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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양지살 라면 요리 후기
게시물ID : cook_539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플라톡신
추천 : 10
조회수 : 156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7/31 19:28:58
제목: 한우 양지 라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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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읍- 후-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마시곤 입안에서 한바퀴 굴린다. 오후 6시 30분. 씁쓸함이 입안을 가득 메울 때, 문득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가만, 냉장고에 뭐가 있더라"

주린 배를 쓰다듬으며 냉장고 앞에 섰다. 역시나. 오늘도 냉장고는 과거와 다름 없이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다다익선은 그릇된 말. 아무리 먹을 게 가득해도 냉장고에서 내가 먹을만한 것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내 눈 앞에 불현듯, '한우/양지(국거리용)'이 스쳐지나갔다. 어제 어머니가 끓여놓고 알아서 데워먹으라 하신 미역국 안의 고기는 이 놈이었는가보다. 이런 생각따위를 하고 있을 때 '국거리'라는 단어가 번뜩였다.

그렇다, 라면. 라면 역시 국이라면 국이지 않은가.

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인 2011년 이른 2월즘, 자취방에서 함께 짜파구리를 끓이며 음식을 논했던 문선생의 명언.

"라면은, 요리입니다."

그래, 라면도 요리였던 것이다. 마침 인간이 육식을 해도 죄책감이 가장 들지 않는 6시 40분, 나는 망설이지 않고 냄비에 물을 채워 넣었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550ml. 그리고 선홍빛으로 부끄럼을 자아내는 한우/양지(국거리용)을 200g 살며시 넣어줬다.

보글- 보글- 보글-
물이 한창 끓어오르자 나는 넘쳐오는 기대감을 참지 못하고 스프와 면을 동시에 넣어버렸다. 아뿔싸! 스프가 먼저인 것을. 어째서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해 버린 걸까. 죄책감이 잠시 어깨를 짓눌렀지만 라면은 3분 3초 후 완벽하게 끓어버린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나는 서둘러 냉장고 가장 구석에서 고이 모셔져 있었던 유기농 영양란 한 알을 꺼내왔다. 

톡- 톡- 치이-

계란이 라면에 떨어질 즈음 강렬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뭔가, 흰자가 적다. 노른자에 비해 흰자가 적다. 원인을 찾아 계란 껍질을 바라보니 흰자가 적나라하게 얼어있었다. 이런, 냉장고가 디펠이 아닌 것이 문제였던건가. 어쩔 수 없다. 계란은 포기한다.

이제 남은 시간은 4초.. 3초.. 2초.. 1초


빠르게 가스레인지를 잠근다. 시간은 생명이다. 라면의 면발이 한치라도 불어버리기 전, 시식을 마쳐야한다. 냄비받침과 냄비를 동시에 집어든다. 이미 젓가락은 냄비 안에 들어가 있다.

조급해 하지 않고, 냉장고에서 파김치를 꺼낸다. 이번 파김치는 실파가 많아 알싸한 맛이 약하지만, 이는 라면의 맛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리라.

이윽고, 한우 양지 라면이 완성되었다.

좋아. 먹어보는 거다. 긴장된 마음을 갖고 젓가락을 움직여 라면과 고기를 집어 입안에 탐욕스럽게 집어넣는다.


후루룩- 후룩-


입 안에서 세네갈이 펼쳐졌다. 아니 어쩌면 세네갈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되새김질 하는 암소의 모습. 한마리가 아니다. 한 무리의 암소가 입안을 뛰어다닌다. 동시에 라면의 면발이 탄력있게 끊어지며 입 안에서 오페라를 자아낸다. 

뉴욕. 입 안 가득 뉴욕이 펼쳐진다.

What Happens in Vegas, Stays in Vegas.

뉴욕의 명언이 뇌리를 스치며 다시금 현실로 나를 이끈다.


그래.. 
역시 한우/양지(국거리용)은
미역국에 넣어 먹어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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