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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소녀 - 그레이스 (자작글에 비평좀ㅋㅋ ㅠ
게시물ID : freeboard_5898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rdi
추천 : 0
조회수 : 24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4/23 08:38:34
여기는 카페 르블랑.
내가 일하는, 내가 커피를 마시는, 내가 커피를 내리는 그런, 어느 골목길의 카페다.

일요일 카페의 정면 유리창들을 통해서 새어들어오는 햇살도 낯 간지러운 오전무렵.
커피잔을 천으로 닦으며 '교중 미사'에 나가지 않은지가 얼마인지 따위를 헤아리던 때.
그러한 이유들로 머릿속의 고민 덕분에 지긋이 눈을 감으려던 순간.. 종이 울렸다.

첫손님이다. 

문이 천천히 열린다. 하지만 손님은 눈에 띄지 않았다.
카운터는 입구에서부터 주욱 이어져 있고 여기 안에서 카운터 반대편 바닥을 내려다 보기란 
내가 사슴이 되지 않는한 힘들다. 

물론 일반적인 고객이라면 단번에 눈인사를 주고 받을 높이 이지만
지금 이 시각에, 이 아침에 카페 르블랑을 찾는 손님은 흔치 않다. 
애초에 최저시급이라도 뽑으면 다행일 정도인, 인기 없는, 아니 인적이 드문 카페이기도 한 까닭에
나는 어렵지않게 보지않고서도 누가왔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 왔니? 
- ... 

대답이 없다.
이윽고 카운터끝에 있는 바에 다다른 손님이 보였다.
의자를 타고 오르듯 올라서 바 한구석에 자리잡고 앉는 이 꼬마는... 아니 소녀는.. 
레이스가 달린 우아한 공주풍의 드레스와, 빨간구두를 신고 있었다.

같은 또래가 입었다면 귀엽고 앙증맞아 보였겠지만. 
바에 마주앉아 나를 보며 반쯤 감은 눈으로 날 바라보는 이소녀가 주는 느낌을 말하자면 
귀엽다기 보다는 아름다웠고, 앙증맞기 보다는 도도했다. 

나는 얼른 바 위에 놓인 책 '롤리타'를 치웠다.
'나는 이상한 어른이 아니야.' 라고 다시한번 암시를 건 후에서야, 그 애의 눈을 다시 쳐다볼 수 있었다.

호수처럼 잔잔한 눈빛은 커피를 원하는지 않는건지, 알 수 없을정도로, 검은 호수의 느낌 그 자체였다.
나는 다시한번 얼어 붙고 말았다. 지난번처럼 주문도 하지 않는 채 앉아만 있다가 떠나버릴까 불안했다...
지금 현재 카페에 드나드는 손님들중 가장 까다로운 손님을 꼽자면 단연 이 소녀다. 
그리고 그만큼 나도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 주문은? 
왜이렇게 굳었지? 퉁명스럽게 튀어나온 말이 던져졌다.
커피잔을 닦으면서 말이다..

그러자 소녀는 눈을 천천히 감으며. 두 손등 포개어 턱받침을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녀 특유의 - 으으으음~~♪ 하는 허밍.. 

그러니까 이건 마치 미사를 드리는...면사포를 두른 아, 아니.. 아니지...
이건 순전히 외향적인 느낌이고  

그 내면을 바라보자면 이건 순전히 도전적인 자세였다. 
마치 먹이를 앞에 둔 맹수가 한껏 여유를 부리는듯한.. 여유로운 동작들 
동작의 늬앙스들이 거만하다고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정도로 소녀, 자신만의 느낌이 충만했다.

대답이 없는걸 보니 질문이 잘못된건가...
자존심이 심각하게 상하지만 역시 그런건가.. 


별 수 없지..



- 손님, 주문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딱딱한 경어체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게 마지막 음절 '까'에 힘이 들어간건 어쩔 수가 없었다.

- 이가쳬프.
빠르게 그리고 내 문장을 끊듯 마치 스타카토 처럼 잇따라 끼어드는 소녀의 주문 

흠,
이가쳬프 커피의 귀부인이라고 불리는 에티오피아의 이가쳬프.
매우 잘 어울리는 조합이긴 한데말야... 
아직 귀부인이라고 하기엔 어리다구.. 소녀는 몇살일까?
아니 그전에 이름부터 물어봐야 하는건가?..





- 얘, 꼬마야 이름이 뭐니?
조심스레 물어봤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부드럽게..

하지만 꼬마는 턱받침을 한채 한껏 뺨을 부풀리더니... 
삐진거 같았다...아니 삐졌다.. 삐진게 분명했다...

날 올려보는 두 눈빛이, 나를 막 잡아먹을것 같았다. 등골이 섬뜩해지면 안되는데...
꼬마라는 단어를 잘못 선택했다는 기분이 마구마구 들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 어쩌겠나..

근데 꼬마라고 불렸다고 삐지면 그게 꼬마지 뭐가 달리 꼬마란 말이야..;
여튼 여자들이란 나이가 많으나 어리나 하나같이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그저 묵묵히 핸드드립을 세팅 하기 시작했다...
묘한 정적이 감돌던 와중에서야 드립세팅이 끝났다. 
그리고 다시 본 소녀의 눈은 무언가 형용할 수 없을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동경의 대상을 쳐다보는듯한 또래의 아이들 마냥 호기심이 가득담긴 그런 느낌?
왠일로 사랑스러운 눈이였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온도계를 흘끗 쳐다보았다.
85도, 주전자에는 8부만큼의 물, 분쇄도도 적당. 필터는 드리퍼에 잘 밀착되어 있고...

다시한번 심호흡을 하고 주전자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기울이기 시작했다.

처음은 중앙에 물을 얹어 올리는듯한 느낌으로.
동전 크기로..

- 처음은 중앙에 물을 얹어 올리는듯 한 느낌으로.
동전 크기로..

주문을 외듯 입에서 흘러나오는 문장.


그러자 소녀의 끄덕이는 고개, 한껏 커진 동공. 
동심의 세계와는 멀지만 커피와 소녀, 나쁘지만은 않은 조합이다.
그러한 소녀의 변화가 사랑스러웠다.

종이 필터에 물이 닿지 않게.
크레마와 거품이 사라지지 않게
물줄기는 수직으로, 일정하게..
등을 주문을 외듯 말해주었다. 
카페에는 나와 소녀 단 둘만이 있었으므로 그 작은 소리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린 소녀의 눈빛은 서버를 향해 떨어지는 커피의 방울을 향했고
작은 두 귀는 내 낱말들에 반응했다.

그리고는
신기해 했다.
커피와 소녀라니...

- 자, 여기 이가쳬프 나왔습니다.
내려 놓은잔이 무언가 아쉽다..

조심스레 커피잔을 쥔 작은 두손은 커피잔을 통해 전해지는 
따스함을 '느끼고'있었다.

두눈을 감고서 잔을 두손으로 받혀들어 조심스레 코끝으로 가져간다. 
작은 얼굴에 커피향처럼 번지는 미소, 두눈을 감고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러다 다시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검은 호수를 빤히 쳐다본다.
그러기를 몇차례


-커피의 본능은 유혹.

어린 소녀의 입술과 손은 그 유혹을 견뎌내기에는 아직 여리다.



-진한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며

소녀의 코는 이미 커피 향기에 충분히 매료되어버린듯..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달콤하다.

어린 소녀가 키스의 부드러움을 알까? 하하..



-악마처럼 검고,

소녀의 눈동자, 커피 둘다 검다.



-지옥처럼 뜨거우며,

호수를 삼킨 자그마한 입, 그리고 얼굴이 지옥의 뜨거움을 감내하기 위해 잔뜩 찡그려졌다.
하지만 이내 편안해졌다.



-사랑처럼 달콤하다.

일련의 의식을 마치고, 두 손으로 잔을 내리며 다시 감고있던 눈을 떳을때.
소녀는 사랑에 빠진듯 했다.




그리고 나도. 







소녀는 천천히...그리고 우아하게.
잔에서 입술을 떼고,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 그레이스, 그리고 나 꼬마 아냐
그리고 이 커피 맛없어... 우우..

-하하..;;
아니 이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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