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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촌리11-12
게시물ID : panic_27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이큐0
추천 : 15
조회수 : 15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08/08/25 13:31:38
4.. 죽음의 마을(3) 

 

족히 백년은 더 되었을성 싶은 검게 불에 그을린 그 흉물스런 집을 아직까지 철거하지 않고 남겨둔 이유가 궁금할 만큼 집은 금방이라도 허물어 질 듯 위태하게 보였다. 집 뒤쪽으로 울창한 산이 바싹 붙어 있었고 마당에는 잡초들이 발디딜 톰 

도 없이 자라 있었다. 다른 스텝들이 서둘러 마당으로 들어서서 짐을 풀고 촬영 준비에 분주 했지만 오직 김감독만은 그 집 마당으로 들어서는 것이 선뜻 내키질 않는지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때면 자신은 항상 그 징후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5년전 촬영에서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당한 일이며, 3년전 산악등반 촬영을 갔다가 조난 사고로 두명이 목숨을 잃은 일이며, 바로 작년에는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까지 번번히 어떤 예감을 느끼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스텝들은 여느때와 다름없었다. 지금껏 수 많은 흉가를 가보았고 또한 그 곳에서 밤을 지새며 촬영을 했었기 때문에 이 곳이라고 어떤 특별한 감정을 느끼진 못하는 것 같았다. 다만 무속 전문가인 오세창과 이정란은 집의 어떤 기운을 알아 보려는 듯 나름대로 집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해일은 그들에게도 일부러 테잎에 대한 것이나 이곳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또는 김한수나 이창수의 죽음에 대해서 전혀 귀뜸하지 않았다. 주위는 이미 칠흙같은 어둠으로 덮히기 시작했고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해일은 집안을 구석 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허물어 져 내릴 것 같은 집인데 용케 버티고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볼 때 보다 집안은 훨씬 넓었다. 방은 총 열 한개가 있었고 부엌과 그 옆으로 넓직한 광이 딸려 있었다. 각 방안에는 먼지와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는데 맨 끝방 한쪽 구석엔 어떤 짐승이 잠자리를 만들어 놓은 듯 가운데가 움푹하게 패인 나뭇가지들이 수복하게 쌓여 있었다. 집안에서 해일이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은 바로 부엌 옆에 딸려 있는 광이었다. 한쪽 문짝이 무너져 내려 비스듬하게 달린 그 곳은 바로 테잎 속에서 짐승의 귀가 시퍼런 광채를 내뿜고 있던 바로 그 곳이었다.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쉬고 해일이 살짝 문을 밀치자 삐걱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무슨 냄새인지 모를 시큼한 악취가 코를 찔러 왔다. 해일이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어디선가 싸늘한 기운이 목덜미를 지나갔다. 

 

렌턴의 불빛을 구석 구석에 비추며 안을 살폈다. 바닥엔 썩어버린 짚더미가 어지럽게 깔려 있었고 구석엔 주인을 잃은 농기구들이 붉게 녹이 슨 채로 아직도 아무렇게나 굴러 다녔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주위에 벽들이 온통 붉은 적토(赤土)로 발라져 있다는 것이었다. 렌턴 불빛에 비친 벽은 마치 피 빛으로 덮인 토굴 속이라도 들어와 있는 듯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김익재 촬영감독은 대청마루에서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곤혹스럽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촬영보 박희철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 것은 김감독이 그런 표정을 지을때 마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독님, 어디 불편하세요?" 

 

그러나 김감독은 대답 대신 먼저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리곤 엉뚱한 얘기로 입을 열었다. 

 

"얌마, 너 나보고 맨날 신기(神技)가 좀 있다고 했지? 않 좋은 일만 귀신 같이 맞춘다고...." 

 

"예, 그랬었죠" 

 

"근데, 바로 그 신기가 별로 조짐이 않좋다. 웬지 마음이 안정이 안되고, 아까 이 집에 들어서는데 이상하게 가슴이철렁하고 내려 앉지 뭐냐. 난 말야 평소 내 목숨은 조상님들이 지켜준다고 믿는 사람인데 꼭 내 조상님들이 이 집안에서 빨리 나가라고 호통을 치시는 것 같더란 말이다" 

 

"그.... 그럼, 어쩌죠? 감독님 그런 얘기할때 마다 제 가슴은 더 크게 철렁 한다니까요. 그때마다 아주 않 좋은 일이 생겼잖아요" 

 

"젠장, 웬지 이번 촬영은 처음부터 내키지가 않더라구. 특히 그 창수놈 얘기 듣고부턴 더더욱....." 

 

"네?" 

 

"아무것도 아니다. 어차피 촬영 왔으니까 딴 생각 말고 일이나 하자구" 

 

강은영은 집안 구석 구석을 둘러보며 쉴새없이 카메라의셔터를 눌러댔고 그때마다 어둠속에서 눈이 부실만큼 밝은 불빛이 번쩍거리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배영환은 이 집에 들어온 이후 쭉 그런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배영환의 온 신경은 오직 스틸 사진 기사 강은영에게 쏠려 있었다. 그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벌써 2년전의 일이었다. 어찌보면 자유분방하면서도 자기 주장이 강한 전형적인 현대여성의 조건을 두루 갖춘 강은영을 처음 본 순간 배영환은 밑도 끝도 없는 묘한 질투심을 느꼈다. 그는 강은영에 비하면 여전히 19세말의 조선시대에나 맞을 법한 사고와 생활방식을 가진 사내였다. 강은영의 주변에는 언제나 젊고 활기 찬 남자들이 있었다. 

 

그녀는 그들과 함께 있으면 고개를 한껏 제처가며 웃음을 터뜨리는가 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몸을 기대기도 하고 손을 잡기도 했다. 배영환은 그런 그녀가 웬지 못마땅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자신에게 특별히 밉게 보일만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자연 그녀 앞에서 배영환의 심사는 뒤틀릴 수 밖에 없었고 둘은 만나기만 하면 툭닥거렸다. 배영환은 처음 그녀에 대한 자신의 이유없는 미움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최근 그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바로 흔히 남들이 말하는 사랑이 라는 치명적인 질병임을 알아차리고 그는 몹시 당황했고 극구 자신을 부인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스스로 벗어날 수 없을만큼 그녀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투덜거리기만 할 순 없다는 것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2년여동안 미움이라고 여겨왔던 자신의 감정을 한순간에 사랑이라 그녀에게 드러내기에는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그의 말과 행동은 번번히 마음과는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삐져나왔다. 어둠속에서 한참을 셔터를 눌러대던 강은영이 손을 멈추고 돌아섰다. 

 

"배선배, 언제까지 제 뒤만 쫓아 다닐 거예요? 저한테 무슨 할 말 있어요? 아님, 할 일이 없어서 그래요?" 

 

그녀의 갑작스런 공격에 배영환은 마치 자신의 감정을 들키기라도 한듯 당황하면서 그 반작용으로 또다시 후회할 소리를 하고 말았다. 

 

"착각하지마, 내가 뭐 널 좋아하기라도 해서 따라다니는줄 알아? 아까 정PD가 나한테 붙어 다니라고 그러더라. 집도 으시시한데 괜히 헛것보고 기절이라도 하면 골치 아프니깐!" 

 

"이봐요, 배선배, 제가보기엔 선배가 더 으시시 하네요. 거, 얼굴 밑에 렌턴 좀 치우고 얘기할 수 없어요? 안 그래도 기분이 별론데 거기 그렇게 귀신 같은 얼굴로 따라 다니니까 더 신경이 쓰이잖아요" 

 

강은영이 핀잔주듯 한마디 쏘아 붙이고 다음 방으로 건너가자 배영환은 맥이 빠지는듯 렌턴을 한대 후려치곤 중얼거렸다. 

 

"젠장, 별게 다 훼방을 놓는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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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죽음의 마을(4) 

 

해일이 광에서 나와 대청마루까지 뛰어가는 사이 갑자기 눈이 부실 정도의 시퍼런 섬광과 함께 엄청난 천둥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산중에서 듣는 천둥소리는 도시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것은 사람의 가슴을 절로 서늘하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대청마루까지 뛰어가는 단 몇 초간 해일의 온몸은 순식간에 흠뻑 젖어 버렸다. 대청마루엔 김감독과 박희철이 렌턴 불빛에 의지해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김감독님, 카메라를 이쪽 광에다 셋팅해 주셔야 겠는데요?" 

 

"안 그래도 그럴 작정이요. 그건 그렇고 광에는 뭐 이상한거 없어요?" 

 

"예, 지금봐선 별로 특별한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그동안 해 왔던대로 전체적인 스케치부터 해주세요. 그리고 포인트를 잡아서 집중적으로 좀 잡아 주시고.... 근데 다른 스텝들은 다들 어디 갔죠?" 

 

그때 어둠속에서 스크립터 김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PD님, 이리 좀 와 보세요" 

 

김혜진은 이영우, 그리고 기공 전문가 오세창, 무속인 이정란과 함께 왼편 끝방에 있었다. 오세창은 손에 나침반 같은 쇠붙이를 들고 집 주변의 수맥(水脈)을 측정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침이 크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 곳은 집이 들어설 자리가 아닙니다. 지금 이 집은 호수에 떠 있는 것과 마찬가지 형상을 하고 있어요" 

 

"호수에 집이 떠 있다구요?" 

 

"네, 대부분의 흉가나 터가 좋지 않은 집을 가 보면 흔히 물이 흐르는 위에 집을 짓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수맥이 인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 사람이 기(氣)를 제대로 펴고 살기가 힘들죠. 그래서 병에도 걸리고 마음이 심약해져 헛것을 보기도 하는데 이곳은 물이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그 넓이나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물이 이 집터 아래에 가득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집이라면 아마 그동안 액운이 끊이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엔 이정란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얼굴은 몹시 긴장되고 상기되어 있었다. 

 

"저기를 좀 보세요" 

 

그녀는 렌턴으로 방문 위쪽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거기엔 대나무 가지가 기묘한 모양으로 꽂혀 있었다. 

 

"대나무 아닙니까?" 

 

"그래요, 대나무죠. 저건 귀신을 쫓을때 주로 사용하던 비법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이 집안 전체가 온통 귀신을 쫓기 위한 비방들로 가득합니다. 대청마루 쪽에 다듬이 돌을 엎어 놓은 것 하며, 광에 적토로 벽을 발라 놓은 것, 그리고 이리 나와 보세요" 

 

그녀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해일을 방밖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그녀는 렌턴을 빗줄기가 내리치는 마당에 비추었다. 

 

"저기 마당에 흥건한 물들이 보이죠? 모두 붉은색이예요" 

 

"그럼, 마당의 흙들도 광의 것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적토란 말입니까?" 

 

"그래요, 마당의 흙도 광과 마찬가지로 온통 적토로 되어 있어요. 예전부터 귀신을 쫓기 위한 대표적인 비방이 대문에 피를 칠하거나 아니면 저렇게 적토를 발라 놓는 것인데 이 집은 온통 적토로 가득 차 있어요. 그리고 이 집이 온통 검게 그을린 것도 제가 보기엔 단순한 화재때문이 아닙니다. 귀신을 쫓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질렀을 가능성이 큽니다" 

 

계속되는 이정란의 목소리는 상당히 들떠 있었다. 

 

"이 집안엔 온통 악한 기운이 가득해요. 집안 전체가 악귀들로 둘러 쌓인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험한 곳을 많이 다녔지만 이번처럼 기운이 강한 곳은 처음이예요. 이따 자정이 지나면 제가 이 집안에 있는 귀신들을 한번 불러내 보도록 하죠. 도대체 이 집안에 가득한 귀신들이 어떤 원귀들인지" 

 

이정란은 그 어느 때보다 힘주어 말했고 해일은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흉가에 가지 말라던 김한수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때 어둠속에서 또 하나의 렌턴 불빛이 더듬거리며 일행들을 향해 다가왔다. 배영환과 강은영이었다. 배영환이 말했다. 

 

"이거 도대체 전기가 없으니까 여간 불편한게 아닌데요? 정PD님 카메라를 어디에 셋팅하죠?" 

 

"적외선 카메라는 저기 마당쪽에 좀 셋팅해 주세요?" 

 

그러자 배영환이 무슨 소리냐는듯 마당쪽으로 렌턴을 비추었다. 앞도 제대로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는 마당에는 아무리 살펴도 카메라와 몸을 숨길만한 엄페물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저기.... 저 마당에 카메라를 셋팅하란 말씀이세요?" 

 

"좀 무리긴 하겠지만 그렇게 좀 해주세요. 마당쪽에서 이 집안 전경과 내부를 잡아 주셔야 합니다" 

 

"우와 난 죽었네. 저런 빗속에선 우의를 입어도 아무 소용 없는데...." 

 

배영환은 울상을 지으며 렌턴으로 연신 마당을 이리저리 비추었다. 그런데 렌턴을 비추던 배영환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저.... 저게 뭐죠?" 

 

모두의 시선이 배영환이 가리키는 마당으로 쏠렸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내리쏟는 빗줄기 속에서 분명 뭔가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모두가 긴장한채 그 곳을 주시했다. 어둠속인데다 비까지 퍼부어서 렌턴 불빛만으로는 언뜻 무엇인지 쉽게 분간하기 어려웠다. 잠시후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이영우가 먼저 소리 쳤다. 

 

"사..... 사람 아니예요?" 

 

"뭐, 사람?" 

 

이영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조그만 우산으로 가까스로 비를 피하며 마당으로 들어서는 이들은 분명 사람이었다. 모두 세명이었고 그것도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마당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곤 이쪽을 노려보며 유령처럼 꼼짝않고 서 있었다. 

 

"저 사람들 뭐하는거야? 우리한테 무슨 할 말이 있나 본데?" 

 

이영우의 말에 이정란이 덧붙였다. 

 

"우리한테 별로 좋은 얘길하러 온 사람들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러자 배영환이 소리쳤다. 

 

"거기 누구요? 무슨 일이요?" 

 

그러나 그들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그들은 조심스럽게 마당을 가로질러 다가왔다. 예상대로 다가온 그들은 모두 나이가 예순은 넘어 보이는 노인들이었고 하나같이 얼굴에 핏기라곤 없어 보이는 창백한 표정이었다. 게다가 불빛에 드러난 그들의 얼굴엔 이유를 짐작키 어려운 적개심까지 드러나 있었다. 노인들은 대청마루 바로 밑에와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스텝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며 그들을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을때 노인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뜻밖의 얘기였다. 

 

"당장 여기서들 나가!" 

 

스텝들이 모두 노인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질 못해 어리둥절 하는 사이 노인의 두번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두번째 목소리는 처음보다 훨씬 크고 분명했다. 

 

"여기서들 당장 나가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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