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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촌리7-8
게시물ID : panic_27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이큐0
추천 : 15
조회수 : 23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8/08/25 13:17:40
3. 몇 가지 의문들(1)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 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의 석연치 않은 태도는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뿐 아직까지 뚜렷한 실마리 하나 잡지 못한 혜경이었다. 단서를 못 잡고 헤매긴 서울에서 내려왔던 시경 수사팀들도 마찬가진 것 같았다. 가끔씩 전화를 해선 이미 보내준 사진 자료들을 다시 한번 보내 달라거나 사건 현장 부근에 늑대과에 속하는 짐승의 서식 여부에 대한 자료 조사 요청 정도였다. 

 

그들은 아무래도 피살자 세명의 원한 관계에 의한 계획된 살인으로 촛점을 맞추고 그들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분명히 달랐다. 그녀가 조사해본 바 로는 최근 5년간 목촌리 부근에서 야생 늑대가 발견 되었다는 보고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설혹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이라 하더라도 흉기가 죽창이라는 점이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금방 남의 눈에 띌 수도 있고 소지하기도 불편할 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죽이기에도 그것은 적당한 무기가 아니었다. 분명 거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맴돌았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가 어떤 식으로든 마을 사람들과 관계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한가지 생각에 빠지면 헤어나질 못하는 그녀였다. 그녀는 식사도 하는둥 마는둥 하며 숟가락을 놓았다. 그러자 그녀의 앞에서 식사를 하던 구반장이 놀란 토끼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윤형사가 밥을 다 마다 하고? 최근에 무슨 충격 받은 일 있어?" 

 

"네?" 

 

"아니, 내 말은 식사때 마다 꼬박 꼬박 두 그릇은 싹싹 비우던 자기가 밥을 남기길래 혹시 누구한테 충격받고 그 뭐냐, 남들이 하는 다이어트라도 하나 해서?" 

 

"나참, 기가 막혀서.... 반장님은 왜 저만 보면 그렇게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세요?"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라니? 내가 언제 자기 못 잡아 먹어서 안달 했다고 그래? 사실 솔직히 말해서 자기가 결코 날씬한 편은 아니잖아. 그래서 밥을 안 먹길래 다이어트 하냐고 물은건데.... 그게 뭐 그렇게 잘못 한 건가? 이봐 박순경, 뭐라고 말 좀 해봐! 내가 실수한 거야?" 

 

구반장은 짐짓 정색을 하며 옆에 있던 박순경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걸 왜 저한테 물어 보세요? 전 아무 소리도 못 들었습니다" 

 

"됐어요, 제가 참죠. 하지만 반장님, 그러시는거 아니예요" 

 

"내가 뭘 어쨌다고 자꾸 그래? 자기 정말 성격 이상하네?" 

 

그때 그들 사이에 식당 아줌마가 끼어 들었다. 

 

"오늘 또 사워요? 하옇튼 어떻게 반장님 하고 윤형사는 하루도 안 빼고 그렇게 티격 태격이예요, 그래? 그건, 그렇고 그 뭐냐.... 목촌리 살인사건은 어떻게 범인은 잡았어요?" 

 

그러자 구반장이 갑자기 탁하고 숟가락을 내려 놓곤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줌마! 경찰도 사람이요, 사람! 남 식사하는데 꼭 그런걸 물어야 겠수? 아줌마는 밥 먹는데 똥 얘기하면 기분 좋아요? 그게 그렇게 궁금하면 우리 윤형사한테 물어봐요. 살인사건 아니면 상대 안 하는 형사니까" 

 

구반장의 가시박힌 말에 혜경은 가슴이 뜨끔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요 몇 일 관내의 다른 일들을 소홀히 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행동을 구반장이 모를 리 없었다. 다만 모른 척 하고 넘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별로 좋지도 않은 상황에서 주책맞은 아줌마가 일부러 그 얘길 꺼내니 여간 난처한게 아니었다. 

 

"아이구, 반장님두, 별것 다 갖고 토라지실까? 에게 식사도 벌써 다 하셨네, 뭐. 근데, 이번 사건 정말 윤형사 담당이야?" 

 

"아.... 아니예요. 아줌마! 제가 무슨....." 

 

"하긴, 서울에서 형사들이 내려 왔었다며? 어떤 미 친 놈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하긴 옛날부터 목촌리 그 곳이 터가 센 곳이었지. 반장님도 잘 아실걸요? 해방전엔 그 곳이 왜 전염병 환자들 격리하던 곳이었다잖아요. 그러더니 6. 25땐 빨갱이들 내려와서 반동분자들 공개 처형한다면서 죄 없는 마을 사람들 수 없이 끌어내선 죽창인가 뭔가로 마구 찔러 죽이는 바람에 얼마나 사람이 많이 죽었어요?" 

 

그때 혜경의 의식 속을 번개처럼 파고 드는 단어가 있었다. 그녀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아줌마! 방금 죽창이라고 하셨어요?" 

 

"아이구, 깜짝이야. 갑자기 왜 그래, 윤형사?" 

 

6.25, 공비, 죽창. 그녀는 갑자기 눈앞이 트이는 것 같았다. 자신이 왜 바 보같이 한번도 그 생각을 못 했는지 이상하기까지 했다. 

 

죽창이란 것이 지금은 몹시 낯설지만 불과 40여년전에는 한때 그것이 가장 무섭고 두려운 무기였던 적이 있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장님, 저 먼저 일어설께요" 

 

"밥 먹다 말고 갑자기 어디 가는 거야? 만약 오후에 또 자리 비우면 그땐 정말 가만 안 있을거야! 알았지?" 

 

구반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녀의 귀엔 더이상 구반장의 목소리가 들려 오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엔 이미 목촌리, 6. 25, 죽창, 공비, 공개 처형..... 그런 단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 * * 

 

해일이 김한수의 아내인 지윤으로부터 급히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오늘 아침이었다. 그는 김한수가 그녀와 결혼하기 전부터 지윤과는 아는 사이였다. 그녀는 김한수의 학과 후배였고, 따라서 해일의 후배이기도 했다. 하지만 집들이나 동문회 같은 특별한 행사때 김한수와 같이 그녀를 몇 번 만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따로 만나는 것은 결혼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남편에겐 둘이 만나는 것을 비밀로 해 달라는 당부를 따로 남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뭔가 좋지 않은 일일 것 이라는 예감만이 막연하게 그의 머리를 떠돌 뿐 특별히 추측될만한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이틀전 새벽에 걸려온 그의 전화가 조금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감기에 걸렸다고 해서 당시엔 별 신경 않 쓰고 그냥 넘겼지만 아침에 그녀의 전화를 받고 나선 자꾸만 그때의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커피숍은 한산한 편이었다. 그는 일부러 20분 정도 일찍 나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정확히 약속시간에 맞추어 나타났다. 

 

해일은 그녀를 보는 순간 자신이 생각한 이상으로 그들 부부 사이에 뭔가 불길한 일이 있다는 것을 그는 직감할 수 있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그녀의 얼굴은 몹시 초췌했으며 서둘러 나왔는지 옷차림 역시 예전의 그녀와 달리 별로 신경을 쓴 기색이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해일의 앞에 마주 앉은 그녀의 모습은불안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녀는 몹시 망설이며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제수씨!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겠습니다. 편하게 얘기하세요" 

 

그러자 마침내 그녀는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바쁘신데 이렇게 만나자고 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긴 해야 겠는데 마땅한 사람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만나자고 한 건 다름이 아니라.... 요즘.... 그 이한테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요" 

 

"이... 상 한 일이라니요?" 

 

"글쎄, 어디서 부터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지만 요즘 그 사람, 뭔가에 홀렸는지 예전의 그 이가 아니예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 때부터예요. 강원도에 살인사건인가, 취재를 갔다 온 그 다음부터...." 

 

그녀는 감정이 복받치는지 거기서 말을 끊곤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다음부터 이어진 그녀의 얘기들은 김한수를 잘 알고 있는 해일로 선 도저히 받아 들이기 어려운 이상한 얘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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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몇가지 의문들(2) 

 

그녀의 얘기는 다음과 같았다. 김한수가 강원도 H군의 취재를 갔다 와서 밤을 세워 기사를 쓰고 집으로 들어 온 것은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였다고 한다. 그녀가 보기에 김한수는 그날따라 유독 지치고 피곤해 보였으며 집에 들어 오기가 무섭게 쓰러져 깊이 잠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잠든 김한수가 헛소리를 하기 시작한 것은 새벽녘이었다. 그는 결혼 후 한번도 헛소리나 잠꼬대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힘든 일때문에 몸이 약해져 그런 줄만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김한수의 잠꼬대는 매일 계속 되었고 그 정도도 심해졌다. 

 

그리고 그 잠꼬대의 대부분은 살려 달라는 비명에 가까운 것이었고 급히 잠을 깨우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서 뭔가를 두려워 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잠꼬대만이 아니었다. 잠을 자지 않을때도 그는 이상하게 불안해 하고 초조해 했다. 그러다 바로 이틀전 해일과 통화를 한 바로 그 날밤엔 절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얼굴로 무섭다는 말과 함께 그녀의 앞에서 울음까지 터뜨렸다는 것이다. 해일은 참담한 기분으로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토록 활동적이고 자신감에 넘치던 김한수가 그랬다는 것이 그로선 도통 믿기지가 않았다. 

 

"기가 막히더라구요.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되니까. 하두 답답해서 방송국에 연락해 봤더니 갑자기 휴가를 내겠다고 했다더군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도 하지 않고. 할 수 없이 전문의의 진단을 한번 받아보자고 했죠. 정PD님도 아시죠? 그 이 친구중에 정신과 전문의로 있는 민병기박사라고......" 

 

"민박사요? 예, 압니다" 

 

"그랬더니 펄쩍 뛰면서 자기를 무슨 정신병자 취급하냐며 갑자기 집안의 물건을 닥치는대로 부수고..... 마치 딴사람처럼, 너무 무서웠어요. 그 이의 그런 모습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 했었거든요" 

 

그녀는 더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가 자신에게 테잎을 넘겨줄때만 해도 해일은 그에게서 별다른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러고 보니 이틀전 그의 전화는 예사로운 전화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그의 생각을 지배했다. 그는 분명 그에게 뭔가 말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한참을 흐느끼던 그녀가 간신히 울음을 삭키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죄송해요, 이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괜찮습니다.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제가 놀라는 것이야 뭐 큰일인가요? 다만 그 이가 너무 걱정이 되서....." 

 

"그래서, 그 다음엔 어떻게 됐나요?" 

 

"그리곤 바로 어제 아침에 방송국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전화를 받은 그 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더라구요.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이와 함께 H군에 취재 갔던 카메라맨이 갑자기 죽었다는 거예요. 그때 그 이의 표정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지..... 마치 세상이 끝나기라도 한 것 처럼 절망하고 좌절하던 그 표정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한 것 같아요. 온 몸을 부들 부들 떨면서 알아 들을 수도 없는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더니 갑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가 안에서 문을 잠근채 꼼짝도 하지 않는 거예요. 도대체 사람을 그토록 무섭게 만들 수 있는게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였어요. 아무리 문을 열라고 해도 그이는 제 목소리를 듣지도 못하는 양 대답조차 하지 않았어요. 무섭고 두렵긴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우선 방문을 열어야 겠다는 생각에 창고에서 비상키를 찾아서 다시 돌아왔을땐 남편은 이미 나가고 없더군요.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날 저녁이었어요. 어떤 사람들이 자신을 찾으러 올 것이라고 했어요. 그들에게 자신은 미친것이 아니라고 말해달라고 하면서.... 저 보고..... 그동안 고마웠다면서..... 그이의 전화가 끊기고 얼마후 과연 경찰이라는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와 그 이를 찾았어요. 그리곤 그 이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돌아가더군요. 그 후로 지금까지 그 이한테선 아무런 연락도 없는 거예요. 도대체 그 이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불안하고 조마 조마해서 그냥 집에 있을 수가 없었어요. 이제 전 어쩌면 좋죠? 어떡해야 돼죠?" 

 

그녀는 거의 절망적인눈빛으로 해일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해일이라고 해서 무슨 뾰족한 묘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도무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김한수의 기이한 행동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그를 찾아 왔다는 경찰들은 누구일까? 그는 지금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를 맴돌았다. 그는 일단 그녀를 최대한 위로하여 돌려 보냈다. 

 

자신이 어떻게든 원인을 알아 볼테니 참고 기다려 보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긴 그녀와 마찬가지인데. 그러나 한가지 그의 마음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는 생각이 한가지 있었다. 그것은 김한수의 기이한 행동과 그가 취재를 갔던 H군의 살인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우선 김한수와 함께 취재를 갔다가 갑자기 죽었다는 카메라맨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보도국에 전화를 걸어 본 결과 그의 이름이 이창수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는 김익재 촬영감독에게 도움을 청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같은 방송국의 카메라맨이니까 서로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다. 

 

"뭐? 이창수가 죽었다구?" 

 

예상대로 김감독은 이창수를 잘 알고 있는 듯 했으며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사람과 잘 아세요?" 

 

"잘 알 다 뿐이요? 옛날에 내 밑에서 카메라 배워서 입봉한 녀석인데... 이제 갓 서른밖에 안됐는데 도대체 어쩌다 그렇게 죽었답디까?" 

 

"저도 확실한건 잘 모르겠어요. 자신의 집에서 죽어 있는 것을 우연히 그의 집에 들른 친척이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하더군요" 

 

"참, 사람 목숨 별거 아니구만. 한 보름전에 만났을때만 해도 멀쩡하던 놈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해일과 김감독이 이창수의 집 앞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경찰들이 '수사중' 이라고 쓴 팻말이 달린 노란 띠를 집 주위에 둘루곤 사람들의 집안 출입을 통제한채 삼엄한 경계를 피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며 김감독이 말했다. 

 

"이거, 그냥 죽은게 아닌 모양인데? 웬 분위기가 이렇게 살벌해?" 

 

김감독과 해일이 다가가자 근무를 서던 경찰이 앞을 막았다. 

 

"무슨 일입니까? 여긴 현재 일반인 출입이 금지 된 곳입니다" 

 

그러자 그 경찰에게 김감독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이보슈, 난 죽은 이창수완 아주 막연한 사인데 도대체 왜 죽었습니까? 죽은 이유나 좀 압시다" 

 

"수사상 비밀이라 현재로선 아무것도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아니, 어떻게 죽었는지도 말해 줄 수 없단 말이오?" 

 

"그만 물러나세요, 상부에 지십니다" 

 

경찰이 김감독과 해일을 밀치듯 제지하자 김감독이 화가 난 듯 그의 손을 뿌리치며 거칠게 항의했다. 

 

"나원 참, 분통 터져서. 무슨 놈의 민주 경찰이 이 따위야. 아끼던 후배가 죽었는데 어떻게, 왜 죽었는지도 알 수 가 없단 말야?" 

 

삿대질까지 해대며 분통을 터뜨리는 김감독을 가까스로 말린 것은 해일이었다. 공연희 소란을 피워봤자 아무것도 얻어질건 없을 것 같았다. 난감한 심정으로 이창수의 집만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해일을 알아보고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김한수와 보도국에 함께 있는 강상준 기자였다. 잘 알진 못하지만 해일이 김한수와 함께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정PD님, 아니세요?" 

 

"아예, 강기자님이시죠?"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예, 뭣 좀 알아볼게 있어서요. 강기자님은 어떻게?" 

 

"예, 저는 취재차 조문차, 겸사 겸사 나왔습니다. 저희 보도국에 있던 카메라맨 한 명이 죽었거든요" 

 

"사실 저도 이창수라는 사람의 죽음이 궁금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혹시 아는게 있으시면 좀....." 

 

"그 사람과 아시는 사이 셨던가요?" 

 

그때 김감독이 나섰다. 

 

"창수와는 제가 잘 압니다. 대체 어떻게 죽었습니까?" 

 

그러자 강기자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잠시 난색을 표명했다. 이윽고 입을 연 그의 얘기는 뜻밖이었다. 

 

"사실 저도 같은 직장 동료의 죽음을 취재한다는게 여간 찝찝한게 아닙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취재를 할 수가 없었어요. 경찰 측에서 전혀 접근을 안 시켜 주는 겁니다. 웬만해서 그런 일이 없는데...... 현재로선 그의 죽음에 대한 어떠한 정보나 사실도 철저히 차단되고 있어요. 다만 제 정보원을 통해 어렵게 얻은 정보에 의하면 그의 시체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 을 정도로 손상되었다는 거예요" 

 

"손상이 됐다구요?" 

 

해일이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한마디로 무슨 맹수에게 뜯어 먹힌 것 같았대요. 방안이 온통 핏자욱 이었는데 거세게 저항한 흔적도 역력하고..... 하옇튼 너무나 끔찍한 모습이었대요" 

 

그러자 이번엔 김감독이 큰소리로 말했다. 

 

"맹수한테 뜯어 먹혀요? 여기 자기 집에서?" 

 

"네. 경찰도 그 점을 수상히 여기나 보더라구요.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자신의 집에서.... 때 아닌 맹수라니. 그리고 더욱 이상한 점은 살해된 모습이 이창수가 죽기 전 김한수 기자와 함께 취재를 다녀온 강원도 H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피살자들의 모습과 너무나 유사했다는 겁니다" 

 

강기자의 얘기에 해일은 심한 혼란을 느꼈다. 강기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해일 역시 자연스럽게 그 H군 살인사건을 떠올렸던 것이다. 김한수가 너무나 끔찍했다며 치를 떨며 넘겨준 그의 자료들에도 그 피살자들의 시신에 대한 여러 의문점과 묘사들이 자세히 적혀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그 H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이창수라는 카메라맨과 무슨 관련이 있길래. 그리고 김한수와는 또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의문점은 점점 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번져 가고 있었다. 

 

"정PD님, 어제, 오늘 사이 혹시 김한수 기자 보지 못 했어요?" 

 

"김기자요? 아니요, 왜요?" 

 

"뭐, 별건 아니고 경찰에서 김기자를 좀 만났으면 하더라구요. 아무래도 H군에 이창수와 함께 다녀 왔으니까 혹시 짚이는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근데 그 사람 몇일전 휴가 내곤 전혀 연락이 안 되더라구요. 집에 전화해도 전화도 않 받고" 

 

"글세요, 저도 최근에 김기자를 만나지 못해서. 만약 만나면 그렇게 전하죠" 

 

강기자가 가고 나자 김감독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이봐요, 정PD. 이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소? H군 살인사건은 나도 뉴스에서 봤는데 이창수가 그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죽었다니, 이게 말이 되요? 정말 거기 귀신이라도 있는거 아닐까?" 

 

"그거야 뭐, 직접 가보면 알겠죠" 

 

"난 어째 이번엔 웬지 기분이 뒤숭숭한게.... 아무래도 보험이라도 하나 들어 놓고 가야 할 건가봐?" 

 

"김감독님 답지 않게 왜 이러세요? 분명 무슨 곡절이 있을 겁니다" 

 

말은 쉽게 했지만 해일의 머릿속도 개운치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엔 내내 김한수가 마음에 걸렸다. 이창수의 죽음이 김한수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이 틀림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3. 몇가지 의문들(3) 

 

H군 도서관 한쪽 구석에서 십여권의 책더미를 쌓아놓고 뭔가를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윤혜경 형사와 박호철 순경이었다. 한참을 자료들을 살피던 박호철이 몸을 뒤로 젖혀 크게 기지개를 펴면서 말했다. 

 

"윤형사님, 오늘은 이만 하죠. 전 눈이 아파서 더이상 못 하겠어요. 그리고 지금쯤 반장님이 돌아오실 때도 됐고. 반장님이 알면 또 난리날 텐데" 

 

"미안해, 박순경까지 고생하게 해서....그래, 오늘은 이쯤 하자구" 

 

"그런 소리 마세요. 근데 목촌리 마을과 주민들에 대해 이렇게 조사하는 이유가 뭐죠? 이것들이 살인사건과 어떤 관련이라도 있는 건가요?" 

 

"그건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일단 찾은 자료들 복사하고 경찰서로 가지고 가서 좀 더 분석을 해 봐야 할 것 같아" 

 

혜경과 박호철이 가슴에 하나 가득 자료들을 안고서 도서관을 나온 것은 이미 날이 어둑해질 무렵이었다. 

 

구회열 반장이 오늘 집안 일때문에 오후 늦게나 잠깐 경찰서에 들린다는 소릴 듣고 그녀가 박순경에게 부탁하여 함께 도서관을 찾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서둘러 경찰서로 돌아 갔을때는 벌써 구회열 반장이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잠깐 나 좀 보자구!" 

 

구반장은 손에 잔뜩 서류더미들을 들고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얼굴을 해선 회의실로 그들을 불렀다. 혜경은 오늘은 아무래도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곤혹스런 표정으로 구반장을 따라 갔다. 회의실에 앉은 세 사람 사이에는 숨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구반장은 손에 든 볼펜으로 책상을 딱딱 두드리며 두 사람을 노려만 보고 있었다. 참다못한 혜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반장님.... 오늘 근무 시간에 자리 지키지 않은 건 정말 죄송해요" 

 

"죄송한게 그게 다야?" 

 

"박순경 데리고 나간 것도....." 

 

"그리고 또?" 

 

"........." 

 

그녀가 말문이 막혀 고개를 숙이자 구반장이 자신이 들고 들어온 종이 뭉치들을 탁자위에 팽개치듯 던지곤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것들이 다 뭐야?" 

 

구반장의 말에 혜경은 의아한 표정으로 종이뭉치를 집어 들었다. 모두가 팩스들이었다. 혜경이 서울 시경 자료실에 있는 경찰학교 선배에게 부탁 하여 받은 목촌리 출신 주민들에 대한 신상 기록들이었다. 

 

"이것들 때문에 오늘 경찰서 팩스가 완전히 마비됐어, 알아? 다른 급한 팩스가 하나도 못 들어와서 난리가 났었단 말야! 너, 나 아주 목 짤리게 만들려고 작정햇냐, 작성했어?" 

 

구반장의 벽력같은 소리에 박호철의 얼굴은 완전히 사색으로 변했다. 가슴이 철렁한 것으로 말하자면 혜경쪽이 훨씬 더 했다. 선배가 보내 주기 로 했던 자료가 이렇게 많을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어디 한번 내가 납득하게 설명을 해 봐, 이것들이 다 뭔지" 

 

구반장은 오늘이야말로 결판을 내고야 말겠다는 듯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녀가 마침내 결심한 듯 번쩍 고개를 들었다. 

 

"반장님, 이번 사건을 제가 정식으로 수사 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요. 그리고 반장님께서도 절 좀 도와 주십시요. 이번 사건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우리 일입니다" 

 

갑작스런 그녀의 태도 변화에 구반장이 기가 막히는 표정으로 그녀를 잠 시 바라보곤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책상을 쾅하고 내 리치며 소릴 질렀다. 

 

"그건 안될 말이야. 안된다구, 절대! 안돼!" 

 

혜경 또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선 더 세게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왜 안 된다는 거죠? 상부에서도 계속 시경팀을 도와 수사에 협조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분명히 우리 관할내에서 일어난 우리 일인데 왜 안되요, 왜요? 겁나세요? 무서우세요?" 

 

그러자 이번엔 구반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곤 붉게 상기된 얼굴을 실룩거리며 혜경을 향해 다가왔다. 박호철이 말릴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상황은 더욱 험악한 분위기로 번지고 있었다. 

 

"너! 지금 나한테 반항하는 거야? 쬐끄만게 이쁘다 이쁘다 하니깐 정말 끝도 없이 기어올라!" 

 

구반장이 금방이라도 한 대 후려칠 듯 한 기세로 노려보자 혜경도 질세라 두 눈을 똑바로 뜨며 대들 듯 가슴을 내밀었다. 

 

"저도 더이상은 못 참겠어요. 상관이면 다 예요? 근무 태만에다, 유흥업소 단속은 커녕 돈 받고 봐주기나 하고.... 제가 다 모를 줄 알아요? 경찰 옷만 입으면 다 경찰이예요?" 

 

그녀의 말에 구반장이 부들 부들 떨면서 박호철을 향해 더듬거렸다. 

 

"야, 바.... 박순경아, 지... 지금 윤형사가 무슨 소리..... 하는 거냐?" 

 

더듬거리며 말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구반장을 향해 혜경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마, 상관만 아니었더라면 벌써 예전에 제 주먹이 가만 있지 않았을 거예요" 

 

"유.... 윤형사님!" 

 

박호철이 참다 못해 소리쳤다. 그러나 뜻밖에도 구반장은 현기증이 나는지 비틀거리며 이마를 짚곤 무너지듯 자리에 앉았다. 

 

"왜요? 양심에 찔리시나요? 더 얘기해 드릴까요?" 

 

혜경이 여전히 소릴 지르면서 험악한 기세로 노려보자 구반장이 손을 내 저으며 힘없이 말했다. 

 

"그래, 알았어, 알았다구. 너 잘 났다, 너 잘 난거 아니깐 제발 살살 좀 얘기해라. 귀창 터지겠다. 애가 무슨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야, 박순경 아, 문 열고 이 여자 얘기 혹시 들은 사람 없나 한번 봐라. 아이구 어지러워, 아이구 머리야" 

 

어리둥절한 눈으로 박호철이 구반장의 말대로 회의실 문을 살짝 열고 밖을 살피곤 자리로 돌아오며 말했다. 

 

"아무도 없는데요?" 

 

"확실하냐?" 

 

"네" 

 

"제....제..... 갑자기 왜 저 여자 이름이 생각이 않 나냐?" 

 

박호철이 얼른 대답했다. 

 

"윤형사님요, 윤형사" 

 

"그래.... 윤형사, 박순경아, 나 오늘 제 때문에 여러 번 숨넘어갈 뻔 한다. 도대체 윤형사가 뭘 믿고 내가 돈 받고 봐주기 했다는건지 난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박순경아, 넌 이해가냐?" 

 

"그럼, 제가 직접 증거를 들어 보일까요? 아니면 증인이 필요 하세요?" 

 

"그만! 알았어, 알았으니까 우리 서로 흥분하지 말고 차근 차근 말로 풀자구. 내가 뭐, 특별히 뒤가 캥긴다거나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돼. 다만, 정 윤형사가 그 사건을 그렇게 수사 하고 싶으면..... 하라 이거야. 난 단지, 그런 험한 사건에 윤형사 같은 연약한 여자를, 아니, 연약한 여자란 말은 취소하고..... 하옇튼 부하를 아끼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평양 감사도 본인이 싫다면 할 수 없는 거지. 그럼, 더이상 할 말 없지? 난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만 좀 퇴..... 퇴근할 테니까 퇴근 하려면 하고, 남아서 일들 하려면 하라구. 구....굿나잇!" 

 

구반장이 비틀거리며 회의실을 나가자 박호철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혜경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윤형사님, 정말 대단 하시네요? 저 같으면 꿈도 못 꿀텐데.... 근데 반장 님이 정말 돈 받고 봐 주기 했다는 거 사실이예요?" 

 

"그거야 박순경이 알아서 판단 하라구. 난 집에 가서 자료들 좀 더 뒤져봐야 겠어" 

 

혜경은 회의 탁자에 흩어져 있는 팩스 자료들을 주섬 주섬 모으기 시작했다. 조금 심하다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왜 이토록 집요하게 이번 사건에 매달리게 되는지 자신도 명확히 알진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목촌리 사건의 이면에는 베일에 가려진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확신이었다. 오늘도 그녀는 도서관에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그것은 목촌리에서 일어난 괴이한 살인사건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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