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도시의 외곽, 창고로 쓰이는 건물 안에 두 남녀가 엉켜 붙은 체 누워 있었다. 밤이 주는 효과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안에는 불빛이라곤 없어 주변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유일하게 비춰지는 조명은 오른쪽으로 뚫린 창으로 들어오던 손바닥만한 달빛이었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둘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단지 끈적거리는 흐름과 귀를 자극시키는 신음만이 남녀의 상태를 말해줄 뿐이었다.
“당신의 몸을 좀더 자세히 보고싶어. 이렇게 어두운 데서는 사랑을 나누기엔 편하지만 시각적인 쾌감도 놓치기는 싫거든.”
“그래요? 오 짓궂은 사람이군요. 언제까지 시간만 끌 거죠?”
여자의 입에서 결코 싫지 않은 동조의 대답이 새나왔다. 그녀는 이제 곧 불빛에 드러나게 될 스스로의 자태를 생각하며 가슴을 요염하게 내밀었다. 남자는 미리 준비한 것인지 머리맡에 있던 초에 불을 붙였다. 불빛이 일렁이며 좀더 환하게 근처의 정경이 들어왔다. 여자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시원한 전형적인 도시의 미인형이었다. 긴 곱슬머리가 어깨를 넘어 가슴까지 흘러내렸다. 스커트는 무릎위로 치켜져 거의 허벅지까지 올라가 있었는데 반듯하고 미끈한 두 다리는 대리석의 조각처럼 차갑고 아름답게 빛났다.
“역시 완벽하군. 엄청난 작품이 나올 거 같아.”
남자는 무엇 때문인지 돌연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중얼댔다. 여자를 응시하던 남자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그의 눈에 섬광이 비쳤다. 그것은 어떤 일을 예상하는 신호였지만 이제 곧 벌어질 흥분의 나락에 빠져있던 여자의 눈에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른체 발갛고 도톰한 입술을 혀로 축였다.
“뭘 기다리는 거죠? 내가 이렇게 있는데…….”
농후한 그녀의 부름에 남자가 상체를 숙였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목덜미를 스칠 때마다 그녀의 입에서 기분 좋은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남자는 그녀가 만난 어느 누구보다도 정열적이었으며 섬세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몸에 접근하기 쉽도록 다리를 살짝 벌리며 두 손으로 남자의 허리를 감쌌다. 동시에 남자가 즐겨 쓰는 강한 향수의 냄새가 후각을 자극해오며 전신을 휘감았는데, 그녀는 흥분과 긴장으로 허벅지와 가슴에 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몸 전체가 나른해지고 사지가 나긋나긋해져 갔다. 여자는 점점 몸이 달았지만 남자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대신 젖어있던 혀로 이미 적셔놓은 여자의 귀와 귓불에서 내려오는 목선을 자극 시키며 한 손을 다리 사이로 밀어넣었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깊은 곳을 향해 접근해 갈수록 그녀의 입술이 열려지며 얼굴엔 짜릿한 쾌감이 번져갔다.
“아……. 나 못 참겠어요.”
마침내 여자가 신음을 내며 목을 뒤로 젖혔다. 그때였다. 남자는 준비해둔 칼로 그녀의 목을 깊숙이 찔러 배까지 부욱 그어내려갔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빠르게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블라우스 조각들이 새하얀 깃털이 되어 사방으로 흩날렸다. 열려진 살갗 속으론 내장들이 구불거리며 흘러나왔는데 남자는 아직도 김이 나는 그것들을 마구 휘저으며 거칠게 뜯었다.
“꺄아악!”
찢어질듯한 괴성이 창고 안에 울려 퍼지며 여자가 미친 듯이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순식간에 그녀의 피는 살갗을 뚫고 나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분수처럼 뿜어지는 피가 벽과 천장 그리고 반쯤 젖혀진 커튼에 튀어 비처럼 흘러내렸다.
남자의 얼굴에 괴기스러운 희열이 번져갔다. 그는 여자의 피가 자신의 몸에 튀어 벌겋게 바뀌는지도 아랑곳하지않고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웃으며 그녀의 몸 이곳 저곳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밤은 이렇게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 순간에도 고요한 정적에 쌓여 있었다. 푸들거리던 여자의 손이 마지막 발악을 하듯 남자의 몸을 잡으려다 추욱 늘어졌다. 크게 부릅뜬 두 눈만이 그녀의 처절한 심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만! 좋았어.”
어디 선가 신호음이 들려오자 칼을 쥐고 있던 남자가 행동을 멈췄다. 여자의 숨은 이제 완전히 멎어 고깃집에 걸린 고기처럼 짓뭉개져 있었다. 그 주검이 사람이라고 알게 해준 것은 긴 머리카락 뿐이었다. 그것도 물들어 흡사 붉은 실 타래 같았지만……동시에 주변이 환해지며 미리 설치된 조명이 사방에서 켜졌다. 구석에서 웬 남자가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뒤쪽에도 두 명이 더 있었다. 그들은 이 끔찍한 살인의 진실을 아는 것인지 흥분된 얼굴로 서로에게 다가왔다.
“이번 건 어땠어? 제대로 찍은 거야?”
칼을 쥐고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피 묻은 손을 바지에 쓱쓱 문질러 닦았다. 카메라를 든 남자가 히죽 웃으며 그것을 그에게 건넸다.
“어느 정도는 완성이야. 하지만 여자 비명이 너무 짧았어. 죽기전의 시간을 좀 더 끌었어야 했는데……내가 늘 말하잖아. 급소 있는 곳에서 되도록 멀리 찢으라고. 이렇게 치면 저 번 주에 찍은 필름이 훨씬 나았어. 40분 정도는 끌다 뒈졌으니까. 금방 죽여서 무슨 재미가 있다는 거야? 요즘 사람들은 더 긴 것을 원해. 그들은 비디오 앞에서 못 본다는 듯이 호들갑을 떨면서도 눈은 화면 안에 고정 되 있지. 그러니 자극을 줄 만한걸 찾아봐. 예전에 찍었던 게 정말 죽여줬었는데……끝내주는 필름이었지.”
남자는 뭔가가 떠오르던지 반대편 벽을 보며 조용해 지다 말을 이었다.
“그런 필름은 다시 나오기 힘들 거야.”
“뭐? 그 3시간 가까이 버티다 죽은 계집앨 말하는 거야? 엄청나긴 했지. 애들이 다 달려들어 생고생을 했잖아. 하지만 오늘 만든 필름엔 시각적인 효과를 넣고 싶었다고. 몸매가 끝내주는 여자의 나신이 피로 얼룩지는 모습도 보기 쉬운 건 아니거든. 더구나 분수처럼 터지는 피도 볼만하잖아? 어쩔 수 없어. 그 정도로 피가 박진감 있게 나오려면 골로 가는 시간도 줄여야지.”
남자는 자신이 한 짓에 만족하는지 으스대며 이미 널브러진 여자의 시체에 눈을 고정했다. 듣고있던 반대편 사내가 피식 웃고는 어깨를 으쓱 였다.
“그래. 너 잘났다. 한편 완성 했으니 필름은 오노에게 넘기고 우린 저 뭉개진 시체나 처리하자 구.”
이미 도륙된 여자의 몸이 다시 한번 잘게 잘라져 비닐 봉지에 넣어졌다. 이들은 스너프 필름(배우가 촬영 중에 실제로 죽임을 당하는 영화의 한 특정한 장르)을 제작하는 이들로서 이름은 민석, 형진, 진영, 철진이었는데, 네 명이 한조로 각기 다른 분야를 담당했다. 채팅이나 부킹으로 여자를 유혹해 촬영장소인 창고까지 데려오는 게 민석이었고 진영과 철진은 소품을 준비하거나 조명을 담당했는데 때론 영화에 참여하기도 했다. 형진은 위치 좋은 곳에서 살인의 장면을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았으며 이렇게 제작된 필름은 중개상인 오노에게 넘겼다. 그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비열했고 야비했지만 필름을 구하는 노력만은 높이 쳐줄 만했다. 벌써 1년 동안이나 그에게 10여 편의 필름을 팔아 넘겼던 것이다. 하지만 사기를 많이 쳐서 좋은 거래 상대라곤 볼 수 없었다. 그가 울상을 짓거나 분명 돈을 받지 못했는데도 받았다고 주는 연기는 가히 최고였다. 하지만 별다른 거래처가 없었기에 이들은 꾸준히 그에게 만들어진 필름을 넘겼다.
잘게 다져진 조각들은 이제 예전의 모습을 잃고 완벽한 동물의 사료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 부대자루를 들곤 근교의 농장에 가 돼지들의 사료로 주어버렸다. 돼지의 먹성은 엄청나서 몇 시간만 지나면 시체 하나를 너끈히 처리하는 것이다. 벌써 이런 짓이 오래 되었지만 주인은 눈치 체지 못했다. 어스름한 새벽에 오는데다 어느 때고 돼지들의 먹성은 결코 줄어들 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추가로 생기는 사람 고기에 맛들린지 오래 였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깔끔하게 살인의 증거를 없앴다.
“오늘은 또 어떤 대상이 걸리려나.”
민석은 채팅 방을 개설해놓고 상대를 기다렸다. 얼굴이 못나거나 몸매가 나쁜 것은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보기엔 좋겠지만 어차피 나중엔 처참이 찢겨져 한낱 고깃덩이가 되는 게 아닌가. 그보다는 걸려들기 쉽고 남자의 요구를 잘 받아주는 그런 여자가 괜찮다. 이를테면 신분이 까다롭지 않고 쓸데없이 떠벌리지 않는 자유분방한 여자들 말이다. 개중엔 남자와의 관계를 밝히기 싫어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밀스러운 밤을 지새고 돌아오려는 생각의 여자도 많다. 그런 여자가 걸려야 꼬리 없는 필름이 제작되는 것이다.
“잘 되 가고 있냐?”
형진이 다가와 화면 안을 바라봤다. 민석이 피식 웃고는 눈짓을 보냈다.
“23살인데 데리러 와 달라는군. 친구하고 같이 있다는데.”
“그래? 그야 문제될 거 없지. 둘 다 나오라고 해. 우리가 모시러 간다고 말이야.”
넷 중 가장 말주변이 좋은 민석은 여자에게 인기도 많았다. 게다가 얼굴도 잘생긴 편이라 그가 내던지는 마수에 걸리지 않는 여자는 별로 없었다. 그는 몸에 배인 매너와 친절로 상대를 완벽하게 끌어오는 희대의 살인마였다. 불행히도 여자들은 그의 이런 점을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해서 데려온 여자는 구성한 스토리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다. 민석 혼자 죽일 수도 있고 여러 명에 의해 더 잔인한 장면을 만들어 볼 수도 있었지만, 주로 고통은 최대한으로 주며 숨은 되도록 오래 붙여두는 방법을 택했다. 일부의 변태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성교를 하다 죽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살인 자체에 대한 충격에 더 초점을 뒀다. 급소만은 철저히 피해 눈을 도려내거나 신체의 일부를 자르는 것, 혹은 인대만을 골라 끊어놓는다던가 살가죽을 최대한 얇게 뜨는 일 따위 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손목이나 발목을 자르고 출혈을 막기위해 잘린 상태로 봉합 시키기도 했는데 시간이 걸리고 손이 많이 가서 그렇지 필름의 가치는 최고로 높일 수 있었다. 봉합은 의대를 다닌 진영이가 맡았는데 마취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거라 그 분야에 박식하다 해도 피해자에겐 아무런 고통도 덜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네들에겐 죽음 같은 끔찍한 고통이 마지막 숨을 놓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해 본건 처음 일을 시작하고 나서 두 달 정도에, 강제로 끌고 온 여자를 상대로 한 살인 뿐이었다. 그때의 영화 길이는 무려 3시간이 넘었는데 비디오 두 편으로 나눠 전부 100만엔을 받았다. 로프로 묶고 단순히 사지를 절단하는 방법은 이제 너무 구식이 되 버렸다. 두세 번 써봤지만 청중들은 더 큰 자극을 원했다. 인간이란 동물은 묘해서 겉으로는 잔인성을 욕하고 거부하면서도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는 은근히 동조하며 거기에 빠져드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이중성이며 더러운 면모다. 어쨌든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된다는 소리다.
“가식적인 것들, 겉으로는 윤리니 뭐니 주절대면서도 속으론 볼 거 다보잖아. 잔인하고 선정적인 것을 좋아하면서, 그것에 즐겨 심취하다가도 사회적으로만 나가면 금방 안면을 바꾸고 스스로는 그런 인간이 아니라 주장하며 상대방을 비방하지. 안방에선 테이프를 숨겨두고 입으로는 필름 만든 인간을 잡아 족치라고 욕하니 이 얼마나 웃기는 인간의 심리인가.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냐?”
형진의 중얼댐에 가죽 파카를 걸치던 민석이 고갤 끄덕였다.
“다 그렇지. 안 그런 인간이 얼마나 되겠냐. 난 제일 꼴같잖은 것들이 겉과 속이 다른 놈들이더라. 속으론 은근히 더 잔인하고 자극적인 쇼를 보여주기 원하면서…… 실재로도 그렇지. 역겹다고 욕하면서도 끝까지 보잖아. 그리고 나서는 막판엔 문제가 깊네 어쩌네 하며 저 혼자 바른 인간인 척을 하거든. 개 같아, 그런 것들, 하기사 우린 돈만 벌면 되는 거 아냐. 인간의 심리 따위는 영구미제로 남겨두자고.”
형진은 갖가지 고문도구와 살인의 기구가 있는 창고 안을 음울한 눈으로 바라보다 씁쓸히 웃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비웃음이며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자조였다.
“난 그런 인간들이 더러워. 나도 더럽지만 결국 마찬가지야. 살인을 하는 자나 그 자에게 살인을 하라고 부추기는 자나 다 똑같은 거지. 스너프에 대한 호응이 없었다면 누가 이딴 것을 만들고 앉았겠냐. 하지만 난 내 자신이 점점 악마가 되 가고 있는걸 느낀다. 이젠 인간이 죽어가는걸 보면 묘한 쾌감까지 생기니까.”
“살인도 중독이라잖아. 한번 하면 빠져 나오지 못해. 살인마가 괜히 생기는 줄 아냐. 남을 죽일 때 오는 오르가즘이 섹스못지 않다는 거야. 이건 엄연한 심리학적 분석이라고. 물론 그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는 있지.”
얼마 후 그들은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리고 접선지에서 두 명의 아가씨를 태우곤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나 다시 창고에 도착했다.
“여기야. 귀여운 아가씨들. 이곳이 우리의 비밀스러운 아지트지.”
민석이 창고 문을 열며 불을 켰다. 완벽한 방음에 외부와의 차단, 근처엔 돼지농가와 소수의 집들밖에 없어 어떤 일을 벌이든 적합한 장소였다. 단지 기분 좋은 흥분을 꿈꾸며 온 이 아가씨들과는 그 방향이 달랐지만……여자들이 성욕에 대한 오르가즘을 기대한다면 이들에겐 살인에 대한 욕구와 더 좋은 작품을 만들려는 프로적 희열이 존재한다고나 할까. 민석은 마지막으로 들어오던 형진에게 눈짓을 하곤 미진이란 여자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올해 23살, 대학에 재학중인 그녀는 서울에서 홀로 자취를 하고 있었다. 따라온 친구가 그녀와 같은 과에 다니는 주영이었는데 둘 다 술에 절어 뭐가 뭔지 구분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생선눈깔처럼 풀린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연신 <어머>하는 감탄을 내뱉었다.
“어머, 여기 너무 근사하다. 이런 데서 뭐 할건데? 아이, 나 괜히 떨려.”
“여기 민석씨하고 형진씨가 쓰는 창고? 작업실로 써도 근사하겠다. 매트리스도 깔렸네? 침대도 있고……우와, 정말 여기 사나 봐? 나도 여기서 살아도 돼? 우후후, 농담이야. 하지만 오늘은 여기 있어도 좋겠는걸.”
미진의 말에 주영도 맞장구를 쳤다. 만날 때만 하더라도 조용했었는데, 오는 길에 목이 마르다 해서 캔 맥주를 두어 개쯤 주었더니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 어느 정도 내려앉은 취기에 제대로 발동이 걸린 모양이다. 그녀는 한술 더 떠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침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 몸을 기댔다.
“이건 누가 자는 침대야? 음……형진씨인가? 아님 민석씨? 음후후, 아마 형진씨가 쓰는 침대일거 같다. 하지만 이불은 없네. 왜 이불은 안 보이는 거지?”
당연히 이불은 엎었다. 침대에 깔아둔 매트리스 위에도 철저하게 비닐을 씌워 피가 번지는 것을 막게 했다. 물건을 담아두는 장롱을 봐도 이불이나 천 쪼가리 대신 뻣뻣한 공업용 비닐만 잔뜩 쌓여 있을 뿐이었다.
“나 추운데 이불 같은 거 없어? 아니면 자기들이 옷이라도 벗어주던지? 체취가 진하게 묻은 옷일수록 좋다고. 후후,”
주영의 항의는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못내 불만인지 비닐커버 위에서 뒹굴며 추운 듯 두 팔로 어깨를 비벼댔다. 지켜보던 형진의 얼굴에 차가운 조소가 흘렀다.
‘멍청한 것들,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잘도 풀어지는군. 그 느슨함이 목을 노리는 칼날이 되어 날아올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요즘 것들은 너무 쉬워서 탈이라니까. 어떤 놈이든 상관 없다 이거인가? 그저 아무 놈팽이나 수작을 걸면 가리지 않고 몸을 주는군. 너희들의 그 더러운 방식이 삶을 단축 시킨 거다. 그러니 죽어도 나를 원망하진 마라.’
이 일을 하고부터 형진의 내부에 자리잡게 된 뒤틀린 감정은 그 자신이 전지전능한 신이 되었다는 착각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도 죽일 수 있고 감쪽같이 시체를 없앨 수 있다. 고로 나는 위대한 신이며 생명을 틀어쥔 존재다> 이런 식의 이퀄이 성립되는 것인데 희생자에 대한 잘못된 합리화도 한몫 거들어 최근엔 죄의식조차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문란한 성 생활과 아무 남자고 따라오는 그들의 생활 패턴만으로도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그는 묵묵히 고갤 돌려 놓여진 비디오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민석은 미진의 어깨에 두르고 있던 손을 아래로 내려 그녀의 가슴을 스치듯 훑어내렸다. 미진이 잠시 몸을 움찔했으나 별다른 거부는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기운 없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민석의 허리에 팔을 휘감았다.
“민석씨, 나 어지러워. 여긴 정말 뭐 하는 데야? 자기 사업한다더니 이런 데서 하는 거야?”
겉 모습이 화려하고 말쑥한 민석은 그녀에게 자신을 밴처기업의 사장이라 소개했다. 생각 있는 여자들은 의심도 많았지만, 쉽게 오는 여자일수록 먹음직한 미끼에 속아 뭔가 자신에게 득이 되지는 않을까를 기대하며 잘 보이려 하기에, 이 간판은 많은 여자들에게 통했다. 미진은 유능한 남자와 인맥이 트인걸 기뻐하며, 유혹하듯 허리에 댄 팔을 바지 사이로 옮겼다. 아이쉐도우를 짙게 바른 그녀의 눈이 민석의 아랫도리에 고정 되 가늘어지더니, 입술이 얼굴에 닿아왔다.
“내 말에 대답 안해줄거야?”
“조금 있으면 뭐 하는 곳인지 확실히 알게 될 거야. 그때까지 재미있는 게임이나 해볼까?”
“게임? 무슨 게임? 재미있는 거야?”
돌연한 민석의 말에 미진이 고갤 갸웃거렸다.
“보면 알아. 아주 기분 좋고 짜릿한 자극이지. 왜? 관심 있어?”
“자극? 그런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어떤 것에 대한 자극이지? 아하, 자기 왠지 의심스러운걸.”
“기대하라고. 평생 잊혀지지 않는 밤이 될 테니까.”
그는 침대로 걸어가 그 밑에 숨겨둔 밧줄과 노끈을 꺼냈다. 주영은 아예 침대 위에 드러누워 천장만 보며 깔깔대고 있었는데 민석이 오자 곁에 오라는 식으로 셔츠자락을 잡아 당겼다. 그는 거의 힘이 들어가 있지않은 여자의 손을 위로 올려 침대 기둥에 강하게 묶었다. 그리고는 똑 같은 방법으로 발목을 하단 기둥에 묶었다.
“민석씨? 이거 뭐 하는 짓……?
주영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눈을 치켜 떴다. 아직 확실하게 의식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 눈동자엔 어렴풋한 불안 같은 게 깃들여 있었다. 민석은 그녀의 얼굴 쪽으로 상체를 숙이더니 하얀 볼을 쓰다듬었다. 부드럽지만 차가운 살갗이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귀에 입술을 대곤 작게 소곤거렸다.
“이런 얼굴을 찢어놓아야 한다니 가슴이 아프군. 아직 창창한 나이에 생각지도 못한 죽음을 맞게 되다니 꽤 불행한 일이지. 그저 운이 안 좋았던 거야. 더 자세하게 말한다면 아무 사내나 무방비로 따라온 네 자신의 잘못된 처신 때문이겠지. 마지막이니 한번 품어주고도 싶지만 오늘 필름은 철저한 살인이라, 미안하군.”
“뭐?”
“게다가 개인적으로도 난 여러 사내를 거친 여자에겐 취미가 없거든. 그건 그저 고깃덩이로 밖에 보이지 않아. 잘게 다져져서 결국엔 돼지 우리 속으로나 버려지는 고기 말야.”
“미, 민석씨,”
“그나마 술에 취한걸 다행으로 여기라고. 술 기운이 고통을 덜어줄 테니까. 뭐 피가 빠지기 시작하면 왜려 불리하긴 하겠군. 체온이 급속하게 떨어질 테니……하지만 다 자기 팔자 아니겠어?”
“그, 그게 무슨?”
주영은 분명 뭔가가 잘못 되감을 느꼈다. 환상을 헤매던 의식이 점점 돌아오며 여기저기서 공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사지가 묶여있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가 미진에게 도움을 청하려 할 때 구석에서 아주 소리없이 두 명의 사내가 걸어 나와 미진을 포박하기 시작했다. 검게 쳐진 커튼 뒤에 숨어있던 진영과 철진이었는데 그들을 보는 미진은 거의 저승사자를 보는듯한 기분으로 부르짖었다.
“왜, 왜 이러는 거죠! 당신들은 누구에요?”
놀란 미진이 두 팔을 엉성하게 내저었다. 하지만 기운이 없어 어려웠고 밖을 향해 소리쳤으나 목소리는 기대만큼 크게 울려주지 않았다. 크게 외치고 있다 생각한 말들은 입구에서 작아져 맴돌 듯 사라져갔다. 그녀의 의식은 너무 취했고 사방은 흐릿하게만 보여 모든 게 몽롱하게 느껴졌다. 근처에 자기처럼 묶인 주영이 애처로운 얼굴로 이편을 바라보는 게 보였다.
“민석씨! 아, 미, 민석씨!”
미진이 이번에는 민석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돌아선 그의 얼굴에 내려앉은 서늘함이 이들과 한 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미진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거놔요! 날 풀어달란 말이에요!”
두 명의 여자는 각기 포박된 상태로 침대와 매트리스를 차지한 체 누워있었다. 침대엔 주영이 사지가 뒤틀린 체,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던 고개로 바닥을 보고 있었고 미진은 그 침대 아래의 매트리스에 손목이 뒤로 돌려진 자세로 비스듬히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민석은 진영과 철진과 함께 날이 시퍼렇게 선 칼날을 만지작대며 형진이 돌리는 카메라에 눈을 맞추고 있었다.
“아주 좋아. 화면은 잘 잡혔어. 밝기도 적당하고, 그럼 시작하지.”
피로 얼룩질 끔찍한 살인을 지시하면서도 형진의 얼굴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마치 눈 앞에 펼쳐지는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덤덤하게 카메라를 돌렸다.
“이, 이것 봐요?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죠? 돈을 얼마든지 드릴 테니 제발……”
“돈 같은 건 필요치 않아. 아직도 파악을 못하셨나? 우린 돈이 목적이 아니라는 걸.”
민석은 찬 웃음을 흘리며 뾰족한 칼끝을 주영의 눈 옆에 갖다 댔다.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다가 그대로 고정됐다. 숨막힐듯한 공포와 끔찍한 상상이 뒷덜미를 휘감으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주영은 희끄무레해진 눈으로 얼굴에 닿은 칼날의 돌출을 무시무시한 정적 속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깜박이는 순간 쇠붙이의 따가운 느낌이 볼을 찢으며 들어왔다.
“꺄아악!”
찌이익 하는 소리와 살갗이 벌어지며 선혈로 이루어진 긴 칼자국이 생겼다. 방울방울 생겨나던 피는 틈새를 비집고 나와 길게 흘러내렸다. 목선을 적시던 피가 목덜미까지 돌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벌어진 살 속으론 세포며 피질들이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는데 민석은 그것에 손가락을 넣어 좌우로 헤집었다. 무표정하고 담담한 얼굴로, 그가 후비는 것이 간을 맞추기 위해 휘젓는 소금물쯤 된다는 투로 말이다. 깨끗하고 아름답던 여자의 얼굴은 금새 보기흉한 가면처럼 너덜너덜해져 갔다.
“으아아악!”
주영이 그 엄청난 아픔에 몸부림을 쳤다. 그녀의 요동에 침대가 들썩거리며 밧줄이 손과 발을 끊어놓을 듯 압박했다. 꽉 쥐어진 손목의 힘줄이 금새라도 튀어나올 듯 하얀 살결 위에 시퍼렇게 새겨졌지만 밧줄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미 갈라진 살갗 사이로 피가 거세게 분출했다.
“날 놔! 이거 놓아달란 말야! 이 나쁜 자식들아!”
얼굴이 피범벅이 된 주영은 악귀와 같은 형상으로 악다구니를 썼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죄없는 자신을 멋대로 가학한 것에 대한 증오가 컸다.
“꺄악! 뭐 하는 거에요? 살려줘요. 주영일 풀어줘요! 우릴 놓아주세요!”
지켜보던 미진도 제 정신이 아니었다. 포박이 된 터라 몸은 부자연스러웠지만 입으로는 비명을 지르며 전신을 뒤 흔들었다. 남자들은 미진에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주영에게 모든 시선을 집중했다.
“저주 받을 놈들!”
공포와 미움, 그리고 두려움이 한데 섞인 눈으로 주영이 민석을 노려봤다. 그녀의 뺨은 이제 하얀 광대뼈가 드러날 지경이었다.
“나에게 왜 이래? 왜 이러는 거냐구!”
“예고한 대로 살인이야. 지금은 그 과정이고, 아까 말하지 않았나?”
쥐고 있던 칼을 빙빙 돌리며 민석이 웃었다. ‘악마가 웃는다면 저런 모습일까?’ 주영은 사지로 퍼져 나가는 공포를 떨치려 하며 소리쳤다.
“당신들……당신, 모두 미쳤어. 미, 미친 거야!”
“그래, 미쳤다고 할 수 있지. 자가로 해본 분석 결과에도 그렇게 나왔어. 미쳤다고. 하지만 상관 없잖아. 넌 이제 곧 죽을 텐데,”
“싫어!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싫어!”
“두려운가 보지? 차를 탈 때만 하더라도 이런 일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을 거야. 그저 맘에 드는 남자들하고 멋진 하룻밤이나 기대했을 테지. 그게 너희 일상이니까. 하지만 말야. 사람을 그렇게 쉽게 믿어선 안돼. 무작정 따라 온 게 잘못인 거야. 언제 무슨 일이 닥쳐올지도 모르는데 말이지.”
“설교 따윈 필요 없어. 날 풀어줘. 어서!”
“크크, 아직도 파악을 못하시는군. 넌 오늘 배우가 된 거야. 그리고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배우는 죽기 전까진 벗어나지 못하지. 그만 출연하고 싶다면 내게 좀더 잘 보일 필요가 있어. 하는 짓에 따라 더 빨리 끝내 줄 수도 있으니까.”
“미 친 놈, 넌 미쳤어! 너희들 모두 다 미 친 놈들이야!”
발악하듯 내지르던 비명에도 남자들은 반응이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비명을 유도하는 듯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주영을 보고 있었다. 민석이 피 묻은 칼을 수건에 문지르곤 그 예리한 칼날을 불빛에 반사 시켰다. 어른어른 비춰지던 칼날의 광체가 주영의 얼굴에 눈부신 섬광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덜덜 떨며 움직이지도 않는 입을 애써 움직여 쥐어짜듯 비명을 질렀다.
“사람 살려요! 우린 갇혔어요! 살려줘요!”
“좀더 크게 질러야지. 더 처절하게 해보라고.”
“살려줘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너무 작다니까. 천상 죽을 수 밖에 없겠는걸.”
“살려줘어……나를.” 주영은 점점 지쳐갔다. 적어도 지금 그녀가 지른 비명은 이제껏 질러오던 어떤 소리보다 컸으며 강한 염원이 담겨있던 것이었다. 어두워진 커튼이 젖히며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서너 명 아니……못해도 한명쯤은 들어와서 구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깊어지는 정적 속에서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녀는 죽음이 다가옴을 느꼈다.
카메라는 공포로 얼룩진 주영의 얼굴을 클로즈업 해서 찍어갔다.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있는 자의 처절한 몸부림과 이제 벌어질 살인에 대한 끔찍한 두려움, 형진은 그런 것들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촉각을 세웠다.
“살려줘요…….”
“크크, 소용 없어. 여긴 방음 시설이 되 있거든. 아무리 발광해봤자 오는 사람은 없다구. 그나 저나 새대가리 같은 계집이군. 내가 너였다면 구태여 그렇게 정신을 차리려고 발악하진 않았을 거야. 고통만 심해질 뿐이니까.”
“이 악마 자식,”
주영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농락한 민석에게 뼈가 깎이는 분노를 느꼈다. ‘내가 손이 자유롭기만 하다면 당장 너를 발기발기 찢어 죽이고 만다. 두고 보자. 오늘 내가 죽으면 귀신이 되서라도 네 놈들의 몸뚱일 내가 당한 것처럼 잘라버리고 말 거다.’
그녀는 이 같은 심정으로 두 눈에 핏대를 세웠다. 볼에서 느껴지던 통증은 전신으로 퍼져 불이 붙은 듯 타올랐다. 하지만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죽음은 이미 각오하고 있었고 살아남을 희망도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참을 수 없는 증오만이, 자신이 어찌하지도 못하고 당해야만 하는 증오만이 그녀를 미치게 했다.
“꽤 멋진 눈빛이군. 누군가가 생각나는 눈빛이야. 그게 누구더라. 오호, 그래. 예전에 뒈져버린 계집년의 눈이 너 같았지. 하지만 그 년도 이미 죽은 지 오래라고. 돼지 사료로 몸뚱이가 발기발기 찢겨져서 말야. 그보다는 다음 고통에 대비하라고. 꽤 출혈이 클 테니.”
민석이 비아냥거렸다. 그는 묶여있는 여자의 허리를 타고 앉아 연두 빛 상의를 들어올렸다. 소름이 돋은 가슴살이 불빛에 드러나며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내부가 그대로 노출됐다.
“뭘 하려는 거야? 저, 저리가앗!”
민석의 손이 가슴을 더듬자 주영이 또 다른 소름에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그는 성적인 욕구에 관심을 갖은게 아니었다. 가슴을 타고 내리던 예리한 칼날이 어깻죽지를 넘어 옆구리에 박혔다. 그리곤 팔을 끊어 놓을 듯 깊숙이 찔러 들어갔다. 곁에 있던 철진과 진영이 날카로운 톱을 들고 와 벌어진 틈에 대고 좌우로 톱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 의해 얼마 후 주영의 팔은 어깨에서 완전히 분리되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악, 으아아악!”
“마, 말도 안돼! 세상에, 이럴 순 없어. 이봐요. 이봐, 이봐요. 제발 날 풀어줘요. 날좀……부탁이에요. 뭐든 다 들어줄 테니 날 풀어줘요.”
옆에서 벌어지던 참담한 일을 보던 미진이 공포로 거의 넋이 나간 듯 풀린 눈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사정했다. 그녀는 주영을 놓아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피에 범벅이 된 주영은 그녀가 알던 친구라기보단 도륙된 고기에 가까웠다. 그저 자신만을, 아직 건드리지 않은 자신만은 그 상태 그대로 놓아달라는 강한 부탁을 하고 있었다.
“제발 살려줘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뭐든 뭐든 다 하겠어요. 제발요.”
자신도 똑같이 팔이 잘리고 살이 찢기는 고통을 당할지 모른다. 그것만은 어떻게 든 피하고 싶었다. 미진은 사내들이 주영을 마지막으로 이 말도 안 되는 살인의 욕구를 종결 시키기 바랬다.
“살려만 주세요. 그럼 뭐든 다하겠어요. 네?”
바닥에 떨어진 팔은 꼭 살아있는 것처럼 푸들거리더니 추욱 늘어졌다. 그것을 건드리던 철진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아직은 네 차례가 아냐. 아가씨 순번은 다음이라구.”
“하지만 난 돈이 있어요. 원한다면 내 몸이라도 드리겠어요. 그러니 제발……”
“기도나 하고 있어. 노력이 보인다면 자르는 부위를 줄일 수도 있으니까.”
“뭐, 뭐라 구요? 그런……”
‘안돼. 난 이런 데서 죽을 수 없어. 나만이라도 살아 나가야 해. 어떻게든……’
“아아아악!”
주영의 몸부림은 계속됐다. 끔찍한 고통이 전신으로 퍼져갔다. 날카로운 송곳이 후벼 파는 아픔이 살갗이 갈가리 찢기는 느낌이 사지로 전해졌다. 눈 앞이 노래지며 숨이 차 올랐다. 샘솟는 눈물은 피와 범벅이 되어 뭐가 뭔지 모를 상태가 되 버렸다. 그녀를 뚫고 나온 피가, 차마 사람의 몸에서 나왔다고 볼 수 없는 방대한 피의 물결이 내를 이루며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잘려진 팔, 아무 힘도 못쓰는 상태에서 그녀의 몸에 붙어있던 신체의 일부가 강제로 분리되 떨어져 버렸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증오, 그리고 공포와 미움, 이 모든 게 복합된 심정으로 주영이 부르짖었다. 하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출혈은 너무 심했고 그에 따라 의식도 멀어졌다. 몸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얼굴에 늘어붙어 있던 피가 끈적하게 말라 같다. 머리결에 닿는 축축한 핏물을 느끼며 어느 순간 주영의 동공이 허공에서 멈췄다.
“죽었군. 더 끌어줄걸 그랬나.”
민석이 여자의 몸을 툭 툭 건드리다 흥미거리가 떨어졌다는 듯 일어섰다. 형진은 카메라를 멈췄고 한숨 놓은 기분으로 앞으로 나왔다. 그때 조용하던 진영이 껴들었다.
“팔이라도 꿰매란 거야? 그렇게 까진 하고싶지 않아. 그건 한번으로 족하다고.”
날카롭고 어딘지 따지는 어투였다. 그는 질퍽한 땅을 구둣발로 밟다가 마네킹 조각 같은 팔을 들어 비닐 봉지 속에 집어넣었다. 얼굴엔 묘한 심기가 깔려 있었고 갑자기 기분이 상해버린 듯이 보였는데 민석은 그 점을 놓치지 않았다.
“진영이 넌 그 말만 나오면 불쾌해 하는구나. 그 계집애 얼굴이 생각 나기라도 하는 거냐?”
“내가 뭘 어쨌다고 이래. 니들이 요구한 거 아냐. 난 그 말을 들어줬을 뿐이고,” 그는 머뭇대다 내뱉듯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필름이 중요해도 그건 좀 잔인했어. 인간 이하의 짓이야.”
“웃기고 있네, 이미 죽은지 몇 개월도 더 된 년을 두고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 거야. 그 걸로 100만엔이나 받은 걸 모르냐? 우린 그때 몇 편치 영화를 찍어야 할 돈을 한번에 받았다고. 그거면 된 거야. 그년 생각은 잊어. 재수가 지지리도 없던 년이니까.”
“재수? 지금 재수라고 했냐?”
“그만, 너희들 모두 그만해. 다음 필름은 30분 후야. 바닥은 치우지 말고 그냥 내버려둬. 붉은색이 더 선정적이니까. 대신 저 시체는 치워두자고. 나중에 모아서 버리기로 하고.”
형진이 나서서 싸움을 말렸다. 하지만 진영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평소 조용하던 진영치곤 지나치게 흥분해 있었다. 마치 그는 뭔가 심하게 불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재수가 없던 년이었다고? 그래, 지지리도 재수가 없었지. 곱게 집에나 가려던 애를 강제로 끌어와 그 난도질을 했으니까. 그냥 죽여도 됐잖아. 이미 자른 팔을 봉합 시키고……거기다 피까지 먹이면서 스스로도 더럽다고 생각지 않냐? 그런 짓까지 해서 돈 벌어 먹으니 기분 좋디?”
진영은 바닥에 있던 기구들을 거칠게 발로 찼다.
“그럴 필요까진 없었어. 자르는 건 좋아. 그래, 나도 이 더러운 살인에 몸 담고 있으니 그것까진 뭐라고 안해. 내가 자초한 거니까 돈 벌겠다고 한 짓이니 짖어대진 않겠어. 하지만 손가락을 마디마디 잘라 다시 붙이고, 눈알을 꺼내 쪼개고, 크크, 그게 인간이 할 짓이냐? 더럽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시나?”
“미친 새 끼, 너 지금 그거 우리에게 하는 말이냐? 봉합은 니가 한 거야. 헛소리하지마, 이 자식아. 니 손으로 스스로 한 거라고!”
진영이 갑자기 미친 듯 머리를 내저었다. 엄청난 분노와 거부의 표시였다. 그는 두 팔로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부르짖듯 소리쳤다.
“젠장할, 난 그딴거 하고 싶지 않았어. 전혀 그럴 생각 없었다고. 니들이 시켜서 한 거지 내 의지는 아냐. 난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구. 그럴 목적으로 의대를 다닌 게 아냐. 돈 때문에 뒤틀리긴 했지만…… 그런 식으로 죽이고 싶지 않았어. 알아? 내 의지는 아니라고.”
다음순간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흐느꼈다.
“난 이러려고 다닌 게 아냐. 하고 싶지 않았어. 으흐흑,”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진영아, 너 무슨 일 있었냐? 잘 지내다가 갑자기 왜 이래?”
뭔지 모를 이상한 기분에 형진이 그의 어깰 두드리며 다그쳤다. 민석도 입을 다물었고 철진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눈알을 불안하게 굴렸다. 몇 분간 스스로의 감정에 빠져있던 진영이 몸을 떨며 나지막이 중얼댔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의사는 확실히 전해지는 어조로 말이다.
“나……. 나 그 애를 봤어.”
“뭐?” 형진이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잘못 듣기라도 하듯 되물었다. “그 애라니 누구?”
“그 애 말야. 우리가 죽였던 그 여자 애, 저번주부터 내내 나타났어. 없어지지도 않고 나를 괴롭혔어. 무서워, 나, 나는……”
“……”
“화장실에 가도 보였어. 창고 뒤에도 서 있었구, 자다가 눈을 뜨면 늘 내 옆에 있었어. 우리가 죽일 때 그 얼굴로 그 반쪽짜리 눈으로 나를 노려봤어. 흑, 아무리 해도 없어지지 않아. 죽을 것만 같아.”
“미친 자식, 이 새 끼 지금 뭐라는 거냐? 그럼 귀신이라도 봤다는 거냐?”
“조용히 해! 넌 가만있어. 진영아? 뭐라고, 자세히 좀 말해봐.”
민석의 말을 단칼에 자르고 형진이 무너지는 진영의 몸을 붙잡았다. 진영은 그간 버텨오던 자제력을 잃은 듯 약간의 착란상태에 빠져 있었다.
“정확히 5일전이야. 그 애가 내 눈에 비쳤던 게, 처음에는 나도 헛것을 본거라 생각했어. 죄책감이 커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었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그 여자 애, 분명히 살아 있었어. 그 흰 원피스 기억나? 그걸 입고 늘 내 뒤를 따라다니는 거야. 다 물들었지. 붉게, 붉게 물들었지만……그래, 발목도 둘 다 없었어. 또 머리는 피 범벅이 되 말라붙어 있었지. 아주 끔찍했어. 그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아.”
“그럴 리가,”
“아냐, 정말이야. 나도 꿈이라면 좋겠어. 몇 번이고 내가 잘못 본거길 바랬어. 근데……”
그가 추운 듯 몸을 떨곤 어깨를 비볐다. 그리곤 떠듬거리며 중얼댔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었거든. 그날…… 우리 필름 넘기고 술 먹고 헤어진 날. 잠결에 뒤척이는데 자꾸 몸에 뭔가가 닿는 거야. 이불도 아닌 축축하고 딱딱한 게, 난 그저 이불이 뭉친 거라고만 생각했어. 아님 베개거나, 그땐 너무 취했고 피곤 했으니까. 그런데 얼굴에 계속 끈적거리는 액체가 흘러내리는 거야. 내가 그것을 닦기 위해 손을 대는 순간 팔꿈치에 다시 딱딱한 물체가 닿았어. 침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있었던 거지. 그리고 눈을 뜬 순간……으흐흐. 누군지 알아? 내가 누굴 봤는지 아냐고? 놀랍게도 그 애가 있었던 거야. 얼굴이 너덜너덜해져 걸레처럼 되 버린 애가 한 쪽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더라고. 이마에선 계속 핏방울이 떨어져 내 얼굴을 적셨고 표정도 아주 차갑고 무서웠어. 그리고는 그 뒤부터 계속해서 내 주변을 맴도는 거야.”
“말도 안돼. 진영아, 너가 잘못 본걸 거야. 그 앤 죽었다고. 우리고 죽여서 시체까지 처리했잖아. 잊은 거야?”
“아냐, 돌아왔어. 그 애가 다시 왔다구.”
“너 괜히 겁주려는 거면 그만둬. 우린 할 일도 많고 아직 처리 못한 시체도 있으니까.”
“아냐, 아냐!” 진영의 의사는 단호했다. 그는 거칠게 머리를 저으며 연신 아니라고 소리쳤다.
“날 믿어줘. 거짓말이 아냐. 내가 미친 게 아니라고. 정말이야. 나, 난 무서워. 무서워 죽겠어.”
“진정해. 진영아,”
“그 여자 애, 그 애……”
진영의 눈이 커튼이 드리워진 곳을 향하더니 부르르 떨렸다. 그는 흉측스러운 뭔가를 마주치게 된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눈물을 찔끔 쏟았다. 그리곤 두 팔을 교차해 얼굴을 가렸다.
“지금도 같이 있어. 저, 저쪽에……우릴 보고 있다 구.”
“뭐, 뭣?”
형진을 포함한 일행들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저마나 넋이 나간 듯 했다. 죽은 여자가 살아서 돌아 왔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진영의 몸 상태가 너무도 분명히 <아니다> 란 신호를 보내주고 있었다. 그들은 떨리는 눈으로 진영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고 있다면 이미 여럿의 피가 번져 거뭇하게 퇴색된 낡은 커튼이 있을 뿐이었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하하, 이 자식 너 자꾸 구라 칠래?”
잠시 후 민석이 애써 아무렇지 않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얼굴은 웃는 표정이었지만 올라간 입 꼬리가 부자연스럽게 떨고 있었다. 모두는 말이 없었다. 누구 하나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소리없이 불어오는 바람처럼 공포가 그들을 엄습했다. 떠도는 공기 마다 무시 못할 괴기스러움이 충만해 있었다. 그들은 갑작스레 맞닥뜨린 이 기괴한 두려움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진영이 자식이 헛것을 본걸 게다. 그 계집앤 우리가 죽여서 시체까지 사료로 보내버렸는데, 다시 나타났다니 그럴 리가 없어. 걘 죽었어. 죽었다고.’
형진의 머리 속에서 암시가 수레바퀴 돌 듯 반복됐다. 진영은 계속 떨고 있었다. 모두는 잠시 그를 그렇게 내버려뒀다. 그보다는 뭐가 현실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철진이 주먹을 꼭 쥐고는 커튼 쪽으로 걸음을 떼다 다시 멈췄다. 왠지모를 묘한 기분에 섣불리 다가설 수가 없었다. 매번 봐오던 커튼 뒤가 이렇게 무서운 줄은 미처 몰랐었다. 미진은 불안한 눈으로 정신없이 사내들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잘못 되 가고있다는 경고가 내부에서 울렸다. 그녀는 더욱 더 살아야 겠다는 욕망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저를, 살려 만 주시면 뭐든지……”
“젠장! 이렇게 넋이 나가서 뭘 어쩌자는 거야? 그 년은 죽었어. 진영이 자식이 헛소리를 하는 거라고. 형진이 넌 그 말을 믿는 거야? 어이, 철진이. 너도 그래? 정신들 차려. 죽었다 구. 대체 이 안에 뭐가 있다는 거야? 그러지 말고 저 비린내 나는 시체나 치우잔 말야.”
미진의 말을 기점으로 민석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팽팽하던 긴장이 무너지자 사람들은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형진은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눈이었으나 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그들은 묵묵히 입이라도 맞춘 듯 주영의 시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단조롭고 기계적인 움직임이었다.
“빌어먹을, 설사 그 년이 왔다 해서 뭐가 어떻게 달라진다는 거야? 죽은 년이야. 죽은 거라고. 정말 웃기는 일이지. 크크, 그런 게 무슨 상관이라고.”
내부에서 번지는 두려움을 이기려는 듯 아니 점점 생각나는 누군가의 얼굴을 잊으려는 듯 민석은 벌게진 얼굴로 연신 욕을 퍼부어댔다. 우습게도 욕은 묘한 진정제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그는 거칠게 주영의 살점들을 부대에 쑤셔 넣었다. 피비린내 나는 악취가 코 끝을 찔렀지만 점점 공포감이 극복됐다.
“오면 오는 거야. 달라지는 건 없어. 암,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 년이 정말로 나타난다면 갈기갈기 찢어서 아예 태워버리겠어. 다시는 찾아오지 못하도록 말이지. 발목을 모두 잘라내서 걷지도 못할 텐데, 크크크, 그런 꼴로 움직인다니 웃기는 일이군. 이번엔 무릎까지 절단할거야. 두고 봐.”
“그만해 민석아, 너 왜 이래. 진정해.”
전에는 볼 수 없던 강한 히스테리를 보이는 민석에게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는지 철진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진정? 내가 뭘 어쨌다고 이래. 난 정상이야. 그리고 잘 봐. 커튼 뒤에 뭐가 있다는 거야? 아무것도 없잖아. 저 망할 자식이 우릴 속인 거라고. 겁주는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알아, 그러니 그만해.”
“흐흐, 죽은 계집앨 봤다니 우습지도 않아. 저 자식, 시체만 치우고 나면 가만두지 않겠어. 손을 봐줄 거야. 쓸데없는 입을 나불대다니. 자꾸 주절대면 그 년처럼 해줄 거야. 야! 이 진영 듣고 있냐?”
멍하게 앉아있던 진영이 그 말에 정신이 드는지 희멀건 눈으로 이편을 바라봤다. 그의 눈엔 불안이 담겨 있었고 어깨엔 공포가 무섭게 꽈리를 틀고 있었다. 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는 보기 싫은 장면에서 벗어나고 싶은지 날갯죽지를 묻듯 두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었다.
“병 신 같은 놈, 겁이 많으니 저 따위지.”
민석은 다져진 몸뚱이가 든 자루를 끌곤 문쪽으로 향했다. 사후경직이 시작된 건지 제법 무게가 나갔다. 중간까지 끌었을 땐 손 끝이 뻐근해지며 어깨가 조여왔다.
“빌어먹을. 끝까지 지 랄 이군.”
그는 자루를 내려놓곤 이마를 훔쳤다. 그때 서늘한 뭔가가 그의 얼굴에 떨어졌다.
"툭."
기분 나쁜 액체였다. 끈적하고 눅눅한 점액이 얼굴을 타고 목까지 흘러내렸다. 민석은 신경질적으로 볼을 비비며 그것을 불에 비췄다. 그리고는 다음순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질퍽한 밀가루가 늘어지듯 목 주변에 붙어 있던 것은, 이미 죽은 지 한참이 지나 고약한 악취를 품고 있는 변색된 피였기 때문이다. 아니, 검고 말라 비틀어져 손을 대면 점토처럼 달라 붙다 떨어지는 그것은 이제 피라고 볼 수도 없었다.
“으악!”
민석이 화들짝 놀라며 더러운 것을 씻어내려는 듯 마구 손바닥을 비볐다.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핏방울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끈덕지게 살갗에 들러붙었다. 그 기묘한 생명력에 소름이 돋아 신경이 곤두서며 모든 털이 일시에 쭈뼛거렸다.
“이런 제기랄, 어디서 이런 게…….”
그는 손을 털다가 성에 안 차는지 이번에는 가죽의 바지에 손등을 문질렀다. 그리곤 무의식적으로 천장을 봤는데 놀랍게도 그곳엔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 하나가 창백한 얼굴로 민석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여자의 얼굴은 가면처럼 허옜지만 부분 부분이 떨어져 나가 몹시도 흉측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긴 머리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목만 내민 체 민석을 보고 있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몇 가닥의 머리가 촉수처럼 천장에 붙어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흰 눈동자가 서서히 돌아가더니 그를 잡으려는 듯 팔이 뻗어나왔다.
“으아아악!”
민석이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여자는 계속 기어 나오고 있었다. 손가락이 다 잘려 뭉툭해진 손등을 내밀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왔다. 마치 물에서 몸을 내미는 것과 같은 자세로, 그러나 그보다는 훨씬 끔찍했다. 그녀의 어깨가 보이며 파헤쳐진 가슴이 드러났다. 창자며 기관이 보기 흉하게 엉켜 있었다. 귀퉁이가 찢어진 체 말라 버린 것도 있었는데 아마 심장인 듯 했다. 그것은 꼭 살점을 뜯겨 껍질만 남아버린 곤충의 사체처럼 흉물스럽게 뚫려 있었다.
그녀가 버티고 있는 천장이 색색의 색깔을 띄우며 빙글빙글 돌아갔다. 사방에 붉은 얼룩이 묻어 있었고 그것은 전부 살아있듯이 꿈틀거렸다. 맥박이 미친듯이 요동 치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머리는 지끈거렸고 귀에선 알수없는 울림이 퍼져갔다. <살인자> <살인자> 그 소리가 테이프를 길게 늘인 것처럼 멀고도 음침하게 들려왔다. 벗어나고 싶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몸은 굳어버린 것처럼 자리에 못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의식은 깨어있었다. 모든 감각과 기관이 제 할 일을 하며 바쁘게 쿵쾅대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이 바로 눈 앞에서 멈추고 서늘한 입김이 느껴졌다. 그녀는 입을 움직여 뭔가를 말하고 있었으나 잘려진 혀 때문에 원활한 언어가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민석은 그 와중에도 무슨 말을 하는지 기를 쓰고 들으려 했다. 하지만 애쓰지 않아도 파편이 박히듯 단어들이 의식 속을 파고 들었다.
<살인자……. 넌 살인자야.>
‘이럴 수가. 저 얼굴, 저 입……내가, 내가 분명.’
민석은 벌써 오래 전에 낄낄대고 웃으며 난도질을 했던 여자가 바로 눈앞에 되 살아나자 혼이라도 빠진 듯 하얗게 질려버렸다. 옷 차림도 이곳 저곳이 물들긴 했지만 그 날의 원피스 그대로 였다. 그때 저 원피스를 들추고 인간으로선 차마 하지 못할 무수한 일들을 저질렀었는데…… 유난히 붉고 아름다운 입술은 이제는 거칠게 갈라져 그 사이로 검붉은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바로 민석자신이 그녀의 입을 입술 끝에서 귀 밑까지 칼로 그어버렸던 것이다.
부드럽고 촉촉하던 여자의 혀는 강자에게 애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라버렸다. 그녀는 다른 희생자와 달리 공포에 떨지도 기가 죽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며 온몸을 얼려 버릴듯한 냉기가 되어 혈관 속으로 퍼져갔다. 흰자위 밖에 없는 눈동자가 양 옆으로 움직이다 천천히 민석에게 고정됐다. 그리고는 그의 얼굴을 뚫고 나가기라도 하듯 무섭게 파고 들었다.
“으아아악! 안돼엣!”
“왜 그래? 민석아!”
철진과 형진이 다가와 민석을 흔들었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보며 그가 발작하고 있었다. 형진은 정신을 차리라며 소리치다 안되겠던지 결국 민석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민석의 몸이 앞으로 휘청하다 어리둥절해진 눈으로 형진을 올려다봤다. 그의 눈가로 길게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아, 나, 나는.”
“너 왜 그래?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구!”
“봐, 봤어. 봤다구. 분명히 봤어!”
“뭘? 보긴 뭘 봐?”
“그, 그 그 계집애. 저 위에, 아니, 내 눈앞에……나, 나는 봤어.”
“미친 새 끼, 너까지 왜 이래? 헛소리 좀 그만해!”
“아, 아냐, 형진아, 저기 봐, 저위에.”
민석이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브적 대더니 형진의 팔을 강하게 잡았다. 그리고는 질식해버릴 듯한 공기의 압박 속에서 두려운 눈길로 천장과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여자는커녕 핏자국 하나 없는 멀쩡한 천장을 보고 그는 또다른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이럴 리가. 저기 분명 그 계집애가……!”
“잘못 본거야. 도대체 누가 있다고 이래. 너희 둘 다 오늘 왜 이래? 진영이도 그렇고 민석이 너까지 왜 헛소리를 하는 거냐구. 그만 두자. 제발, 피곤 하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다고.”
“그건 그렇지만 난 봤어. 제길, 나도 믿기 어렵지만 분명 있었는걸. 진영이 말이 사실이었다 구. 그 계집년이 돌아온 거야. 우리에게 복수하려고 돌아온 게 분명해.”
“닥쳐! 헛소리 그만 지껄여. 겁주는 거라면 집어 치우라고.”
“아니야, 나도 미칠 것 같아. 하지만 봤다고. 그 계집이 정말로 저 위에서 내려 왔다니까!”
“그만해! 그만하라고!”
형진은 계속되는 친구들의 헛소리에 짜증이 나는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아까 민석이 들고 가다 내팽개친 자루를 차에 실었다. 그리고는 경고를 하듯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내부를 한바퀴 둘러봤다.
“나 농가에 다녀올 테니까 꼼짝 말고 여기 있어. 니들 멋대로 쓸데없는 짓 하지말고 계집애 잘 지켜. 괜히 소리 세나가지 않게 잘하란 말야. 저 계집애가 밖으로 나가는 날 우린 세트로 죽을 테니까.”
형진이 나간 지 한참이 지나서야 민석은 기운이 돌아왔던지 주변을 못 미더운 눈길로 살폈다. 머리가 지끈하며 몸이 부유하듯 허공에 뜬 느낌이었다. 그는 마주친 그 대상이 무엇인지 도저히 정의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본 것은 귀신이었나? 하지만 왜 다른 애들 눈엔 보이지 않았던 거지. 괜히 죄책감 때문에 가위를 눌린 게 아닐까. 아님 헛것일수도 있어.’
아직도 여자의 얼굴과 싸늘한 표정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는 차가웠던 입김을 기억하며 혹여 얼굴이라도 얼었는지 반복해서 만지작댔다. 정말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미 죽은 지 한참이 된 여자가 왜 다시 나타났단 말인가.
‘정말 귀신을 본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귀신 이라니, 하지만 왜 이제서…….”
“민석아, 이젠 좀 괜찮냐? 아깐 어찌나 놀랐던지, 너 대체 혼자 뭘 본거야? 너 때문에 무서워서 혼났잖아.”
바닥을 닦고 있던 철진이 물었다. 그도 돌연한 친구들의 일로 안색이 평소 같지 않았다. 긴장을 감추는 듯 높은 어조였으나 눈가에 자리 잡힌 근심만큼은 지울 수 없었다.
“아, 그게…….”
“제발 간좀 떨리게 하지마. 너희 둘 오늘 이상해. 진영이도 그렇고, 너까지 아주 이상하다고. 하마터면 진짜로 믿을번 했잖아. 형진이 말마 따나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다고. 니들 솔직히 불어. 짜고서 쇼한거지?”
“쇼?” 민석은 웃음이 나왔다.
“그래, 쇼이면 얼마나 좋겠냐.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 하지만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실감 났어. 정확히 말하자면 나 역시 아무것도 정의할 수가 없다.”
“그럼 귀신이라도 나왔단 거야? 정말 그런 거야?”
철진이 이제는 좀더 정색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의 기억에도 그날 죽였던 여자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극도의 잔인성을 드러낸 살인이었다.
여자를 죽이고 난 후 스너프 필름이 뭔지 모를 광기를 띄워 갔던 것은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서먹해 하던 민석도 이제는 사람의 살가죽을 자르는 일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후......” 그가 이마에 손을 짚고 뭔가를 생각하더니 진영에게 다가가 앉았다.
“어이, 이 진영.”
“……”
“진영아!”
“왜, 왜?”
고개를 묻고 있던 진영이 움찔 놀라며 그제야 눈을 들어 민석을 바라봤다.
“한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그는 자신의 말이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듯 어두운 표정을 풀지 못했다. 그러나 비슷한 두려움에 질려버린 친구의 눈동자를 보곤 또렷이 내뱉었다.
“너가 봤다는 그 계집년이 팔에 주사기를 꽂은 체였냐?”
“그건…….”
“우리가 수혈하기 위해 억지로 쑤셔놓은 그 주사기 말야. 그거 꽂고 있었지? 왼 쪽 팔목에?”
팔을 가리키는 민석의 행동에 진영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다가 그 상황이 몹시도 싫기라도 하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