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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사속의 아이러니한 인물 5.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
게시물ID : military_590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백호
추천 : 6
조회수 : 505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10/01 11:59:17
역사속의 아이러니한 인물
1.http://todayhumor.com/?military_55958 이마무라 히토시
2.http://todayhumor.com/?military_55991 기무라 마사토미
3.http://todayhumor.com/?military_56515 후나사카 히로시
4.http://todayhumor.com/?military_58599 친 슈이틴


지난 친 슈이틴편에서, 초기 중일전쟁때 일본을 상대로 활약했던 파일럿들이 루프트바페(나치독일 공군)에서 훈련받았다는걸 말했듯이...

참 이 추축국 관계가 막장이라는걸 증명하듯, 삼국동맹이전, 그나마 사이좋았을때에도, 정작 독일은 중국을 지원하면서 일본에 대항해 싸웠던(?) 전력이 있었습니다.

이번 소개 할 사람도 거기에 해당하는 아주 아이러니(?)한 사람이며 동시에 진정한 의미의 고문관이었던 사람입니다.

1.독일의 아시아통
Bundesarchiv Bild 146-2008-0155, Alexander von Falkenhausen.jpg
(1940년, 벨기에 군정사령관이었던 알렉산더)

이사람은 마치 운명적(?)으로 훗날 중국에 파견된게 아니란듯, 1차대전 이전, 20대 시절을 일본에서 주재무관으로 지내며 동시에 중국 화북지역, 한국, 인도차이나 지역을 두루 돌아다니며 독일내 아시아통이라는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뭐 애초에 이런 경험이 있으니 고문관으로 보냈겠지요

역시 외국에 주로돌아다니던 경력을 높이산건지, 1차대전때도 오스만군으로 파견, 철십자 훈장을 공훈을 세우고, 보병학교장을 하다가 1930년 전역을 하며 당시 군인이라면 일반적으로 거치는 커리어를 가집니다.

2.숫자에 알맞게 제2의 인생 중국에서의 이야기

(당시 중국의 최고 지도자였던 장제스. 뭔가 할말은 많지만, 다 적기엔 여백이 너무 부족 오늘은 이사람이 주제가 아니니..)

장제스야 지금도 욕먹는 독재자이자 무능한 지도자의 대명사지만, 그래도 이사람이 괜히 한때나마 중국 최고 실권자가 된게 아닌걸 증명하는듯, 여러 군벌들을 박살내고, 공산당과 합작을 한 이후, 당시 만주사변 이후로 중국에 대한 침략을 준비하고 있던 일본에 대항하기로 결심, 중국의 산업화화 근대화를 위해 독일의 협조를 받아 독일 스타일의 육군을 만들고, 지난화에도 나오듯, 미국의 지원으로 공군 양성을 하게 됩니다.

(왠 김국진? 하시겠지만 알렉산더 이전에 고문관으로 왔던 그 유명한 한스 폰 젝트)

알렉산더는 1934년, 한스 폰 젝트의 후임으로 중국군 고문관으로 오게되고, 재임중 중국군을 나름대로 정예화로 바꾸는데 성공시킵니다. 
이러고도 당한 일본군에게 당한 중국군은 참..

일단 독일군의 강력했던 대공포이자 무안단물이었던 88mm를 독일측에서 가져오게 하고, 1차대전 당시 전훈을 살려, 상하이와 난징사이 참호등을 통해 강력한 방어선과 독일식 벙커진지등, 그전과는 다르게 강력한 중국군이 되도록 여러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중국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당신네 국가 일본이랑 친하지 않았어?

(중국군이 사용하는 사진이 없어서 독일군이 쓰는 사진으로 대체)

(독일군과 유사한 복장과 철모, 그리고 독일 소총으로 무장한 국민당군)

비록 내부 군벌 관리 문제등으로 장제스의 중국군은 늘 처참한 패배를 맛보며 퇴각하는 추태를 벌이지만, 알렉산더가 특별히 육성한 독일식 장제스의 군대는 중국군내 최고 정예부대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한편 이리 착실히 일을 진행하던 알렉산더는 일본이 독일에게 만주국 승인 요청을 하며 압박을 가하자, 중국에서 물러났지만, 물러나면서도 중국이 이길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애정을 과시합니다.

3.하지만 그것이 부른 처참한 비극.

이 장제스의 직계군은 오송전투, 타이얼좡 전투에서 맹활약 했고, 전투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오송전투 당시 단시간만에 만단위의 일본군을 박살내는등, 활약을 하며 중국군을 그렇게 까던 스틸웰조차도 유일하게 인정하는 부대로 남게됩니다. 그래도 결국 물자의 부족과 스틸웰이 직계군을 동남아 전선으로 배치하는 오판, 그리고 오송전투에서의 피해로 눈이 돌아간 일본군이 난징에 입성하면서 비극이 시작되는데 그게 바로...

(당시 일본군의 사진)

난징이라는 이름을 들어서 알겠지만, 바로 일본군은 그 분풀이와 패잔병 토벌이라는 명 하에 최대 30만명에 달하는 무고한 시민과 패잔병들을 무참히 학살하며 역사속에 검은 글씨를 남기게 됩니다. 알렉산더도, 중국군도, 전혀 이러한 결과를 불러오리라고는 예상 못했지만, 그들의 견고한 방어막이 슬프게도 자국 수도에서의 학살이라는 슬픈 결과를 만드는데 하나의 이유가 된걸 보면 참 세상은 아이러니 합니다. 다만 누구도 나라를 지킬려던 만큼 탓은 못하겠지요. 내.

4.그후

그렇게 독일로 돌아간 알렉산더는 재입대 예비군: 뭐시라?하여 전방부대장과 벨기에 군정사령관을 역임하였고, 히틀러의 측근중 하나로 활동하지만, 역으로 또 암살시도랑 연관이 있었고, 위와는 아이러니 하게도 벨기에에서 유태인들을 추방하고 레지스탕스를 학살한 혐의로 유죄처분을 받게됩니다만... 당시 벨기에의 쉰들러라고 불리우던 첸쉬링 여사의 변호와 콘라드 아데나워의 도움으로 금방 풀려났다는걸 보면, 자기가 직접 명령을 내린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습니다만... 위에서의 모습과 비교하면 상당히 아이러니 이긴 합니다.

(벨기에 점령당시, 알렉산더의 지인이였고, 많은 유대인들을 도왔던 첸쉬링 여사)

5.마무리

독일군 소속이면서 추축국에 여러모로 대항하며 싸웠던 모습이 꽤나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사람입니다. 동시에 당시로서는 최고의 방법을 택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책임은 아니지만, 역사상 최대의 비극중 하나인 난징대학살을 불러왔다는것도 그렇고, 훗날 히틀러 암살미수사건에 연루되었던 것도 그렇고, 어쩌면 나치독일 소속이었지만 진정(?) 연합군의 동맹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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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독일군을 해봤습니다. 일본군 같이 심각한 막장사이에서 핀 꽃들이 아니다 보니 영 어딘가 재미를 추구하기가 어렵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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