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반장은 혜경에게 호되게 당한 그날 이후 혜경이 하는 일에 거의 간섭하지 않았다. 그리고 꼭 필요한 말 외에는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법도 없었다. 구반장의 그런 태도가 혜경에게 다소 부담이 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 해결이 되리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한 두사람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 사이에서 오히려 가장 불편한 사람은 바로 박호철 순경이었다.
하루종일 두사람의 눈치만 살피던 그가 크게 기지개를 키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만 퇴근들 않하세요? 벌써 11시가 다 되어 가는데...."
그러나 두사람중 누구도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는 사람이 없자 그는 머쓱하게 창문을 내다보며 다시 중얼거렸다.
"정말, 징그럽게 오는구만. 비가 이런 식으로 몇 일만 더 내리면 우리 군은 아주 물바다가 되겠는데요? 아참, 그나저나 오늘 서울에서 방송국 다큐맨터리 제작팀이 목촌리 332번지에서 무슨 촬영을 한다고 하던데 비가 이렇게 와서 제대로 촬영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러자 그의 말에 혜경과 구반장 두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구반장이었다.
"이봐, 박순경, 방금 뭐라고 했어?"
뜻하지 않은 구반장의 반문에 박호철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 슨 소리요?"
"방금 무슨 다큐맨터리팀이 어쩌고 그랬잖아!"
"아...예, 그 얘기요? 아까 낮에 행정과장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서울에서 온 방송국 사람들이 오늘밤 이번에 살인사건이 일어난 332번지에서 촬영을 하기 위해 허가를 내달라고 해서 내 주었다고. 뭐라더라? 그 곳에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밝힌데나? 하여간 방송 만드는 놈 들......"
그러나 박호철의 얘기는 더이상 입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구반장이 갑자기 책상을 내리치며 소릴 질렀기 때문이다.
"그걸 이제 얘기하면 어떻게!"
갑작스런 고함 소리에 박호철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을때 구반장이 다시 소리쳤다.
"이런 미 친 놈들,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 모두 몇 명이래?"
"그.... 그건 잘....."
박호철의 말에 구반장이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돌연한 구반장의 행동에 어리둥절 하기로 치자면 박호철보단 혜경쪽이 더 했다. 다큐맨터리 팀이 332번지에서 촬영을 한다는 박호철의 얘기를 듣고 놀란 것은 오히려 혜경이었다. 아직 사건이 완전히 해결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 곳을 취재했던 기자들이 모두 끔찍한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바로 오늘만 해도 이번 살인사건 취재를 했던 기자와 카메라맨이 모두 같은 방법으로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시경으로부터 전해 들은 그녀였다. 그런데 구반장이 저렇게 펄쩍 뛰는 것은 그녀로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332번지 일이라면 무조건 빠지려고만 하던 구반장이 아니던가. 그녀는 구반장의 진의를 파악하려는듯 그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몹시 불안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서성거렸다. 뭔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게 틀림없었다. 그녀가 이 곳 H군에 배치를 받은 이후 처음 보는 구반장의 모습이기도 했다. 갑자기 구반장이 소리쳤다.
"지금 출동할 수 있는 인원이 우리 셋 뿐인가?"
박호철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는 다시 실내를 서성이기 시작했다. 시종 손을 마주 비벼대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질 못하던 구반장이 마침내 어떤 결심이 선 듯 박호철과 혜경을 보곤 무겁게 입을 열었다. 혜경은 지금 그의 표정이 몹시 낯설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사람 다 당장 나하고 같이 목촌리로 출동할 준비해. 그리고 무기고에서 M16 소총, 권총, 실탄.... 또 뭐가 있지? 하옇튼 있는대로 모두 챙겨, 어서!"
구반장의 말에 혜경과 박호철 두사람은 동시에 놀라서 입을 벌였다.
"네? 반장님 방금...."
"내말 안들려? 어서 서두르란 말야, 시간이 없어! 어서!"
갑자기 목촌리로 출동하자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인데 무기까지 챙기라니. 혜경은 구반장이 지금 어떻게 된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구반장의 표정은 긴지하고 잔뜩 긴장되어 있었다. 구반장의 지시대로 세사람이 무기를 챙겨 목촌리로 출발한 것은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세사람 모두 실탄이 장전된 권총을 한 자루씩 차고 있었고 구반장은 M16 소총까지 곧추세워 들고 있었다. 박호철은 운전하는데 여간 애를 먹는 눈치가 아니었다. 칠흙같은 어둠에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물때문에 승용차의 시야는 불과 10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윈도 부러쉬를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빗물을 감당하진 못했다. 차안에서 구반장은 한마디도 말이 없었다. 그는 눈을 감은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박호철이 운전을 하며 연신 룸미러로 구반장의 안색을 살피곤 혜경과 눈이 마추졌지만 영문을 모르긴 두사람 다 마찬가지였다. 무거운 침묵을 먼저 깨뜨린 것은 혜경이었다.
"저기, 반장님! 저희도 도대체 무슨 일인지나 알고 가야죠. 이렇게 무작정 갈 순 없잖아요"
그러나 구반장은 여전히 눈을 감은채 아무 말이 없었다. 참지 못한 혜경이 다시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구반장이 눈을 떴다.
"윤형사, 332번지 흉가에 대한 수사는 잘 진행되나?"
"네?"
"수사에 진전이 있냐고...."
"뭐, 아직은..... 하지만 몇가지 사실들을 알아내긴 했어요. 그 흉가를 중심으로 한 목촌리 마을의 내력에 대한 것들인데....."
"그럼, 이번 같은 살인사건이 처음이 아니란 것도 알아냈겠구만!"
"그럼, 반장님도 알고 계셨어요?"
"윤형사는 귀신의 존재를 믿어?"
"귀.... 귀신요?"
"그래, 귀신!"
"그.... 글쎄요"
"우린 지금 귀신과 싸우러 가는거야"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혜경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곤 구반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틀림없는 구반장이었지만 그의 눈은 평소 그의 눈빛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광기와 형언키 어려운 공포, 그리고 그 너머로 얼핏 보이는 죽음의 그림자. 그런 것들이 그의 눈엔 진하게 베어 있었다. 혜경은 지금 구반장의 눈빛과 비슷한 눈빛을 어디선가 보았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건 바로 목촌리 주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던 눈빛이었다.
노인들은 모두가 마을의 주민들이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계속해서 촬영팀의 철수를 요구했다. 이영우가 계속해서 노인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별로 성과는 없어 보였다.
"몇 번을 말씀 드려야 아시겠어요? 저희는 분명히 군에서 촬영 허가를 정식으로 받고 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공연히 시간 낭비 마시고 어서 집으로 돌아들 가세요"
그러나 노인들은 물러서긴 커녕 더욱 무서운 눈으로 스텝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당신들이 오늘밤 이곳에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모두..... 모두가 죽을게야. 어서 그 집에서 나오라니깐!"
"무서운 일이 벌어질거야, 당신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서운 일이....."
한 노인은 눈 앞에 정말 그가 말하는 무서운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 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보다 못해 해일이 앞으로 나섰다. 노인들이 뭔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연이야 어찌 되었던 비가 쏟아지는데 그렇게 밖에들 계시지 마시고 이리로 올라 오셔서 저희하고 차근 차근 얘기를 좀 하시죠"
"우린 안 올라가, 아니, 못 올라가! 그 끔찍한 집으로는 절대 못 올라가"
"좋습니다. 그럼 제가 내려가죠"
해일이 대청마루 아래 노인들 앞으로 다가섰다. 가까이 다가 서서 보니 과연 노인들의 얼굴엔 그들의 말처럼 두려움이 가득 했다. 스텝들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지만 정작 겁에 질려 있는 것은 그들이었다.
"저는 정해일이라고 합니다. 촬영팀의 책임자죠. 노인장들이 두려워 하는 것들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저희도 영문을 알아야 철수를 하든 말든 할 게 아닙니까? 이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해일이 구체적으로 묻고 나서자 노인들의 얼굴에 동요의 빛이 나타났다. 그들은 두려운 눈길로 해일을 바라보며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해일은 그들에게서 뭔가 실마리를 풀 수 있으리란 기대로 더욱 다가서며 다그쳤다.
"이곳에서 얼마전에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죠? 그리고 그 해괴한 살인사건이 바로 이 집과 관련이 있는거죠? 그렇죠? 제발 말씀해 주세요. 제 친구도 이 집을 취재 왔다가 여기서 죽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끔찍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그러자 노인들이 더욱 뒤로 물러서며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당장 그 곳에서 나오라니까 무슨 말이 그리 많아! 좋아, 정 너희들이 죽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별 수 없지. 우린 아는게 아무것도 없어. 그리고 본 것도 들은 것도 없어. 그러니 너희들이 무슨 일을 당하든 우린 모르는 일이야"
말을 마친 노인들이 싸늘한 표정으로 스텝들을 한 사람씩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사형 선고를 받은 사형수를 보는듯한 눈빛이어서 스텝들은 하나같이 섬?쓺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노인들은 천천히 뒤로 물러나 마당을 빠져 나갔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이 왔던 길을 되돌아 가고 있었다. 스텝들 모두가 께름칙한 표정으로 사라지는 노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표정이 밝지 않았다. 이영우가 노인들이 사라진 고개쪽을 보면서 말했다.
"기분 나쁜 노인들일세? 왜 우리보고 자꾸 이 집에서 나오라고 했을까요? 뭔가 사연이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이번엔 강은영이 나섰다.
"참, 근데 정PD님 아까 이곳에서 살인사건이 있었단 얘기는 뭐예요? 그리고 뭐 친구 어쩌고 하신 것 같은데, 저는 처음 듣는 얘긴데,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어요?"
스텝들의 눈길이 일제히 해일에게 집중되었다. 고개를 숙인채 잠시 망설이던 해일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들은 대로입니다. 얼마 전 바로 이 흉가에서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신문에서 보았을 겁니다. 강원도 어느 지역에서 세명의 신문기자와 사진기자가 짐승에 뜯기고 죽창에 찔려 죽었다며 한창 메스컴에서 떠들었던 사건 말입니다. 그 사건이 일어난 곳이 바로 이 곳입니다"
해일의 말에 스텝들이 술렁거렸다. 특히 강은영은 놀라서 소리를 지르려 다 가까스로 참았다.
"저.... 정말 이곳에서 그 끔찍한 사건이 일어 났다는 거예요?"
"아니, 그럼 출발하기 전에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친구 얘긴 또 뭐죠?"
"아직 경찰에서 공식발표는 하지 않고 있지만 저희 방송국 보도국에 김한수 기자라고 있습니다. 그는 제 친한 친구입니다. 그 역시 이곳에 취재를 왔다가 똑같이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감독님의 후배로 김기자와 함께 이곳에 취재왔던 이창수라는 카메라맨 역시 그와 함께 살해 되었고...."
스텝들의 술렁임이 더욱 커졌다.
"미안합니다. 이런 사실들을 미리 얘기하지 못해서.... 하지만 행여라도 괜한 선입견들을 가질까봐 말을 하지 않은 겁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곳에 뭔가가 있다는 겁니다. 단순히 우리가 귀신이라고 부르는 그런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것인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는 바로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입니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해일은 이럴줄 알았으면 출발전 미리 얘기할걸 잘못 했다는 후회가 되었다. 침묵을 깨뜨린 사람은 의외로 김감독이었다.
"다들 새삼스럽게 왜들 그래? 지금 귀신이 무서워서 떨고 있는거야? 모두가 여기까지 귀신 찾으러 온 사람들 아니었어? 사실 나는 정PD한테 출발전 모든 얘기들을 들었다구. 그리고 그땐 별 얘기 아니었어. 괜히 여기와서 이상한 노인들 나타나 한번 휘젖고 나니까 엉뚱한 생각들을 하는거지. 어느 흉가나 집에 들어가지 말라는 사람 한명쯤 없는 곳 봤어? 그리고 사람 한두명 안 죽은 흉가봤어?"
김감독의 말이 끝나자 배영환이 나서서 분위기를 바꾸었다.
"김감독님 말이 맞아요, 괜히 쓸데없는 공상들 하지 말고 어서 일이나 합시다. 자, 다들 일어나요"
"그래요, 일합시다. 그나저나 저 비나 좀 그쳤으면 좋겠구만"
스텝들은 다시 주섬 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김감독과 박희철은 광으로, 배영환은 비닐에 적외선 카메라를 단단히 싼 다음 비가 쏟아지는 마당으로, 강은영은 김혜진과 함께 각 방을 돌아 다니며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그리고 해일은 이정우와 함께 전체를 돌아 다니며 촬영을 진행해야 했다. 정각 자정이 되면 광에서 무녀 이정란이 귀신을 부르기로 되어 있었다. 자정까진 10분 밖에 남지 않았다.
* * *
"반장님, 길이 완전히 엉망이예요. 온통 진흙탕이라구요"
앞장 서서 걷고 있던 박호철이 소리쳤다. 빗소리가 워낙 커서 바로 앞에서 외치는 그의 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박호철의 말대로 험한 산길인데다 온통 진흙탕이라 한 걸음 떼어 놓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박호철의 뒤에 구반장이 있었고 그 뒤를 혜경이 따르고 있었다. 혜경의 손에 들린 렌턴 불빛이 비틀거리는 그녀의 움직임만큼이나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박순경, 그 쪽 말고 아랫쪽으로 돌아가! 낙엽들이 쌓인 쪽이 훨씬 걷기가 나을거야"
구반장이 목청껏 소리쳤다. 하지만 낙엽이 있는 아래쪽도 걷기가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세사람은 번번히 아래쪽으로 미끄러지곤 했던 것이다. 결사적으로 산길을 오르는 구반장의 뒷모습을 보며 혜경은 많은 혼란을 느꼈다. 구반장이 이번 사건에 대해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반장은 왜 자신이 흉가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그토록 싫어 했을까? 구반장의 얼굴에 나타났던 그 공포와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엉뚱하게도 무기를 휴대하라는 이유는?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혜경의 가슴을 두들겨 댔다. 혜경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구반장을 향해 소리쳤다.
"반장님, 말씀해 주세요. 흉가에 어떤 비밀이 있는 거죠? 반장님은 이번 사건에 대해 뭔가 알고 계시죠?"
"..............."
"말씀해 주세요"
"목촌리 사건을 취재하던 신문기자나 취재기자들이 모조리 죽어 나간걸 알고 있나?"
"네, 알고 있어요"
"그들이 왜 죽었는지 알아? 목촌리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길 싫어해. 세상이 목촌리에 대해 알려고 하는 걸 아주 싫어 한다구! 그래서 그들이 죽은 거야. 목촌리를 세상에 드러내려 하는 자들은 모두 죽게 되어 있어!"
"그게 무슨 말이세요?"
"목촌리에는 살아있는 유령들이 있어"
"유령이라니요? 전 도대체....."
"그래, 그들은 아주 끔찍한 것 들이야. 그들은 목촌리 사람들 모두가 죽기를원하는 거야. 그것도 아주 교활한 방법으로, 결코 서두르지 않고..... 오랜 세월 고통 받다 죽기를 원하는 거지"
구반장은 도무지 알아 들을 수 없는 얘기들을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이제 목촌리 주민들은 그들의 존재와 자신들의 삶을 운명으로 체념하고 있어. 아무도 거기에 대해 새삼스레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지. 보통 사람들이 그저 운명처럼 기다리는 죽음을 그들도 기다리는거야. 다만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지"
"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지. 목촌리가 바로 그래. 아주 오래전부터 그들은 목촌리에 존재해 왔어. 그들은 목촌리를 알려고 하는 사람들과 목촌리 주민들 모두를 죽이는거야. 나 또한 머지않아 그들이 데리러 올거야. 나도 목촌리 출신이거든!"
"반장님이 목촌리 출신이라구요?"
"목촌리 사람들의 운명은 둘중 하나야! 어느날밤 예고없이 찾아온 그들에 의해 죽음을 맞던지, 정신병자가 되어 모든걸 잊어버리던지......"
"도대체 그들이 누구예요? 왜 막지 않는거죠?"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야. 그들은 목촌리 사람들의 삶속에서만 존재하거든. 아마 내 모든 얘길 들으면 윤형사 역시 날 정신병자 취급을 하겠지만 오늘밤 무사히 살아남는다면 모든걸 얘기해 주지. 그땐 윤형사도 이미 목촌리 주민과 한배를 타고 있을테니까. 지금 몇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