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바지’의 의인, 세월호 생존자 김동수씨는 10년 전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국가 구조 기능이 마비됐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을 구해 우리 사회 의인으로 등극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4년 전이다. 김씨는 국회 앞 시위 도중 자해로 이송된 병원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이유로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6년 만에 그는 의인에서 피고인이 되었고, 나는 그의 변호인이 되었다.
의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부심과 행복은 고사하고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던 그를 변호하기 위해 제주를 오가며 나는 제주 세월호 생존자 23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참사 당시 대부분 화물차 운전사였던 그들은 아직도 약을 먹지 않으면 두려움에 잠을 이룰 수 없는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일보다는 쉼과 치료가 필요해 보인다는 말에 그들은 반문했다. “생계는 누가 책임져주나요?”
솔직히 나는 세월호 생존자들이 평생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만큼 큰돈을 국가로부터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억대 보험금 이야기가 나왔고 국민 성금도 많이 모였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받은 배상금은 1~2년 급여 수준이고, 그들을 위한 배상 절차가 졸속으로 진행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5년 3월29일 시행된 세월호 피해 지원법은 배상금 지급 신청 마감을 법 시행 6개월로 못 박았다. 생존자들은 배상 신청을 위한 필수 서류인 후유장애 진단서 발급부터 막혔다. 당시 정신과 전문의들은 ‘재난 후 발생한 트라우마는 최소 2년이 경과된 후에 평가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앞세워 진단서 발급을 거부했다. 정부 개입으로 마지못해 후유장애 진단서를 발급해야 했던 의사들은 ‘추후 재평가를 통하여 치료 지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문구를 함께 기재했다.
출처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08/0000034760?sid=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