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03년 고2 시절.
인터넷으로 본 CBR600RR의 첫 인상이 너무 강렬했었고
그렇게 내 마음 속의 드림 바이크로 자리잡았다.
어른이 되면 차보다 바이크를 먼저 살거야, 첫 바이크는 저놈이다
라고 다짐했던 나에게 현실은 녹록치 않았고
대학 시절의 첫 바이크로 중고 쥬드를 갖게 되었다.
도로에서 마주치는 공격적인 포지션의 레플리카와 풀장비를 착용한 라이더.
그들은 내 이십대 초중반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일찍 결혼한 탓에 경제권을 와이프님께 빼앗긴 힘없는 가장에겐
배기량 99.8cc 약 4마력의 혼다 XZ100 이라도 허락해주는 내무부장관님이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었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재작년 분가를 하면서 와이프님은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내가 그렇게 노래부르던 CBR600RR 가격을 알아보라 명하셨고
애초에 고배기량 입문으로 신차 박스를 내릴 생각이 없었기에
국내에 극히 희귀하다는 09년식 ABS모델을 발견하여 와이프님의 계좌이체로 내 소유가 되었다.
4마력짜리 바이크에서 순식간에 120마력의 미들급이라니!
화물운송으로 업어온 당일 늦은 시각이라 보험가입도 못하고
지하주차장에 덩그러니 새워둔 바이크가 불안해
한시간에 한번씩 내려가 확인하며 밤을 꼴딱 세웟더랫지..
이십대 초중반 시절 곧잘 내 뒤에 매달려 뽈뽈거리고 함께 놀러다니던 여자친구가
이제는 딸내미들 유치원 등원시킨 후 함께 투어를 다닌다.
평생을 같이 할 인생의 친구와 취미를 공유한다는건 정말 행복한거다.
올 한해, 와이프와 함께 만들어갈 바이크의 추억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