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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너프 살인(3)
게시물ID : panic_28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이큐0
추천 : 4
조회수 : 25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8/08/27 10:53:10
무슨 헛소리냔 식으로 쏘아보던 진영과 민석은 뒤를 보곤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미진, 분명 묶여 있어야 할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얼룩이 진 매트만이 그들을 조롱하듯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었다. 조금 전 까지 미진이 누워있던 탓으로 그것은 아직도 따스했다. 그러나 줄을 푼 흔적이나 몸을 움직인 자취가 없어 그들은 할말은 잊은 체 멍하니 서로만 바라봤다. 귀신의 도움이 아니고서야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대체 이, 이게 무슨 일이지? 여잔 어디로 간 거야?” 

민석이 싸구려 물건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떠듬거렸다. 철진은 눈을 부라렸다. 
“그걸 지금 나에게 묻는 거냐? 니들이 더 잘알거 아냐. 도대체 둘이서 여자하나 못 지키고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그 여자가 도망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나 이러는 거야?” 

그는 여자가 어떻게 해서 없어졌냔 사실보단 사라진 자체에 더 중점을 뒀다. 이러고 있다 형진이 오면 할말이 없었다. 게다가 여자가 철문을 통과해 밖이라도 나간다면 이제껏 해온 그간의 행적들이 낱낱이 세상에 공개될 것이다. 잔혹한 살인 필름과 여자들을 죽여 온 범죄 행위. 그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 받지 못할 죄였다. 

철진이 잽싸게 문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진영과 민석은 멍하게 서 있다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동시에 몸을 틀며 창고 안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곳의 어디에도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녹이 슨 선반과 잡동사니를 모아두는 상자, 커튼 뒤와 쓰레기 통, 냉장고까지 열어본 민석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문을 확인하고 온 철진은 자신이 잠근 문이 그대로인데다 뭔가가 빠져나간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을 알곤 혀를 내둘렀다. 

“미치겠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갈만한 구멍과 문을 모두 찾았는데 왜 없는 거야? 더구나 아까 내가 문을 잠그러 갈 때만 해도 여자가 누워 있었잖아. 내가 분명 포대를 씌워준 걸 기억 하는데…… 계집애가 없어진 건 문을 잠근 이후야. 그건 확실해. 하지만 나간 흔적이 없으니 도대체 이 불가사의를 뭐로 설명하지?” 

타는듯한 그의 눈은 대답을 원했지만 누구 하나 속시원히 말을 해줄 수 없었다. 초조함에 바닥만 보고 있던 진영은 문득 주변이 너무 춥다는 사실에 고개를 처들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살갗에 닿는 차가운 밤바람은 아까까지 창고 안을 맴돌던 기류완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이리저리 시선을 주던 그가 창문이 열린 것을 보곤 경악했다. 

3미터 높이의, 그래서 여기선 손도 닿지 않는 창문이 반쯤 열려 있고 그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좁은 창 틈을 비집는 바람소리가 아이 우는소리처럼 기묘하게 들려왔다. 

“휘이잉…… 위이잉…… 이이잉…… 이잉……” 

바람 소리가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아니, 그건 단지 바람이 부는 소리일 뿐이었으나 진영의 귀엔 점점 다르게 들렸다. 

“이이잉…… 이잉…… 너…… 그때…… 나를…… 나를……” 

“그, 그만해.” 

“나를…… 나를…… 죽여써어…… 피…… 내 혀…… 혀……” 

“아악! 그만해.” 

소리가 점점 커지며 드세졌다. 진영은 귀를 막았지만 청각을 예민하게 후벼 파는 그것의 진행을 막을 수 없었다. 

“죽어…… 너…… 너도 죽어…… 나처럼…… 모두 죽어…… 피…… 피를……” 

“싫어엇! 저리가앗!” 

진영이 미친 듯 비명을 지르며 귀를 마구 때렸다. 그래도 소리는 없어지지 않았다. 끈덕지게 달라붙는 저 소리…… 저 끔찍한 목소리. 저것을 없애야만…… 진영은 바닥에 널브러진 매스를 주워 들곤 귀에 가져갔다. 

“무슨 짓이야?” 

난데없는 행동에 철진이 진영의 팔을 잡았지만 이미 늦었다. 예리한 매스가 귓속을 파고 들더니 곧이어 붉은 피가 구멍을 뚫고 터지듯 새나왔다. 목선을 적시며 흘러가는 피. 그것은 길게 흐르며 그의 상의를 빨갛게 물들었다. 진영은 웃고 있었다. 자기 스스로 귀를 찔러놓고도…… 묘하게 안정된, 아니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지, 진영아?” 

“쳉캉.” 

들고 있던 칼이 그의 손을 빠져나가 힘없이 떨어지며 바닥에 붉은 꽃을 피웠다. 진영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웃기만 하다 철진을 보며 중얼댔다. 

“이젠…… 안 들려.” 

“뭐?” 

“그 소리…… 이젠 안 들려. 하나도…… 들리지 않아.” 

“무슨 소리야?”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철진의 얼굴도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건 뭔가 잘못 되 가고 있었다. 미진의 증발과 진영의 행동, 모두 정상이 아니었다. 뭔가가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하는 어떤 무언가가……. 

그는 진영을 자리에 앉히고 급한 대로 응급 처치를 해주었다. 응급처치라고 해봤자 그저 닥치는 대로 면봉과 솜을 뜯어 귀에 넣어주는 것이었지만 지금으로선 병원에 갈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식할 정도로 극악한 처방에도 진영은 살아 있었다. 다행히 메스가 귀 이외에는 건드리지 않은 듯 했다. 

진영의 상태를 지켜보던 민석은 아까는 없던 한기에 주변을 둘러보다 창문이 열려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틈새에 비치던 밤의 장막이 바람과 함께 안으로 파고들 듯 무섭게 펄럭였다. 민석은 입을 크게 벌렸다. 

“어떻게 저런……. 창문이 왜 열려 있지? 아니, 어째서 열려지게 된 거야? 저건 분명…….” 

의자를 대고 올라가야 하는데다 보통 때는 단단히 잠가두므로 창문이 열려졌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됐다. 그의 머리로 죽은 희연이 얼굴이 일렁이며 떠 올랐다. 그녀의 차가운 얼굴, 자신들을 향한 증오서린 눈은 아까까지만 해도 창틀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조심스레 다가가 의자를 받혔다. 하기 싫고 말할 수 없이 두려웠지만 저대로 두면 공포감만 조성될 뿐이었다. 

“삐그덕.” 

의자 밟는 소리가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그가 위로 팔을 뻗으며 아슬아슬하게 창틀에 손을 걸쳤다. 손가락 틈새로 바람이 파고 들었다. 그것은 마치 그의 행동을 반기지 않는 것처럼 강하고 거세게 불었다. 민석이 침을 꿀꺽 삼키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열린 창살을 잡아 반대편으로 끌었다. 
“끼이이익.” 

시끄러운 소음을 내던 창문은 거의 닫혀져 갔다. 그가 위를 보며 힘겨운 미소를 지고 있을 때 손에 뭔가가 닿았고, 그것이 차갑게 식어버린 여자의 손이란 것을 알자 그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으아아악!” 

의자가 엎어지고 민석이 그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그래도 그는 넋 나간 얼굴로 비명을 질러댔다. 철진이 다가와 팔을 부축했고 그는 희멀건 눈으로 위를 보며 연신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뭐야? 뭐냐구?” 

“저, 저기, 여, 여… 여…. 여자…….” 

“뭐?” 

“여, 여.. 여… 여, 여자.” 

철진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자라니…… 근처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도 조금 전부터 벌어지는 친구들의 행동에 대한 묘한 불안을 느끼고있던 터라 더 따지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먼저 쓰러진 의자를 이용해 창문을 닫곤 민석에게 미진이 덮었던 포대를 덮어 주었다. 형진을 기다리는 시간이 죽음처럼 길게 느껴졌다. 최소한 날만 밝았어도 이 정도로 불안하진 않았을 텐데. 증발한 미진과 귀를 찌른 진영, 그리고 민석까지…… 전부 다 끔찍한 악몽이었다. 더 이상의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그는 진영과 민석의 가운데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대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잘못돼가고 있어. 그렇지?” 

들려오는 대답이 없던 탓인지 그는 혼잣말을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왜 너희들 눈에만 보이는 거지? 이러니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잖아. 난 내가 정상인지, 아니면 미친 건지 확인하고 싶어. 정말 귀신이 나타난 거라면 나에게도 해코지를 해보라고 그래.” 

그 말에 민석이 피식 웃더니 철진의 어깨를 잡고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의 표정은 심하게 뒤틀리고 간헐적으로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가 새나왔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게 더 끔찍한 거야. 주변은 그대로인데 자신의 눈만 뒤틀려가는 심정을 알아? 옆은 그저 평화스러운 광경인데 내 앞에서만 지옥이 펼쳐진다고. 넌 그 기분 몰라.” 

“민석아…….” 

“그 계집이 우릴 전부 말려 죽일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니 눈에 안 보인다고 불만을 갖진 마. 적어도 나나 진영이보다는 네 입장이 훨씬 좋을 테니까. 난 두려워. 내가 시선을 돌리면…… 그 쪽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렵고 초조해서 죽을 것만 같아. 하지만 벗어날 수가 없지. 우린 그물에 걸린 거야. 당하는 자나 지켜보는 자 모두 괴로운 살인 게임에…….” 



살인게임이라고? 말도 안돼.” 

“으흐흐. 말이 안 된다고? 그럼 우린 뭐지? 나나 진영이 꼴을 봐. 보고도 모르겠어?”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현실을 직시해. 눈에 보이는게 다가 아니니까.” 

<눈에 보이는게 다가 아니니까> 그 말이 유난히 또렷하게 귀를 파고 들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철진은 잠시 후 작고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로 너희들 눈엔 그 여자가 보이는 거야? 죽은 사람이?” 

하지만 물어놓고도 대답을 듣기가 두려워 어깨를 움츠렸다. 민석이 무슨 말을 할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뻔히 아는 사실에, 뻔히 나올 대답.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불안하게 뒤섞이는 마음이 사태에 대한 해석을 원했다.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은 웃는 것 같기도 하고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두려움이었다. 곤두서 있는 눈썹과 일정한 곳을 향해 있으나 결코 그곳을 보고있지 않은 눈동자. 목까지 끌어안고 있는 모포, 그런 민석의 모습은 전염병처럼 퍼져 철진을 옭아맸다. 

“이건 너가 아냐. 정신차려. 민석아!” 

“…….” 

“왜들이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다고…….” 

그러나 그는 그 말을 내뱉은걸 곧 후회했다. 무엇보다 산 증인들이 눈 앞에 있지 않은가. 게다가 지금은 잊혀졌지만 아는 선배 중엔 실제로 귀신을 볼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가만있자…… 이름이 김…… 선웅이었나?’ 

대학 1학년 새내기일 때 알게 된 2학년 선배. 그보다 나이가 세 살 정도 많은 선웅이란 선배는 속이거나 과장된게 아닌 정말로 눈에 귀신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가 학교 축제 때 비어있는 5층의 창고를 치우며 봤다는 네 명의 아가씨들이나, 화장실이 있는 복도 앞에서 기어다니고 있는 아기를 본 얘기는 무더웠던 여름을 식혀버릴 만큼 강한 충격과 공포를 주었었다. 

“너 그거 모르지? 귀신들은 자신이 죽은 것도 모르고 죽기전의 행동을 반복하는 걸 말야. 예를 들어 빌딩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은 추락하는걸 반복하고 목이 졸린 사람은 몇 번이고 끈에 목을 끼우는 거야. 또 놀다가 차에 치어 죽은 애는 아무것도 모른체 자전거를 움직이며 웃고있지.” 

“선배는 정말로 그런걸 다 봤어요?”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튼소리를 하지 말란 투로 쫑알대면 선웅은 피식 웃으며 좀더 자세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귀신들은 자신이 죽었을 당시의 행동에만 관심이 있기에 주변의 일이나 사람들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스스로가 죽었다는 걸 인식하면 그때부터 다른 사람의 몸이나 상황에 관심을 갖게 되므로 마주치면 성가신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귀신하고 얘길 해본적도 있나요?” 

“몇 번은,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냐. 보통 사람들이 귀신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귀신들도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몰라. 말했듯이 죽기 전 일에만 관심이 있거든. 그런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 잠을 자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구. 좀 춥고 으스스한 게 여름인데도 말야. 얼결에 눈을 뜨니 왠 남자가 벽에서 얼굴만 내민 체 날 보고 있는 거야. 어둡고 파란빛이 감도는 얼굴이었는데 나하고 눈이 마주치자 그러더군. 내 몸을 쓰고 싶다고. 자신이 들어가도 되겠냐고 말이지.” 

“끔찍하군요.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당연히 안 된다고 했지. 꺼지라고 욕을 하며 한바탕 난리를 쳤어. 그럴 때 약하게 나가면 큰일나거든. 자신이 죽었다는걸 알고도 땅에 붙어있는 것들은 늘 남의 몸을 가지려고 드니까. 그 남자귀신, 한동안 내 방에서 떠나질 않아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아마 그때가 제일 쫄았을 땔 거야.” 

하지만 정말 압권은 며칠 후 계단 아래에서 둘이 마주쳤을 때였다. 

1학년 들의, 철진이 수업을 듣던 <문예 창작과> 강의실 밑엔 낮에도 어두운 복도가 있었다. 간혹 강의실 앞 화장실에 사람이 많을 땐 그곳까지 내려가 볼일을 보고 앞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음료수도 뽑아오곤 했는데 어느날 그곳에서 선웅을 만났다. 

음료수를 마시던 선웅이 복도를 보며 혼자서 혀를 차는데 그것이 질책이나 언짢다는 표현이 아닌, 동정이 짙게 베인 말투라 철진은 호기심이 들었다. 게다가 아무리 봐도 그곳엔 둘 외에 사람의 그림자라곤 없었기에 궁금함은 커져 만 갔다. 

“선웅 선배, 왜 그래요? 거기 뭐가 있어요?” 

“응…… 아기.” 

음료수를 삼키던 그가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중얼댔다. 

“에?” 

“아기가 있어. 아주 어린데…… 그런데 저 아기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움직이는군. 하지만 자꾸 넘어져. 오른쪽 다리 하나가 없거든.” 

“뭐, 뭐라구요?” 

기겁을 한 철진이 펄쩍 뛰었다. 선배의 말에 따르면 이제 갓 돌이 지났을 정도로 어린 아기가 푸른색 프릴이 달린 잠옷을 입고 뭔가를 찾듯 양쪽 복도 끝에서 끝을 왕복하며 기고 있다는 거였다. 더구나 무엇 때문인지 다리 하나가 잘린 상태라 기다가 넘어지고 기다가 넘어지면서 말이다. 

그 끔찍한 얘기 덕분에 푹푹 찌던 여름을 아주 시원하게 보냈었다. 생각해보면 소름 끼치게 무섭던 캠퍼스의 악몽이었다. 다리가 없는 아기 얘기, 그것은 진득한 종기처럼 내내 철진을 괴롭히다 어느 순간부터 잊혀져 갔는데 몇 년이 흐른 이제서야 다시 떠오르며 그를 공포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선웅의 말대로라면 귀신은 분명 있고 어쩌면 이 안에도 있을지 몰랐다. 꼭 희연이란 여자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자신이 무심코 걷는 발 밑에 다리 잘린 아기가 있을지도 모른단 상상에 철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빌어먹을, 그건 말도 안돼.” 

철진은 민석의 어깰 잡고 흔들었다. 

“뭐든 얘길 좀 해봐. 이러고 있는다고 달라지는건 없잖아? 아무 얘기나 해서 이 지  랄 같은 상황 좀 바꿔 보자구!” 

그러나 그는 목각인형처럼 늘어질 뿐이었다. 느슨하게 처지는 팔에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귀에 쑤셔놓은 솜과 면봉을 하나하나 빼서 바닥에 던지던 진영이 퀭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목선을 따라 흐르던 피가 그대로 굳어 검붉은 딱지가 생겨 있었다. 진영은 조금 들뜨기도 하고 정신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상을 쓰자 내내 느끼고 있던 공포의 감정이 검은 날개처럼 펼쳐지며 얼굴에 내려앉았다. 

“진영아…… 너 괜찮아?” 

진영은 그 질문이 어떤 의미를 띄는 건지 모를 사람처럼 멍하게 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주절댔다. 

“소리…… 안 들려. 하지만 귀속에서 뭐가 자꾸 움직여…… 손을 대면 다른 쪽으로 옮겨가서 난 잡을 수 없어. 칼, 칼이…….” 

그는 바닥에 손을 짚곤 봉사처럼 떠듬떠듬 움직였다. 

“칼이 필요해. 이번에야 말로 확실하게…….” 

“정신 차려. 너 대체 왜 이래?” 

진영이 움찔 놀라다 히죽 웃었다. 그리곤 자신쪽으로 다가온 철진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찾았어. 이젠 아무 소리도 듣지 않을 거야. 너도…… 이게 필요해?” 

그의 손엔 핏자국이 말라붙은 메스가 들려 있었다. 철진은 진영의 손을 쳐 그것을 멀리 던져버렸다. 

“이러지마! 왜 자꾸 이러는 거야? 정신 차려. 아직 우린 안 죽었어. 알아? 죽지 않았다구!” 

철진은 과연 자신이 겁에 질린 친구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지만 머리 속에 떠오르는 건 죽어가던 여자와 피, 뒤죽박죽 되어 정리할 수도 없을 만큼 헝클어진 잔인한 기억 뿐이었다. 그것들은 쇳덩어리 괴물처럼 거대하게 뭉쳐 흉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영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젠장! 무슨 말이나 좀 해봐. 이러고 있으니 답답해 죽을거 같잖아. 그렇게 입다물고 있다고 너희들이 겪고있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뭐든 떠들어 보라구! 왜 모르는 거야? 너가 죽었어? 내가 죽었냐고? 살아있어. 아직 안 죽었단 말야!” 

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신경질적으로 벽을 치며 바닥을 세게 밟아댔다. 주먹이 빨갛게 붓고 살점이 터져 피가 흘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것은 분노였다. 참을수 없는 분노. 그가 알던 소중한 것들이 하나하나 사라지고 파괴되 가는 기분에 울분을 삭힐 수 없었다. 순간 <철컥>하는 소리가 들리며 다시 조용해졌다. 철진이 눈을 돌렸고 구석에 형진이가 사용하는 비디오 카메라가 보였다. 놀랍게도 그것은 좀 전까지 녹화가 되던 상태였다. 주영을 상대로 필름을 찍고 여벌로 뒤에 세워둔 카메라였는데 실수로 끄는 것을 깜박 잊은 모양이었다. 

철진은 조심스레 그것을 들곤 친구들쪽으로 돌아섰다. 바닥을 보는 진영이나 모포로 몸을 감싼 철진 모두 카메라의 존재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니, 그들은 이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침을 꿀꺽 삼키며 철진이 녹화된 기록을 천천히 재생했다. 

장면은 형진이 나가기 얼마 전부터 되 있었다. 멀쩡하던 민석이 목뒤에 손을 댄 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런 다음 그가 구석에 있는 미진의 몸에 올라탔고…… 이제껏 겪어온 상황이 하나하나 카메라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이 문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철진은 숨을 죽였다. 그의 눈은 이제 부스스 일어나 움직이는 친구들과 그 자리에 머물러있던 미진에게 고정되 있었다. 미진은 아직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진영과 민석이 무엇 때문인지 창문을 보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철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보기에 그것은 그저 아무것도 없는 굳게 닫힌 창일 뿐이었다. 

‘겁을 먹은 거구나. 바보같이…….’ 

그러나 철진은 다음순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멀쩡하던 창 대신 바로 밑의 벽을 통과해 한 여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창백한 피부에 머리는 어깨까지 늘어뜨렸는데 안개에 쌓인 것처럼 희끄무레한 발은 공중에 뜬 상태였다. 땅에 닿지 않는 발을 보고도 놀랐지만 여자의 얼굴을 알아낸 순간 그는 카메라를 떨어뜨릴 번 했다. 

‘저, 저 여자는…….’ 

정희연이었다. 자신들이 잔인하게 난도질해 죽인 여자가 지금, 멀쩡하게 나와 움직이고 있었다. 철진은 육중한 둔기에 머리를 맞은 충격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친구들의 말은 사실이었고 정말로 그녀는 그들의 앞에 돌아왔다. 

그녀는 바닥에 얼굴을 박은 체 비명을 지르는 두 명의 사내를 지나 미진에게 다가갔다. 그런 희연의 손엔 예리한 칼이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실내의 조명에 반사되 차갑고 시린 섬광을 만들어냈다. 웅크려있던 미진이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희연이 무릎을 꿇고 앉더니 칼을 번쩍 처들었다. 드러난 이빨들은 잔혹한 광체를 띄며 빛나고 있었다. 

칼은 무자비하게 미진의 몸을 뚫어버렸다. 그녀의 몸을 감싸던 모포가 비스듬히 벗겨지며 욕구를 채우기 위해 민석이 풀어헤친 젖가슴 사이로 칼날은 들어가 박혔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며 사방으로 튀어갔지만 미진의 입에선 작은 신음소리 하나 새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도살 당하는 소처럼 겁에 질린 눈으로 천장만 응시했다. 

다음 순간 화면이 흔들리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버튼을 누르며 화질을 좋게 해보려는 시도도 소용이 없었다. 3분 정도가 지났을 때 다시 화면이 돌아왔고 그 속에선 희연이 차갑게 웃으며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미진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붉은 눈이 뱀처럼 날름거렸다. 그 눈은 카메라를 들여다 보는 철진에게 고정 되 있었다. 철진은 직접적으로 마주치게 된 것만큼 두려워 얼굴을 찡그리며 그것을 멀리하려 했다. 그때 자신이 돌아왔고 진영과 민석에게 얘길 하는게 보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희연은 그곳에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수 있지. 분명히 우리가 죽였는데 어째서…….’ 

귀에 칼을 집어넣는 진영과 비틀대는 민석의 모습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여졌다. 그런데도 희연은 없어지지 않았다. 묘한 미소를 띄며, 눈 앞에서 부들부들 떨고있는 남자들에게 차가운 조소를 보내며 계속해서 내려다 보기만 했다. 이제 비디오는 거의 몇분 전의 상황을 재현하고 있었다. 진영이 집어 든 칼을 자신이 던져버렸고 그것이 떨어진 발치엔 희연이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칼을 집어 걸어왔다. 비디오는 거기서 끝이 나 있었다. 철진이 엉겁결에 진영을 주시했고 신경질적으로 귀를 만지던 그가 풀린 눈으로 오른쪽 손을 들어올리는게 보였다. 그의 손엔 희연이 들고있던 것과 똑 같은 매스가 들려 있었다. 힘있게 움켜쥔 그가 그것을 천천히 머리로 가져갔다. 그리고 아직 온전한 그의 나머지 귀에 대고…… 

“진영아! 안돼엣.” 

뛰듯이 몸을 날리며 철진이 진영을 덮쳤다. 다행히 칼은 그의 귀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 떨어졌고 내친김에 철진은 그것을 발로 차 반대편으로 던져버렸다. 

“괜찮냐? 정신차려!” 

어깨를 흔드는 철진을 진영이 멍하게 바라봤다. 그의 눈엔 초점이 하나도 없어 꼭 눈을 뜬 체로 죽어버린 시체를 대하는 기분이었다. 진영은 사물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처럼 흐릿한 눈으로 몇분 그대로 있다가 철진이 뺨을 세게 때리자 그제야 주변이 들어오던지, 질려있는 친구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직도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왜,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왜 그러냐고?” 
철진은 어이가 없었다. 

“몰라서 물어? 너가 네 귀를 칼로 찌르려고 했잖아. 저기 저 칼 보여? 넌 저걸로 온전한 나머지 귀도 날려버리려고 했다구. 설마 정말로 기억이 안 난다는건 아니겠지?” 

진영은 두려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듯이 새빨갛게 충혈됐고 입술은 불안하게 뒤틀려있었다. 그가 저지르려 했던 어떤 일은 그의 정신을 미치게 만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내가…… 무슨 짓을 하려 한 거지? 내, 내 귀를…….” 

이미 모든걸 비디오로 확인한 터라 철진은 굳이 이어지는 대답을 듣지 않아도 그가 제 정신으로 그러지 않았다는 걸 믿을 수 있었다. 정희연. 아직 그녀는 이곳에, 창고 안에 있을 것이다. 

“젠장.” 

주변에 깔려있는 공기가 답답한지 철진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사방으로 시선을 돌리며 끊임없이 두 눈을 번뜩거렸다. 보이지는 않지만 이곳에 있는 어떤 존재를 탐지라도 하듯이 말이다. 자신들과 다른 존재가, 더구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적의에 찬 무언가가 좁다란 공간에 함께 있다는 사실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끔찍했다. 그는 진영을 말리다 떨어뜨린 카메라를 주워 들곤 그것을 원래 있던 자리에 올려놨다. 새로 녹화가 되게 버튼을 누르고 말이다. 

‘이렇게 해두면 나중에 이상한 점이라도 찾게 되겠지.’ 

뒤 돌아서 진영쪽으로 가던 철진은 사라진 미진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그녀가 희연에게 죽임을 당한 것까진 알 수 있었지만 도중에 화면이 멈췄을 때 과연 그 공백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죽은 미진의 시체는 어디로 가 버린 거지?’ 

이상했다. 어째서 희연은 미진의 몸이 필요했던 걸까. 차라리 붉은 피를 흩뿌린 체 바닥에 널브러진 사체로 공포감을 주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미진의 죽어가는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운명에 순응하듯, 아니,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그대로 당하고 있던 그 모습. 공허한 눈동자. 그녀는 죽으면서 희연의 얼굴을 보았을까? 자신을 향해 무자비한 미소를 띄고 있던 정희연이란 여잘 보았을까? 

어쨌든 미진은 죽었다. 그 미쳐버린 살인귀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대상을 떠나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의 씨를 말려버릴 셈이었나 보다. 죄도 없는 미진이 죽은게 좀 불쾌해 혀를 차던 철진은 다음 희생이 바로 자신들이란 걸 알곤 정신을 차렸다. 어떻게든 해야지. 이러고 있다간 개죽음만 당할 뿐이었다. 

그는 나갈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차고에 세워둔 검은색 소나타는 형진이 타고 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근처엔 택시도 없고 마을 버스가 들어서는 것도 아니다. 30분 정도 걸어가면 지나가는 차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차. 그는 문득 시간이 새벽 4시를 넘었다는 걸 알곤 이마를 두드렸다. 특별히 인적이 드문 교외가 아니더라도 밖에서 차를 얻어 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게다가 무턱대고 나가면 나중 일이 골치 아팠다. 당장 창고 안에선 귀신에게 쫓기는 몸이지만 문밖을 나서면 세상의 눈을 의식해야 했다. 

먹성 좋은 돼지들 덕분에 시체는 없었지만 갖가지 고문도구와 냉동실에 보관되는 수혈용 피. 피 묻은 공구박스와, 비우지 않아 역겨운 피 냄새를 풍기는 쓰레기통은 분명 문제였다. 창고는 열쇠를 따로 두어 안에서도 밖에서도 잠글 수 있게 되 있었는데 보통 땐 안에서 잠그고 비디오를 찍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면 커다란 이중 자물쇠로 문을 채우고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열쇠도 형진이 탄 차 안에 있을 것이다. 

‘미치겠군. 뭐 이런 개 같은 상황이 다 있지.’ 

한시가 급한 마당에 형진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대로 있자니 앞일을 예상하기 힘들었다. 또 무턱대고 나가버리면 자신들은 다음날 경찰서 안에서 아침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상상에 철진은 몸서리를 쳤다. 

‘별수 없군. 일단은 더 버텨보는 수밖에.’ 

어떻게든 형진이 얼른 돌아오길 바라는 심정으로 그는 초조하게 문만 바라봤다. 자동차 엔진 소리라도 들린다면 바로 뛰쳐나갈 생각이었다. 

그때 그는 발에 닿는 질퍽한 느낌에 무심코 아래를 바라봤다. 막 굳기 시작한 끈적한 여기 저기에 흘려져 있었다. 피는 사이를 두고 떨어져 있었지만 한 곳으로 선을 그리듯 이어졌는데 그것은 그가 있는 문으로부터 코너를 돌아 커튼이 드리워진 곳까지 뻗어 있었다. 

“뭐지?” 

아까는 없던 광경이라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진영이 흘린 피가 아닌가 했지만 펌프처럼 터지던 피는 그의 얼굴과 상의에 고스란히 늘어붙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누구의……?” 

침을 꿀꺽 삼키며 철진이 조심스레 걸어갔다. 발이 닿을 떼마다 기분 나쁜 끈적함이 신발 천장에 들러붙었다. 빨간 딱지를 등에 업은 체 몰려 있는 모습이 꼭 피로 이루어진 벌레들 같았다. 그것들은 기를 쓰고 달려들다 발이 주는 압력에 짜부라졌다. 그는 그 느낌들을 애써 무시하며 커튼 쪽으로 접근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역겨운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릿하면서 위 속을 자극하는 더러운 악취였다. 

커튼에 손을 짚으려던 그가 멈칫거렸다. 

“똑…… 똑.” 

어디선가 핏방울이 떨어졌다. 그것은 커튼의 표면을 따라 길게 흐르며 종래에는 바닥으로 도약했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며 알 수 없는 냉기가 느껴졌다. 계속해서 흐르고 있는 피의 원천지…… 그것은……. 

경직된 그의 시선이 커튼을 따라갔다. 고개가 뒤로 젖혀질수록 검게 내려앉은 피와 여기 저기 고름처럼 엉켜 붙은 피가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 도사리는 뭔가를 알아낸 순간 그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잘려진 머리 하나가 실에 연결된 체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다. 예리한 칼에 잘렸는지 목 밑으론 아무것도 없었고 파헤쳐진 살점들 사이로 희고 뭉툭한, 절단된 목뼈가 보였다. 얼굴에 붙은 두 개의 눈구멍은 바늘로 잔인하게 꿰매진 상태였다. 우둘투둘한 실밥을 따라 메말라 있는 핏자국이 보였다. 바늘은 무자비하게 사체의 눈꺼풀을 뚫고 반대편으로 나온 모양이다. 지켜보던 철진이 토악질을 하며 바닥에 오물을 뱉었다. 여기저기가 잘리고 꿰매져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흉하게 변해버린 그것의 존재를 그는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미, 미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는 뒷걸음쳤다. 그때 끈적한 핏자국에 밀려 발이 미끄러졌고 시선이 위를 향한 순간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팔과 다리가 보였다. 

미진의 몸을 이뤘던 신체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잘려져 늘어서 있었다. 엽기적인 조각가의 예술 작품을 진열한 것처럼 그것들은 천장에 붙은 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가느다란 손목도 있었고 구불거리는 내장이나 허옇게 뼈를 드러낸 척추도 보였다. 그제야 철진은 문에서부터 이어진 핏방울들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우.. 에엑. 우엑.” 

비명을 지를 세도 없었다. 구역질이 먼저 나왔다. 그는 더 이상 나올 음식물이 없을 때까지 토를 하곤 다시 천장을 응시했다. 이제는 공포가 급습하듯 그를 덮쳤다. 철진은 넘어지고 구르며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정희연…… 그녀는 예전의 희연이 아니었다. 복수심에 불타는, 그것도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게 변해버린 사악한 악귀였다. 

‘나가야 해. 여기서…….’ 

아무것도 생각 나지 않았다. 형진을 기다려야 하는 것과 그냥 떠났을 때 마주칠 귀찮은 문제들은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았다. 머리 속이 새하얀 백지가 된 거 같았다. 그저 무조건 벗어나고 싶었다. ‘벗어난다. 벗어난다’ 그는 암기를 하듯 읍조리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였다. 

“진영아! 민석아!” 

난데없이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진영과 민석이 의아한 눈길로 그를 올려다봤다. 

“여기서 나가자. 어서!” 

“뭐?” 

“나가자구! 한시가 급해!” 

“하지만…… 형진이가.” 

“진영은 이의를 제기했지만 민석은 오히려 잘됐다는 투로 잽싸게 일어섰다. 아까부터 내내 나가고 싶던 것을 억지로 참고 있던 터라 철진의 말이 고맙기까지 했다. 미진의 애길 들었다면 그럴 필요도 없었을 테지만. 

머뭇거리는 진영의 손을 잡아 끌며 철진이 문을 향해 걸어갔다. 이미 민석은 저만치 앞서 있었다. 곧 비명 소리가 들리며 토악질을 하는 민석의 모습이 보였다. 그도 천장에서 미진의 조각들을 본 모양이었다. 마지막까지 나가지 않으려 하던 진영도 그 광경을 보고는 문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아?” 

“뭐?” 

탄식처럼 내뱉은 민석의 말에 모두는 육중한 둔기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서로를 멍청하게 바라봤다. 문이 열리지 않다니 그럴 리가…… 

“비켜봐!” 

철진이 민석을 밀치고 쇠 문을 밀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안에서 잠긴 문인데 열리지가 않았다. 흡사 강력한 뭔가가 나가지 못하게 밖에서 문을 누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구!” 

그는 미친 듯이 문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아까 난 상처에 따끔한 아픔이 오며 아물어있던 딱지가 터져 피가 흘렀다. 장미꽃이 만개하는 것처럼 쇠 문 위로 핏자국이 번져갔지만 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이럴 수가…… 우린, 우린 이제 어떻게 하지?” 

“그 계집년이 조화를 부린게 틀림없어. 그 년은 우릴 모두 말려 죽일 셈이니까.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걸.” 

철진은 진영과 민석의 대화를 멍하게 듣고있다 오싹한 한기에 몸을 떨었다. 창고 안의 모든 벽이 살아서 움직이는 기분이 들며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절대로 열릴 수 없는 창문이 멋대로 열리고 천장엔 살점들이 들러 붙으며 이젠 문까지 열리지 않았다. 이 창고, 희연이 죽어나간 창고가 그녀의 복수에 부응하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어처구니 없는 추측이며 비약이었다. 하지만 철진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근처에 있던 의자를 들어 문을 내리쳤다. 

“쿠웅!” 

강철처럼 버티던 문대신 휘둘려진 의자가 성냥개비처럼 부서졌다. 그 파편에 팔뚝이 긁혀 거칠은 선이 생겨났지만 철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갇혀 있다> 란 현실, 그것은 그의 정신을 사정없이 갉아오며 미치게 만들었다. 

“으아악! 싫어. 여기서 나가야 해!” 

진영과 민석도 철진을 따라 문을 두드렸다. 비명과 애원, 끝나지 않을 절규가 메아리처 퍼져갔지만 밖에선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완벽한 방음시설. 그것은 희생자들에 이어 그들의 목줄기도 누르고 있었다. 

“나가야 해! 나가야 한다구!” 

“틀렸어. 이 문은 잠겼어. 절대로 열리지 않을 거야.” 

진정하라는 진영의 몸을 밀치며 철진은 다시 한번 문을 쳤다. 이번에는 의자가 아닌 지렛대용 쇠파이프였다. 귀를 찢는듯한 소음이 나며 파란 불꽃이 튀겼지만 역시나 문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철진이 질 수 없단 투로 이를 악물며 쇠파이프를 높게 들어올렸을 때 <퍽> 하는 소리가 나며 주변이 어두워졌다. 전기가 나간 것이다. 

“뭐지?” 

“무슨 일이야?” 

예상치 못한 사태에 모두는 당황했다. 진영은 본능적으로 쭈그려 앉아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길 기다렸고 민석은 문 쪽으로 몸을 붙였다. 철진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에 그대로 노출된 그가 느낄 수 있던 것이라곤 손에 쥐고 있던 차가운 쇠의 감촉 뿐이었다. 그는 그것을 꽉 움켜쥐며 이상한 조짐이라도 보이면 휘두를 요량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몇분 그렇게 버티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흐릿한 윤곽이 들어왔다. 바닥에 낮게 엎드려 몸을 숙이고 있는 진영과 팔을 쳐들고 있던 민석, 그도 자신처럼 살피듯 고개를 움직이고 있었다. 

“괜찮냐?” 

철진이 민석의 어깰 잡으며 물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커튼 뒤 선반에 초가 있을 거야. 어서 움직여. 흩어지지 말고.” 

“안에 뭐가 있을지 어떻게 알아? 그냥 여기 있자.” 

까만 장막 속에서 들려오는 민석의 목소리는 내키지 않단 투였다. 

“그냥 있자고? 여기 있으면 뭐가 달라지는데? 전기는 평소에도 나갔잖아. 니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난 이렇게는 못 있어. 초라도 찾아서 앞을 봐야겠다구. 니 말마따나 그 계집이 무슨 일을 꾸밀지 알고 가만히 있겠다는 거야. 조치를 취해야 해. 그래야 살수 있어.” 

“그렇지만…….” 

민석은 두려웠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위험이 닥쳤을 때 코너에 몰리길 싫어한다. 소심한 사람이 커피숍에 들어가 안보단 문이 위치한 바깥쪽에 앉는 것처럼 그도 희연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어두컴컴한 공간보단 조금이라도 밖이 가까운 이곳에 있고 싶었다. 유일한 출구인 철문은 굳게 닫혀 하나의 틈새도 허용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나오는 안정감이 잔인한 살육지대보단 나았다. 

“그럼 너 혼자 이곳에 있어. 난 초를 찾을 테니까. 누군 안 무서운 줄 알아? 하지만 계속 있어봤자 두렵기만 할 뿐이야. 뭐가 오는지를 알고 기다리는 것보다 적막 속에서 기다리는게 더 끔찍할걸.” 

결국 철진을 선두로 진영과 민석이 뒤를 따랐다. 평소에는 눈을 감고도 다닐 수 있다 생각한 공간이 오늘따라 유난히 길고 멀게만 느껴졌다. 주변은 서늘했고 바닥은 눅눅했으며 발을 딛을 때마다 끈적한 피들이 불쾌하게 들러붙었다. 

철진의 머리엔 아까 본 광경이 떠나지 않았다. 조각조각 떨어져 천장에 진열된 미진의 일부 말이다. 그것들은 지금도 머리 위 어딘가에 붙어 있을 것이다. 구불거리며 괴상하게 꼬여있던 창자와 내장들이…… 생선 가시처럼 늘어진 뼈가…… 게다가 커튼, 묵직한 커튼 위에 흉측하게 걸려있던 얼굴이 계속해서 생각나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젠장.” 

진정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팔다리가 후들거리며 몸에선 기운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등줄기가 쭈뼛거리며 알지 못할 어떤 존재가 목을 타고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바늘과 실에 난행 당한 미진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더 큰 두려움은 다음 대상이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이제 커튼은 그곳에 베인 피냄새도 맡을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초는 그 안에 위치한 선반 위 박스에 들어 있을 것이다. 

“기다려. 내가 가지고 올게.” 

큰소리쳐둔 것이 있기에 철진이 호기롭게 말했다. 내려 앉은 어둠만큼이나 커튼도 까맣게 변해버렸지만 그의 눈엔 이상하게 붉은 핏빛이란 느낌이 났다. 잔혹한 광체를 띄우며 빨갛게 빛나는 커튼. 천을 타고 흐르는 핏물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주변이 이렇게 어두운데 어떻게 그렇게 보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위를 안보며 철진이 커튼을 조심스레 열었다. 잠시 묵직한 감이 손끝을 퍼지다 잠잠해졌다.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미진의 머리. 그것이 떨어지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자 수혈용 피를 보관하던 냉동고와 허리정도 오는 쓰레기통, 벽에 붙은 듯 세워져 있는 진열장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는 조심스레 나아가며 쇠를 이어 만든 선반에 접근했다. 

‘제발 있어야 하는데…….’ 

종종 불이 나가는 경우가 있기에 창고 안엔 대비가 될 물건이 많았다. 작은 손전등이나 장난감 같아 거의 쓰지않던 미니 후레시도 말이다. 하지만 선반은 너무 높았고 팔을 위로 뻗은 상태에서 오로지 감에 의지하는 터라 찾는게 쉽지가 않았다. 

“아직 멀었어? 못 찾은 거야?” 

밖에서 민석이 초조하게 물었다. 철진은 까치발을 세우며 손에 잡힌 물건을 꺼내려 했다. 민석이 중얼대는 소리가 다시 한번 들리며 이번에는 차가운 손이 등을 건드렸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아, 간다니까. 가만히 좀 있어봐.” 

하지만 손가락은 치워지지 않았다. 그것은 천천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그의 어깰 두드렸다. 

“그만 하라니까안!” 

“뭘 그만해. 바보같이.” 

민석의 투덜거림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순간 그는 온 몸을 관통하는 전율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뻣뻣이 굳어버렸다. 뒤에는 분명 누군가가 있었다. 하지만 민석은 아니었다. 진영도 아니고, 친구가 아닌 그 무언가가…… 그것은 그의 등 뒤에 바짝 닿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어질 어떤 행동을 기다리며 말이다. 

‘뒤에 있는 것은…… 설마!’ 

그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호흡이 탁 막혀오며 숨이 가빠졌다. 이 순간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니 당장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공포가 목덜미를 휘어잡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떨리는 손에 의해 간신히 잡은 초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손아귀에 힘을 주는 일 뿐이었다. 

“철진아?” 

민석이 물어왔다. 철진은 고개를 숙인 체 마음 속으로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제발 사라지라고, 악몽 같은 시간이 끝나게 해달라며, 알고 있던 신의 이름을 모조리 대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 모든게 정지했다. 주변은 너무도 조용해 이제 들리는 소리라곤 그 자신의 이빨들이 따각대며 부딪히는 소리뿐이었다. 뭔지 모를 그것이 바짝 다가오며 서늘한 입김이 볼을 스쳤다. 그것은 표독스러운 야수와도 같이 그의 전신을 노리고 있었다. 

‘제발. 제발…….’ 

그때 민석이 안으로 들어왔고 순간 등뒤에 있던 무언의 존재가 사라진걸 그는 직감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곳에 없던 것처럼 소리없이 재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뭐 하는 거야? 초 찾는데 왜 이리 오래 걸려?” 

퉁명스러운 민석의 말이 다른 때보다 훨씬 더 정겹게 들렸다.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희미한 미소를 띄었지만 돌아서서 땀을 훔치는 얼굴은 그 순간 십년은 더 늙어보였다. 

“조금 있으면 형진이가 올 거야. 그 귀신이 문을 막고 있다 해도 밖에서 오는 힘에는 대처할 수 없겠지. 우린 그때까지만 버티면 되. 모두 침착하자.” 

일렁이는 촛불을 사이에 두고 셋은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앉았다. 불빛이 닿는 부분은 안정감을 주었지만 밖은 그야말로 어둠뿐이었다. 그들은 눈치를 보며 조금이라도 더 불에 가까이 있기 위해 엉덩이를 디밀었다. 

“그래도 초가 있으니 살거 같은데.” 

진영은 정말로 그렇다는 투로 약간은 풀어진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의 내부를 비집고 나온 최소한의 안도감이었다. 그것에 부응하듯 미소를 짓던 민석은 덜컹거리는 창문을 보곤 표정을 굳혔다. 지금 그것은 닫혀 있었지만 그 사이로 희연의 얼굴이라도 보인다면 그나마 갖고 있던 자제력을 잃고 무너져버릴지도 몰랐다. 

“그런데 형진이는 언제쯤 올까? 이 시각이면 시체를 처리하고도 남았을 텐데. 오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긴게 아닐까?” 

민석은 화재를 돌렸다. 대답을 생각하던 진영대신 철진이 말했다. 

“올거야, 반드시. 그나 저나 재미있는 얘기 없냐? 썰렁한 농담이라도 좋으니까 아무거나 해봐. 가만히 있으니 더 견디기가 힘들어.” 

“얘기는 무슨.” 

“그러지 말고 해봐. 너 전에 여자 꼬시던 얘기라도.” 

민석은 헛소리 말란 식으로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자신을 보는 청중의 눈이 네개로 늘어난 것을 알자 별수없이 입을 열었다. 

“특별히 생각나는 계집앤 없어. 여잔 다 똑같으니까. 겉으론 고상한 척 신비한 척 가장해도 벗겨놓고 보면 다 똑같거든. 차이가 있다면 돈을 많이 처들여야 하는 애가 있고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애가 있으며 또 어떤 거한텐 없는 지식 쥐어짜가며 이미지를 맞춰줘야 한다는 거지. 그런 건 정말 짜증나고 지겨운 일이지만 기분은 괜찮았어. 언제던가…… 그래. 재작년 여름, 내가 이 짓거리를 시작하지 않았을 때엔 경선이란 여자 건드릴 때가 꽤 힘들었었지. 공부에 미쳤던 애라 안 하던 법 공부 하느라 머리가 빠개질거 같았거든.” 

“그래서 성공했냐?” 

시시각각 조여 오는 두려움과 잡히지 않은 실체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철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민석의 말은 그를 아주 갑자기 그러한 것들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성공? 물론 했지. 그런데 그렇게 좋은 기분도 아니었어. 난 또 굉장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했더니 왜려 다른 계집애보다 못하더군. 너무 책상에만 앉아 있어서 탄력도 없고 하고 나서도 책임지느니 어쩌니 하는데 뒷골이 아파왔다니까.” 

“그래도 좋은 경험이 됐잖아.” 

“그야 그렇지. 나 같은 놈이 어디 가서 법대생을 품어 보겠냐. 그래도 스너프 시작하고선 그런 짓 안 하니까 편하게 살았지. 늘 똑 같은 타입만 걸리니 구태여 머리 쓰지 않아도 됐었거든. 요즘 것들은 애나 어른이나 가리지 않고 그저 돈만 준다면 덥석덥석 다리를 벌려주니 참 뭐같이 변해버린 경우지. 이젠 기집애 건드리기도 겁난다니까. 품질이 불량해서.” 

그는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그러고 보면 우리 중에선 진영이가 제일 유식하군. 저 녀석은 의대생 이었으니까. 계속 공부했다면 지금쯤 병원에서 인턴 노릇이나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표정이 굳어진 체 눈을 내리까는 진영을 보고 민석은 자신이 말을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황급히 변명했다. 

“아니, 진영아. 난 너를 비꼬려고 한 게 아니라…….” 

그러다 그는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하곤 입을 크게 벌렸다. 촛불이 주는 효과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섰는데 그 수가 세개가 아닌 네개였던 것이다. 진영과 철진이 있는 사이에, 한눈에 보기에도 목이 가늘고 머리카락이 긴 여자가 고개를 숙인 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저, 저럴 수가…….’ 




민석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몇 번이고 다시 뜬 눈동자 속엔 여자의 모습이 여지없이 들어왔다. 철진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던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그는 불안한 얼굴로 사방을 주시했지만 촛불과 그것에 모여있는 세 명의 남자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입을 벌린 체 딱딱하게 굳어있는 민석이 왜려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민석아?” 

민석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처음 희연을 봤을 때부터 그 존재가 자신이나 진영, 혹은 철진을 하나하나 떨어뜨려 놓고 괴롭히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철저한 분열. 그리고 미칠듯한 공포와 자괴감. 그녀는 그것을 원했다. 아마 그 편이 한번에 없애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느꼈는지도 몰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한테만 보이겠지? 나를 노리며…….’ 

그 사실이 두렵기도 또 참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개를 돌린 희연이 자신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느꼈던 감정들이 공포로 뒤덮이며 입술이 바짝바짝 타 들어갔다. 

“끼이익. 끼익.” 

움직일 때마다 금속의 물체가 바닥에 마찰되는 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시리게 들려왔다. 확인하지 않아도 희연이 무엇을 바라고 오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머리로 바닥을 흥건히 적시며 쓰러질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 주변은 피로 물들게 될 것이다. 

헌데 이상했다. 불빛에 비춰진 그림자는 분명 사람이었지만 정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쳐들어진 팔은 뭉툭했고 얼굴은 한쪽이 아예 날아가버린 듯 깎여져 있어 괴물을 보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저 동작, 희연은 두 다리를 이용하는게 아닌 손등을 앞으로 뻗으며 기고 있었다. 한 손을 앞으로 내밀고 그 다음엔 온몸을 비틀어 남겨진 다리를 끌면서 말이다. 그것은 느릿느릿 그러나 일정한 동작으로 거리를 좁혀왔다. 

‘어째서 저런 모습으로 나타난 거지. 날 죽이고 싶다면 빨리 달려들어 찌르면 될 것을…….’ 
그는 경악했다. 
‘설마! 팔이 다 잘려서?’ 

그랬다. 지금 희연의 모습은 창에서 마주친 온전한 여자가 아닌, 잘리고 짓뭉개져 추하게 변해버린 도륙된 후의 모습이었다. 아마 그녀는 발이 없을 것이다. 자신이 도끼를 들어 가냘퍼 보이던 발목을 내리치지 않았는가. 그리곤 다시 커다란 칼로…… 동물의 고깃덩이 같은 그것을 들어 비닐봉지에 쑤셔넣던 모습이 끝나 가는 영화처럼 흐릿하게 떠올랐다. 발에는 아직도 신발이 신겨 있었다. 앙증맞았던 여름용 샌들. 물론 그것도 피에 번져 붉은 구두로 변해 버렸었지만…… 

‘내가…… 내가 무슨 짓을 했던 거지.’ 

기억을 더듬을 새도 없었다. 흔들리는 자신의 그림자 위로 희연이 거미처럼 덮쳐오더니 곧 그는 아랫배에 육중한 충격을 느끼며 뒤로 쓰러졌다. 

“욱.”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거대한 뭔가가 그의 몸을 타고 올랐다는 느낌 뿐이었다.옆구리가 따끔해 지더니 돌연 목줄기에 서늘한 칼날이 닿았다. 그것은 피를 머금은 듯 끈적했지만 감촉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살갗에 부딪힌 칼이 안으로 파고 들 듯 위를 향해 세워졌다. 수직으로 들려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곧 자신에게 덮쳐올 것이다. 

‘아, 안돼!’ 

온 몸의 세포가 요동 치며 감각이 일시에 살아났다. 심장은 거세게 두근댔고 머리 속은 텅 비어버린 것처럼 새하얘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목에 손을 댔다. 시린 칼날이 손등에 닿으며 비트는가 싶더니 붉은 핏방울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목을 다친 것은 아니었다. 손등이 베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적의에 찬 희연의 얼굴을 말이다. 그녀는 죽어갈 당시의 모습 그대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나남은 눈알이 퉁퉁 불어 기묘하게 번득였다. 다 떨어져 뼈밖에 남지 않은 광대뼈는 몹시도 흉측했고 황량했다. 썩어가는 악취가 코를 찌르며 희연이 웃고 있었다. 언젠가 보았던 그 미소를 띄우며. 죽어가는 주제에 오히려 자신을 한없이 가엽게 보던 그 표정. 몇 개월 전에 보았던 한밤의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며 그녀의 얼굴과 겹쳐갔다. 

무시무시한 공포감이 살아나며 머리털이 쭈뼛거렸다. 그의 머리 속으론 수십 가지의 생각들이 정신없이 떠올랐다. 증오와 두려움, 흥분, 그리고 미안함, 하지만 가장 큰 비중은 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그간 해온 일들이 온전치 못한 일이고 목숨으로 사죄 받아 마땅한 일이란 것을 알았지만 그는 살고 싶었다. 순간 그를 감싸고 있던 두려움들은 순식간에 소멸되며 끝없는 증오로 변해버렸다. 그는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희연이란 존재에 대해 가슴 깊은 원망과 미움을 가지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난 살아 야해.’ 

내리치는 칼날을 피해 그가 몸을 틀었다. 어깻죽지에 통증이 느껴지며 더운 기운이 단전에 몰렸다. 목을 스친 칼이 옆구리에 박힌 것이다. 그는 피가 흐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 듯이 바닥을 더듬었다. 근처 어디에 철진이 차버린 매스가 있을 것이다. 

눈 앞이 노래지며 숨이 가빠왔다. 희연은 재미있던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몸을 잡기위해 손을 뻗었다. 너덜거리는 살점들 사이로 반밖에 남지않은 혀가 보였다. 뽑아버린 이빨 때문에 그것은 그대로 노출 되 끔찍한 지옥을 보여주고 있었다. 민석은 자신의 정신이 조각조각 깨어져 파괴되 가는 것을 느꼈다. 희연이 내뿜는 무시무시한 기운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으아악! 제발 저리가!” 

그녀가 민석을 삼켜버리듯 눈 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얼굴을 이루는 피부가 날아가버려 웃는 것인지 아니면 화를 내는지 알아볼 순 없었지만 홀로 남은 외눈 속에는 싸늘한 냉소가 담겨 있었다. 그녀의 체중이 상체에 실리는 순간 손에 칼이 잡혔고 그는 그것을 들어 희연의 얼굴을 찍어버렸다. 

“죽엇!” 

“크아아아!” 

찢어질 듯한 비명이 사방으로 퍼지며 희연이 나동그라졌다. 눈알에 칼이 박힌 그녀가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절규하고 있었다. 민석은 처음 살인을 했을 때의 그 기분이, 출처를 알 수 없던 잔인성이 전신을 타고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행동에 온전치 못한 기분을 가지며 떨고 있던 그는 곧 손아귀에 힘을 주며 희연의 눈에 박힌 칼을 뺐다. 그리곤 가슴과 배를 향해 정신없이 제2 제3의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버렷!” 

“으아악!” 

기분 좋은 전율이 몸을 타고 퍼져갔다. 승리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 위협적인 존재를 처리했을 때의 우월감. 잘못된 도취감? 뭐든 상관 없었다. 그는 지금 최고의 흥분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비명 소리가 좀 이상했다. 언뜻 여자 목소리가 아닌 남자의 절규같은게 들렸기 때문이다. 아니, 생각해보면 희연이 비명을 지르는거 자체가 말이 안됐다. 그녀의 혀는 이미 오래 전에 잘려져 다시는 벙긋댈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이 소리는……?’ 

그는 무심코 바닥의 존재를 살펴봤다. 분명 희연이었다. 마지막 남은 눈까지 쪼개진 체, 엉켜 붙은 피와 고름에 뒤섞여 흡사 붉게 물든 찰흙 덩어리를 보고 있는 착각을 줄만큼 흉측하게 난행 된 얼굴의 주인은 희연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지도 않았다. 부릅뜬 눈은 위를 보고 있었지만 피에 섞여 아무것도 알아볼 순 없었다. 잘려진 입술은 그대로 벌어져 이빨이 없는 잇몸만이 황량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철진은 어깨를 펴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칼에 찔린 통증을 잊어버릴 만큼 잔인한 희열이 불안한 가슴을 가득 채웠다. 

“흐흐흐. 드디어 죽었어. 내가, 내가 죽인 거야.” 

그가 허공을 향해 실실 대며 웃었다. 이제 그를 위협하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들도 무사할 것이고 지금도 또 앞으로도 잘못되는 일은 없었다. 형진이 오고, 창고를 치우고 악몽 같은 오늘을 기념하며 술을 한잔 걸치고 난 뒤면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 그럴 것이다. 

그때 철진이 부들부들 떨며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철진의 표정에는 이상한 의문과 해답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그런 표정은 민석을 당황하게 했다. 야릇한 불안이 들며 잔잔해진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철진의 시선을 피해 희연을 내려다봤다. 그리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두 눈을 부릅떴다. 

“진영아!” 

놀랍게도 죽어있던 건 희연이 아닌 진영이었다. 온통 피범벅이 되 도륙된 고기처럼 짓뭉개진 진영은 입을 크게 벌린 체 두 눈을 뜨고 있었다. 왼쪽 눈알이 칼에 찔려 벌어지듯 쪼개져 있었고 찢어진 살갗 사이론 내장들이 구불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피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덕지덕지 붙은 피는 잘라진 살점과 뒤섞여 흉하게 굳어 있었다. 

“우, 우에엑. 우욱.” 

흔들리는 정신을 잡으며 그가 토악질을 했다. 거대한 망치가 후두부를 강타하는 느낌이 나며 온 몸에 오한이 일었다. 그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가, 내가 뭘 한 거지? 내가, 진영이를…….’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며 거세게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꿈이야!” 

“미, 민석이 너…….” 

철진이 두려운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머리에선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며 진영을 죽이던 민석의 모습이 선명하게 각인 되 떠나지 않았다. 말릴 새도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진영의 몸에 타고 앉아 그의 몸 이곳 저곳을 잔인하게 난자했다. 

“너…… 너 어떻게 진영이를 죽일 수가 있지? 어떻게 이런 짓을…….” 

민석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가 아니야. 내가…….” 

그는 계속해서 아니란 말만 했다. 철진은 입을 다물었다. 진영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민석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내부로부터 토해져 나오는 참담함을 삼키려 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며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들이 일시에 살아나고 죽어갔다. 그러나 슬픔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자신이 친한 친구를 죽였다는 사실. 또 그로 인한 분노보다는 살인 조차도 마음대로 조작하는 악랄한 행동에 치가 떨렸다. 얼룩진 눈물을 닦자 적막한 공간이 들어왔고 몸을 시리게 하는 한기가 느껴졌다. 그는 침묵하는 철진에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희연이 있었어. 그 계집애가 날 죽이려고 했었다구. 난 진영이에게 칼을 휘두른 게 아니야.” 

철진은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평소라면 귀담아 듣지도 않았겠지만 미쳐버린 공간 속에선 오히려 그것이 정석처럼 느껴졌다. 그 역시 커튼 안에서 희연을 느꼈고 말이다. 아마 그 귀신은 자신이나 민석을 철저하게 말려 죽일 셈인 듯 했다. 끝없는 공포와 깊이를 알 수 없는 처절함을 선사하며 말이다. 

“넌 나 믿을 수 있지? 내가 한 게…… 아니란 걸…… 알지?” 

민석의 두 눈은 금새라도 꺼져버릴 것처럼 불안했으나 동시에 기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알아. 하지만 진영이는 죽었어. 그리고…… 우리도 죽을 거야.” 
대답하는 철진의 음성이 조용하면서도 날카롭게 울렸다. 그는 <죽는다>는 부근에 특이한 악센트를 주며 공허한 얼굴로 민석을 응시했다. 

“아니야. 우린 안 죽어. 안 죽을 거야.” 

그러나 민석도 확신할 수 없었다. 쓸데없는 거짓은 힘의 소진만 불러올 뿐이다. 입가에 맴돌던 웃음이 어색하게 굳어져 묘한 표정을 만들었다. 그는 두려웠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창고 안에서 위치가 바뀐 살인은 계속되고 있었다. 잔혹한 스너프의 주인공. 이번 필름의 주연은 자신들이었고 모두가 죽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순간 타오르던 불빛이 꺼질 듯 흔들렸다. 초의 심지가 다 타 이젠 묽은 촛농만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그들은 동시에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다가올 공포를 대비하지 못한 자의 불안한 눈빛. 민석이 새로운 초를 찾는다며 일어섰지만 박스가 있는 곳에 가기도 전에 주위가 캄캄해졌다. 죽어버린 친구의 시체와 미쳐 날뛰는 악귀가 있는 공간 속에 무방비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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