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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너프 살인(4)
게시물ID : panic_28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이큐0
추천 : 3
조회수 : 29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8/08/27 10:57:52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민석은 두 팔을 더듬더듬 내지르며 철진을 잡으려 했다. 누군가가 같이 있다는 기분을 느끼지 못하면 견딜 수 없을 만큼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 잠시 후 늘상 봐오던 친구의 까칠한 난방이 느껴졌고 그것에 붙은 단추들의 촉감을 하나하나 상기하며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괜찮냐?” 

“아직까지는…… 넌?” 

“모르겠어. 뭔가 비출만한 게 있음 좋겠는데.” 

“내 실수야. 초를 여러 개 가져오는 건데…….” 말을 하던 철진은 커튼 속에서 마주친 희연의 느낌이 떠오르던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후레시고 뭐고 챙겨올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상자 안엔 초가 많았지만 하나를 건져오기도 힘이 들었다. 

“괜찮아. 조금 지나면 익숙해 지겠지. 그때 다시 찾아오자구.” 

어둠에 눈을 적응시키기 위해선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민석은 철진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의 팔을 잡으며 눈으론 흐릿하게만 보이는 사방을 주시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곁에 있던 철진외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는 손을 들어 답답하게 조여오는 공기를 갈랐다. 텅 비어버린 어둠의 일부. 언뜻 그 사이로 사람의 얼굴이 비추는거 같아 오싹해졌다. 그는 내지른 손을 가슴에 포개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게 난 하나도 보이지가 않아. 넌 뭐가 좀 보이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이라도 알겠어?” 

“아니.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뭐가 이렇지? 아깐 그래도 문에서부터 잘 찾아 왔었잖아. 지금은 마치 눈에 뭐가 낀 것처럼 어두운데. 꼭 안대라도 대고 있는 것 같다. 니 목소리 밖엔 안 들려.” 

“신기한 일이군. 왜 갑자기 이렇게 어두워진거지. 날이 밝고 있는데…… 아까 보다 환하면 환했지 어두울 수가 없잖아.” 

“글쎄. 그렇긴 하지만.” 

“정말 더러운 현상이잖아. 또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이러는 거지.” 

뭔가가 잘못돼가는 기분에 민석은 얼굴을 찡그렸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희연이 바라는 의도는 무엇이며, 어디서부터 다가올지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한가지 다행한 점이 있다면 시각이 차단된 대신, 청각이 평소보다 놀랄 만큼 발달 되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둔탁하게만 들리던 소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좀더 세세해지고 정교해지며 종래엔 귀에 붙는 것처럼 끈적하게 닿아왔다. 그는 철진의 곁에 바짝 붙어 서서 이상한 조짐이라도 보이진 않는지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지? 우린 초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 움직이는게 좋지 않을까?”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체 민석이 말했다. 

“하지만 달리 방법도 없잖아. 이 상태에서 뭘 할 수 있겠어?” 

“그래서 그냥 죽자는 거야? 그 계집이 어떤 일을 꾸밀지 보고만 있잔 거냐구! 맙소사. 이렇게 멍청하게 있다 앞에 뭐가 달려들지 어떻게 알아?” 

말을 하면서도 그는 실소를 터트렸다. 똑 같은 말을 불과 몇 십분 전 철진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위치는 바뀌었지만……그는 정말로 기운이 없어 보였다. 마디마디엔 힘이 하나도 없었고 손을 쥐어도 축 늘어지기만 했다. 

“철진아?” 

“어쩔 수 없어. 문은 닫혔으니까.” 

성의 없는 대답을 듣고 있자니 민석은 분노가 치밀었다. 이제 와서 따지자는건 아니었지만 애초에 전기가 나갔을 때 그의 말대로 문 근처에 붙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상황이 뭐같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매스가 있던 곳은 철진이 주장한 부근이었고, 그랬다면 희연에게 홀렸어도 진영에게 칼을 휘두르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그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애꿎은 철진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그의 내부에선 책임을 전가한 원망이 샘솟았고 그것은 고스란히 입을 통해 밖으로 배출됐다. 

“그러게 내가 그냥 문 옆에 있자고 했잖아. 뭐 하러 이렇게 안까지 들어와 생고생을 하냔 말야. 거기 있으면 나갈 확률도 많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쉽잖아. 적어도 아무것도 안 보이는 이 빌어먹을 공간보단 나았을거 아냐!” 

“하지만 난 초를 찾아야 했어. 이렇게 되리라곤 예상도 못했지. 너도 밝은걸 원했던거 아냐?” 

“왜 온거냐구, 대체 왜. 나아 지긴커녕 더 악화만 됐잖아.” 

“말했잖아. 아무것도 안 보이는 어둠보단 불빛 속이 났다구. 따라오고서 뭘 그래?” 

“그래서 그 잘난 환한 곳이 이곳이냐? 이젠 앞도 안 보이는데? 안개처럼 어둠이 덕지덕지 껴 있다는걸 못 느껴? 그 년이 조화를 부리는게 안 느껴지냐구!” 
말을 해놓고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던지 민석은 얼른 덧붙였다. 

“좌우간 문이 있는 곳으로 가자. 거기가서 다시 두드려 보던지…… 아니, 앉아만 있어도 여기보단 나을 거야. 난 이곳이 싫어. 불이 꺼졌다 해도 이렇게 어두울리가 없는데……. 이상해. 꼭 이 빌어먹을 창고가 빛을 잡아먹고 있는 것처럼 보인단 말야.” 

“빛을 잡아 먹는다고?” 

마지막 말은 상념에 잠겨있던 철진을 자극시켰다. 그는 혈관을 타고 오르는 서늘한 기운을 느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여전히 공포는 계속됐지만 이제는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단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조금 전까지 그를 지배한 자포자기한 심정들이 사라지며 새로이 욕망이 솟아올랐다. 그는 민석의 팔을 붙잡으며 다급히 말했다. 

“그래. 가자. 그런데 문까지 어떻게 걸어가지? 난 네 얼굴도 보이지가 않아. 손이라도 연결해서 가잔 거야?” 

“설마 거기까지 못 가겠냐. 떨어지지만 않게 붙어.” 

“거기까지 가면 어떻게 할건데?” 

“뭔진 모르지만 그 계집년, 우릴 하나하나 떨어뜨려 놓고 잔인하게 시간을 끌다 죽일게 분명해. 아마 더 공포스럽고 무서운 자극을 주려 노력하겠지. 난 그런 것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여기 있어봤자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년 좋을 대로 흘러가기만 할거야. 절대로 그렇게 놔둘 순 없어. 젠장. 그건 그렇고 정말 미치겠군. 불이라도 있다면 수월할 텐데.” 

민석은 손뼉을 마주치며 소리쳤다. 
“맞다. 라이터가 있었지. 내가 왜 그 간단한 생각을 못했을까. 너 라이터 가지고 있지? 얼른 켜봐.” 

민석이 그 상황에서 적절히 자신의 의사를 전했단 사실에 들뜨고 있을 때 철진의 음울한 목소리가 화살처럼 날아왔다. 

“라이터는 없어. 초는 진영이가 켰던 거야. 아마 아직도 진영이 주머니에……” 

그 말에 들떴던 분위기는 다시 가라앉았다. 철진이 말이 없는 걸로 보아 행동은 민석스스로 해야할거 같았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친구의 시체를 더듬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벌써부터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는 두 팔을 뻗어 손끝에 닿는 차가운 바닥과 군데군데 묻어있는 피의 잔해를 해치며 진영의 몸을 찾았다. 

한동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 조용해서 귀에 내려앉는 것은 그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와 땅에 닿은 손이 근처를 헤집는 소리 뿐이었다. 허벅지와 겨드랑이에 땀이 차 오르며 얼음주머니가 몸을 훑는듯한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심장 박동을 멈추게 하기라도 하듯 한 손을 가슴에 대며 내부에서 퍼져가는 두려움을 이기려 했다. 

그러나 이상했다. 분명 있어야 할 진영의 몸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무릎과 두 팔을 바닥에 바짝 붙이고 장님처럼 헤맸지만 진영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손에 닿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처음엔 착각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초가 있던 자리의 주변을 한 바퀴 돌아 원래의 좌표를 찾은 민석은 정말 확실하게 진영이 사라졌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무슨…… 일인데?” 
이상한 낌새를 느꼈던지 철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민석은 자신의 말이 주변에 몰고 올 여파가 싫은지 한동안 입을 떼지 않았다. 서서히, 마치 악마가 내뿜는 숨결처럼 그의 몸을 채우고있는 공포가 철진에게까지 전이된다면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할거 같았다. 더불어 철진으로 인해 자신이 느끼는 공포심도 배가될게 뻔했다. 

“무슨 일이야? 말을 해.” 

어둠 속에서 철진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이번에는 좀더 곧고 분명한 목소리였다. 
어쩔수 없이 민석이 속삭이듯 중얼댔다. 

“진영이가 없어. 아무데도…….” 

“뭐?”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곤 행동으로 증명하려는 듯 황급히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신발 끄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마찰이 일었다. 철진은 민석의 곁에 바짝 붙어 역시 보이지 않는 공간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피와 너저분하게 흩어진 면봉과 헝겊 조각들. 진영의 잔재는 남아 있었지만 정작 진영은 어디에도 없었다. 철진은 목구멍이 조여오는 기분을 느끼며 헐떡거렸다. 

“어, 어떻게…… 지, 진영이가 어, 없는 거지?” 
철진은 민석의 상처가 벌어지는 것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그의 어깨를 세게 쥔 체 흔들었다. 
“어째서 진영이가 없는 거냐구? 어디로…… 어디로 사라진 거야?” 

“나, 나도 모르겠어.” 

반쯤 입을 벌린 체 넋을 놓고있던 민석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한동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힘이 들어간 철진의 손 때문에 멈추었던 피가 다시 흐르고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전신이 따끔거렸지만 그런 것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머리에선 오직 한가지 생각만이 돌고 있었다. 

진영의 행방.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끼이익.” 

그때 그들이 있던 머리 위쪽으로 뭔가가 삐걱이며 긁히는 소리가 났다. 민석은 움찔 놀라 시선을 돌렸고 철진은 눈을 부릅뜨며 어둠 속에 울려 퍼진 소리의 원천을 찾으려 했다. 

“어디서 나는 거지?’ 

한 팔로 몸을 짚고 일어선 철진이 두세 걸음쯤 발을 떼다 멈추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장막 속에서 흐릿한 인영(人影)이 그려지며 그의 정신을 사정없이 지배했다. 그는 주변에 가득 깔린 음습한 긴장에 호흡을 멈추곤 자리에 슬그머니 앉았다. 

“끼이익. 끼익.” 

다시 한번 예의 그 소리가 들려왔다. 낡은 판자가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가 박히는 것 같기도 한 괴상한 소음. 둘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동의하지 않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때 눈부신 섬광이 터지며 주변이 일시에 환해졌다. 나갔던 전기가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앞을 보는 순간 진영과 민석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거친 비명을 지르며 경악했다. 

“으아아악!” 

글쓴이 : 이언




창문이 있는 벽 쪽으로 길고 거대한 무언가가 양 팔이 벌려진 체로 박혀 있었다. 온 몸이 붉은 물감을 뒤집어 쓴 것처럼, 피로 범벅이 되 있어 처음에는 그것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뭉개진 얼굴 사이로 쪼개진 눈이 보였고 시선을 돌리자 한쪽만 남아있는 귀가 보였다. 바로 진영이었다. 

“우우욱. 우욱.” 

민석은 위 속의 모든 내용물이 역류하는 충동을 느끼며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구역질이 올라오며 욕지기가 났다. 그는 손에 토사물이 번져 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에 토를 해댔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머리 속이 아뜩해지며 귀속에 벌레가 들어간 마냥 위잉거리는 소음이 났다. 심장이 사정없이 쿵쾅대며 맥박이 살갗을 뚫고 나올 것처럼 거세게 뛰었다. 마치 몸과 신경이 따로 노는 듯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진영이가……’ 

진영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팔과 다리엔 무수히 많은 양의 못들이 박혀 있었다. 끝이 예리한 굵직굵직한 대못들은 분명 공구박스에 들어있던 것들이었다. 비로소 소리의 실체를 알거 같았다. 그는 진영의 몸을 장난감처럼 벽에 붙여놓고 잔인하게 못질을 해댄 희연이란 존재에 대해 사무치는 원망과 증오를 가지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사람의 신체를 벽에 박아버릴 만큼 강한 힘의 위력에 두려워지기도 했다. 

“지, 진영이가. 지…… 지, 지 진영이가.” 

철진이 하얗게 질린 체로 떠듬거렸다. 다리가 풀어졌던지 그는 문어처럼 흐물거리는 하체를 뒤로 끌며 비틀대고 있었다. 당장 문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도끼든 뭐든 손에 잡히는 대로 휘둘러 문을 부시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상황과 그것이 주는 전율에 그는 반나마 넋이 나가 있었다.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분산되는 의식이 깨지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있는 일 뿐이었다. 

민석은 진영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한때 가깝게 지내던 녀석이 하루아침에 짓이겨진 고깃덩이로 전락해 이제는 악랄한 악귀의 놀잇감이 되 버렸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자신이기도 했지만 배후엔 희연이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이 슬프기도 또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은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의 마디가 굳어버렸다. 여름철 아이스크림이 녹아 내리는 것처럼 팔과 다리가 추욱 늘어지며 내부에서 돌던 기운들이 빠져나갔다. 그는 자리에서 도망칠 수도, 일어설수조차도 없었다. 어떤 강한 무언가가 그의 몸을 끌어당기고 있는듯한 기분이 들며 머리속이 혼미해졌다. 눈 앞의 공기는 너무 팽팽했고 근처에 몰려있던 기류는 온 몸을 관통하며 그 속의 세포 하나하나를 찍어 누르는 듯했다. 

순간 닫혀있던 진영의 입이 들썩이며 천천히 벌어졌다. 반쯤 몸을 일으키던 철진은 그 자리에 쓰러졌고 민석은 입을 크게 벌렸다. 놀랍게도 경직된 얼굴 근육들이 뭉치고 떨어지며 입술이 꿈틀대고 있었다. 

“너……어어……나 아아를……죽여……써어어.” 

음습하고도 나직한 목소리가 진영의 입을 통해 새어 나왔다. 이미 귀에 익숙한, 소름 끼치도록 시린 희연의 음성이었다. 

“으아악.” 

그 소리에 기겁을 한 철진과 민석이 기다시피 몸을 끌며 뒷걸음 쳤다. 진영, 아니 희연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죽여써어. 너가, 너가아아…… 나를 죽여써어.” 

목소리는 간격을 두고 기묘하게 오르내렸다. 희연의 음성이었지만 간간히 진영의 음성도 섞여 있었다. 자신을 질책하는 저 소리. 민석은 귀를 감싸며 얼굴을 숙였다. 예전에 죽임을 당한 희연과, 자신이 죽여버린 진영이 똑 같은 원망으로 그를 힐난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닫혀있던 진영의 눈이 떠지며 쪼개긴 눈알 사이로 액즙이 짜여지듯 피가 새나왔다. 그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하나 남은 눈동자는 광기에 차 붉게 번뜩였다. 

“이제엔……네…… 차아례에야…….” 

“하, 하지마! 안돼에엣!” 

“툭. 툭.” 

순간 민석은 팔목에 떨어지는 핏방울에 흠칫 놀라며 고개를 처들었다. 촉수처럼 천장에 붙어있던 미진의 몸뚱이가 살아있는 것처럼 푸들거리더니 검붉은 피를 흘리며 웃고 있었다. 아니, 웃는다는 건 그의 착각이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들리는 웃음소리는 민석의 정신을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어깨와 팔목에 핏자국이 번지며 끈적한 느낌들이 신경을 자극했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미진의 몸도 그것에 휩쓸려 돌고 있었다. 그리곤 그를 향해 일시에…… 

“으아악.” 

번지는 피와 달라붙는 웃음 소리. 민석은 두 팔을 마구 내지르며 몸에 닿는 살점들을 떼어내려 했다. 얼굴에 떨어지는 내장과 신체를 이루던 조각들. 피 때문에 자꾸만 시야가 가려졌다. 그는 두 눈이 따끔거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연신 눈을 비볐다. 대지를 붉게 물들이던 노을이 스치고 지난 것처럼 사방이 핏빛이었다. 그리고 흘러내리는 피의 비 속에서 그는 보았다. 벽에 붙어있는 진영이 서서히 몸을 틀어 자신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말이다. 몸을 관통한 못 자국들 위로 피가 펌프처럼 뿜어져 나왔다. 

“아, 안돼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민석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끈적한 바닥은 저 깊은 바닷속에 있는 수초처럼 그를 휘감은 체 놓아주지 않았다. 들썩이는 진영의 몸은 서서히 거리를 좁혀왔고 두 다리를 밀며 몸을 빼던 민석의 손엔 물컹하고 커다란 무언가가 잡혔다. 

“으악.” 

사람의 머리에서 떨어져 나온 안구. 그건 바로 미진의 눈이었다. 퉁퉁 불은 눈알이 그를 원망스럽단 투로 쏘아보며 위를 향해 치켜져 있었다. 몸이 뜨거워지며 호흡이 가빠졌다. 뱃속에선 아직도 토할게 남아있는지 기관들이 요동 쳤고 머리는 둔탁한 뭔가가 내리찍은 만큼 어지러웠다. 그리고 사방이 피로 번진 창고는 어디가 중심인지 모를 정도로 빙빙 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진영의 얼굴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이제 진영은 자신이 있는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그가 피에 젖은 손을 내밀며 민석을 잡으려 했다. 

“저리가앗! 으아아악!” 

민석은 최후의 발악을 하듯 온 몸의 힘을 쥐어짜 진영을 밀어버렸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진영이 비틀거렸고 그 틈을 타 민석은 정신없이 문이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구르고 자빠지고 기면서, 얼굴에선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흐르고 있었고 피에 절은 머리카락은 기분 나쁠 정도로 이마에 달라붙었다. 
그는 근처에 있던 쇠막대기를 들어 사정없이 문을 내리쳤다. 손 마디가 뻐근해오며 상처 난 부위 사이로 피가 계속해서 솟구쳤지만 움직이는 것을 멈출 순 없었다. 여지껏 느껴보지 못한 처절함과 절박한 심정으로 그가 손에 쥔 것을 마구 휘둘렀다. 손바닥이 찌릿해오며 육중한 쇠의 울림이 팔목을 타고 번져갔다. 그러나 푸른 불꽃을 튀기는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뒤를 살피니 피에 덮인 사람의 형체가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이런!’ 

민석이 죽기를 각오하는 심정으로 손에든 것을 무기 삼아 앞으로 내밀었을 때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철진의 얼굴이 들어왔다. 

“철진아!” 

“문은! 문은 안 열려?” 

잠시 마음을 놓던 민석이 그 말에 정신이 드는지 다시 문을 두드렸다. 발로 차기도 틈새에 막대를 끼워놓고 지렛대 식으로 벌려보기도 했지만, 굳게 닫힌 쇠 문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미세한 흠만 날뿐 타격도 없었다. 철진은 초조한 심정으로 그가 걸어온 반대편을 보며 불안에 찬 눈동자를 굴렸다. 이 상태에서 진영, 아니 희연을 마주친다면 자신들은 그대로 죽은 목숨이었다. 

“안 열려? 어떻게 좀 해봐!” 

민석을 다그치던 철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이제는 악귀가 되 버린 진영이 코너를 돌아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철진은 민석의 몸에 손을 대려다 그대로 멈춰 섰다. 지금 상태에서 등을 보인다면 더 위험할거 같았다. 그는 몸을 돌리지 않은 자세로 다급하게 중얼댔다. 

“미, 민석아. 왔어. 지, 진영이가 왔다구.” 

“뭐?”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오금이 저려왔지만 민석은 쥐고 있던 쇠막대에 힘을 가득 줘 한번 더 강하게 문을 쳤다. 그리곤 그 자신의 몸을 이용해 힘껏 부딪혔다. 실어낸 체중은 고스란히 타격이 되 돌아왔지만 이제는 정말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비틀거리는 진영이 서서히 다가왔다. 그의 손엔 어느 샌가 예리한 칼이 쥐어져 있었다. 그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눈에 보일 만큼 오싹했다. 진영은 무표정 했지만 민석은 그가 웃고 있다 생각했다. 언젠가 자신이 처음 살인을 했을 때 느꼈던 그 흥분 그대로를 간직하며 희열에 찬 미소를 띄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온 몸이 붉게 물들어 흡사 타오르는 열화 덩어리처럼 다가오는 진영을 보자 민석은 몸 속의 모든 피가 역류하는 기분을 느끼며 숨을 멈췄다. 침 삼키는 소리가 뇌까지 뻗쳐 올라 전신을 자극했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안돼!’ 

그가 온 몸의 체중을 실어 문에 덤벼들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죽기를 바라고 뛰어든 것이다. 신기하게도 <쿵> 하는 소음과 함께 아까까지 닫힌 문이 벌어지며 살갗을 에는 듯한 바람이 얼굴에 닿아왔다. 동트기 전의 뿌연 안개의 강이 사방에 뻗어 있었다. 하지만 문은 생각만큼 열려지지 않았고 겨우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을 때 발목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으아악.” 

갈고리 같은 진영의 손이 그의 발을 붙든 체 천천히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민석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찔끔 쏟았다. 머리에 늘어붙은 피는 그대로 굳어져 따끔하게 눈을 찔러왔고 볼을 따라 흐르던 땀은 피와 눈물에 뒤섞여 입으로 들어왔다. 

“저리가앗!” 

휩쓸리지 않기 위해 그는 죽기살기로 문을 잡았지만 하체가 뻐근해지며 점점 발목이 조여왔다. 그는 더러운 것을 떼어내려는 듯 마구 발을 털다가 어느 순간 그의 몸을 걷어찼다. 민석의 몸은 밖으로 나왔고 대신 끌려 나온 진영의 상체가 꺾이며 문에 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민석이 문을 밀어 깔린 그대로 진영을 눌러버렸다. 그의 몸이 새우처럼 휘어지며 뼈가 부서지는 처절한 소음이 들렸다. 

“죽어! 죽어버렷!”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분노와 참을 수 없는 증오. 민석은 친구가 아닌 그것의 몸을 사정없이 뭉개버렸다. 열려진 문틈이 좁아지며 손아귀엔 더욱 더 힘이 들어갔다. 그에 따라 진영의 몸도 꺾이고 부서져 나중엔 찢겨져 나간 살가죽 사이로 내장이 구불거리며 새어 나왔다. 

진영에게 흐르던 피가 뻐근해진 발목을 적시며 신발 속으로 파고 들었다. 질퍽한 피는 아직도 더운 김을 내뿜고 있었지만 민석에겐 한없이 차갑고 시리게만 느껴졌다. 푸들거리던 진영의 몸이 늘어지더니 어느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이제는 끔찍함과 두려움, 그리고 야릇한 슬픔에 그는 정신없이 그곳을 벗어나 달렸다. 뒤를 보고 싶었지만 돌아 지지가 않았다. 거센 바람처럼 공포가 목덜미를 후렸다. 그는 인근의 도로가 나타날 때까지 뛰고 또 뛰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신발에 고인 피가 발가락 사이로 늘어붙어 딱딱하게 굳을 즈음이 되서야 그는 고속도로와 통해있는 길목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차는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서울 근교에 위치하면서도 인적이 드문 곳. 살인을 저지르기에 안성맞춤인 장소가 지금은 지옥처럼 버틴 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그에게 다가서려는 것처럼 팔을 뻗었다. 그 사이로 괴기스러운 눈알이 번뜩이며 누군가의 모습이 보일 거 같아 그는 몸을 떨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있다면 적막 뿐이었다. 살아있는 생명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어둡고 깊은 적막감. 끝도 없는 고독. 퇴색된 아스팔트를 따라 쓰러지고 일어서길 반복하며 그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대체 몇 시쯤이나 된 거지.’ 

손목을 들어올린 민석은 깨어진 액정을 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6자에 머무른 바늘이 반쯤 날아가 뭉툭해져 있었다. 파손된 시계는 그의 위치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아침이 오지 않는 곳. 오늘은 정말 이상했다. 평소라면 날이 밝고도 남았을 텐데 시간과는 별개로 주변이 움직였다. 너무도 변화가 없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언가가 이 부근의 빛을 전부 잡아먹고 있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머리 위의 하늘은 시커먼 원을 그린 체 괴물처럼 도사렸고 숨을 쉴 때마다 눅눅한 안개가 입안으로 들어찼다. 

메케하고도 탁한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게다가 이 냄새. 머리와 피부에 붙은 핏방울이 땀과 뒤섞여 내는 악취는 뒤에서 조여 오는 공포만큼이나 끔찍했다. 그는 입술을 꽉 깨물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이제 와서 쓰러질 순 없었다. ‘살아야 한다.’ 그의 머리엔 오직 그 생각 뿐이었다. 

걸을 떼마다 찌릿한 느낌이 발목을 타고 번져갔다. 생명수가 넘치듯 새어 나오는 붉은 액체. 처음엔 진영의 피인줄로만 알았는데 그것은 예리하게 벌어진 자신의 피부로부터 흐르고 있었다. 아마 발목을 잡혔을 때 얻은 상처인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제껏 걸어온 길 뒤로 희연이 따라 오는 것만 같아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아직 그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진영, 솔직히 그것이 진영인지 희연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는 모르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어쨌든 상대는 이미 죽은 귀신이니 말이다. 

어디선가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고도 조용하게. 민석은 고개를 들었다. 까마득한 어둠 사이로 손바닥만한 빛이 보이며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실낱같은 빛에 희망을 얻은 그가 바닥에 쓰러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허겁지겁 나아갔다. 눈부시게 밝은 빛이 시야를 자극하다 사라졌다. 검은색 자동차가 멈추며 낯익은 얼굴이 문을 열고 나왔다. 바로 형진이었다. 

“혀, 형진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민석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흐르며 사지가 후들거렸다. 

“민석아!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막상 형진을 만나게 되자 쥐고있던 긴장이 일시에 풀리며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이 추욱 늘어졌다. 그는 형진의 팔을 잡으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민석아?” 

놀란 형진이 황급히 그를 부축하며 차 안에서 수통을 꺼내왔다. 그리고는 수통의 마개를 따고 목을 뒤로 젖혀 입 안으로 물을 흘려 보냈다. 차가운 물을 마시니 조금 정신이 돌아왔다. 민석은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형진이 있다는 것에 안심했다. 형진은 뭐가 뭔지 모를 표정으로 인상을 썼지만 그가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해줄 상태가 되기를 침착하게 기다렸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 나가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 계집이 나타났어……그 애가…….” 

“뭐?” 

“희연이…… 그 년이 나타나서 모두 죽였어.” 

“무슨 소리야. 죽이다니?” 

형진은 눈을 크게 뜨며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부축하고 있는 손에도 피가 묻어 깨끗한 와이셔츠를 자줏빛으로 물들었다. 민석의 몸과 얼굴에 붙은 피는 끈적하게 녹아 내렸고 어깨와 발목에서도 간헐적이지만 검붉은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마음이 불안했지만 그는 애써 평정을 찾으며 다시 한번 물었다. 

“자세히 좀 말해봐. 뭐가 어떻게 되고 있던 거야? 희연이라니. 하. 너 지금 제 정신으로 하는 말이야?” 

“희연. 정희연……. 모두 죽일거야. 모두.” 

“미친 소리……” 

‘미친 소리 하지마.’ 라고 소리치려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상식적으론 불가능 했지만 그도 오면서 이상한 기운을 느끼던 터였다. 시체를 처리하고 오는 길은 분명 환한 아침이었는데도 이 부근에 들어서면서부터 깜깜한 어둠이 그를 맞이했다. 차가 지나쳐온 공간은 빛에 쌓여있었지만 이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어제의 밤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희연이란 이름이 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저 민석의 상태가 평소 같지 않다는 것에 착안하며 최악의 경우가 벌어지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헛소리 하지 말고 제대로 좀 말해봐. 어디서 이렇게 다친 거야? 설마…… 경찰이 들이친 거야? 그래? 도망치다 다친 거냐구!” 

“아냐. 희연, 희연이…….” 

“미치겠군.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년이 난데없이 튀어나와 살인을 했다는 말을 나에게 믿으란 거야?” 

형진은 민석이 제 정신이 아닌게 분명하다 생각했다. 그의 머리에선 냄새를 맡고 찾아온 경찰들에 의해 난장판이 되어 무너지는 창고와 미처 피하지 못한 친구들이 몸싸움을 하다 쓰러지는 끔찍한 장면이 떠올랐다. 

“다른 애들은 어디로 갔어? 피했어? 아니면 끌려 간 거야? 진영인 어딨어?” 

“진영인 희연이가 아니 진영이가…… 나를 죽이려 해서, 그래서…….” 

민석은 말을 잇지 못했다. 쏘아보는 시선을 피해 한없이 참담한 얼굴로 고개만 흔들어댈 뿐이었다. 문득 그 눈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 첸 형진이 야릇한 불안을 느끼며 깡말라 붙은 입술을 혀로 문질렀다. 예상치 못한 안 좋은 일이 그의 의지와 별개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조금 심각해진 얼굴로 물었다. 

“무슨 소리야? 진영이는 어떻게 됐는데?” 

“죽었어. 진영인…… 진영인 죽어버렸어. 희연에게 죽은 거야.” 

“뭐?” 

뒤통수를 후려치는 아찔한 충격에 형진이 두 눈을 부릅떴다. 진영이가 죽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너무도 갑작스레 상황을 받아 들이다 보니 몸을 지탱 시킬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이 빠져갔다. 쿵쾅대는 심장은 가슴이 아닌 머리에서 울리는 것만 같았고 갈고리 같은 공포가 그의 머리털을 낚아챘다. 그는 가까스로 평정을 찾으며 말을 이었다. 

“죽었다고? 하…… 하하. 죽었단 말이지? 그것도 귀신에게? 믿을 수가 없군.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는 허공을 상대로 피식 웃더니 어깨를 으쓱 였다. 귀신의 존재를 철저하게 믿지 않는 그에게 민석의 말은 모두 거짓으로 들릴 뿐이었다. 잠시나마 민석의 말을 믿으려던 자신을 조소하며 그는 휴식이 필요할거 같은 친구의 얼굴을 걱정스레 바라봤다. 

“좋아. 좋다구, 그럼 철진이는 어디 있지?” 

“철진? 철진인…….” 

그제야 잊고 있던 철진 생각이 나던지 민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도 그는 창고 안에 있을 것이다. 희연이, 잔인한 악귀로 변해버린 희연이 있는 창고 속에……무방비로 말이다. 

‘아, 안돼!’ 
다급한 마음에 형진의 팔을 잡던 그는 아차 하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철진은 분명 그곳에 있지만 그 끔찍한 창고에 다시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까지 어떻게 걸어왔는데…… 문에서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진영에게, 아무리 그것이 희연이라 해도 어떻게 했는데…… 그 끔찍한 짓을 하고 도저히 갈수가 없었다. 그것은 미친 짓이었고 의미도 없었다. 

“왜 그래? 왜 말을 못해? 철진인 어디 있는데?” 

“처 철진이는…… 철진인 말이지. 도, 도망쳤어. 반대편으로……” 

“뭐?” 

“나하고 문을 빠져 나오고서 반대 쪽으로 달아났다구. 경찰들이…… 따라오니까, 그, 그러니까 나, 나중에 오기로 했어.” 

죄책감이 들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민석에게 희연에 대해 백날 말해봤자 믿지도 않을 것이고 나중에라면 모르지만 지금 그 상태에선 이 방법이 가장 최상이었다. 그는 죽어도 창고엔 가고싶지 않았다. 가까스로 잡은 삶의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민석은 철진의 어깰 버팀목 삼아 힘겹게 일어섰다. 

“어서 가자.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돼. 경찰들이 몰려 올 거야. 애들은 나중에 찾자. 진영이도 철진이도…… 모두 피했어. 무사할거야. 그러니…… 형진아. 어서.” 

아직 뭐가 뭔지 하나도 파악할 순 없었지만 그 말을 듣자 형진은 더 따져 묻지 않고 그를 부축해 차에 태웠다. 팔에 안긴 민석의 몸은 빠져나간 피 때문인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시동을 걸던 형진은 그의 몸에 자신의 옷을 벗어서 덮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루가 왜 이렇게 되 버리는지…… 세상이 온통 미쳐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차를 돌리려던 형진은 순간 민석의 말에 큰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창고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지금의 도로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여기서 차를 몰아 안쪽으로 파고들면 넓은 공터가 있고 창고는 그곳에,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물건을 쌓아놓는 자제창고처럼 보이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만약 경찰들이 왔다면 중간에 마주치거나 아니면 이상한 낌새라도 느꼈어야 하는데 이곳으로 오기까지 차는커녕 사람도 한명 볼 수 없었다. 한마디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치기엔 지나칠 정도로 사방이 고요했던 것이다. 더구나 잠복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창고를 들이쳐서 몸싸움이 벌어지고 친구들이 흩어진 상태라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말로는 진영이와 철진이 도망쳤다고 하지만 반대쪽으론 달리 빠져 나올 길도 없었고 몇 시간쯤 헤맨다면 인적 없는 야산이 나올 뿐이었다. 

‘이상하군. 밖으로 나가기 위해선 이 길밖에 없을 텐데.’ 
왠지모를 찜찜함에 선뜻 행동을 정하지 못한 그는 마음을 다잡고 차를 창고쪽으로 몰아갔다. 두렵기도 했지만 직접 상황을 보고 판단할 생각이었다. 

“지,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예상치 못한 형진의 행동에 민석이 소리쳤다. 그러나 형진은 아무 말없이 차만 운전할 뿐이었다. 

“이리로 가면 뭐가 나오는지 알고 가는 거야? 우린 모두 죽을 거야. 잡힐 거라구!” 

“진정해. 나도 바보는 아니니까. 위험할거 같으면 가지도 않아. 하지만 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꼭 알아야겠어.” 

“가지마! 부탁이야! 그 쪽엔 아무것도 없어. 없단 말야!” 

평소라면 모르지만 지금의 상태에서 형진을 막기란 힘이 들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몸을 의자에 붙인 체 기대고 있는 것 뿐이었다. 

“혀, 형진아…….” 

입술을 꽉 붙인 체 묵묵히 앞을 향해 가고있는 형진을 보자 그는 더 이상 대꾸할 말을 잊었다. 별수없이 민석은 일그러진 얼굴로 숨을 죽였다. 양심인지 아니면 사태에 직면했을 때 조금이라도 비난을 덜 받기 위한위한 방책인진 모르지만 계속해서 기도를 하며 말이다. 

창고에 다가설수록 가슴 속에선 점점 알지 못할 불안이 퍼져갔다. 잠시 날개를 펴고 떠나간 두려움이 그를 향해 날아와 웃고있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끊임없이 속삭이며 그를 비웃고 있었다. 으스러지듯 죽어간 진영의 모습이 선명하게 각인 되 떠나지 않았다. 처음 희연에게 홀려 친구를 죽인 것처럼 이번에도 잘못 되 가고 있단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호, 혹시? 아,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진정을 해보려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가셔지지 않았다. 마주잡은 손이 땀에 절어 끈적해졌을 때 차가 멈췄고 어둠에 휩싸인 창고가 보였다. 그것은 피를 들이마시는 괴물처럼 우뚝 선체 그들을 맞이했다. 

형진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 그는 문이 떨어져 있는 것에 놀라고 그 사이에 누군가의 시체가 끼워져 있다는 것에 놀랐다. 사지가 짓이겨진 체 잔인하게 도륙된 신체. 설마 했던 생각은 그 순간부터 현실이 되었다. 그는 경악이 가득 담긴 눈으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이럴 수가! 처, 철진아…….” 

뒤에서 걸어오던 민석은 그 말에 아찔한 충격을 받곤 비틀거렸다. 철진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아픈 것을 참으며 문이 있는 곳으로 가자 자신이 찍어 눌린 진영의 시체가 보였다. 여기 저기가 터지고 쪼개진 그를 보자 또 한번 욕지기가 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형진의 팔에 안겨있는 얼굴은 분명 철진이었던 것이다. 

“비켜봐!” 

그가 형진을 밀치고 그곳에 있는 시체의 얼굴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분명 철진이었다. 즐겨 입던 까칠한 난방이 핏물에 절어 종이처럼 굳어 있었다. 딱딱하고 반듯한 종이 말이다. 모서리가 있는 문틈에 끼어있던 몸은 허리로부터 잘려져 나가 금새라도 떨어질 것처럼 위태하게 흔들렸다. 

“이, 이럴 리가…….” 

민석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진영을, 진영을 죽였는데 철진이라니…… 위를 향해 뻗은 손가락이 바닥의 흙을 움켜쥔 체 굳어 있었다. 몸에서 나온 내장은 아무렇게나 흩어져 흙과 함께 섞여 있었고, 입가에 흐르던 피는 침과 범벅이 되 보기 흉하게 번져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흔들다 두 팔로 얼굴을 감싸며 미친 듯이 절규했다. 

“아니야! 내가 아니야! 내가 죽인게 아니라구!”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독한 악몽을 꾸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순식간에 자신의 손으로 가깝던 친구 둘을 죽여버렸다. 그는 분명 희연에게 대적한 거지만 실상은 또 한번 농락당하고 만 것이다. 

“왜 그래?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구!” 

옆에서 다그치던 형진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아련하게 들려왔다. 그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손 마디가 욱신거리며 식은땀이 흘렀다. 맥박이 요동 치며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그리고 그 순간 불안은 공포가 되어 그를 덮쳤다. 그는 반쯤 열려진 틈새로 보이는 창고 안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친구에 대한 애도를 넘어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이 그를 쥔 체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살고 싶었다. 살아서 이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나가야 해. 여기서…….”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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