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고 안병하 전남경찰국장님께서는 신군부로부터 경찰력만으로 치안유지가 어려우므로 군 투입을 요청하도록 강요를 받았으나 경찰력만으로도 치안유지가 충분하며 군이 투입될 경우 오히려 시민들을 자극하여 사태가 악화될 것으로 판단하여 이를 거부하였다고 합니다.
계엄 하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신군부의 무력사용 등 강경 진압 압력과 서슬 퍼런 협박성 지시를 거부하고 오히려 경찰관들에게 총기 휴대를 금지하고 무기 회수 명령을 내려 시민보호와 안전에 혼신의 노력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공수부대의 시민들에 대한 발포 및 잔인한 폭력진압에 분개하여 적극적으로 시민들을 돕거나 편의 제공을 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신군부의 미움을 사 강제 해임되고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여 그 후유증으로 1988년 타계하셨습니다.
가족들에게는 유언으로 신 군부에 동조하지 않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으며, 언젠가는 역사가 나를 알아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며, 가족들 모두 국립묘지로 나를 반기러 오는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는 말씀을 남겼다고 합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과 경찰은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았고 상호 협력하였으며, 경찰에 희생된 시민들이 전혀 없었으며, 경찰 또한 시민들로부터 공격당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모두 고 안병하 국장님께서 위민정신을 발휘하여 소신을 굽히지 아니한 영웅적 행동 덕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신 군부의 정권찬탈 목적 하에 평화적인 시위를 하던 선량한 시민들을 총칼로 잔인하게 학살한 주역들은 버젓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국민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데 그분의 유해는 현재까지도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하고 장호원의 공동묘지에서 쓸쓸하게 국민들을 원망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시민들을 보호하는 정당한 일을 하시다가 강제해직을 당하고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순직 처리되지 못하고 유족들께서 연금도 받지 못한다고 하니 과연 어느 누가 의로운 일에 나설 수 있겠습니까?
신군부의 지시에 적극 협조하고 따랐더라면 자신의 출세가 보장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도 오직 시민보호를 위하여 고군분투하시다가 강제퇴직과 고문 그 후유증으로 타계하신 고 안병하 국장님의 숭고한 애국, 애족, 위민, 희생정신이 헛되지 않게 우리 모두가 영웅으로 떠받들고 후세에 길이 남도록 함과 동시에 경찰의 정신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선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대상사건으로 채택하여 본격 조사키로 한데 대하여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제 그 분의 명예회복과 복권은 물론 국민적 영웅으로 추대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