한번도 복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희박한 확률이 아닐 수 없었지만(특히 영화나 TV에 나오는 의사들의 수면부족 현상을 떠올리면 민아가 얼마나 독하게 복용거부를 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이렇게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니, 천운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가사상태의 사람들이 발작을 일으키며 좀비화 되었을 당시에, 이미 이 사태에 대해 폭동에 대한 사건사고 뉴스보다도 더 신경을 바짝세워 감지하고 있었던 터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란 방법은 모조리 동원하여 생존의 준비를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어요.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건, 그나마 폭동을 피해 식량을 구해서 사람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 잠적했기 때문이죠. 병원에 환자들이 미어터질정도로 들어오던 것을 생각해보면, 의사로서 죄책감도 느껴졌지만. 하여튼 그 행동 덕분에 제가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거니까. 좋게 생각해야죠."
 
민아가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곁눈질을 통해 알아낸 바로 이야기하자면 민아는 약간의 약품과 수술도구를 소지하고 있었다. 환자들을 외면하고 도망친 의사의 최후로 남은 자존심인지, 그저 생존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소지하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민아는 이러한 짐들이 꽤나 무겁고 관리도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챙기려고 애쓰고 있었다.
 
"인건씨에 대해서 말해줄 차례인 것 같은데요?"
 
인건은 순간 전기라도 오른듯 움찔했다. 방이 컴컴하지만 않았다면 민아가 의아해 했을 정도였기에,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인건은 괜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에, 음. 저, 저, 음. 저는, 음."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
 
말을 더듬거리며 당황하는 티를 역력히 내어버렸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 앞에서야 잘나보이고 싶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것이 남자이건만(물론 그러한 것은 여자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인건은 자신에 대해 무어라 소개를 해야 할 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자기가 잘났었던 때만 골라 얘기하기엔 양심에 가책이 느껴진다. 아무리 당당하게 생각하려 해도, 인건은 결국 몇년간 집에 틀어박혀 먹고자고만 반복했을 뿐인 컴퓨터 폐인이었으니까. 그러한 인건의 고민은 그 무게가 무색하게도 민아의 웃음이 날려버렸다.
 
"흐흐, 말씀하시기 힘드시면 안하셔도 되요. 면접보는거 아니잖아요, 히히. 나중에 편할 때 말해주세요?"
 
인건은 순간 긴장이 풀려버려 영 실없는 소리를 해버렸다.
 
"네,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요."
 
정말 흘러가듯 의미없이 한 말이었는데, 그것이 또 민아의 웃음을 자극했나보다. 민아는 종수를 깨우지 않으려고 웃음을 참느라 연신 괴로워했다. 웃기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민아라는 아가씨는 이 말이 못견디게 퍽 우스운 모양이었다. 잠시 뒤, 웃음은 잦아들고 잠에 빠져들었는지 민아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만 들려오기 시작했다. 인건은 방금 나누었던 대화가 아주 재미가 있었기에 꽤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대화를 나누던 당시에는 몰랐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민아도 무척이나 피곤했을 터였는데 일부러 시간을 쪼개어 말을 섞어준 것이 아닌가. 굉장한 배려를 받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리고 약간의 미안함에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되자 인건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쭈그려 얼굴을 다리사이로 파묻어 버렸다.
실은 이 행동은 인건이 당황할 때마다 자주 하던 행동이었다. 몸을 둥글게 말고 얼굴을 파묻는 꼴이 흡사 쥐며느리나 아르마딜로같이도 보여 우스운 모양새였지만, 여지껏 남의 눈치같은걸 볼 틈도 없이 살아왔던 인건은 이런저런 특이한 버릇들을 꽤 가지고 있었다.
 
인건은 종수가 공용으로 볼 수 있게끔, 방 한가운데 놓아둔 손목시계(버튼을 누르면 빛이 나와 어두운 곳에서도 시간을 볼 수 있었다)로 꾸준히 시간을 체크했고 제 시간에 맞춰 민아를 깨운 뒤 단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은 비교적 평온스러웠다. 전기라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할 때야, 완전히 해가 쨍쨍해야만 그제서야 눈을 비비고 일어나고 밤이 깜깜하게 몰려오더라도 짧은 시계바늘이 12라는 숫자를 넘기지 않는다면야 잠을 잘 필요가 없었겠지만 이런 시국에서야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바로 안전한 곳에서 수면을 취할 준비를 하고 벽두에 빛이 조금씩 새어들어와 시야가 확보가 되면 그냥 바로 눈을 떠버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습에 '옛날 촛불이나 켜고 살았던 시대엔 모두가 이렇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물론 그때 당시에 안전한 곳을 매일같이 찾아다녀야 하는 생활을 했을리는 없지만 시간이 그렇다는 얘기다. 아침식사는 편의점에 있는 식료품중 들고갈 수 없는 것들 중에서 고르고 골라 나름대로 풍성히 차려졌다. 특이한 점은 봉지과자들이 꽤 많았고, 라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쌀쌀한 아침에야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을 먹으면 행복하겠지만, 나름 국의 모양을 잡아본 그 라면은 전기가 없어 물을 끓일 수 없었기에, 미적지근한 생수를 일찍부터 부어놓고 물에 잔뜩 불려 만든 모양이었다. 나름 칼칼하니 먹음직 했지만, 인건은 옛날에 먹었던 뜨끈뜨끈하고 훈훈하게 김이 모락모락 공기중으로 흩어지던 라면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것이 왠지 서글퍼졌다. 그래도 꽤 맛이 괜찮았던지라, 민아가 냉라면이라고 이름붙였더랬지만 종수는 라면냉국이라고 새로 이름을 붙였다. 그 외에 과자를 제외한 음식다운 음식이라곤 맛이 조금 변해버린 치즈나 어묵꼬치, 의외로 썩지 않았던 바나나와 햄버거였다(햄버거가 썩지 않았다는 대목에서 인건은 지금껏 살면서 이런 의문스런 햄버거를 먹어왔던건가 싶어 소름이 돋았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최대한 식량을 많고 효율적으로 가져갈 수 있게끔 정비를 한 뒤 지도를 펼쳐 행동방향을 지정했다. 어떤 길로 어디까지 어떤 방법으로 가는지, 차선책에 차선책까지 꼼꼼히 정하고 체크한 뒤 출발하였는데 꽤 오래걸리는 작업이어서 아침시간 두시간을 고스란히 소모했다.
간밤에 아무도 없던 편의점 주변은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 모를 좀비들이 세 마리 정도가 몸을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주변을 훑고 지나가던 모양이라, 종수가 기습적으로 달려들어 좀비들을 처리한 뒤 출발해야 했다. 길은 전날보다도 험난했다.
최대한 잘 닦인 길을 피해가고 샛길과 굽이굽이 구부러져있는 모양의 골목길만을 전전하는 까닭에 행동거리가 길어졌고, 이제부터 남산을 오르는 모양인지라 오르막이 계속되는 까닭에 인건은 금새 지쳐버렸다. 종수야 워낙 기골이 장대한 트럭운전수지만 민아마저 저 늘씬하고 여리여리한 체격에 거침없이 걸어나아가는 것을 보고있노라니 지친 모습을 더더욱 보이기 싫어서 이를 악물고 열심히 따라걷는 인건이었다.
그렇게 나아가다보니 어느덫 나무들이 빼곡한 산의 입구까지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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