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빼면 아무것도... '천정배 정치'의 빈곤함
[게릴라칼럼] 천정배의 위험천만한 도박은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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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9재보선 광주 서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천정배 무소속 후보가 당선 확정 직후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지지자들과 환호하고 있다. |
ⓒ 강성관 |
그야말로 '천정배 천하'다. 이번 재보궐선거 이후 세상은 온통 천정배만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많은 것을 거머쥔 인물이다. 새누리당과 김무성 대표가 국회의석 3자리를 얻었다면 그는 호남을 거머쥐었으니 말이다.
52.37%의 득표율로 새정치연합 후보와의 차이를 22%포인트 넘게 벌린 걸 보면 호남민심이 그에게 쏠린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 그렇다면 과연 그가 내세운 정치, '천정배의 정치'는 새정치연합의 그것보다 혁신적이었을까.
천정배의 '호남정치 복원'이라는 위험한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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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9재보선에서 광주 서을 국회의원에 도전한 천정배 무소속 후보가 4월 7일 광주시의회에서 '호남정치 비전 기자회견'을 열었다. |
ⓒ 천정배 후보 선거사무소 |
이번 선거에서 천정배 의원이 내세운 기치는 '호남정치의 복원'이었다. '호남의 정치적 힘'을 키워 옛 영광을 되찾아오겠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돌아가고픈 과거'란 물론 DJ시절을 뜻한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정권을 찾아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인"(19일 선관위 주최 토론회)이라고 하거나, "호남의 아들로서 마지막 필생의 목표로 호남정치 부활에 앞장서겠다"(22일 KBC광주방송 토론회)는 말을 거리낌없이 했다. "(광주와 호남이) 중앙정치에서 배제되고 지역의 소외와 경제적 낙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거나 "김대중 대통령 이후 우리 광주와 호남이 정치적으로 홀로서기에 실패"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발언을 들으며 저 지긋지긋한 지역주의의 그림자를 떠올렸다면 지나칠까.
대한민국 지역주의가 어느 정치인의 그릇된 권력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1971년 4월 박정희와 김대중 두 후보가 맞붙었던 7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두고 영남지역에 뿌려진 '호남인이여 단결하라'는 괴 전단지는 훗날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지역주의의 씨앗이었다.
천정배의 발언은 40여 년 전의 괴 전단지를 떠올리게 한다. '지역주의'라는 패를 흔들면서 호남을 판돈으로 위험한 도박을 벌인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그의 정치는 무모하다. '호남지역주의'의 깃발을 들고서 대권을 향해 달려가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그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일일 뿐더러 호남 스스로 고립을 향해 달려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DJ 빼면 아무 것도 없는 '천정배 정치'의 빈곤함
선거운동 전략에서도 혁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천정배 캠프는 홍보현수막에 DJ의 사진을 써서 새정치연합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새정치연합 광주시당은 "돌아가신 대통령의 사진까지 선거 현수막에 이용하는 것은 도를 넘는 것"이라며 "DJ를 팔지 말라"고 따졌다. 그러자 천정배 측은 새정치연합이 "(대북 송금 특검으로) DJ정신을 상실"했다며 선거법상 문제가 없다고 맞받았다.
누가 더 옳은가를 따지기조차 민망한 다툼이다. 그러나 이 다툼을 통해 드러난 건 DJ를 빼고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천정배 정치'의 빈곤함이다. 천정배 측이 그 옛날 경기도 안산 출마 시절의 빛바랜 사진을 뒤져가면서까지 DJ를 선거에 끌어들일 수밖에 없던 이유다.
또 하나. 투표를 이틀 앞둔 4월 27일 저녁, 천정배 의원은 별안간 시민들에게 절을 하기 시작했다. '시민을 하늘처럼 섬기겠다'며 '천배 유세'에 들어간 것이다. 그의 천배 유세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는데, 마침 광주 시내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그의 모습은 더욱 극적으로 비쳤다. 비에 흠뻑 젖은 채 거리 한복판에서 절을 올리는 장면은 언론을 타고 빠르게 퍼졌다. 그는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후보였으니까.
그에 질세라 새정치연합 조영택 후보도 4월 28일 오전 출근길 시민들 앞에서 큰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조 후보가 시민들 앞에 무릎을 꿇는 사이 유세차 위에서는 "살려주십시오. 어쨌건 기호 2번 광주에서 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라는 절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선거 막판, 정책도 인물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눈물의 읍소판이 펼쳐진 것이다. 말이 읍소지 사실 유권자에 대한 협박과 다름없는 이러한 낯부끄러운 풍경은 모두 천정배 의원이 벌인 것이다.
유세차 없이 등산화에 배낭 하나 걸쳐 메고서 시민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어느 후보의 혁신까지는 아니어도, 앞장서서 선거판을 웃음거리로 만들어서야 그가 주장하는 '혁신'에 두고두고 무게가 실릴 수 있을지 걱정이다.
호남 30석을 넘본다는 그의 자신감,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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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9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천정배 무소속 의원이 4월 30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오신환 새누리당 의원과 인사하고 있다. |
ⓒ 남소연 |
천정배 의원은 4월 30일 "내년에는 (광주) 8석, 전라남도까지 확장해 30석까지 차지해 새정치연합을 뒤집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뉴DJ'들을 키우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거대 양당이 독점해오다시피 한 대한민국 정치체제를 무너뜨려, 우리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국회에 울려 퍼지도록 하는 일은 바람직하다. 그리고 그 변화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울 수 있다면 그곳이 호남이건 영남이건 상관없다. 문제는 그 방향이다.
단지 기존 정치에 대한 실망과 그 지역만의 독특한 소외정서에 기대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시절에 대한 향수와 위험천만한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변화의 방향이 될 수 없다. 이제 막 첫발을 뗀 '천정배의 정치'에 대해 아직은 걱정이 더 앞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호남정치'가 호남 시민들이 바라는 정치를 뜻한다면 뭐 그리 특별할 게 있을까 싶다.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와 서민의 곁을 지키는 정치, 권력과 자본의 부당한 횡포에 맞서 공정함을 지키는 정치 그리고 모두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희망을 보여주는 정치, 호남 시민들이 꿈꾸는 정치도 이런 게 아닐까. 호남 출신 대통령을 만드는 정치가 아니라 말이다.
천정배 의원이 앞으로 남은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자신에게 큰 믿음을 보여준 광주와 호남 시민 그리고 국민의 바람에 어울리는 변화의 방향을 몸소 보여줄 수 있을까. 앞으로 그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보인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ps. 저는 이 칼럼 기사가 상식에 근거한 합리적인 노선 평가로 보는데,,, 그럼에도 호남 난닝구들은 천정배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지요. 지역감정 부추기기는 일종의 마약 같은 거라서 말이죠. 씨알이 먹히든 안 먹히든 저는 이런 상식적인 비판을 옹호할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