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확인한 민석은 허탈한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동시에 울분을 삭히기 위함인지 입술 끝이 파르르 떨리더니 결국 그의 몸은 흙담이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을 반복하더니 진영의 어깨를 잡곤 흔들었다.
“믿을 수 없어. 어떻게 이런 일이, 이건, 이, 이건 있을 수 없잖아. 안 그래?”
진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석의 머리엔 아직도 생생한 그날의 광경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튀어 오르던 피와 번지는 웃음소리, 모두의 가슴에서 <잔인>이란 단어를 가장 완벽하게 끄집어낸 광기어린 붉은 밤을 말이다.
여자의 이름은 희연이었다. 정희연. 작은 체구의 머리가 길었던 그녀는 수원의 L대에서 나오고 있었다. 두 명의 여자친구 사이에서 팔짱을 끼고 걷던 그녀가 무리에서 떨어진 건, 횡단보도를 지나 화원 옆에 있는 <여러분>이란 슈퍼를 지났을 때였다. 슈퍼가 위치한 골목의 뒤쪽으론 전원주택 몇 채가 고작이었기에 무방비로 방치된 그녀를 끌고 오기란 쉬운 일이었다.
희연은 미친 듯 발광하며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다. 자동차 문이 부서질 정도의 격한 몸짓으로, 무리도 아니었다. 그녀가 탄 차는 점점 인적 없는 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선탠을 한 유리창엔 한 장의 사진이 확대된 체 붙어 있었다.
고무호수가 목에 통과되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었다. 사진에 나온 건 흉부까지였지만 그녀의 다른 기관들도 타격을 받았다는 건 느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여자의 눈은 흐릿하고 생기 없었지만 아직 살아 있었다. 아마 죽어가는 중인 듯했다. 그 눈은 사진에는 나와있지 않은 누군가를 향해 가늘게 찢어져 있었다. 입술은 반쯤 열려있는데 그 사이로도 호수가 보였다. 그것을 본 희연이 두 팔을 붙들고 있던 철진을 마구 치며 머리를 흔들었다. 민석이 입을 막았고 그는 뾰족하고 드센 이빨에 물려 손등을 감싸 쥐다 여자의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창고에 도착했지만 동의 없이 끌고 온 대상은 처음이었기에 모두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것은 단지 장난이었다. 키보드만 두드리던 민석이 한번쯤 지나가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해보자는 농담에 술들을 거나하게 먹고 저질러 버린, 예정에 없던 실수였다.
“희연이라…… 예쁜 이름이군. 너무 그렇게 뻣뻣하게 굴지 말라고. 계속 그러고 있으면 우리가 심심하잖아.”
가방을 뒤져 찾아낸 학생증을 보며 민석이 조롱하듯 입을 열었다. 사진 속의 얼굴은 지금보다 훨씬 어렸지만 건강한 생명력은 그때가 더 풍부했다. 지금 그녀의 얼굴은 입고 있는 흰옷 만큼이나 아슬아슬하고 창백했으니 말이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벌어지며 무슨 말인가가 새 나오려다 희미하게 붙어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내부에서 침착함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젠장, 처음부터 김새게 만드는군.”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뒤로 돌려 묶은 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체가 휘어진 여자의 몸을 노골적으로 훑어 내렸다.
여자는 윤곽이 강하지 않고 눈썹이 흐린 선병질적인 얼굴을 갖고 있었다. 못난 얼굴은 아니었지만 뛰어나지도 않았다. 그녀의 피부는 너무도 창백해 정상적인 입술 색이 왜려 뒤틀린 것처럼 자극적으로 비춰졌다. 무릎아래에서 멈춘 흰색 원피스는 얇아서 몇분간 시선을 고정해 눈을 혹사한다면 속에 감춰진 굴곡을 그려 볼 수도 있을 듯 했다. 여름에 맞춰 신은 하늘색 샌들사이론 앙증맞은 발가락이 보였지만 매니큐어는 칠해져 있지 않았다. 두 다리는 본드를 붙인 것처럼 곧고 단단하게 모아져 있었고 스타킹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한마디로 그녀에게선 싸구려 여인의 향취도 도색적인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발랄했고 순진했으며 적어도 이런 필름의 주인공이 될 만큼 타락한 여잔 아니었던 것이다.
민석은 순간 자신이 실수를 저지른건 아닌가 하는 망설임이 들었다. 돈을 위한 살인이긴 해도 <죽을만한 여자>를 타깃으로 잡는 것이, 그들에게 유일히 남은 양심을 대변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것을 엎어버리고 내키는 대로 가학하고 싶은 욕구도 솟구쳤다. 상대는 약하고 가녀렸으며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여자였다. 저 순진한 양 같은 미소를 공포에 떨게 하고 울부짖게 하고, 한 순간에 위치가 타락해버려 호소할 곳 없는 분노를 토해내게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오는 인간 내면의 충동이었다. 더구나 그전에 했던 두 번의 살인모두 짜여진 각본에 맞춰 기계적으로 움직인 결과였기에, 목적과 틀이 없는 살인 욕구는 혀를 날름대는 뱀처럼 유혹적으로 다가왔다.
“뭐해? 이 일을 하자고 한건 바로 너야.”
뒤에서 들려오는 형진의 말에 민석이 침을 꿀꺽 삼키며 어깨에 힘을 줬다. ‘형진이 역시 이런 욕구에 흔들리는 걸까? 나처럼? 저 계집을 파괴하고 싶은 그런 충동?’ 그러나 질문을 하는 대신 원피스 안에 손을 넣어 여자의 다리를 찾았다. 자연스레 행해진 순간의 본능이었다. 그의 손이 거미처럼 타고 올라가자 여자가 몸을 뒤틀며 소리쳤다.
“나, 나를 어떻게 할거지?”
“너가 하는 것에 따라 다르겠지. 우린 이제 재미있는 놀이를 할거야. 몸에 달린 오감을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도록 해주는 놀이지. 고통이 따르지만 진귀한 체험이라 생각해. 구석구석 감춰진 모든 감각을 살아나게 해줄 테니까.”
“뭘 하든 나하곤 상관 없어. 어서 날 풀어줘!”
그녀는 거북스러운 손길에 몸서리를 치며 묶인 손을 풀기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몸부림이 자극이 되 민석의 두 손엔 끈적한 땀이 맺혔다. 그는 점점 더 이 작은 여자를, 손만 뻗으면 멋대로 건드릴 수 있는 여자에게 잔인한 짓을 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줄을 푼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넌 여기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다 거짓말이야. 잘못됐어. 날 풀어줘! 내보내 달라구!”
“결국 넌 죽어.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게, 살아있는 너의 마지막 하루는 죽어서도 잊혀지지 않는 끔찍한 악몽이 될 거야.”
그는 그 말을 직접 실현하듯 손을 여자의 다리 사이로 찔러넣었다. 그리곤 가장 은밀하게 숨겨져야 할 어떤 부근을 유린하며 아프게 움켜쥐었다. 남자의 손길에 희연이 경련하듯 몸을 떨었다. 그녀는 다리에 힘을 주며 허리통을 흔들었다. 그러자 철진이 다가와 다리를 눌렀다.
“이거놔앗! 이 자식들아!”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모두에게 향했다. 숨막힐듯한 정적이 흐르고 잠시 후 형진이 손짓하자 철진이 푸른색 공구박스를 들고 와 여자 옆에 내려놨다. 진영은 따로 챙겨둔 가죽 가방을 열어 반쯤 펴진 포대위에 예리한 도구들을 펼쳐놓았다. 바로 메스며 가위, 절개 부위를 벌리는 집게와, 제거될 내용물을 끄집어내는데 쓰이는 여러 수술 도구였다. 그는 그것을 모두 꺼낸 후 역한 냄새가 나는 약품을 헝겊에 묻혀 뾰족한 핀셋의 끝을 더욱 문질렀다.
“뭐, 뭐 하려는 거야? 대체 무슨 생각이지?”
사내들은 말이 없었다. 희연은 다시 한번 소리쳤다.
“뭐 하려는 거냐고! 너희들 무슨 속셈이야!”
그때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민석의 손에 들려있는 컷터칼이 움직이는 소리였다. 그는 칼날을 꺼냈다 집어넣었다를 반복하며 그것을 그녀에게 들이댔다.
“일생을 살면서 한번이라도 이런 상상을 해본적 있어? 너의 팔과 다리가, 피부가, 볼 수 있는 두 눈이, 타의에 의해서 하나하나 제거되 가는 모습을 말야. 넌 분노하고 억울해 하겠지만 벗어날 수가 없어. 벗어나는 길은 하나뿐이지. 상대가 흥미를 잃었을 때. 그도 아니라면 너 자신이 혀라도 깨물었을 때…….”
민석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의 분위기를 극대화하고 싶던지 낮고 음침한 목소리로 희연을 압박했다. 그의 광기서린 눈이 가늘어지며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넌 그런 고통을 맛보게 될 거야. 죽지도 못하고, 기절하지도 못해. 마지막 숨을 놓는 그 순간까지 철저하게 살아서 너의 몸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게 될 거야.”
“날 살려줘. 부탁이야.”
희연이 내뱉듯 중얼댔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고 주변은 시끄러웠다. 무시무시한 살인 기구들이 토해내는 소음속에 떨어진 말은 금새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민석은 그녀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잔인하게 한치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렇군. 결국은…….”
동정도, 망설임도 없는 남자의 눈에서 진실을 예측한 희연이 입술을 살짝 깨물며 체념한 듯 눈을 내리 깔았다. 차 안에서 보았던 목이 뚫린 여자, 아마 자신도 미쳐버린 광기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왕 살지 못하는 거라면 저들의 뜻대론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죽기 전의 발악치곤 꽤 담담하군. 어차피 인간은 한번씩은 뒈지지만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기분은 틀려지지. 여기저기가 너덜너덜 헤어져서 걸레처럼 끝난다면 죽는단 사실이 조금 더 불쾌해지지 않겠어?”
일부러 자극을 주는 말투였지만 대답은 없었다. 여자의 얼굴에 아주잠깐 복합적인 감정이 스치다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것은 너무도 빠르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민석은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이어 그녀의 눈이,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무심한 눈이 그를 향했다.
민석은 일생을 살면서 여지껏 그런 눈빛은 처음 받아봤다. 정말 믿을 수 없게도 여자의 눈엔 두려움도, 초조함도, 희망도 아무것도 없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두려움, 지금 이순간에 대한 초조함, 살고 싶다는 희망이 하나도 내재되 있지 않았다. 마치 텅 빈 구덩이를 보는 것 같았다. 그것은 없을법한 일은 아니었지만 너무도 갑작스레 변한 여자의 상태에 그는 어리둥절해서 동료들을 바라봤다.
“재미있는 계집이군. 아니, 맛이 살짝 간 건가? 전직이 지독한 비관론자인진 모르지만 고통 앞에선 너도 어쩔 수 없을 거야.”
형진이 차게 웃었다. 작은 전구들이 켜지며 창고 안은 색색의 조명들로 흔들렸다. 민석은 묶여있는 팔 대신 그녀의 다리를 잡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선을 그었다. 하얗게 자국만 일어날 정도로, 힘을 주지 않은 동작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칼날을 꾸욱 눌러 힘차게 그어 내렸다. 백옥 같은 살결이 양편으로 갈라지며 허물어진 중심 안에서 피가 물컹물컹 새나왔다.
“꺄아악.”
희연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민석은 다른 쪽 발에도 똑같이 그림을 그렸다. 비슷한 부근에 길이까지 맞춘 자국이었다. 나중에 발목을 절단할 때 도움이 되라고 한 저질스러운 발상이었지만 불쌍한 희생자는 그것의 의미를 알지 못할 터였다. 희연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두 손을 꽉 움켜쥐는 게 보였다. 참담함을 담고 있는 고통스러운 표정이었으나 비명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찢어질 정도로 두 입술을 꽉 물며 기다리고 있었다. 또 다른 가학의 시작을…… 동시에 머리에선 암시가 수레바퀴 돌 듯 반복됐다.
‘어차피 죽을 거 너희 뜻대론 되지 않을거야. 내가 울고 애원하고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을 구걸하길 바라겠지. 아니, 난 절대 그러지 않아. 그 여자, 마지막 표정을 그 여자처럼 짓지는 않을 거야.’
어쩌면 그것은 희연에게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길일지도 몰랐다. 민석 말대로 그들은 자신을 멋대로 가학하고, 한편의 영화를 만드는데 쓰는 도구쯤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한번 쓰이면 버려지는 일회용 도구. 이들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살 가능성도 없었다. 그것을 안 이상 마지막을 저들의 의도대론 움직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 희연에게 터져 나오던 실낱같은 오기였다.
‘헐, 뭐 이런 게 다 있지?’
모두의 얼굴엔 똑 같은 표정이 스쳤다. 여자는 지금 죽임을 당하고 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낯선 자들로부터 말이다. 게다가 이건 스너프다. 살인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도 비명은 귀청을 때릴 정도로 많이 나오지만 이건 정말로 실제상황 이었다. 영화가 아닌 현실, 타깃이 된 불쌍한 대상에겐 마지막 밤이었고, 얼마남지 않은 생명을 가까스로 잡고 있는 위태한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여자는 떨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살인을 하는 민석은 무감각한 여자의 반응에 불쾌해지며 더러운 증오가 들었다.
‘어째서 저 년은 겁에 질리지도 않는 거지? 고통이 약한 건가? 아니면 극한의 분위기에 정신이 살짝 나가 창 밖을 선회하는 거냐.’
어느 쪽이든 참을 수 없었다. 그는 피 묻은 칼을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여자의 얼굴에 고정시켰다. 검은색 눈동자가 칼끝을 향하다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이어질 행동에 대한 미묘한 기다림은 있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그것이 그를 분노하게 했다. 그의 눈이 뱀처럼 붉어지며 여자의 머리채를 잡더니 얼굴을 돌려 젖혔다.
“이봐. 비명을 지르라구. 살려달라고 애원을 해. 넌 지금 죽는거야. 너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하는지 잊은 거야? 그래?”
그는 잡고 있는 머리를 바닥에 새게 찧었다. 매트리스라 큰 타격은 없었지만 그녀의 눈은 민석을 보고 있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상관 없단 투의 무심한 눈, 오히려 자신을 불쌍하다고 보는, 증오를 뛰어넘어 역겨운 동정이 담긴, 그가 알지 못하는 어떤 부근에 혼자만이 도달해 있다는 의미를 깨달은 자의 굽어보는 눈. 그가 폭발할 듯 비명을 지르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대답해! 살려달라고 애원해! 죽기 싫다고 소리쳐! 제발 나를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란 말야!”
칼을 쥔 손이 입술에 다가갔다.
“싫어? 애원 안해? 빌지 않겠다 이거지? 좋아, 그럼 없애주지. 말하기가 싫다면 아예 다시는 떠들지 못하게 해주겠어!”
입 꼬리에 걸쳐있던 칼이 깊게 들어가더니 한쪽 볼을 찢고 들어갔다. 그는 뭔가에 들떠있는 미친 사람처럼 흥얼대며 희연의 입술을 귀까지 그어버렸다.
“욱, 커억……컥…….”
붉은 물감이 스며들 듯 볼 한쪽이 완전히 젖어 쉴새없이 피가 떨어져 내렸다. 목구멍에 피가 찼는지 여자는 말을 제대로 못했다. 벌어진 입술이 붙지 못하고 힘없이 뭉그러졌다. 그것을 본 민석이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열려진 살에 손을 넣어 뜨겁게 김을 내고 있는 속안의 세포를 뜯어 바닥에 던졌다.
“이제야 기분이 좀 좋아지셨나? 똑똑히 보라구. 이게 네 몸의 일부야. 일부라고! 알아들어?”
그는 손가락에 붙어있는 희연의 잔재를 조롱하듯 얼굴에 들이댔다. 그리고 그것을 아직 멀쩡한 나머지 볼에 대고 거칠게 문질렀다. 빠르고 반복적으로, 더러운 것을 씻어낸다는 투로 말이다. 사내의 손끝을 피하며 희연이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넝마조각으로 바뀐 얼굴 사이로 드러난 뼈가 보였다. 애처로울 정도로 힘을 꽉 주고 있는 그녀의 아래턱과 이빨이었다. 광대뼈를 감싸던 피부가 제거된 탓에 치아는 선을 그릴 수 있을 만큼 자세하고 선명히 공개되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피를 먹어 새빨갛게 물들었는데 진홍 빛 핏물이 계속해서 떨어지며 바닥을 적셔갔다.
“크크크.”
자신이 한 짓이 만족스러운지 민석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머리 한켠에선 저것으로 희연이 충분한 타격을 받았고, 손상된 자존심을 복구할 정도의 가학이 되었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그는 진심으로 기꺼워 하고 있었다.
철진이나 진영은 입을 찢어버리는 잔인한 연출에 숨을 죽였다. 이제껏 세 번의 살인이 있었지만 저렇게 자극적이며 끔찍한 장면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대상은 어찌 보면 아무 죄도 없는 불쌍한 여자일 뿐이었다. 그런 대상을 상대로 저렇게까지 적의를 품는다는 게 진영은 다소 꺼림칙했다.
‘혹시 저번에 죽인 여자 때문인가?’
진영은 한달 전 온 몸이 뒤틀린 체 죽어간 소희란 여잘 기억해냈다. 채팅으로 건져져 약간의 성교를 거친 후 바로 칼부림을 당한 여자였다. 그때 민석은 늘 하던 대로 팔목과 다리만 자르다 처음으로 목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목살을 잡고 컷터칼로 포를 뜨듯이 저민 건데 칼날을 깊게 누르지 않은 이유는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어서 였다.
식도와 연결된 곳에 구멍을 낸 후 민석은 병원에서 쓰는 의학용 호수가 아닌 공업용 고무호수를 목 속에 쑤셔넣었다. 그리곤 삼십 분쯤 시간을 끌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여자의 입을 강제로 벌려 또 다른 호수를 끼웠다. 뻑뻑한 호수에 식도가 막힌 여자는 뭍에 나온 생선처럼 푸덕거리다 죽고 말았다. 그때 꺼낸 호수의 악취는 지독했다. 위 속에서 한참 분해된 토사물들과 뒤섞여 피 냄새가 진동을 했기 때문이다.
철진과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질색했지만 형진은 왜려 자극적인 비디오를 찍었다며 기뻐했었다. 그리곤 죽기 전 여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뽑아 영감을 얻는다며 차 유리창에 붙이고 다녔다. 어차피 몸 담은 살인이니 그것을 말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진영은 점점 더 지나쳐가는 친구들의 변모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원래는 사람을 죽인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녀석들이 칼로 쑤시고 자르는 것에 이어 몸에 구멍을 뚫는, 말하자면 행위 자체에 재미를 느끼게 됐으니 말이다. 전직이 의대생이라 그런지 진영의 마음속엔 일에 대한 회의가 항상 떠나지 않았다.
‘빌어먹을, 아버지가 부도만 나지 않았어도.’
하루아침에 잘려나간 아버지. 무너지는 가정. 진영은 곤란해진 가계 때문에 대학을 포기해야 했고 살기위해서 스너프에 빠졌다. 망설이지 않았던 건 돈 때문이기도 하지만 친구들을 믿어서 였다. 모두 어려운 처지의 녀석들이니 의지가 되고 싶었던 건데 역시 살인은 사람을 변질시키고 있었다. 저렇듯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웃고 떠들지만 내면에선 인간의 존엄성을 저해하는 욕망이 끊임없이 꿈틀대고 있다는 것을 진영은 알았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민석은 매우 무섭게 보였다. 소희에 대한 가학이 그의 잔인성에 불을 당긴 것인지는 모르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오늘이 지나면 민석은 더욱 잔인해 질 거란 거였다.
“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에 진영은 움찔거렸다. 공구박스 속에서 니퍼를 집어 든 민석이 여자의 이빨을 하나하나 제거해 가고 있었다. 천천히 천천히…… 가지런한 조합이 무너지며 아직도 살점이 붙어있는 뾰족한 이빨들이 바닥으로 버려졌다. 민석은 뭔가에 홀린 사람 같았다. 그는 그런 행위들 자체에 흥분을 느끼는지 붉게 상기된 얼굴로 니퍼를 조이고 당기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리고 종래에는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여자의 혀를 누르고…… 피의 색이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는 검고 탁한 피가 분출하며 공기 속으로 퍼져 들었다.
“이젠 다시는 떠들 수가 없게 됐군. 불쌍한 계집.”
니퍼를 잡은 팔을 위로 쳐올리며 민석이 이죽거렸다. 뾰족한 쇠붙이의 사이에는 아직도 붉은 살점이 끼워져 있었다. 한때 여자의 입에 붙어서 언변을 대신해 주던 도구. <혀> 라는 말의 매체는 그렇게 간단히 민석의 손으로 넘어와버렸다.
희연은 시리도록 푸른 눈으로 민석을 노려봤다. 싸늘하고 적의에 찬 눈. 공포나 두려움은 없었다. 오직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자에 대한, 바닥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의 깊은 증오 뿐이었다. 여자의 시선이 너무도 오싹해 민석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믿을 수 없게도 죽어가는 여자의 눈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못하는 어떤 힘이 존재했다.
‘원한을 품고 뒈지면 저렇게 되는 건가?’
그러다 그는 발에 밟히는 이빨과 끈적거리는 피의 바닥을 보았다. 여자를 이렇게 만든 것은 바로 자신이며 고통을 줄 수 있는 시간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다. 잠깐의 두려움은 가진 자의 오만으로 바뀌고 뒤틀린 지배 욕에 그는 니퍼를 땅에 던졌다. 미리 준비해둔 칼을 꺼내며 민석은 여자의 발치로 다가갔다.
다리에 새겨둔 표식은 검게 말라붙어 갈라진 틈을 메꾸고 있었다. 살기위한 세포들의 움직임. 여자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백혈구들은 끊임없이 벽을 치고 있었겠지? 흥. 민석은 아물어가는 다리사이에 칼 끝을 고정하곤 힘을 주어 파여진 홈을 갈랐다. 그런 움직임들이 얼마나 바보 같으며 무의미한지를 증명하고 치유 하려는 여자의 세포들에게 비웃음을 퍼부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의 다리뼈는 역시 단단했다. 아무리 용을 써도 잘라지지 않는 다리를 보자 지켜보던 형진이 지시를 했다.
철진이 뒤를 돌아 반대편으로 나가더니 창고 문을 닫으며 들어왔다. 그의 손엔 대장간에서 쓰는 무거운 쇠망치가 들려 있었다. 민석은 그것을 위로 번쩍 들었다가 힘을 실어 내리쳤다. 원래도 무겁지만 체중이 실린 망치의 위력은 엄청났다. 희연의 발은 한 순간에 뭉개지며 가루가 됐다.
“아악!”
극심한 고통에 희연이 얼굴을 찡그렸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모양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발목 전체가 아스러져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전기에 감전된 듯 찌릿한 느낌이 발목을 타고, 정강이, 허벅지를 지나 가슴과 어깨로 퍼졌다. 자잘한 바늘 수십 개, 아니 수백개가 온몸을 쑤시는 기분이었다.
그녀 자신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참고 있었으나 피가 빠져가는 느낌은 너무도 분명하게 각인되었다. 생명수가 터져 나가는 느낌. 몸을 이루던 세포가 떨어지고 신체가 무너지며 그 안을 구석구석 돌던 생명의 기운이 걷잡을 수 없이 새나가는 느낌. 축축하게 젖은 메트리스 한 쪽으론 떨어져 나간 이빨이 보였다. 저 작은 개체들이 조금 전까지 자신의 몸의 일부였단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감각이 무디어 진 건지 모든 걸 체념해서인지 잘 모르지만 그녀는 파괴된 신체에 더 이상의 의미를 두진 않았다.
얼굴에 흐르는 피 때문에 자꾸만 시야가 가려졌다. 희연은 고개를 옆으로 흔들며 피를 덜어내려 애썼다. 눈가에 흐르던 피가 콧등을 넘지 못하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마지막으로 저들에게 욕을 해주고도 싶었으나 이젠 불가능했다. 그녀가 누운 곳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엔 반쪽만 남은 혀의 일부가 있었다. 잘려지고도 여러 번 난자 당해 이젠 형체도 알 수 없게 되 버린 고깃덩이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또 하나의 발목이 잘라졌다. 이젠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어차피 죽음은 예정됐었고 고통이 따를 거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을 저들이 주도한다는 사실만큼은 너무도 싫었다. 끔찍하고 처참했다. 조명들이 흔들리며 빛이 사방에서 들어왔다. 아니, 빛은 정지됐다. 자신의 의식이 흔들리고 있었다.
민석이 잘라진 발목 두개를 검은 비닐봉지에 집어 넣으며 매듭을 묶었다. 그리고는 도륙된 창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이제는 끝장나 가는 정희연이란 여자. 그는 그녀의 위에서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로 군림하고 싶었다.
아름답던 여자의 몸은 흉측한 괴물이 되 있었고 눈부시게 희던 원피스는 붉은 염료에 담가둔 것처럼 짙게 변색 되 있었다. 사방에 넘친 피 때문에 원피스는 몸 안의 곡선을 드러낼 만큼 착 달라붙어있었다. 생기도 희망도 없는 신체를 어루만지며 그가 중얼댔다.
“애처롭군.”
희연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피에 젖어 붉게 물든 두 눈을 그에게 고정한 체 웃고 있었다. 아니, 웃는다는 건 민석의 착각이었다. 여자에겐 입도 없고 한쪽 볼도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석은 그녀의 얼굴이 웃고 있다 느껴졌다. 그는 좀 전까지 들었던 승리감이 일시에 날아가는걸 느끼며 정의할 수 없는 불쾌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뭐지. 무엇 때문에 웃는 거냐. 어째서 이 계집은 죽는 순간까지도 두려워 하지 않는 거지? 마치, 나를 비웃으며 조롱하려는 저 눈, 저 표정, 왜 무서워 하지 않는 거냐. 내가 그렇게 끔찍한 고통들을 주었는데도…… 왜 그런 내 앞에서 당당한 거지?’
그는 희연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희연의 마음속엔 깊은 허탈과 함께 안도가 들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종결이었다. 더 이상은 남자들의 손에 유린당하지 않는단 사실. 그것이 그녀를 편하게 만들었다. 또 이런 간단한 사실을 모른체 눈알을 굴리고 있는 민석을 보니 저절로 비웃어 주고 싶어 근육들이 움직였다. 이미 그곳엔 예전의 피부와 근육은 없었지만 마지막이라 통한 건지 고맙게도 민석은 불쾌한 투로 자신을 노려보았다.
‘내게 심한 짓을 한 만큼 너희들도 언젠간 그 값을 받을 거다. 결국 난 이렇게 죽지만 적어도 네 놈들 뜻대론 움직이지 않았어. 난 내게 허용된 마지막 시간을 내 의지대로 움직인 거야. 너희가 시간을 조장한 게 아냐. 바로 나야.’
희연의 눈을 보자 민석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그녀는 한달 전 죽인 소희란 여자완 상반된 눈빛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도 희망이 없고, 어쩔 수 없이 숨을 놓아야 하는 상황에 대한 무력함은 있었지만, 초조함이나 공포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고른 대상이, 무자비하게 고통을 준 대상이 떨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 인간이란 동물은 지나친 자만으로 간혹 잘못된 판단에 허덕일 때가 있는데 민석도 마찬가지였다. 세 번의 살인으로 그는 이미 내키는 대로 인간을 죽일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신이었으며, 그것에 택해진 대상이 신의 위엄 앞에 떨지 않는 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행동들이 흔들릴 만큼 불쾌하고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진영의 팔을 잡곤 희연 쪽으로 끌었다.
“뭐야?”
진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민석은 대답대신 진영의 수술도구를 들고와 바닥에 그것을 깔았다. 그가 매스며 가위를 집는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던 진영이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냐니까?”
이번에는 약간 높아진 목소리였다. 민석이 쥐고 있던 가위를 반사적으로 건네며 중얼댔다.
“봉합해. 피가 빠지지 않게.” 뭐?”
“봉합하라구! 잘라진 혀도 붙이고 발목도 붙이고…… 하여간에 피가 넘치는 곳은 무조건 붙여서 출혈을 막아.”
“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도 끔찍한 요구에 진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 동안 여러 살인에 동참하며 성격이 황폐해지긴 했지만, 이미 죽어가는 여자를 억지로 살려내어 또 다른 고통을 줄 만큼 인간성이 말라버린건 아니었다.
그의 생각을 눈치챘던지 민석이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손에든 가위가 불빛에 반사되 유난히 길고 뾰족했다. 게다가 저 눈, 핏발이 선 붉은 눈은 예전에 알고있던 친구의 것이라기보단 살육에 미친 한 마리 짐승의 눈이었다. 그의 시선이, 행동이 몸을 감싸고있던 분위기가 너무도 서늘해 진영은 저도 모르게 움찔대며 가위를 받았다. 그리고는 기계적으로 앉아 도구가 펼쳐진 포대에서 실이며 바늘을 들어 여자의 몸에 가져갔다.
“확실하게 해. 어떻게든 살리란 말야. 지금 죽게 할 순 없어.”
그는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투로 중얼대며 이를 갈았다. 진영은 희연의 눈을 보았다. 얼굴 여기저기가 잘려나가 형체를 알아보는 건 눈과 코 뿐이었지만 편안한 표정이었다. 그런 그녀의 눈이 위로 치켜지더니 진영의 손을 따라 불안하게 움직였다. 그녀의 입이, 아니 얼굴을 덮고있던 근육들이 움직이며 뭔가를 말하려 했다. 아마, 무슨 짓을 하느냐고 묻고 싶은 거겠지. 그러나 나오는 말은 언어라고 볼 수 없는 괴상한 소음이었다. 그 비통한 신음을 듣고 있던 진영이 입술을 꽉 깨물며 바늘을 찔러넣고 실을 빼내는 동작을 반복했다.
희연의 몸이 들썩거리며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녀의 파동에 따라 진영의 머리속도 쿵쿵대며 울렸다. 아무것도 없는 흰 종이가 뇌를 채우듯 머리 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미친 짓이었다. 인간이하였다. 하지만 행동을 멈출 순 없었다. 뒤에선 민석이 끝나기만을 기다렸고 형진이나 철진, 누구하나 말리는 이도 없었다.
진영은 희연의 혀를 끄집어냈다. 점액과 피가 뒤엉켜 군데군데 검은 피고름이 마치 딱지를 앉은 것처럼 말라있는 혀에선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고통을 느끼는 경지를 초월했는지 아니면 비참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인진 모르지만 여자는 묵묵히 살갗이 조여지며 바늘이 통과되는 느낌을 온 몸으로 받고 있었다.
작업은 한참을 이어졌다. 혀는 오그라들어 혀뿌리에 생긴 목젖같이 되 버렸고 짓뭉개진 발목도 헝겊인형을 기우듯 뚫린 부분을 막았다. 제일 애를 먹은 건 얼굴이었다. 아예 살이 떨어져 나간 볼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가제를 잔뜩 뭉쳐 억지로 쑤셔 놓았다. 진영은 자의와 타의가 뒤섞인 힘든 작업을 끝내고 일어서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피곤에 절은 얼굴위로 머리카락이 끈적하게 붙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어. 하지만 출혈이 심해서 어차피 오래 못 버틸거야. 이미 저 여잔 빠질 만큼 피가 빠진 상태라구.”
“넘치는 구멍을 다 막았는데 어째서 죽는단 거야? 더 이상은 빠지지 않을 텐데, 더 버틸 수 있는거 아냐?”
민석은 인정하기 싫단 투였다. 그런 그의 눈에서 흉흉한 푸른 불꽃이 일었다. 진영은 고개를 저었다. “몸이 차가워지고 있어. 아무리 봉합한다 해도 이 여잔 죽어. 기준치 이상으로 피가 나가버렸는데 무슨 수로 살리겠단 거야?”
그리곤 고개를 돌리며 작게 덧붙였다.
“그냥 죽게 냅둬.”
“젠장! 그럴순 없어. 이렇게 쉽게 보내진 않을거라고.”
누가 들으면 대단한 애정이 있는 줄 알겠지만 숨겨진 의미는 악질적인 것이었다. 눈에 뭐가 들어갔는지 한쪽 눈을 깜박거린 체 비비고 있던 철진이 그 말에 정색하며 손가락을 내렸다. 민석은 식어가는 희연의 몸에 올라타더니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을 도전적으로 노려보았다. 희연은 죽어가는 사람답지 않게 매서운 눈을 갖고 있었다. 움푹 파인 눈구멍 속에서 핏대서린 눈이 자신을 이렇게 만든 존재에게 차후의 보복을 약속하듯 선명하고 차갑게 빛났다.
‘넌 아무것도 아니야. 너 따위가 뭔데? 너가 나를 멋대로 할 수 있을거 같아?’
희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민석은 그녀가 끊임없이 자신을 조롱하고 있단 기분이 들어 정신을 수습할 수 없었다. 마주친 눈빛에서 무언의 정적이 흐르고 겨드랑이와 허벅지에 땀이 차 올랐다. ‘절대로 이대로는 못 보내. 아직은 안돼. 아직은……’
민석의 내부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며 올라왔다. 가장 밑바닥에 숨겨져 있어야 할 잔인한 본성. 악귀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뒤틀리더니 비릿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는 혀로 깡말라 붙은 입술을 문지르며 그녀의 가슴을 세게 눌렀다.
“넌 지금 못 죽어. 절대로.”
희연의 관자놀이가 파르르 떨리더니 눈가에 의혹이 서렸다. 민석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죽을 수 없어. 절대로!”
그 한마디가 모두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철진은 뭐가 어떻게 되는지 몰라 눈동자를 불안하게 굴렸고 진영은 그의 입에서 나올 어떤 말을 초조한 긴장 속에서 기다렸다. 형진은 말이 없었다. 그는 민석의 도발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그것을 수용하고 있었다. 한번쯤 꿈꿔보았던 은밀한 그만의 욕구. 사회가 수용하지 못하는 가장 저질스럽고 어두운 밑바닥 안의 환상. 카메라 속에 펼쳐지는 세상이 은연중에 그가 했던 상상과 맞물려져서 인지도 몰랐다. 그는 땀에 젖은 한쪽 손을 바지에 문지르며 카메라앵글을 고정 시켰다. 그만 두라는 저지도, 도발 하려는 충동도 없었다. 그는 민석이 벌일 행동만 주시할 뿐이었다.
민석이 커튼을 열며 사라지더니 작은 나무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근처가 차갑게 얼어 서리가 내린 상자는 여기 저기에 눈꽃 같은 얼음조각이 붙어있었다. 그는 그것을 한 팔로 감싸 안은 체 엉거주춤한 자세로 중심을 잡고 있었는데, 다른 쪽 손에는 일회용 주사기와 의학용 호수가 뒤엉킨 체 비닐에 덮여 있었다. 그것을 본 진영이 하얗게 질려 뒷걸음을 쳤다.
‘저 녀석…… 설마!’
진영의 앞에서 걸음을 멈춘 민석이 주사기를 내려놓으며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응고된 혈액이 낱낱의 개체로 포장된 체 담겨 있었다. 만일을 위해 냉동실 안에 넣어둔 혈액 박스였다.
“뭐야? 무, 무슨 일을 꾸미는 거야. 너.”
너무도 예상치 못한 광경에 질문을 던지는 진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수혈하자. 피를 먹이면 살수 있잖아. 저대로 죽게 해선 안돼.”
민석은 그 자신이 어떤 요구를 하는지 모를 사람처럼 덤덤하고 건조하게 말했다. 올라가다 만 그의 입 꼬리가 부자연스럽게 굳어져 살아있는 얼굴이 아닌, 정교하게 만든 가면을 대하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뭔지 모를 오싹함에 진영은 그가 든 상자를 옆으로 살짝 밀었다.
“너 미쳤냐? 이건 냉동혈액이야. 보존혈액이라면 또 모를까. 적혈구를 녹이는 시간도 필요하고 동해방지제도 제거해야해. 게다가 혈액형이 맞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넣잔 거야? 도대체 여잘 살리겠다는 거야 죽이겠단 거야. 니 말대로 살리고 싶다면 이런짓은 도움이 안돼.”
그러나 민석은 단호했다. 그는 히죽 웃으며 진영의 손을 잡아 끌었다.
“뭐야? 이거놔. 놓으라구! 내 말 듣고 있는거야?”
“뭐든 상관없어. 그냥 집어넣어. 어차피 죽을 팔잔데 다른피가 섞이면 또 어때. 운 좋게 버티면 좋은거고 아니면 저대로 보내줘도 되겠지.”
“하지만 서로 다른 피가 섞이면……”
“해! 상관 없으니 해.”
진영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까와 같은 상황. 똑같은 두려움에 결국 그는 여자의 팔뚝에 바늘을 꽂고 피를 집어넣어야 했다. 차갑게 굳어버린 팔에 억지로 주사바늘을 쑤셔넣고 펌프질을 하듯 냉동된 피를 밀어넣는 행동은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만큼 소름 끼치는 충격이었다. 희연의 눈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민석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좋은 눈빛이군. 정말 끝내줘. 죽어가면서 저런 눈빛을 만들 수 있다니.”
하지만 이렇게까지 노력을 했어도 희연의 목숨은 이어지지 못했다. 당연했다. 맞지도 않는 피를, 그것도 냉동된 상태의 피를 집어넣는 일 따윈 먹히지도 않을 뿐더러 미친 짓이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던 진영은 스스로의 행동에 바보스러움을 넘어 역겨움 까지 느꼈지만 행동을 멈출 수 없었다.
희연의 몸부림이 계속됐다. 죽음을 앞둔 자의 처절한 눈빛. 몸을 일으키려는 반동에 따라 묶인 줄이 선명한 각인을 만들었다. 상체가 휘어지며 목구멍 안에서 울컥 선혈이 튀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뭔가를 말하려 했다. 볼 안에 쑤셔넣었던 가제가 터져 나오며 피가 스민 헝겊들이 바닥을 향해 후드득 떨어졌다.
혀가 없는 그녀가, 말을 못하던 그녀는 온몸으로 증오와 저주를 퍼부었다. 민석을 향해 이글거리던 두 눈이 어느 순간 멈추며 피를 넣고있던 팔이 추욱 늘어졌다. 희연은 두 눈을 부릅뜬 체로 그렇게 죽었다. 너무도 치켜 올라가 검은자가 거의 드러나있지 않은 새하얀 눈. 민석은 그 눈이 싫었다. 그리고……
“무슨 생각이야?”
철진의 말이 그를 현실로 불러냈다. 민석은 악몽을 꾼 사람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정적에 쌓인 창고 안을 초조하게 둘러봤다. 바닥을 흥건히 채우던 피는 철진에 의해 거의 닦여 이제는 깨끗해져 있었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하지만 민석은 그 곳에 새로운 긴장과 몸이 오싹해질 정도의 공포가 들어차 있는걸 알았다. 아직, 아무 일도 벌어지진 않았지만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보이지 않는 어떤 눈이 자신을 노리고 있는 상상이 들어 참을 수가 없었다.
“너 괜찮냐?”
이번에는 철진이 어깨를 툭 건드렸다. 민석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무슨 일이야? 나도 좀 알자. 아까부터 너희 둘, 귀신 어쩌구 하는데 확실한 거야? 내가 믿게끔 설명을 해봐.”
“설명하고 뭐고가 없어. 내 말을 믿어야 해. 아니, 믿어줬으면 좋겠어. 나도 아직 뭐가 뭔지 확신할 순 없지만 분명 헛것을 본건 아냐. 난 정말로 그 계집을 보았다구.”
“하지만 상식적으로 죽은 여자가 돌아왔다는건 좀 웃기지 않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수 있겠어?”
“모르겠어. 나도, 나도 모르겠다구. 하지만 사실인걸 어떡해. 진영이도 봤대잖아. 나뿐이면 모르지만 진영이까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생각하는건 아니지? 젠장, 정말 빌어먹을 상황이긴 하지만 모두가 다 진짜란 말야!”
그제야 철진도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친구들의 두려움이 전이되는지 아까는 별 생각 없이 지나쳤던 벽과 천장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꼼꼼하게 살폈다. 그러나 당장은 드러나는게 없어 조금은 풀린 표정으로 중얼댔다.
“귀신이라니 믿을 수가 없어. 꼭 고리짝 전설을 듣는 것 같군. 이건 들은 얘긴데 할아버지가 해준 거지. 죽은 사람의 몸에 기가 너무 많으면 귀신이 되기도 한다는 거야.”
“무슨 소리야?”
민석이 반문했고 움츠려있던 진영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사람이 죽을 땐 입을 통해 기가 빠져나간대. 그런데 간혹 그 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몸 안에 머무르는 경우가 있다는 거야. 살아 있을 때 기가 허하면 병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은 자의 몸엔 기가 하나도 없어야 되는 거지. 그런데 그렇지 못한 존재는 죽어서도 떠도는 영혼이 된다는 거야.”
그가 그 말을 어떤 의미로 한 것인진 모르지만 모두는 침묵한 체 눈동자만 굴렸다. 너무도 조용해 침 삼키는 소리가 다 들릴 지경이었다. 잠시 후 민석이 허탈한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염병할, 그럼 그 년은 귀신이 된 게 분명하군. 넘칠 정도로 많은 기를 끌어안고 죽었으니.”
“야, 그냥 흘려 들어. 농담이지 뭐. 요즘 누가 이런 얘길 믿냐? 할아버지가 손자를 겁주려고 지어낸 소리일 뿐이라구. 더구나 정말 귀신이 나타난 거라면 왜 나나 형진이 눈엔 안 보였겠냐? 그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니들이 기가 약해서 그런 거야. 그만 정신들 차려.”
철진이 좋게 말했지만 민석은 꺼림칙한 기분을 풀지 못했다. 단순히 환상을 본 거라고 하기엔 그 느낌이 너무도 생생했다. 무엇보다도 여자의 눈, 흰자위를 드러낸 체 죽은 그때의 눈동자와 주사바늘을 꽂고있는 팔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반사적으로 주변에 이상한 것이 없는지 황급히 둘러봤다. 커튼이 드리워진 벽, 깨끗이 정리 된 바닥, 그리고 천장…… 다행스럽게도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민석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볼을 타던 손이 목 뒤로 넘어가 자리잡고있던 뼈를 안마하듯 눌렀다. 그 순간 흐물거리는 뭔가가 손가락사이를 파고 들었고 불빛에 손을 비춘 민석은 경악의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거무튀튀한 살점이 뱀의 혀처럼 날름대며 손등 위를 기고 있었다. 여기저기가 잘려져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질된 그것은 민석의 기억 밑바닥에도 선명하게 각인된 것이었다. 그는 그것이 뭔지 알고 있었다. 바로 자신이 니퍼를 집어넣어 억지로 끄집어냈던 희연의 혀였다.
“으, 으아, 저리가앗!”
그가 미친 듯 손등을 비비며 살점을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피부에 닿는 느낌이 뭐라 설명하기 힘들만큼 꺼림칙한 그것은 그의 손을 요리조리 피하며 손가락 사이를 유유히 지나다녔다. 다음순간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한 느낌이 나더니 손목이 시큰거렸다. 그리고 그는 이어지는 놀라운 광경에 두 눈을 부릅떴다.
손가락을 이어주는 관절이 불끈 솟아오르며 살갗을 뚫고 나왔다. 찢어지는 피부사이로 물컹물컹 피가 새나오더니 기묘하게 뒤틀려갔다. 붉은 페인트가 쏟아지듯 바닥에 떨어지는 피 위로 그의 손가락도 하나하나 잘려져 떨어져갔다. 위치를 잃어 딱딱하게 굳어버린 검지, 안으로 굽혀진 체 허연 뼈를 드러내고 있는 엄지, 손가락을 잃어버린 민석의 손은 뭉툭한 손등만 남게 됐고 그것을 본 그가 입을 크게 벌렸다.
“아악, 이럴 수가…… 이건, 이건 꿈이야.”
바닥을 적시던 피와 살점들이 합쳐지며 거대하게 부풀어 갔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팽창해가던 그것은 사람 크기만큼 커져 그를 내려다봤다. 팔다리가 없는, 흡사 지렁이의 변종 같은 괴물이 민석을 위협하듯 앞으로 기어 나왔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민석의 앞에서 눈 코 입이 없는 괴물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주먹만한 구멍이 움푹 파였다. 들썩거리던 괴물의 입이 돌아가며 낯익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너어어……어 나……아아를 죽여어……써어어.”
민석은 고개를 저었다.
“저, 저리가앗. 사, 사 사라져…….”
“나아아……를 죽여써어어. 죽여써어……어.”
괴물의 배가 주욱 갈라지더니 그 사이로 이빨들이 번득였다. 언젠가 민석이 뽑아내 버린 이빨들이 흉하게 꿈틀대며 웃고 있었다. 괴물의 몸이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처럼 거대하게 벌어지더니 그를 덮쳐왔다.
“너……도 주거……어.”
“시, 시러어어! 이거 놔앗!”
두 팔로 얼굴을 가린 민석이 몸부림을 쳤다. 끈적하고 질퍽한 액체들이 전신을 휘감으며 퍽퍽하게 죄여왔다. 강하게, 조금의 틈새도 주지 않으며, 위와 아래, 양쪽에서 압박해 오는 압력에 민석의 몸이 짜부라졌다. 갈비뼈가 부러질 듯 욱신거렸고 코에 닿는 괴물의 몸에서 역겨운 악취가 풍겼다. 그가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헉헉거리며 손을 뻗었을 때 볼에서 따끔한 느낌이 나며 주변이 환해졌다.
눈 앞에는 철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의 한쪽 손은 민석의 어깨에 올려져 있었고, 뺨을 때린 손은 어색하게 공중에 머물러 있었다.
“아, 내가…… 내가 대체…….”
“너 대체 왜 그래?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벌벌 떨길래 얼마나 놀랐는줄 알아?”
민석이 믿지 못하겠단 투로 고개를 흔들었다. 철진이 한숨을 쉬더니 땀에 젖은 친구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유심히 살폈다. 눈 밑이 움푹 파여 있고 자잘한 주름들로 덮인 민석의 얼굴은 그 순간 10 년은 더 늙어보였다.
“너 괜찮냐?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혼자서 허공에 대고 발작한게 기억이 안나?”
“그랬어? 내가?”
말을 하면서 민석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분명히 괴물과 마주했는데 철진의 눈엔 보이지 않았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나는 환상을 본 게 아니다.
“그래 임마, 귀신 얘기하다가 그게 뭔 짓이냐. 간 떨어질 번 했잖아. 오늘 정말 이상하네. 제발 진정 좀 해라. 나 좀 살려달라구.”
“그럴 리가 없어. 넌 보지 못한 거야? 내 눈앞에 괴물이 있었잖아! 안보여?”
“괴물은 무슨 괴물이야. 너 혼자 난리쳤다니까 정말 안 믿네. 내가 지금 헛소리 하는 걸로 보이냐?”
“아니야! 정말 괴물이 나왔다구. 분명히……”
그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다가 틈새에 묻어있는 피를 보곤 흥분해 소리쳤다.
“봐봐. 이것보라구. 피야. 그 계집의 피라니까! 분명히 나타났어. 우릴 노리는 거야.”
민석이 증거를 찾았다는 마음에 조급하게 외쳐댔지만 철진은 피식 웃으며 굳은 체 붙어있는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튕겨 떨궈버렸다.
“정신 차려. 강민석, 이건 아까 죽은 주영이란 계집의 피야. 니 손으로 죽여놓고도 벌써 잊은 거야?”
“내 말을 들어. 농담이 아냐. 정말로 봤단 말야. 그년 피가 아냐. 바로 내가 전에 죽인……”
“됐어. 그만해. 우리 이제 잠자코 제자리나 지키자. 적어도 형진이가 올 때까진 공포 분위기 만들지 말자구. 안 그래도 사람 죽어나간 창고라 기분 나빠 죽겠는데 왜 자꾸 헛소리를 하는 거야? 너 자꾸 겁주는 말만 할래?”
“젠장! 아니란 말야!”
민석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크게 소리치며 바닥을 쾅 하고 내리쳤다. 철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고 그는 좀 전부터 욱신대는 가슴을 철진에게 보여주기 위해, 입고있던 셔츠를 신경질적으로 들어올렸다. “봐! 이래도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거야?”
민석의 가슴에는 하얀 피부색과 어울리지 않게 붉은 보랏빛의 피멍이 들어 있었다. 새빨갛게 일어난 상처를 보고 철진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민석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게 뭔지 알아? 그 망할 년이, 아니 귀신인지 괴물인지 모를 그것이 나에게 낸 상처란 말야. 넌 헛것을 본 거라 하는데 난 분명 봤어. 내가 잘라낸 혀, 이빨. 그것들이 내게 덤벼들었다구. 날 죽이려 했어. 노리고 있단 말야. 무슨 말인지 몰라? 이런 상처? 갑자기 이런 게 왜 생겨났겠어?”
“아무리 그래도 이건.”
“복수하는 거야. 우리들에게 혼란을 주고 따로 떨어뜨려 놓는 거라구. 진영이도 봤다잖아. 하지만 진영이 눈에만 보였지. 나도 마찬가지야. 각자의 눈에만 보이게 해서 미치게 만들려는 거라구. 그 년은 우릴 전부 죽일 생각이 분명해.”
설명을 듣고있던 철진의 안색이 불편하게 꼬여갔다. 그는 한편으론 민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상식적으로 볼 때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빨 어쩌구 하는 말은 정신분열 말기의 환자가 떠드는 것처럼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판단관 달리 민석의 표정은 굉장히 불편해보였다. 그는 누군가가 뒤에 쫓아오기라도 하듯 연신 사방을 둘러보며 몸을 움츠리고 눈알을 불안하게 굴려댔다. 농담으로 웃어 넘기려던 철진도 그러한 행동에는 마음을 편히 먹을 수 없어 힘없이 늘어진 팔을 부축하듯 잡았다.
“너, 괜찮냐?”
“이렇게 있으면 안돼. 이러고 있으면 안돼.”
“뭐? 무슨 소리야?”
반문했지만 민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스스로에게 하듯 중얼거렸다.
“가만히 있으면 당할 거야. 이렇게 있으면 안돼. 모두, 모두 죽일 거야.”
“민…… 석아?”
“죽일 거야. 그 계집이 날 죽일 거야. 안돼. 절대 안돼. 지금 이 기분을 없애야만…….”
그가 눈알을 번뜩이며 주변을 싸늘하게 노려봤다. 지금 민석은 극도의 패닉 상태에 빠져있었다. 눈 앞에 있는 철진이나 구석에서 자신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진영의 존재는 잊었는지 끊임없이 자기 암시를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포박이 된 미진을 보곤 야릇한 미소를 띠었다.
“이봐?”
다음순간 민석이 무릎걸음으로 기다시피 몸을 끌며 미진에게 다가갔다. 그는 비스듬히 눕혀져 있던 미진의 몸을 바로하곤 허리위로 올라탔다.
“왜, 왜 이래요?”
“뭐 하는 거야?”
미진의 짤막한 물음과 철진의 외침은 거의 동시에 튀어나왔다. 두려움에 질린 미진의 얼굴을 더듬으며 그는 그녀의 몸 어딘가에서 찾고 있는 물건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 실실대며 웃기만 했다. 그의 손이 거칠게 움직이더니 연 보랏빛 블라우스를 풀어헤쳤다.
“꺄아악! 이러지 말아요. 제발.”
블라우스의 단추가 후드득 떨어지며 감춰져 있던 속살이 드러났다. 민석이 오돌도돌하게 소름이 돋은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며 치마 속으로 손을 밀어넣었을 때 철진이 목덜미를 잡곤 뒤로 끌어냈다.
“뭐 하는 거야, 임마!”
민석이 밥그릇을 빼앗긴 강아지마냥 샐쭉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철진은 그의 어깨를 강하게 흔들며 거푸 소리쳤다.
“너 대체 왜 이래? 왜 그러는 거냐구! 강간이라도 할 생각이야?”
민석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 잊은 것처럼 얼떨떨한 자세로 한동안 철진의 눈만 보고 있었다.
“강민석!”
“아, 나, 나는.”
두 팔로 어깨를 감싸며 민석이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블라우스 단추 두어 개가 그의 손을 빠져나가 바닥으로 또르르 굴렀다.
“무서워서 그래. 무서워서……”
“뭐가 무섭다는 거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지도 몰라.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
공포심을 이기기 위해 성욕의 힘을 빌리려 하다니. 철진은 이렇게까지 겁에 질린 친구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에 차 있었으며 살인을 주도하는 민석과는 모든 게 어울리지 않았다. 너무도 한 순간에 바뀌어 화까지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허상이라고 치기엔 너무나 아귀가 딱딱 들어맞고 있었다.
잔인하게 죽어간 희연과 잘라버린 혀, 진영이 보았다는 여자의 얼굴.
‘정말 그 여자가 우리를 노리고 있는 걸까? 복수를 하기위해 나타난 건가?’
철진은 같은 고민을 안고있는 친구들의 상태를 살피다가 옷이 찢겨진 미진의 몸 위에 얇은 포대를 덮어주었다. 기분이 점점 이상해졌다. 눈 앞의 공기는 너무 팽팽했고 질식할 정도로 갑갑한 기운이 주변을 덮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만 같았다. 그는 양 쪽의 친구들을 번갈아 살펴보며 자신들을 노리는 어떤 기운에 대항하듯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한동안 긴 침묵이 이어졌다. 쭈그리고 앉은 진영과 무엇 때문인지 심각해진 철진을 보며 민석은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작은 바늘이 3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큰 바늘은 11을 지나고 있었는데 부산히 움직이는 초가 바늘들의 이동을 재촉하고 있었다.
‘벌써 4시나 된 건가.’
아침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단 사실에 실망하며, 한편으론 숫자 4가 주는 불길함이 싫은지 민석이 얼굴을 찡그렸다. 다른 때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새벽 4시란 시간이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죽은 사람이 제일 활발하게 움직이는게 4시라던데.’
넓은 창고에 정적이 감돌았다. 뚫려있는 창으론 칠흑 같은 어둠이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처럼 머리를 내밀었고, 천장에 달려있는 색색의 조명들은 부서질 듯 흔들리며 깜박이고 있었다. 간혹 전기가 나가는 경우도 있기에 민석은 불안해졌다. 질식할 정도로 고조된 감정의 기운 속에서 정전이라도 된다면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어둠이 몰고 올 공포를 참을 수 없었다.
“덜컹.”
난데없이 들려오는 소리에 모두는 움찔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서로의 시선이 한데 모이고 어색한 눈빛이 오고 갔다. 조용하던 진영이 입을 열었다.
“문…… 잠그지 않았어?”
“무슨 소리야? 아까 분명히 잠궜는데.”
말을 하면서도 철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덜컹. 덜컹> 육중한 쇠 문이 땅과 마찰 되 끌리는 소리가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코너에 가려 여기선 보이지 않는 쇠 문을 향해 매서운 시선을 보냈다.
“확인하고 와야겠다. 기다려봐.”
“잠깐만!”
“뭐야?”
자신을 붙잡는 진영에게 철진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그는 금세라도 없어질 친구를 보는 것처럼 불안하고 두려움이 담긴 눈으로 작게 속삭였다.
“조심해.”
“자식, 싱겁긴. 어디 전쟁이라도 났냐?”
철진이 사라지자 진영은 어찌하면 좋겠냔 투로 민석을 바라봤다.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건 아니겠지?”
진영이 다시 물었다. 민석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를 잊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못하다가 거의 소리를 내지않고 입 모양으로만 오물거렸다.
“나도 몰라.”
“기이잉.”
쇠 문 끄는 소리가 또 한번 강하고 선명하게 귓속을 파고 들었다. 흡사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오려고 문을 미는 것 같았다. 야밤에 이곳으로 들어오기 위해 문을 미는 존재라…… 민석은 혹시 형진이가 아닐까 란 생각도 해봤지만 확신 비슷한 것이 그것을 부정했다. 스산한 바람이 얼굴에 스치며 주변이 서늘해졌다. 그가 추운 듯 몸을 떨며 떠듬거렸다.
“뭐, 뭐지?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난 이곳이 싫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지.”
진영의 상태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올올이 솟은 눈썹 밑에 흔들리는 동공을 보며 민석은 추가로 전이되는 두려움을 이기려는 듯 억지로 목소리를 높게 냈다.
“좀더 기다려보자. 그러다 보면 형진이가 올 거고 우린 이 빌어먹을 창고를 나가 다른 곳으로 가는 거야. 뜨끈한 국물에 취하도록 소주나 마셨으면 좋겠다. 젊은 계집애의 다리를 주무르면 더욱 좋겠지. 하지만 어디든 술만 마실 수 있다면 상관 안 하겠어.”
“넌 이곳을 나가게 될 거라 생각해?”
“무슨…… 소리야?”
불길한 진영의 말에 민석이 침을 꿀꺽 삼키며 입술 끝을 살짝 깨물었다.
“나가도록 순순히 내버려둘까? 이 창고는 이상해. 전에는 느끼지 못한 묘한 기운이 주변에 넘쳐있어. 문이 열려 있는 것도 아닌데 괜시리 춥고 바람이 몸에 닿아. 그리고…… 내가 어떤 것을 보면 그 뒤에 감춰진 뭔가가 나를 감시하는 기분이 들어 참을 수가 없어.”
“생각일 뿐이야.”
생각이라고? 진영에겐 그렇게 말했지만 민석도 절대 생각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의 창고 안은 이상했다. 답답할 정도로 내려앉은 분위기와 기도가 탁 막힐 정도로 조여오는 공기, 주변에 널린 사물 속에 감춰져 있는 눈들. 물론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민석에겐 날카롭게 번뜩이는 사람의 눈이 수백 개는 뚫려있는 것처럼 괴기스럽고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그것들 하나 하나마다 끊임없이 눈알을 굴리며 자신들을 노리고 있었다. 뭐랄까. 그건 마치…… 창고 전체가 살아있어 모두를 감시하는 기분이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군. 내가 대체 왜 이리 마음이 약해졌지.’
“미, 민석아! 저것……!”
그때 진영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손을 쳐들었고 민석은 등줄기에 흘러내리는 서늘함을 느끼며 그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으아악!”
뚫려있는 창 틈으로 왠 여자가 싸늘한 시선으로 자신들을 보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는 길고 피부는 밀가루를 뒤집어쓴 것처럼 허옜는데 가면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창틀을 쥐고 있었다. 놀라 허부적대던 민석은 창틀의 높이가 적어도 3미터는 되는걸 알곤 뒤로 나자빠졌다. 상식적으로 볼 때 보통의 여자가 3미터 높이의 창틀을 잡고 안을 들여다볼순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여자는 창틀을 쥐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실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은 거의 걸치기만 한데다 미세하지만 몸이 위 아래로 흔들리고 있었다.
“귀, 귀…… 귀…… 귀신……..”
민석과 진영은 지옥이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부들부들 떨며 두 손을 엉성하게 내저었다. 기다시피 몸을 끌던 진영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울 듯한 얼굴로 소리쳤다.
“민석아, 저, 저 여자 그, 그때 우리가 죽인 여자야.”
“뭐?”
그저 상황을 벗어나야겠단 생각밖에 없던 민석도 그 말에 느껴지는게 있던지 눈을 부릅떴다. 진영의 말은 사실이었다. 시리도록 창백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여자는 분명 난도질을 하기전의 정희연이란 여자였다. 흘러내린 긴 머리와 아른아른 비치던 흰색 원피스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어왔다. 차라리 죽였을 당시의 모습이 났지 사지가 멀쩡하니 왜려 끔찍해 견딜수가 없었다. 닫힌 창문이 스르르 열리며 그녀가 안으로 들어올 듯 고개를 디밀었다. 뒤에 펼쳐진 까만 장막이 살아있는 것처럼 넘실댔다. 민석과 진영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눈을 감으며 소리쳤다.
“사, 사람 살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용한, 죽음 같은 정적만이 감돌아 두 눈을 꼬옥 감고 있던 민석이 한쪽 눈을 쳐들었다.
“아니!”
놀랍게도 창문은 멀쩡했다. 밖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듯 조금 덜컹대긴 했지만, 여자의 자취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도 완벽하게 사라져 정신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멍한 얼굴로 서로를 보고 있을 때 철진이 걸어왔다.
“무슨 일이야. 비명 소리가 난 거 같던데?”
“그, 그것이…….”
둘은 대답하지 못했다. 말해봤자 믿지도 않을 뿐더러 바보 취급만 받을게 뻔했다. 게다가 셋 중에선 가장 멀쩡한 철진이었으므로 그마저 자신들처럼 무서움에 떤다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진영이 평상시의 말투로 물었다.
“문은 왜 그런 거야?”
“아, 조금 열려 있더라고. 밖에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옷이 펄럭일 정도로 셌다니까. 아까 분명히 잠근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겠다. 깜박 잊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