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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bgm]87년 대통령 선거의 추억
게시물ID : humorbest_5942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owHat
추천 : 40/14
조회수 : 4760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12/25 16:00:59
원본글 작성시간 : 2012/12/25 14:41:54

2012. 12. 제 18대 대통령 선거.

52% 대 48%로 박근혜가 문재인을 이기다.

선거패배로 좌절하며 분노하는 청년들이 많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1. 고통의 추억

 

25년 전 제13대 선거의 고통은 이보다 더 혹심했다.

1987년 12월 17일 대선 다음날의 아침. 나는 절망했다. 그리고 아연했다. 시장통에선 여전히 물건을 팔았고 출근버스는 한치의 오차없이 사람들을 날랐다. 학교도 거리도 사람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묵묵히 자신의 일상을 밟았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 거대한 민주주의의 대세가 한 줌 모래와 같은 독재세력 노태우에게 패배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뜨거웠던 자유의 열기가 다 어디로 사그라들고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사람들은 저토록 침착하게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전두환의 12.12쿠데타, 광주학살, 권인숙 성고문, 박종철 고문치사. 이러한 모든 압제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가 쌓이고 쌓여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 6월 항쟁.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엔 수도 셀 수 없는 사람들이 몰려나와 광화문을 터질 듯이 채웠는데, 그래서 독재자는 개헌을 허용하며 항복한 것인데, 이제 곧 민주정권이 수립되어 온전한 국민의 승리가 임박하였는데, 어째서 국민은 악의 한 축, 노태우에게 완벽한 정통성의 왕좌를 내주었단 말인가. 이제 전두환의 그 모든 악정은 면죄부를 받았는가. 6월 항쟁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87년 7월 이한열의 노제

 

그러나 이 비극은 이미 대선이 시작도 되기 전에 결정된 운명. 당시 선거법에 따라 여론조사는 발표하지 못하게 되었으나 개표 후 그 진실은 드러났다. 6.29 선언 이후 노태우는 단 한번도 1위를 놓친적이 없었다. 그의 지지율은 30%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고 선거직전의 김현희의 KAL기 폭파사건도 아주 조금 그를 유리하게 했을 뿐, 단일화 못한 민주세력에 대해 그의 승리는 이미 결정적이었다 - 노태우 37%, 김영삼 28%, 김대중 27%, 김종필 8%.

그렇게 제6공화국의 첫 날은 시작되었다. 현실을 부정하는 범국민 선거 거부운동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구로구청에서 개표부정을 부르짓는 헛된 절규가 있었을 뿐 대중의 관심은 이미 싸늘하게 식었다. 노태우의 치하에서 88 올림픽은 나름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 3저 호황에 주가는 1,000을 찍었고, 노동운동이 창궐하여 임금은 두 배나 올랐고, 주택은 30만호를 더 찍어냈다. 청문회로 5공세력은 풍비박산나서 전두환은 백담사로 유배길을 갔고, 임수경의 방북으로 통일운동이 시작되고, 중공, 소련과 국교정상화가 되고, 남북한은 동시에 UN에 가입했다. 그렇게 한 5년 세월은 흘러갔다.

 

그 5년 후 1992년의 제 14대 대선. 나는 김대중의 당선을 기대했다. "독재세력과 기득권 세력"은 둘로 분열되었다-김영삼과 정주영. 김영삼, 이 배신자. 3당 합당 야합의 첫 기사가 떴을 때의 그 충격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1990년 5월 9일 민자당 창당일에 명동에서 나는 동지들과 함께 경찰저지선을 돌파했었다. 시위대가 너무 많이 모여 경찰들은 한없이 무너졌었다- 그러나 차라리 잘 되었다. 민주세력은 이제 온전히 김대중 하나만으로 결집되었고 저쪽은 나뉘었다. 87년의 악몽과는 반대 판세였다. 정주영은 생각보다 너무 선전했고 김대중의 활짝 웃는 모습이 자주 신문에 올랐다. 이번엔 정말 이길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결과는 김영삼 42%, 김대중 34%, 정주영 16%. 나는 분노했다. 경상도 사람들을 원망하고 노인들을 미워했다. 그리고 이 나라는 아무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늙고, 경직되고, 있는 놈만 잘 살고, 지배세력의 논리에 휘둘리는 우매한 백성들이 사는 나라에 민주주의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92년 대선 다음날의 한겨레 신문 만화.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다. 그리고 나는 김대중의 당선을 보았고 노무현과 이명박도 치뤄냈다. 한 번도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에 표를 준 적이 없었다. 그러나 40이 넘고 이번에 처음으로 마음을 바꿨다.

시간과 함께 나도 변했다.

 

2. 지금 고통스러운 것이 바로 문재인이 진 원인이다.

 

왜 그토록 슬픈가. 민주주의가 독재세력에 패배했다고 생각하니 그렇다. 왜 억울한가. 무지몽매한 자들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여기니 그렇다. 왜 분노하는가. 저들은 이기적이지만 우리는 조국을 사랑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동정하는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왜 이리 쓰라린가. 선한 우리가 악한 적에게 졌기때문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도 포용하지도 못하는 데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상대방을 적으로 본다면 나와 적 그 중간에 있는 사람은 무엇으로 규정해야 하는가. 중도세력을 아우를 철학이나 전략이 있는가. 김대중이 김종필을 끌어 안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대중이 변절한 것인가, 김종필이 귀화한 것인가.

 

보수세력이 분열되거나, 아들 병역비리가 있거나, 보수세력 일부를 끌어들이거나 하는 특별한 호기에만 진보는 겨우 두 번 이겼었다. 87년의 대호기에도 양김의 통합지지율은 겨우 51%였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도 이후 3번이나 직선되었다. 그만큼 이 나라는 보수의 나라다. 그런데 이번에 중도보수층과 연대할 계책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지 않는가?

 

3. 진보정권 10년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1998~2008의 십년. 김대중과 노무현이 다스리던 그 때. 정말 행복했는가. 민생은 더더욱 좋아졌는가. 상식과 이성이 통하고 또한 공정한 사회였는가. 나는 김대중의 5년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변화와 비전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체계가 정착됐다. 햇빛정책도 대체로 공감한다. 그러나 노무현의 5년은 실패였다. 김대중은 노무현을 이끌어 냈지만, 노무현은 이명박을 불러 왔다.

 

이명박 49%의 압도적 지지율은 노무현의 5년이 오로지 "실정"이었음을 호소하는 민중의 탄식이다. 기득권 세력의 집요한 방해와 무지한 대중의 성마른 조급함으로 해석하지 말라. 절대로 음모론에 빠져들지 말라. 그러면 다시는 어떠한 기회도 얻지 못한다. 새누리당의 일당 독주를 막을 시대적 사명을 그런 미망의 불꽃으로 태워 없애지 말라.

 

4. 사람들은 능력을 원한다.

 

민주당은 새누리당보다 정의롭기를 원했다. 새누리당을 구태와 부패로 정의하고 자신은 다르다고 했다. 거기서부터 틀렸다. 국민들은 그런데 관심이 없다. 이미 10년을 진보정권 체험을 해 본 사람들은 "민주주의", "인권", "자유", "청렴", "양심" 따위의 상품에 더 이상 손길이 가지 않는다. 이제 그건 기본기능이다. 이명박 정권의 미네르바와 쥐박이 파동이 옹졸하기는 하나 그걸로 이 나라가 독재국가가 되는 건 아니다. 5년있음 가차없이 자리를 내놓는 나라에서 독재를 할 사치나 혹은 그럴 권력이 대통령에게 있기나 한 것인가.

 

복지는 이미 새누리당도 베껴갔다. 박근혜는 당을 이름부터 색깔까지 다 뒤집어 놓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무상급식도 오세훈의 몽니였을 뿐, 새로운 시대의 요구를 이들도 읽어 냈다.

 

민주당의 비교우위는 많이 잠식당했다. 공약의 차이가 옛날만큼 극명하지 않다. 일단 외견상 스펙이 비슷해 졌다면 -물론 철학의 차이는 분명하다만, 대중은 그다지 관심이 없다 - 이젠 capa.의 문제다. 정치편향을 빼고 역량만 따지고 보자. 어느 당의 인재풀이 더 좋은가. 조선일보와 한겨레 신문 중 어느 신문이 고퀼인가.

 

5. 대선 후보 토론도 다 실패였다.

 

1,2차 토론은 이정희의 득세로 인해 자연스럽게 문재인후보의 패배다. 언제나 그렇듯이 민주당 후보는 크게 이기지 못하면 지는게 토론이었다. 반대로 새누리당은 대패만 아니면 이기는 싸움이다. 이정희의 입을 내버려 두면 안되는 것이었다. 젊은 층은 '저 여자 빨갱이지만 속은 시원하네'하며 통쾌해했지만, 토론회는 열성지지자들의 한풀이 부흥회 불꽃 놀이로 날려 버리기엔 너무나 아쉬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두 번의 불발탄을 허비한 문재인은 3차에서도 전혀 역전하지 못했다. 서울시장 선거토론에서 오세훈이 한명숙에게 하듯이 그렇게 못했다. 그럼 진 것이다. 박근혜 후보 인물의 무능이나 공약의 모순을 밝혀 내지 못했고 민주당의 차별적 우월함을 알리지도 못했다. 오히려 완패할 뻔했다. 박근혜후보가 어눌해서 겨우 산 것이다.

 

국정원 인권논란: "왜 피의자를 두둔 하십니까?!" - "피의자도 두둔하고 보호해 주는게 인권아닌가요? 문후보는 페스카마호 선상반란 흉악무도 집단 살인범 피의자도 자진해서 변호해 주셨는데 왜 그러셨나요?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영장도 없이 남자 수십명이 문앞에 버티고 앉아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부모님도 못들어가게 한 게 인권 침해 아닙니까? 공작을 했고 안했고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인권변호사 하신 분이 자기를 부정하십니까? 더구나 국정원 공작이란게 겨우 인터넷 댓글 알바인가요? 나라 세금 모아서 엘리트만 모은 집단에서 그런 짓했다는게 사실이라면요 제가 대통령 되면 그런 짓한 사람부터 다 해고시키겠습니다". 이렇게 쏘아 붙이면 바로 역전되는 상황이었다. 상대가 강금실같은 여걸이었다면 그렇게 당했을 것이다.

 

원전폐기: "연한 지난 원전을 바로 폐기 안하신다고요?" - "지난 여름에 최악의 블랙아웃 기억하십니까? 올 겨울 전력 예비율이 얼마인지 아시나요? 우리 복지 수요도 점점 늘고 정부지출 불요한 곳은 최대한 줄여서 재원을 조달해야 하는건 아시잖아요. 그러니 연한 지난 것도 한 번 더 검토해서 쓸 수 있으면 쓰겠다는 것이죠. 제가 왜 위험한 일이 좋아서 그러겠습니까?" 이럼 물어 본 사람만 어색해 진다.

 

4대 질병 무상지원: '암만 1.5조인데 4대 질병을 어떻게 1.5조로 하신다는 거죠?' - "제가 보좌관과 꼼꼼이 계산해서 낸 공약인데요. 복지예산이란게 계산이 복잡해서 급여 비급여도 나누고 직접비 간접비도 따지고 보면 어렵습니다. 제가 계산과정이 다 기억이 안나는데요 맞게 뽑았을 것입니다. 원하시면 내역을 함께 점고해 보실 수 있는 건데 그걸 이 토론회 1분 30초 답변시간에 다 해드려야 하나요?" 이랬다면 참 쩨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대선 후보가 돈 계산 하나하나 다 외울 순 없는 거 아니냐고 하면 더 할 말 없다.

 

이런 식이었다. 문재인 후보의 질문은 날카롭지도 못했거나 혹은 너무 지엽적이었고 더 나가 카운터를 허용할 수도 있는 위험한 시도였다. 열성지지자들은 박근혜의 무지함이 십분 폭로된 대첩이라고 칭송했지만 내가 보기엔 박후보는 선방한 편이었으며 오히려 문후보를 역공하지 못한 것이 실책이었다.

 

6. 이렇게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의 시각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쪽은 열성지지자도 아닌, 어차피 반대편 골수파는 포기하고, 중간부동표를 겨냥하여 이들이 어떤 관점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했다. 무엇이 옳고 그름이냐도 아니고 당위성이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지를 고민했다. 이쪽은 여전히 80년대식 피아대립 구도로 국민에게 피로한 선택을 강요했다.

 

7. 대북 정책에서 태도가 잘못됐다.

 

강경책이든 유화책이든 나라 위하는 마음에서 방법론만 이견이 있을 뿐이다. 햇볕정책이 옳다. 경제봉쇄로도 미사일 실험을 못막았다. 그런데 왜 아직도 민주당에 종북의 누명이 씌워졌는가?

 

우선 감성이 실종했다. 북한의 그 극악한 악행에 분노하는 것이 인정이다. 이성적인 대응은 그 다음에 온다. 맞은 사람에게 화낼 시간을 주고 나서 좀 있다 합의를 보라고 해야 얘기가 된다. 독재에 대해선 그토록 불붙는 분노를 표출하면서 왜 북한에 대해선 그렇게 냉정한가. 공감하는 능력이 없으면 사람이 따르지 않는다.

 

북한의 악행에 쉴드를 쳐주지 말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다. 대북강경책의 결과적 실패다. 왜 천안함에 대한 그 추악한 음모론에 동조하고 부화뇌동했는가? '북한이 아닐거야. 걔들은 그럴 능력도 없어'. 이렇게 주문 외우고 자기 최면을 걸면 사태가 해결되는가? 북한을 규탄하고 오히려 현정권의 강경책의 파탄을 비판하면서 당당하게 햇볕정책의 타당성을 입증하진 못하는가. 그렇게 자신이 없었는가. 왜 아직도 애매한 포즈인가. 천안함이 여전히 그렇게 의혹스러운가. 천안함 폭침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다. 그러니 거기서 쭈그리고 있지 말라.

 

진성 종북주의자들과 연을 끊어라. 그들은 진보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다. 왕당파다. 민주당, 새누리당, 그리고 인민의 공적이다.

 

NLL이란 말을 더 이상 꺼내지 말라. 왜 NLL이 영토선이 아니라는 이상한 소릴해서 지금껏 고생인가. 그냥 서해안에 비무장 평화구역, 공동민간조업지역을 설정한다고 하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우리 영토를 더 굳건히 지킬 수 있다고 말하면 된다. '휴전선처럼 비무장지대 설치하고 그 안에서 민간이 쌀농사 같이 짓자는 이야기에요'하면 되는 걸 왜 분란을 일으키나 (난 그래도 반대지만, 그 계획이 최소한 빨갱이 짓이라는 오해는 면할 것이다).

 

8. 나이든 사람에 대한 오해

 

지금의 50세는 87년 6월 항쟁의 25세다. 60세는 35세이다. 그때의 투쟁의 주도 세력이 지금의 50세~60세다. 지금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국민 주권과 자유는 이들이 일궈놓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죽을 때가 다 되어 정신이 혼미하여 독재자의 딸, 수구세력의 수괴에 표를 주는 것이 아니다. 지금 청년보다 더 뜨겁게 나라를 사랑하고 민중을 생각하고 통일을 염원했던 세대다. 스마트 폰이 없어서 게임할 게 없어 책도 더 많이 읽은 사람들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온 몸을 내 던지고 그걸 못하면 창피해서 목숨을 끊는 그런 사람들이다. 겸손해 져야 한다. 독재도 민주도 다 겪어 본 사람들 앞에 어설픈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새누리당보다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면 돌아 올 사람들이다. 지금은 그것이 없다.

 

마무리.

 

새누리당이 너무 좋아서, 박근혜를 찍으면 박정희처럼 나라가 잘 될 것 같아서 그래서 그런 사람은 얼마 없다. 많이들 비판적이다. 새누리당이 너무 잘나가서 독주하면 다시 민생은 외면하고 기득권층, 재벌만 봐줄까봐 걱정이 있다. 그래서 민주당은 망하진 않을 것이다. 언제나 40%정도는 의석을 받을 것이다. 국민은 그렇게 견제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다시 집권을 하려면 이걸론 안된다. 지금 완전히 뜯어 고치지 않으면 만년 야당이다.

 

그러니 너무 실망할 것이 없다.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젊은 세대도 나이를 먹을 것이고 아마도 20년 정도 지나면 지금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후배들에게 전해 줄지도 모른다. 그러니 속단하지 말고 지켜보자.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민주당에 입당도 하고 당비도 내고 자주 의견도 올려야 한다. 박근혜에게 투표한 부모님에게 물어보고 그들의 불안과 기대와 오해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에 너무 많은 기대를 가지면 안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GDP 1조달러가 넘는 이 대국이 그렇게 쉽게 방향을 바꾸진 못한다. 갈 길은 대개 정해져 있고 정치가 작용하는 것은 미세 조정에 불과하다.

 

출처 - http://cafe.naver.com/booheong/68239 (작성자 : '지킬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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