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서프라이즈 / 김찬식 / 2008-9-4)

촛불이 사그라졌으니 국민들의 저항도 그 사그라진 크기만큼 줄었다, 라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개과천선하여 국정운영을 제대로 하는 경우 국민의 저항이 제대로 줄어든 것이지 그 외 이유로 촛불이 사그라지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선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몇 개월간 밤마다 나가 촛불을 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촛불은 사그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벌써 마라톤을 세 바퀴는 연이어 뛴 체력 소모가 일어났는데 더 이상의 체력을 요구하는 것은 인간에겐 무리다.

이쯤 해서 촛불은 접는 것이 맞다. 하지만, 촛불을 접는다고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는 것쯤은 다 알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동의를 얻으려면 국민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나라는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요즘 내 주위에서 곡소리 난다. 보수건 수구건 이념에 관계없이 잘 나가던 주변 사장들이 요즘은 동시다발적으로 개 거품을 물고 대통령 욕을 한다.

일감이 급감하고 채산성도 현저히 떨어지니 당장 회사 운영에 직격탄을 맞고 자연스럽게 대통령을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 수구 사장들도 이럴진대 일반인이나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은 오죽할까.

촛불집회에 참여는 안 하지만 마음만큼은 촛불에 참가하는 사람과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시청 앞 촛불의 존재 유무는 더 이상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큼 일반 국민들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과 배신감은 팽배해 있고 이것이 이명박 정부의 현실이다.

성장 동력으로 녹색산업을 외친지 며칠 안된 것 같은데 재개발 재건축 대운하, 즉 노가다 산업 관련 발언들이 이어진다. 노가다 산업과 녹색 산업이 무슨 연관관계가 있나? 상극 중의 상극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튼, 지금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들이 이렇다.

▲ 경향만평

두서도 없고 계획도 없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떠들고 발표한다. 가끔 보면 자기들이 뭔 소리를 하는지 발표하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우리 만수~ 여전히 감 떨어진 발언만 한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결코 강만수 장관을 경질하지 못한다. 강만수 없는 747, 이명박식 경제 성장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인간이다.

따라서 성장주의자 강만수와 건설업자 이명박 대통령의 조합은 불가분의 관계다. 어젠가 이명박 대통령이 고도성장 운운할 때 정말 아찔했다. 어차피 어려운 경제 결국 건설로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마 운하건 재개발이건 뭐건 할 것이다. 건설경기 부양이 유일한 방안임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다른 방안을 찾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장 잘할 수 있는 거니까.

9월 위기설이라고 하지만 9월에 순식간에 나라가 망하진 않는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10년 동안 다져온 국가의 체질이 금년 한해 거의 무너져 버리고 있는 것이다. 감기만 걸려도 응급실 실려 가는 나라로 변하고 있다.

나는 이 점이 더 두렵다. 지난 수년간 그 어떤 나라도 깔보지 못했던 나라가 순식간에 글로벌 호구로 변해버린 모습에서 나는 진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 정부가 인위적인 경기부양까지 한다면 그땐 정말 끝장이다. 인위적 경기부양이 끝나자마자 바로 한국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할 것 같다. 아니 한다.

차라리 대통령이 전두환이었다면 아는 체는 하지 않았을 텐데, 잘못 알고 있는 얕은 지식으로 국가를 경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지금 두 눈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잘못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 신세가 더 처량하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선출된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그저 바라봐야 하는 우리는 너무나 민주적인 시민들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인가보다.

ⓒ 김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