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길어질것 같아 결론부터 적자면, 내가 맡았던 보직들은
[통신병, M60사수, M203사수, MG50사수, 80무반동총사수, 81mm박격포 부사수, 3종계원, 물탱크병, 보일러병, 소총수]
였다.
나는 군대를 전역하기 전까진 군대생활이란게 원래 이렇게 여러가지 일을 해야하는 곳인 줄 알았다.
그러나 전역을 하고 다른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유난히도 여러가지 보직을 맡아 했던 터라 한번 글을 쓰고자 한다.
고향이 경남 김해였던 나는 근처 부산의 대학으로 들어가 친구들가 죽자 살자 부어라 마셔라 생활을 반복하던중..
술김에 입대신청을 하고 입대신청을 한지 정확히 일주일만에 군대를 입대하게 된다.
39사단으로 신청을 하여 후방으로 배치될 것을 노렸었는대..
후방은 후방인대.. 최후방인 해안경계초소에 자대배치를 받게 되었다.
연대라는게 사단과 같이 있는 연대가 있는가 하면 사단에서 빠져나와있는 독립연대가 있다.
우리 연대가 그랬었고.. 대대라는 것도 역시 연대에서 빠져나와있는 대대가 있다.
우리 대대가 그랬었다. 그리고.. 중대도 역시 대대에서 밖으로 빠져나와있는 대대가 있는대
우리 중대가 그랬었다. 그 중대에서도 소초에 투입되어 있는 소대로 배치를 받게 되었다.
후에는 소대 인원이 꽤 늘어서 20명 가까이 되었지만. 내가 갔을때는 소대 인원이 다 합쳐서 11명이었다.
분대가 4개있었는대.. 각 분대별로 2명 3명씩 있었고. 취사병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소대는 소초에서는 상황병으로.. 중대에 후에 복귀하게 되면 읿반 소총수로 복무하게 되어있었다.
우리 소초는 이론적으로는 4개의 소대가 각각 1개의 임무를 하루씩 돌아가면서 맡아야 했는대..
매복, 수색정찰, 해안기동타격대, 검문소 이렇게 각각 분대장 포함 5명씩 맡아서 움직이게 되어있었다.
그런대 앞에도 말했듯이 우리부대는 취삽병을 제외한 10명 그중에서도 2명은 상황병이었다.
즉 8명이서 저 4개의 임무를 모두 맡아서 해야 했는대...
분대장 4명은 각 임무에 하나씩 들어가야 하므로. 남은 4명과 분대장 하나 하나 씩이 모든 임무를 맡아서 한동안 처리했었다.
매복이란게 해진후 48분후에 들어가서 해뜨기전 48분에 나와야 하는대.. 수색정찰은 해뜨기전 48분에 투입을 해야했다.
즉, 매복 갔던 분대가 복귀를 하는게 아니라 바로 수색정찰을 하러 투입하였고... 남아있는 분대장들과 상황병1명이서 아침 청소밑 모든걸 맡아서 했었다.
여튼 이런 인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한명이 하나의 보직으로는 모든것을 커버할수 없었던 관계로 여러가지 보직을 맡아야했다.
일단, 각 소대의 막내는 무조건 기관총사수 M60사수를 해야한다.
그리고 M60사수를 어느정도 하게되 면 자동으로 소초에 있는 MG50사수도 맡아야 했으며,
우리 분대는 분대장과 나 둘뿐이었기때문에 내가 통신병의 역할도 수행해야했다.
각종 통신용어며, 빵통 들고 야전선도 설치하러 돌아다녀야 했으며, 망할 잘 터지지도 않는 구식 P77도 잘터지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조그마한 소초에 있을껀 다있어서. 3종계원도 맡아야 했으며, 3종계원은 무조건 소초 물탱크와 보일러를 같이 맡아서 해야했다.
후에, 상병달때쯤 되어서야 M60을 땔수가 있었으며, 후에는 유탄사수인 M203사수를 맡아야했다.
M203사수를 하게 되면 자동으로, 소초에 있는 80mm 무반동총의 사수도 해야 했으며,
위에는 말을 안했지만 매복투입시 조명탄을 위해 파견나온 81mm박격포 부사수 역할도 어느정도 할줄 알아야했다.
(원래는 사수 부사수 두명이 와야하지만 사수 혼자 떵그러니 포만들고 파견들어올때가 있었으며, 그때는 소대 인원을 한명 붙여서 부사수 역할을 시켰다.)
거지 같은 사수를 만나 한번 포병은 영원한 포병이라니 어쩌니 81mm 차렷포를 혼자서 할수있을때까지 괴롭혔다.
여튼, 이 거지같은 모든 과정을 겪고나면 꿈에도 그리던 1111 소총수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분대장이 기관총을 들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