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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흔히 말하는 빽이 있었다.
게시물ID : military_592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23
조회수 : 4035회
댓글수 : 103개
등록시간 : 2015/10/11 13:29:36
"으아아아...나 진짜 군대가는구나..."
몇번 그 앞으로 지나간 적 있는 어느 향토사단 정문 앞에서 나는 들어가기 싫어죽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거기가 얼마만큼 집에서 가까웠냐면 입대할때 교통비가 거금 "1,000원"이 나왔다. 
입대 며칠전. 동생이 아이스크림먹자는데 만원짜리 깨기싫어서 우체국들어가서 바꿔와서 사먹을 정도의 거금이었다.



사실 나에게는 남들이 말하는 빽이 있었다.
우리 아부지 뽜이아볼친구가 현역 육군 소장님이었다. 

사실 입대할때까지 병사들 계급은 일병-이병-삼병(삼병을 상병으로 발음하는줄 알았음)-사병 으로 알고 있을 정도로 군알못이었던 나는,
그 아저씨의 대대장-연대장-사단장취임식을 귀빈석에 앉아 봐놓고도 이 아저씨가 얼마나 높은 사람인지 모르고 살아왔다. 
심지어 강원도 산골의 아저씨 부대로 놀러가서, 내무실에 불쑥 들어온 꼬마를 동생같다고 조카같다고 얼마안되는 월급 탈탈 털어 과자사주는 군인삼촌들이랑 그렇게 놀아재끼고도 영 관심이 없었다.

왜냐면, 그 어마무시한 육군소장님은 휴가때마다 반드시 하루는 우리집으로 쳐들어와 아부지랑 온 집안이 술냄새쩔게 술드시고 자고있는 나랑 동생깨워서 노래시키는 주정뱅이 아빠친구1. 정도의 포지션이었기 때문이다. (한곡 부를때마다 반드시 지폐로 노래값을 주긴했는데...귀찮았음ㅋ)

(자기 입장에서는)안타깝게도 딸만 둘이었던 아저씨는, 
아들 입대할때 손 꼭잡고 따라가고 싶었는데, 두 딸들이 여군가는걸 ㄴㄴ거부해서 뽜이아볼친구의 큰아들. 내가 입대할때 따라가기로 결심했다한다.
그 결심한때가 아저씨말로는 중령1차진급 떨어졌을때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 두 딸들만큼이나 이뻐하는 친구아들놈들이라 장군진급하고는 너 군대오면 아저씨가 편한 보직으로 보내줄께.라고 항상 말하곤 하셨다.
물론, 군알못이던 나는 면제아니면 의미가 없었기에 뉘에뉘에~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어. 뭔일로 전화를 다하냐?"
"야. XX이 신검받았드라? 왜 말 안해줬냐?"
"뭐? XX이가 그러던?"
"아니. 제수씨가."
"이놈의 여편네가...1급이라더라."
"그래? 현역확정이네. 비실비실해서 4급나올줄 알았더니. 걱정마라. 친구야. 내가 어찌저찌해서 XX이 편한데로 빼줄께."
"어. 잠깐 끊어봐라."

우리 아부지는 대학교 들어가서 네똥기로 전락한 아들놈이 군대가서 정신차리기를 강려크하게 원하고 계셨다.
거기다가 형제 중 유일하게 강원도 최전방 수색대에서 군복무하셨던 아부지인지라, 이 얼빠진놈이 땡보직에서 삐댈경우 어디까지 처빠져버릴지 우려하셨기때문에, 즉시 전역한 아저씨 부하로 계셨던 분에게 연락해서 아저씨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군입대 날짜를 잡아버리셨다. 
그리고, 오마니의 입단속을 단디 시키시고, 나한테는 내가 그놈한테 연락해놨으니 넌 편한데로 빠질거임.이라고 구라를 치셨다.
실제로, 아버지 예상과 다르게 논산이나 전방보충대가 아니라, 집에서 시내버스타고 환승할 것도 없이 갈 수 있는 향토사단으로 훈련소가 떨어졌기 때문에 나도 꽤나 방심하고 있었다.

우연히 알바하던 곳의 친구와 고등학교동창이 줄을 서고 보니 앞이랑 옆에 서 있어서 훈련소때 같이 잘지내자ㅋㅋ하고 서있었다.
그러나, 훈련병들을 수십년간 받고 배출해온 신교대는 과연 달랐다. 
입대장정들을 오와 열을 맞춰 세우더니 루빅큐브 섞듯이 마구 섞어서 세우더니 그대로 나는 1소대가 되었다.
물론 동창과 친구는 완전히 다른 소대가 되어 떠나갔다.

"자. 신상명세서를 작성하는데, 반듯반듯한 정자로 적는다. 만일에 애매하게 쓴 새끼는 그냥 뒤지는줄 알고."

이것저것 적어내려가다가 자기 지인 중에 군인이 있으면 적으라는 문항에서 멈칫했다.
군알못인 나는 지인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가 문제였고, 역시 군알못인 침상 맞은편 동기는 그 군인은 어디까지를 말하는가가 정말 궁금했는데
하루 종일 반민간인인 훈련병들을 상대해온 조교들의 신경은 스치기만해도 베일 정도로 날카로워져있었기 때문에 차마 묻지를 못했다.
그래서 나는 친척 중에 마지막 군인은 10여년 전 전역한 외삼촌 뿐인지라 "없음"이라고 적었고, 
아직 말도 섞지 못한 침상 건너편의 동기도 무언가를 결심한듯 써적어내려갔다.

그렇게 의외로 술술 넘어가던 첫 짬밥을 먹고, 교관과 조교들도 훈련병들 저녁밥을 맥여노니 마음이 좀 놓이는지, 그 후로 다시없던 관물대에 기대서 적당히 잡담하며 쉬고 있으라고 풀어주었다. 
같은 처지의 빠박머리들은 금방 어수선하게 떠들어댔고, 시범케이스로 어느 내무실이 개박살이 나면서 잠시 조용해졌지만, 또 금방 서로 신상을 확인하며 5주간 같이 지낼 전우들과 우정을 쌓아가고 있는데...

"야이XXX !!!!!!!!!!!!!!!!!!!!!!!!
자기 형이 "상병"이라고 쓴 새끼 튀어나와!!!!!!!!!!!!!"

지금까지 방송으로 부르던 훈련병을 우리 내무실로 조교가 뛰어와 문을 박차고 들어오더니 
어버버버하며 일어난 침상 맞은편의 동기를 말그대로 끌고나갔다.
진짜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머리만 길어놓았으면 어디 여학교 소풍온 여학생들같이 재잘재잘 떠들던 우리들은 
다들 입을 꾹다물고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며 뭐냐뭐냐. 상병은 쓰면 안되냐???라고 눈빛만 교환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잠시후....
문을 또 박차고 이번에는 장교가...그것도 중대장님이 들어오셨다.
"여기 XXX이 누구니?"
"네!!! XX번 훈련병 X.X.X!!!!!!"
"너 그대로 나 따라와."

복도에서는 아까 그렇게 끌려나간 동기가 복도에서 오체투지하는 중이었고, 나는 행정반으로 불려갔다.
"너 A소장님이랑 무슨 관계니?"
"??? 아버지 친구분입니다."
"야 임마!!!! 그러면!!!! 니 지인이니까!!!! 여기에!!!! 적었어야!!!! 할거 아니니...응? 그치?"
조...조증이신가...왜 화를 내다가 갑자기 미소지으며 말하는건 또 뭐야....ㄷㄷㄷ하는데, 
그제야 주위를 보니 행정반에 모든 이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뭐지? 나 뭘 잘못한거야??? 라고 ㄷㄷㄷ떠는 나를 중대장님은 시원한 얼음물을 내주시고...
직접, 하급자와 상급자간의 전화예절을 알려주시고 계원과 함께 상황극까지 선보이시며 이래저래 하라고 알려주셨다.
너 지금 밥먹고있어서 잠시 후에 통화시키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 아저씨랑.

"알았지? 아까 중대장이 알려준대로 해야해. 난 널 믿는다."
"네. 알겠쑵니다!!!"
"그래...후...나 전화건다...아. 통신보안. XX사단 신병교육대 X중대장입니다. 아까 A소장님께서...아.네. 기다리겠습니다...
충성!!! XX사단...네!!! 저녁 든든히 먹이고 지금 행정반으로 데려왔습니다!!!! 네!!! 전화바꾸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중대장님이 나에게 수화기를 넘겨줄때 표정은 가히 기폭장치가 덜렁거리는 탄을 어리버리 신병에게 건네주는 고참병의 표정이었다. 아. 중대장님이 긴장탈 정도면 아저씨가 뭔가 높은 사람이긴 하나보다. 기대에 부흥하자!!!하며 굳게 마음을 먹고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추ㅇ...."
"어!!!! XX이냐??? 나다. 아저씨다. 잘 들어갔냐? 밥은 잘 먹었고??? 너 입 짧은데 밥 잘 못먹었으면 어쩌냐. 어디 안아프지?"
"예??? 여보세요??? 잘 안들려요."

그렇게 행정반은 얼어붙어버렸다. 중대장과 훗날 사격하던 주에 전역하고 나간 행정병이 보여준 쌩쑈는 부질없는 짓거리로 끝나버렸다.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해 만난지 반나절밖에 안된 모든 분들을 칭찬하고 있었지만,
네가 말끝마다 ~요.를 붙일때마다 사방에서 장탄식이 나오고 있던 걸로 기억한다.



훈련소 내내 뭔 특혜를 받았던 적은 없었다.
훈련도 남들이랑 같이 받고, 따로 특별히 전화통화한건 첫날 아저씨랑 통화한것 뿐이었다. 
내가 총으로 쏴맞히는건 북괴인민군이지, 이딴 종이떼기가 아닙니다!!!라며 
사격을 통으로 날려먹어 근육이 비명을 지를때까지 구를 정도로, 당시에는 사격에 재능이 없어, 포상통화도 못해봤다.
어떤 놈 부모님이 지역에 꽤 큰 교회목사님이라고 종교행사때 부모님이 몰래 찾아왔다가 걸려서 그날 인솔조교들 개박살난거 말고는 
부모님의 접촉시도는 편지말고는 없었다. 그나마 엄마만 써보내주셨고, 아버지는 없었다.



나는 지잡대 문과재학생에 180안되는 키에 한쪽눈은 마이너스인 짝눈에 자격증은 1종보통 운전면허증 하나 밖에 없는 평범하다못해 못난 놈 중에 하나일 뿐이었는데, 중간중간 헌병이네, 군악대네, 운전병이네, PX병이네...하며 온갖 병력착출하러 올때마다 다 불려나가서 면접을 보곤했다.

헌병 : 너 키 몇이냐? 180 안되지? 안경도 꼈네??? (네. 그렇습니다!!!) 나가.
군악대 : 할 줄 아는 악기 있나? (음...노래방에서 탬버린...학교다닐때 리코더 단소를 불었습니다!!!!) 나가.
운전병 : 자. 시동걸고 출발해봐. (1종보통 무시하지마시져ㅋ 출발합니다ㅋ...덜컹덜컹!!! 어????) 반클러치밟지마!!! 내려!!!
PX병 : 미안한데 내가 따로 뽑았어. 야. 조교야. 얘네들 오후에 훈련 뭐냐??? 그래??? 다들 오늘 오후는 여기서 쉬어라. 조교야. 너도 거 앉아서 쉬어라. 면접늦었다고 말해줄께.(진짜 이렇게 오후 꿀빨고 왔음.)

훗날 알았지만, 다 아저씨가 이래저래 나를 빼주려고 한거였다고 한다. 그 어디에도 자격이 안되서 그렇지. 
심지어 특전병 착출해서 뽑을때도 불려나갔다. 한눈에 사지가늘고 눈동자 데굴데굴굴리고 배나온 ET같은 놈을 알아본 특전사원사님이 이놈이 그놈인가 싶으셨는지, 너는 들어가지말고 여기 옆에 앉아서 잔심부름이나 하라고 앉혀놓으셨고, 나는 우리 내무실에서 몸좋은 두 동기가 땀뻘뻘흘리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뽑히는걸 보고있었다.



당연히 그 향토사단으로 자대배치 받을 줄 알았던 나는 
의외로 당시에는 부산에 있던 어느 사령부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대도시에서 군복무라니 개꿀ㅋ...곧 절망으로 바뀜. 아는 사람은 앎.)



그리고 수료식.
아직도 기억에 남는 명수료식이었는데, 
사단장님은 사단장훈시를 시작하자마자 땡볕에 서있던 우리들에게 전원 제자리에 앉으라더니 졸면서 들으라 하시고는 훈시를 짧게 끝내고 내려가셨다.

"XXX!!! X소대!!! XXX!!!"
"네!!! XX번 훈련병!!! XXX!!!"
"너 그대로 소대장 따라와!!!"

그렇게 단독군장 한채로 뭐냐? 너 뭐 잘못했냐???라며 막사로 복귀하는 동기들을 뒤로하고 소대장과 함께 단상으로 향했다.

"어머!!!! XX이 군인 다 됐네~"
가보니, 그냥 아줌마라 부르던...아저씨의 부인이 계셨다. 
"아. 너가 XX이구나. 형수. 아주 A형이 날이면 날마다 전화해대니 신교대대장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아세요????'
"그러니까 말이예요. XX이 아버님이 그러는거 알고 B아빠한테 얼마나 뭐라했는데요. 매일 전화통화하던 사람들이 삐쳐가지고 며칠 전화도 안해요.'
어버버버???하고 있던 나를 두고 사단장님이랑 아줌마가 나눴던 대화였다.



아버지는 친구한테도 나의 입대날짜를 틀리게 알려줬다고 한다. 
아저씨도 알아보려면 얼마든지 알아보는데 순진하게 아버지 말만 듣고 방심하고 있었고, 
입대 며칠 전에 나 한번 불러서 고기사주려고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입대하고...큰아들 군대보내서 너무 속상하신 우리 어무니는 
아버지엄포대로 아저씨한테는 차마 연락못하고 아줌마한테 연락해서 속상함을 토로하셨다고 한다.
어머? XX이엄마?? 다음달에 입대아냐? 우리 애기아빠는 다음달이라던대??라며 당황하신 아줌마도 급히 아저씨한테 알려주셨고...
내가 한창 어리버리타며 전투복받고 소대배치하고 있을때, 
아저씨는 급하게 육사후배이자, 예전에 어느 사단 같은 참모부에서 근무한적 있었던 우리 사단장님한테 급히 전화를 날렸다고 한다.

하.지.만. 워낙에 친한 사이인지라, 아저씨 선후배정도는 다 연락처가지고있고 술한번 식사한번 다 해본 우리 아부지가 사단장님을 모를리가 없었다.
어찌어찌 사단장님하고 연락이 된 아부지는 하...이 쉐키가 어떻게 알았지???라며 한숨을 쉬시고, 
이 놈 군대가서 정신 좀 차렸으면하니, 제발 뭐 따로 특혜같은거 주지말고 남들만큼 굴려달라고 부탁하셨다고 한다. 
당연히 이게 맞는 말인지라, 사단장님은 신교대대장님한테 신경쓰지말고 굴려.라고 하셨고...신나게 굴렀음. 감사합니다.

사실 수료식에 우리 오마니도 참석하려면 할 수도 있었는데 아부지가 끝끝내 가지마라하셔서 못오셨다고 한다. 그냥 출근하셨다고. 
대신 아줌마랑 같이 서서 사단장님이 자자. 웃어요~치즈~하며 찍어준 사진을 들고가서 오마니한테 보여주셨고, 오마니는 펑펑 우셨다고 한다.
다음 날, 자대가서 콜렉트콜로 전화걸어서 "엄마. 나야."라는 내 목소리 듣고 더 우셨다고 한다.




중대장횽과 행보관님도 내 뒤에 투스타빽이 있는걸 내가 병장때야 아셨다. 
(중대장횽이 그걸 왜 말안했냐!!!라고 할때, 행보관님은 흐응..그랬구나. 하고 넘어감.
계급장떼면 말놓는 친구들이 특전사시절 같은 팀이었던 현역 중장들이신지라...;;;)

결국 주말에 면회 한 번 오셔가지고 알게됨.. 자기 휴가나왔다고 아버지한테 낚시가자고 불러가지고는 우리 부대 지나감.
아부지가 야 여기 XX이 있는 부대임ㅋㅋㅋㅋ하니까 나도 알아ㅋㅋㅋㅋ하고는 핸들꺽어서 그대로 들어오셔서 면회신청하심.  
나 통닭먹을때 부대장님이랑 중대장횽 내 뒤에 서계셨음ㅋㅋㅋㅋㅋ 내가 긴장해서 콧구녕으로 먹는 줄 알았음. 그렇게 당직취침이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외고집으로, 일단 자대배치 후에 자기 당번병으로 빼내려던 아저씨와 아줌마의 인사청탁은 시도조차 못했고 
나는 착실히 1111 소총수로 영창안가고 외진은 가도 입실 한번 한 적 없이,
입대초기 아저씨의 인사청탁을 제외하고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병장만기전역을 했다.

매일 산타느라 무릎 아작난채로ㅠ.ㅠ
물론 아버지 원하는만큼 철이 들지도 않았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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