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디 큰 일을 했나요? 제 이야기보단 간이식 수술이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것 좀 많이 알려주세요." 고등학교 1학년의 여학생이 간암을 앓고 있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간 70%를 이식해줘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미담의 주인공은 배지혜(16·대구 화원고)양.
하지만 지혜양은 미담의 주인공이 돼 언론의 관심을 받는 것이 적잖이 '불편한' 모양이었다.지혜양은 25일 기자에게 "제 이야기 기사로 안 내주시면 안 될까요"라며 "으레 이런 기사는 '뻥튀기'(과장) 되기 쉽잖아요"라며 웃었다.
지혜양은 "건강이 나빠지는 아버지를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자식으로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한 것인데 좋게 봐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제 이야기 보다 간이식 수술 위험하지 않단 말 좀 해주세요" 지혜양은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소개해달라"며 말을 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간이식 수술하면 간을 떼주는 사람은 굉장히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다른 장기의 이식 수술을 하고 나면 다시 자라지 않지만, 간이식은 달라요.
간이식을 하더라도 2~3개월만에 다시 간이 자라서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대요. 많은 분들이 간암으로 고생하시는데 간이식 수술에 대한 인식이 좋아져서 고통받는 분들이 줄어들었으면 좋겠어요." 16세 소녀의 당부치곤 어른들을 숙연하게 하는 대목이다.지혜양은 간이식 수술로 아버지에게 선물을 준 후 더욱 성숙된 듯 보였다.
지혜양의 아버지 배영근(45)씨가 간경화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 2002년 11월. 특유의 경상도 스타일을 가진 아버지는 무뚝뚝하긴 했지만 지혜양에겐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농부 아버지의 2년여 투병생활..."약해지는 아버지 안타까워" 농사를 지으며 어려운 살림을 이어가던 지혜양 가족에게 아버지의 투병생활은 버거웠다.그러다 최근 아버지의 간경화가 간암으로 전이해, 이식 수술을 받기 전에는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한다.
"항상 든든했던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니까 안타까웠죠. 거기다 최근에는 간암으로까지 악화돼서 더 쇠약한 아버지를 보니 더 이상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결국 지혜양은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난 2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간이식 수술을 받게 된다.88년 3월 생인 지혜양이 만 16세를 가까스로 넘겨 다행히 수술은 가능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지혜양의 신장은 160cm인데 비해 아버지는 178cm의 건장한 체격. 결국 지혜양의 간 중 70%를 떼어내야 했다.지혜양은 "내 몸을 걱정할 겨를은 없었다"면서 "다시 안정을 취하면 자랄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수술은 안전하게 끝이 났다.이식을 받은 아버지의 경과는 더 지켜봐야 한다.현재 지혜양은 대구로 내려와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지혜양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
지혜양은 "아버지가 워낙 건강이 나쁜 상태에서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더 지켜봐야지 알 것 같다"면서 "다시 대구로 내려오시더라도 몇 년 동안은 치료를 잘 받으셔야 한다"면서 아버지를 챙겼다.
어려운 형편에 걱정도 있지만..."건강한 아버지로 돌아오길"
지혜양은 지난 2년여 동안 큰병을 앓았던 아버지가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기대에 차있었다.지혜양은 "큰 바람은 없다"면서 "아버지가 빨리 회복하시고 예전처럼 건강하게 지내고, 가족들이 편안해지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지혜양은 앞으로 한달 정도 더 집에서 휴식을 가진 후 학교로 돌아가 수업을 받는다.향후 석달 간은 무리한 운동을 금해야 한다는 것이 의료진의 설명.
지혜양은 "아버지가 집으로 오시더라도 무균실 속에서 한동안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집안 구석구석 설치해야 할 것이 많다"고 한다.다소 힘겨운 가정형편이라 걱정도 크다.
아직 간이식 수술비도 부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다행인 것은 지혜양의 학교에서 지혜양 아버지를 돕기 위한 성금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 이렇듯 힘겨운 상황이지만, 지혜양은 웃음을 잃지 않았고 어른스런 당부까지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