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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한 41세 아저씨의 글
게시물ID : humorbest_5938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까만유니폼
추천 : 114
조회수 : 6221회
댓글수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12/24 23:42:39
원본글 작성시간 : 2012/12/23 18:29:21

저는 광주에서 태어나고 광주에서 고등학교 까지의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부모님도 모두 광주분 이시고 조부님 까지도 광주분 입니다.
지독한 전라도 스러운 혈통을 가진 Native 전라도민 입니다.

광주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기억에는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무섭고,이해할수 없었던 기억의 조각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어렸을때 저는 동명동 이라는 도청 아주 가까운 동네에 살았습니다.
당연히 5.18의 광경을 목격했고 목숨을 잃은 사람의 모습을 9살 되던 해에 처음 보았습니다.
무슨 잘못을 했길레 저렇게 처참하게 사람들은 죽어가야 했는지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였습니다.

매년 5월의 광주는 너무도 무서웠습니다.
유가족의 울부짓음과 시민들의 눈물들,진압 경찰의 진압봉과 메케한 최류가스 내음은 항상 섞여 있었습니다.
어느 시인의 5월의 낭만도,봄의 우아한 모습도 늘 그렇게 모른 척 하며,아니 그것을 즐기기엔 마치 내 자신이 너무나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 기분을 느껴야하는 ,,,,,,광주의 5월,내 유년시절의 봄날은 항상 그랬습니다.....




저에겐 '아제'가 있었습니다.
아제는 사투리로 형을 친근하게 부르는 단어 입니다.
그 아제는 야구를 아주 잘하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 이였습니다.
맞 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고 야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그 아제와 저는 나이를 넘어선 우정을 나눴고 언제나 그형은 저의 제일 큰 친구이자 듬직한 큰형 이였습니다.

그 형은 정말로 말을 잘했습니다.
그리고 아는 것도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형의 입을 통하여 듣는 야구이야기,그리고 세상 이야기는 어린 저에게는 세상의 전부 였습니다.
군산상고 이야기들,김 봉연 선수의 이야기들,김 일권 선수의 이야기,광주일고의 괴물투수 이야기들....
정말로 이 세상에 그런 선수들이 있다는게 신기했고 어서 그 선수들을 보고 싶었습니다.

김 봉연 선수는 홈런볼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멀리치는 괴력의 초인 이고,김 일권 선수는 발이 어찌나 빠른지 2루 도루를 하면 공이 송구 되는 사이 3루 까지 가 있었고,남 우식 투수는 고등학생 인데도 쿠바선수들도 손도 못대는 공을 던졌고,이 해창 선수는 1루타를 치고도 항상 2루에 가 있는 선수였습니다.

나중에 그것이 다소 허풍이라는 걸 알았지만,그 형의 야구 이야기는 시간 가는줄 모르고 빠져있던,가장 즐거운 유년 시절의 유쾌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형의 어머님이 삶아 주시던 옥수수의 맛을 잊을 수 없고,개구리 잡으로 갔다가 길을 잃고 다리가 아파서 업힌 그 형의 넓은 등이 아직도 그립고,집에서 부모님께 야단을 대신 맞아 주시던 형의 그 믿음직한 모습이 얼마나 든든 했는지 모릅니다.




오랜 방학기간후 그 형의 모습은 한참동안 보이지 않았습니다.
형의 부모님께서 심각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과 할머님이 눈물을 훔치시던 모습이 자주 보였습니다.
형이 너무나 보고 싶어서 형의 행방을 물으면 형의 부모님은 그저 아파서 병원에 있다고만 했고 병문안 이라도 갈려고 병원의 위치를 물으면,그냥 아주 멀리 있어서 저는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매일 매일 형을 기다리는 것만이 제가 할수 있는 전부였고,형이 밉기까지 했습니다.
동네 친구들과 놀고 난후 집에 오는 길에 매일 형의 집앞을 지나치는게 이젠 무덤덤해 졌습니다.




그 다음해 5월에 하얀 상복을 입으신 그 형의 부모님이 경찰들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형네 어머님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시고 계셨고 늘 점잖던 형의 아버님은 경찰들과 멱살을 잡으며 몸싸움을 하고 계셧습니다.
평소 욕 하는 모습이 당신의 귀에 들리시면 엄하게 야단치시던 저희 아버님도 온갖 욕설을 퍼 부우면서 그 경찰들과 싸우고 계셨습니다.
도대체 무었때문에 그 분들이 저렇게 속상해 하시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한참 후에야 그 형은 시민군으로 나섰다가 5월 24일에 사망한걸 알았고,형네 부모님은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하려다가 가택 연금을 당했었고,그 싸움은 전 두환 대통령이 광주에 업무 보고를 와서,불순 세력들의 집회를 원천에 봉쇄하라는 경찰 서장의 명령 집행 과정중 벌어진 실랑이 라는 걸 알았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수록 저는 그 형이 되가고 있었습니다.
동네 친구들 모아놓고 해태 타이거즈에 대한 이야기를 늘 들려 줬습니다.
전부 다 는 아니지만 한 두 녀석은 제 이야기에 정말로 귀를 기울였습니다.
은밀하게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마치 야구 박사인양 행동하는 걸 즐겼는지도 모릅니다.
형이 너무나 보고 싶었고 형을 잊은 체 살아갔지만 그게 형을 가장 그리워 하는 저의 다른 표현이 아니였는지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그형의 부모님은 이사를 하셨고,또 얼마후 광주의 5월에 최류가스 내음은 점점 사라져 갔으며,도청에는 큰 공연이 열리길 시작했고,몇년전 즈음부터 광주의 5월은 너무나 평온 했습니다.
광주의 5월은 그렇게 그렇게 흘러 갔습니다.
가슴 저미는 죽은이에 대한 그리움도,회한의 세월을 견뎌낸 산자의 미안함도 세월은 그 상처를 조금씩 다독거려 주는듯 보였습니다.





물론 자신의 선험적 체험을 통해 경험한 사실에 대한 시각과,단순한 외부의 정보를 통해 내제화된 시각이 동일 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건에 대한 판단의 대부분은 주관적 정서 의식이 객관적 사실을 어느 각도로 이해 하느냐에 달린,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근거에 의존하여 결론 내려 집니다.

그 결론의 타당함을 토론하고,비판하며 다른이의 올바른 소리를 수용하며 내린 건전한 결론의 도출은 우리를 수긍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적어도 정정 당당함과 페어 플레이 정신이 살아있는 야구와 그 팬들이 모이는 이 사이트야 말로 그런 유쾌한 논쟁의 장소 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부의 몰 지각한 사람들의 목소리라고 치부하기엔,광주시민을 비하하는 단어를 듣고, 그것을 견뎌야 하는 상처입은 사람들의 아픔이 너무나 골이 깊습니다.
이 사이트의 건전한 자정 능력을 믿고,불패너 들의 올바른 상식을 믿고 있기에 제발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객관적 인지 능력의 부족이 이유가 아닌,정말 다른 이유를 계속 이야기 한다면 그 사람과 싸워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삼년전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그분도,지금도 절절히 보고싶은 그 '아제'도,바름을 원했다는 이유로 소리없이 사라져야 했던 수많은 그리운 사람들도.... 이제는 우리가 제대로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야구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었일까요?
그 큰 이유중 하나는 정정당당한 승부를 즐길수 있기 때문 입니다.
반칙해서 이길수는 없고,술수로 이길수도 없습니다.
동쪽과 서쪽 선수를 구별해야만 이길수 있는것도 물론 아닙니다.

지고 있다가 의외의 홈런 한방에 세상을 다 가진양 열광하고,이기고 있다가도 실책 하나에 세상이 무너져 버린양 탄식을 자아 냅니다.
하지만 비록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 이길수 있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내일은 0;0 에서 또다시 게임은 공정하게 진행 되기 때문 입니다.

이 공정한 게임의 룰이 이제는 우리 사회에도 적용되야 하는건 아닌지요.
다시 또 공정한 시합을 위해서 우리모두 그들의 반칙을 지금부터 지켜보아야 합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우리 마음을 다독여야 합니다.

다음 시합에선 같이 승리합시다


출처-엠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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