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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폐인들](섬꽃) 제1부 2장 : '불꺼진 창'
게시물ID : readers_84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다시마을
추천 : 1
조회수 : 64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8/01 14:12:01
[천안함 폐인들]
-섬으로 떠올라 꽃으로 피어나라-
 
 
(제1부 2장)
 
2. '불 꺼진 창'
 
  준섭이 기타교습실에 나타난 것이 6월초였다.
  교습실을 열고 세 달을 넘기면서 의외로 직장 단체 수강생들이 생겨나는 등 민혜가 적잖이 고무되어 있을 때였다.
  지나가는 길에 간판을 보고 들어왔다며 준섭이 불쑥 나타났다. 얼핏 보기에도 유난히 순하고 해맑아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 뒤로 준섭이 여러 차례에 걸쳐 여러 가지로 민혜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처음 온 날 당장 준섭이 아주 뜬금없는 말을 했다. 준섭은 기타를 많이 배울 생각은 없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 딱 한 곡만 연주하고 반주하는 것을 속성으로 배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죄송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묻는 준섭의 어투와 표정에 진지함과 조바심이 잔뜩 배어 있었다. 민혜가 즉답을 못하고 얼떨결에 타이르듯이 말해 주었다.
  “그렇더라도 서너 달 기초 과정은 거쳐야 해요.”
  그러자 준섭이 적이 안도하는 기색으로 꾸벅 절을 했다.
  “그 정도는 저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등록 카드를 기입하고 나서 준섭이 대뜸 또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저, 혹시요. 아무 노래나 악보를 만들 수 있는 건가요?”
  아까보다 더 진지한 어투에 더 조바심을 내는 표정이었다.
  “아, 채보요? 왜요?”
  준섭이 약간 민망해하는 기색으로 낯을 붉히며 마치 신상고백이라도 하듯 거의 간청하는 투로 말했다.
  “실은요. 얼마 전부터 저도 모르게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는데요. 그걸 악보로 만들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그럽니다.”
 
  요즈음 채보라는 것이 어렵고도 쉬운 일이었다.
  예전에는 전적으로 청음에 의존해서 채보를 했다. 그것이 유능한 작곡가들에게도 무척 어렵고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녹음기를 컴퓨터에 연결해서 하는 디지털 자동채보 프로그램이 있었다. 수소문하면 몇 사람 건너서라도 그런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런 생각에 민혜가 선뜻 조건부 수락을 했다.
  “그러면 그 노래를 반주 없이 깨끗이 녹음해 가져와 보세요. 그래도 꼭 된다고 장담은 못해요.”
  준섭의 눈에 번뜩 광채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까보다 더 크게 꾸벅 절을 했다.
  “예, 알았습니다. 바로 해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사흘이 지난 토요일 오후.
  준섭이 얼마 전부터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었다는 그 노래를 반주 없이 육성으로 녹음해 왔다.
  준섭의 휴대용 녹음기로 그 노래를 들으면서 민혜가 내심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민혜의 귀에 많이 익은 노래, [불 꺼진 창]이었다. 민혜가 알기로, 1970년대에 이장희가 만들고 조영남이 불렀다가 미풍양속 훼손 같은 것을 이유로 한 동안 금지곡으로 묶이기도 한 노래였다. 한참 후에 오현란이라는 여가수가 그것을 이탈리아어 번안곡으로로 리메이크하여 아주 맛깔나게 불렀고, 더 나중에는 똑같은 멜로디에 전혀 다른 가사를 붙여 [원]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실은...
  민혜의 남편이 생전에 그 이탈리아어곡 [불꺼진 창]을 유난히 좋아했었다. 쉽게 말해 [직녀에게] 다음으로 남편이 좋아하는 노래가 바로 그 이탈리아어곡 [불꺼진 창]이었다. 이 곡엔 왠지 이탈리아어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 근데 어떻게 이걸 이탈리아어로 부를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신기해하며 입이 닳도록 찬사를 늘어놓곤 했다. 여가수가 원곡의 애잔한 멜로디를 거기에 걸맞는 소리로 나무랄 데 없이 해석했다는 것이고, 그래서 한 마디로 미치도록 가슴을 저미게 한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한때는 ’오라 쏘온 트리스테‘(Ora son triste)로 시작되는 그 이탈리아어곡 [불꺼진 창]을 연달아 듣는 것으로 모자라 가사를 완전히 외우려고 안달을 하기도 했었다.
  준섭이 바로 그 [불꺼진 창]을 자기 나름으로 소화하여 전혀 다른 노랫말로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노래가 끝나는 것을 기다려 민혜가 물었다.
  “준섭 씨, 이거 이장희 조영남의 [불꺼진 창] 멜로디라는 거 알죠?”
  “예. 처음엔 전혀 모르고 그냥 혼자 흥얼거리고 다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거더라고요.”
  준섭이 다소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영남 씨가 부른 것 말고 여가수의 또 다른 버전이 있다는 건요?”
  “......”
  준섭이 더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민혜가 괜찮다는 시늉을 하고 나서 다시 한 번 들어보자며 테이프를 꺼내 이번에는 콤팩트 디스크플레이어에 넣었다.
  준섭의 노래가 훨씬 더 그럴 듯하게 들렸다.
  그렇게 준섭의 <불꺼진 창>을 다시 들으면서 민혜가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준섭의 노래가 여러 대목에서 원곡과 미세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솜씨 있는 누군가가 아주 공들여 편곡을 한 것 같았다.
  더욱 뜻밖인 것은 독특하기 없는 창법이었다. 여러 대목에서 다소 탁하게 상청을 내지르는 게 마치 소리꾼이 진계면조로 가요를 부르는 것 같았다. 준섭이 아마 판소리 전공의 국악과 출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스쳐갈 정도였다.
  그리고 구태여 비교하자면 준섭이 부른 <불 꺼진 창>의 멜로디가 남편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이탈리아어곡 [불꺼진 창]과 더 닮아 있었다. 창법도 그것을 부른 여가수와 비슷한 데가 있었다.
 
  어쨌거나 민혜가 난감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막상 들어보니 청음으로 채보하기는 어림도 없고 디지털 프로그램을 이용하더라도 완전한 채보가 어려울 것 같았다. 민혜의 그런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준섭이 아주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 혹시 많이 부담 되세요?”
  “예, 솔직히 그렇네요. 제대로 채보하기가 아마 어려울 것 같네요.”
  민혜가 달래고 위로하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준섭이 주위를 한 번 살피는 기색으로 얼른 말을 고쳤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제 노래가 이런 가사라서요.”
  바로 그 때 민혜가 갑자기 말문이 컥 막히고 말았다.
  그저 말문이 막힐 정도가 아니라 숨까지 막힐 지경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제 노래가 이런 가사라서요.’
  준섭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조금 전에 들은 준섭의 노랫말이 앞뒤 없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리고 민혜가 순식간에 혼란에 빠져들었다. 난데없이 갖은 불길한 생각들이 얽히고설키는 가운데 막연한 불안감이 온몸을 덮치고 교습실마저 뒤덮는 것 같았다.
  민혜가 손을 저어 잠깐 쉬자는 시늉을 하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준섭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귀에 익은 [불꺼진 창]을 다시 듣는 기분이었다.
  잘 아는 곡이라서 다행이라며 내심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했다. 준섭의 노랫말도 그저 무언가를 절실하게 안타까워하고 절박하게 애원하는 것으로 다가왔을 뿐이었다.
콤팩트 디스크플레이어로 두 번째 들으면서는 좀 달랐다.
  어느 대목에선가 왠지 울컥하는 기분이 들고 덩달아 눈시울이 달아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다 잠깐 스쳐가는 아주 막연한 느낌에 지나지 않았다. 혼자 애잔한 노래를 듣다 보면 이따금 겪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뜻밖인 것은 준섭이 부른 노래의 ‘가사’였다.
  소파에 주저앉아 노랫말 위주로 준섭의 <불꺼진 창>을 되새겨 보니 여러 대목에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준섭이 부른 <불 꺼진 창>의 가사가 정말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것이 한 마디로, 온통 천안함 사고와 관련된 것이었다.
  어수선하게 떠오르는 준섭의 노랫말 그대로라면 그러니까...
  그 날 밤 천안함 함미에 ‘찢어지고 부서지는 갑판소리’가 있고 ‘스며들어 차오르는 물기름띠’가 있었다. ‘멀쩡한 배 두 동강 나서’ ‘마흔여섯이 수장된’ 어떤 내막이 있고, 그것을 감추려는 ‘새빨간 거짓투성 어두운 장막’, ‘은폐왜곡 치욕의 어두운 역사’가 있었다. 그러니 ‘어머니 아버지, 가지 말아요’ ‘우리 다함께 밝혀야 해요’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 다함께’ ‘진실을 밝혀야 해요’ 라는 것이었다.
  이런 노랫말을 준섭이 판소리풍 진계면조의 탁한 상청으로 목청껏 내지르고, 민혜는 그것을 무심코 ;불꺼진 창;으로 들은 것이었다.
 
  민혜의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두어 달 전부터 온 국민이 온종일 켜놓고 지내다시피 하던 텔레비전 화면들이 뒤죽박죽으로 한꺼번에 떠올랐다.
  사고 초기에 비해서는 다소 수그러들었다지만 그 전 날 저녁 뉴스만 해도 여전히 천안함 일색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1번어뢰’라는 것이 여전히 텔레비전 화면을 장식하다시피 했다. 얼핏 보아 고철덩어리 같은 어뢰추진체와 군이 모 정보기관을 통해 새로 입수했다는 어뢰 설계도면들이 여러 번 화면에 나타났다. 사고 직전 며칠 동안의 북한 잠수정들의 동향, 그리고 사고를 낸 그 잠수정의 침투 및 도주 경로를 추정하는 보도 화면들이 지나갔다. 이어서 천안함 폭침 규탄대회, 천인공노할 독재자 김정일 화형식, 정부발표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부 시민단체들을 싸잡아 비판하는 친북종북세력 규탄대회 장면들이 어수선하게 지나가기도 했다.
  <천안함 발표 못 믿겠다니 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가>라는 어느 일간신문의 기사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비슷한 발언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때였다.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정부가 조사하고 발표한 것을 믿지 못하는 국민은 대체 어느 나라 국민이냐”라며 탄식을 하기도 했다. 6월 들어서는 급기야 검찰까지 전면에 나서는 것 같았다. 천안함 사고 관련 유언비어와 괴담들이 심히 우려스러운 수준이라며 그에 대한 철저한 단속과 엄벌 방침이 공표되었다. 여차하면 저마다 통제, 감시, 수사, 구속, 기소, 그리고 마침내 형사처벌을 당하게 될 것 같은, 말 그대로 살벌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였다.
  심한 현기증마저 스쳐가는 것 같았다.
  민혜에게 가장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노골적인 편가르기와 함께 은연중에 확산되어 있는 알 수 없는 공포 분위기였다.
  이러다가 준섭이 무슨 일을 당하는 건 아닐까. 나한테도 무슨 일이 닥치는 게 아닐까. 다른 교습생들이 이 노래를 들으면 뭐라고 할까. 그러고 보니 막상 조영남의 [불꺼진 창]만 해도 한때 금지곡으로 묶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런 노랫말로 부르는 준섭의 <불꺼진 창>이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준섭이 [불꺼진 창]을 왜 하필 이런 가사로 흥얼거리게 되었을까. 혹시 가족이나 친구 중에 희생자가 있기라도 한 걸까. 만에 하나 그렇더라도, 왜 이토록 피맺힌 절규에 선동성마저 물씬 풍기는 노랫말을 흥얼거리게 된 걸까. 왜 그걸 채보까지 하고 싶어 저토록 조바심을 내는 걸까. “딱 한 곡 연주하고 반주하는 것을 속성으로 배우고 싶다”라던 것이 바로 이 노랠까. 그래서 대체 어쩌려는 걸까. 그걸 대체 어디다 쓰려는 걸까.
  준섭의 노랫말처럼, 정말 함미에 물기름띠가 스며들고 차올랐던 걸까. 희생자들이 결국 그 물기름띠 속에서 안간힘으로 버둥대다가 끝내 숨을 거둔 걸까. 만약 군이 시의적절하게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희생자들을 전부 또는 단 한 사람이라도 살릴 여지가 있었던 걸까. 그런데 왜 그처럼 무참하게 다 죽고 말았을까. 왜 일부 시신은 끝내 수습하지도 못하고 찾지도 못하는 허망한 일이 벌어졌을까. 왜 심지어는 실종자 가족들이 자청하여 수중탐색 작업을 일찌감치 만류하는 일이 벌어진 걸까.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누군가가 희생자들의 목숨을 홀대하고 적어도 시신을 방치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진 걸까.
 
  이 같은 불안과 혼란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어느 순간 민혜의 내면에 기이한 반전이 일어났다.
온몸에 바르르 전율이 일고 심한 현기증마저 스쳐가는 듯싶더니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차츰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게 어쩌면 준섭이 부른 <불꺼진 창>의 또 다른 대목이 떠오르면서였다. 그 짤막한 대목이 구간반복이라도 한 것처럼 연거푸 되살아나면서 왠지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홀가분해졌다. 풀려 있던 다리에도 힘이 되살아나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대목에서 준섭이 [불꺼진 창]을 대충 다음과 같이 개사해서 부르고 있었다.
 
      불꺼진 그대 창가에                어머니 가지 말아요
      오늘 난 서성거렸네                나 여기 살아 있어요
      서성대는 내 모습이 서러워      백령도앞 머지않은 바닷속에서
      말없이 돌아서 왔네               숨맥혀 떨고 있어요
 
     불꺼진 그대 창가에                어머니 아버지 가지 말아요
     오늘 난 서성거렸네                나 여기 아직 살아 있어요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서         백령도앞 코닿을데 바닷속에서
     말없이 돌아서 왔네               기다리며 떨고 있어요
 
  준섭이 이 대목에서 분명히 울먹이고 있었다.
  판소리풍 진계면조의 탁한 상청으로도 모자라 아예 목젖까지 떨어대며 온몸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뭔가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기름투성이 개펄 뒤범벅의 애잔한 모습으로 ‘바닷속’에 처박혀 있었다.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잔뜩 웅크린 채 ‘숨맥혀 떨고’ 있었다. 누군가가 저 멀리서 가까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아이가 온몸 발버둥으로 ‘어머니’를 불렀다. 그런데 바짝 다가왔던 누군가가 끝내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어머니, 가지 말아요.” “나 여기, 살아 있어요.” 아이가 버둥대며 연거푸 소리를 질러도 허사였다. 누군가가 끝내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어머니 아버지, 가지 말아요.” “나 여기 아직, 살아 있어요.” 아이가 다시 온몸 발버둥으로 소리를 내질러도 끝내 허사였다. 그것이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고 소리가 되어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점점 더 멀어져가고 말았다.
  준섭의 노래가 그러니까, 그렇게 발길을 돌려 멀어져가는 어머니를 부르는 어린 아이의 피맺힌 절규였다.
  민혜가 또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눈물샘이 옴찔거리고 덩달아 눈시울이 달아올랐다.
  어릴 적 분하고 억울했던 일들이 서럽게 되살아났다. 어릴 적 집에서 혼자 어머니를 애타게 기다렸던 기억들도 처연하게 되살아났다.
  그런 서럽고 처연한 기억들과 더불어 민혜의 내면에 무언가 안타깝고 안쓰러운 감정이 복받쳤다. 자포자기 내지는 오기 같은 것이 발동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준섭의 노랫말에 별로 틀린 구석이 없었다.
  특히 희생자들의 허망한 죽음과 시신 수습에 있어서는 민혜가 보기에도 무언가 허탈하고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들이 많았다.
  군이 사고 지점을 알고 있었다면서 왜 즉각 함미 구조에 나서지 않은 걸까. 함미를 찾는 데 왜 이틀이나 걸린 걸까. 왜 그것도 최첨단 장비를 갖춘 해군이나 공군이 아니라 고기잡이 어선이 찾게 된 걸까. 그리고 군의 발표 그대로라면, 함미가 여러 개의 격실로 차단되어 69시간 생존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생존 시간을 늘리기 위해 뭐를 통해 공기를 주입했다고도 하지 않았던가. 그러다가 또 함미에 갇힌 승조원들 46명이 거의 다 젊은이들이라서 조금은 더 견딜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온 국민이 온 종일 텔레비전을 켜 놓은 채 발을 동동 구르며 가슴을 조이게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국방장관은 애초부터 격실의 침수를 기정사실로 알고 있었고 군 내부에서는 일찌감치 장례 절차를 밟고 있었다니 그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
  돌이켜보면 애초에 텔레비전에 나오는 군 관계자들의 표정과 말투 자체가 얼른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왠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고 그저 참 우스꽝스럽고 심지어 뻔뻔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꼭 철부지 아이들처럼 막무가내로 어리광을 부리거나 생떼를 쓰는 것 같고, 때로는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거나 그것으로도 모자라 막가파식의 아주 고압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 같았다.
  백령도 근해에서 해군 초계함이 사고를 당했는데 왜 해군과 해병대는 아예 온 데 간 데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을까. 사고 직후에 해군과 해병대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을까. 오죽하면 해군가족들 사이에서마저 “해군이 해경보다 못하다”랄지 “자존심 구겨서 못살겠다”랄지 하는 냉소적인 반응들이 공공연히 나돌았을까. 게다가 군이 왜 그렇게 자주 말을 바꾼 걸까. 왜 그렇게 스스로 갈피를 못 잡고 국민들마저 갈피를 못 잡게 만든 걸까. 왜 그토록 무언가 어정쩡하고 어딘가 미심쩍은 모습들을 보인 걸까. 오죽하면 군의 발표를 두고 내로라하는 사람들마저 ‘웃기는 개그’랄지, ‘기괴한 소설’이랄지, “0.0001%도 설득이 안 된다”랄지, “군의 그런 행태에 구역질이 난다”라는 말을 드러내 놓고 입에 담았을까.
  사고 초기에 어느 텔레비전 방송이 느닷없이 ‘천안함 영웅들’이라는 대형 타이틀을 내걸고 연일 추모 방송을 하고 대대적인 성금 모금에 돌입했을 때, 왜 알고 지내는 해군가족들마저 “꼭 코메디를 보는 것 같다”랄지 “뭔가 짜고치는 고스톱 같다”랄지 “연평도해전 대청해전 전사자들이 땅속에서 울고 있겠다”라며 볼멘소리로 여기저기서 전화를 해왔을까. 그 ‘영웅들’이 얼마 안 있어 슬그머니 ‘용사들’ 또는 ‘희생자들’로 바뀐 것은 또 어떻게 된 영문일까. 그러고 보니 또, 생존자들을 두고는 왜 군 관계자들이 마치 그들을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러운 존재로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걸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것이 마치 큰 죄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그 생존자들은 온전하게 잘 지내고 있을까. 졸지에 운명을 달리한 동료 희생자들을 두고, 그 생존자들도 어디선가 준섭의 <불꺼진 창> 같은 것을 남몰래 흥얼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과 더불어 민혜의 내면에 한껏 오기가 발동했다.
  실컷 울고 난 어린 시절처럼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기도 했다.
  준섭이 부른 <불꺼진 창>의 그 애틋한 대목이 되살아나면서 왠지 불안감이 가시고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막혔던 게 뻥 뚫리고 맺혔던 게 순식간에 풀리는, 그런 후련한 느낌이었다.
  민혜가 마음을 추스르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준섭이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민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민혜가 짐짓 환한 표정을 지으며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아까 내가 [불꺼진 창] 다른 버전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거 찾아놓을게요. 나중에 복사해서 가져가세요.”
  “아 예. 고맙습니다, 선생님.”
  준섭이 적이 안도하는 기색으로 또 꾸벅 절을 했다. 그리고 나서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조심스레 덧붙였다.
  “저, 제가 부른 가사 말인데요. 선생님이 정 아니다 싶으면 제가 좀 바꿔 보겠습니다.”
민혜가 또 짐짓 환한 표정을 짓고 헛기침으로 목청을 가다듬어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어때요? 그냥 노랜데요 뭐!”
 
  그 날 이후 준섭이 수요일과 토요일 오후 3시에 나왔다.
  민혜가 그 후로도 준섭의 노랫말에 이따금 신경이 쓰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 보도를 통해 감지되는 분위기가 갈수록 더 심상치 않았다. 알고 지내는 해군가족들의 전화 연락도 갈수록 더 뜸해졌다. 민혜 입장에서는 다른 교습생들을 얼마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도 했다.
  준섭과 기타 공부를 할 때면 교습실이 마치 외딴 섬처럼 느껴졌다. 그 외딴 섬에 준섭과 단 둘이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과 더불어 일말의 동질감과 막연한 불안감이 엇갈리곤 했다. 그럴 때면 민혜가 ‘어때요? 그냥 노랜데요 뭐!’ 자신의 말을 되새기며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거나 짐짓 오기를 발동해야만 했다.
  준섭이 기타 공부에 남다른 열성을 보였다. 연주하고 반주하는 것을 속성으로 배우고 싶다던 ‘딱 한 곡’이, 아니나 다를까, 자기 나름의 <불 꺼진 창>이었다.
  준섭이 채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그 대신 <불 꺼진 창>의 연주와 반주를 배울 것에 대해서는 꼭 생일날을 손꼽는 아이처럼 잔뜩 기대를 내비치곤 했다.
  “반주보다 연주를 먼저 배우게 되는 거죠?”
  “맞아요. 반주는 기본 코드를 익혀야 하니까요.”
  “예, 알았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수요일에는 기타 공부만 했다.
  토요일에는 기타 공부를 끝낸 다음 민혜가 반주를 해 주고 준섭이 자기 노랫말로 <불 꺼진 창>을 서너 번 연습했다.
  그렇게 노래 연습을 하는 중에 준섭이 이따금 멜로디를 미세하게 바꾸어 불렀다. 가사는 아예 날마다 조금씩 바꾸어 부르다시피 했다. 민혜가 어쩌다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 준섭이 민망해하며 얼굴을 붉히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 대목에서 좀 꺾어 올리면 나을 것 같아서요.”
  “이 대목 가사가 제가 듣기에도 좀 어색해서요.”
  그러니까 준섭이 자기 나름으로 멜로디와 가사를 계속 가다듬고 있는 눈치였다.
  준섭의 창법과 가창력이 아주 돋보였다.
  대학 시절 국악과 친구들로부터 ‘귀명창’이라는 말을 들은 민혜가 들을 때도 그랬다. 노래 대목에 따라 수리성의 퍼지는 맛, 통성의 울리는 맛, 천구성의 감기는 맛이 적당히 어우러지면서--국악과 친구들이 흔히 하던 말로--척 ‘앵기는’ 감칠맛이 있었다.
  8월초에는 이제 되겠다 싶어 민혜가 <불꺼진 창> 앞 대목의 기타 연주를 조금씩 가르쳐 주었다.
 
  그러다가 준섭이 갑자기 쓰러지는 일이 생긴 것이었다.
  그 날은 준섭이 교습실에 들어설 때 당장 풀이 죽어 있었다.
기타 공부도 전에 없이 건성인데다가, 민혜의 반주로 <불 꺼진 창>을 연습할 때는 눈에 띄게 터덕거렸다. 민혜가 모르는 체로 진도를 나가다 보니 다른 수강생이 들어왔다. 그래서 민혜가 준섭에게 아주 예외적으로 호의를 베풀었다.
  “준섭 씨. 혹시 더 연습하고 싶으면 저 방 쓰세요.“
  악기 보관실 옆 칸막이방이었다. 창이 없는데다가 방음시설까지 되어 있어서 무척 답답하게 느껴지는 방이었다.
  준섭이 엉거주춤 기타를 들고 거기로 들어갔다.
  방음시설이 되었다지만 약하게나마 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민혜가 이따금 귀담아 들어보니 기타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이따금 새어나오는 육성 노래도 <불 꺼진 창>이 아니었다.
  얼마 후 다른 수강생이 가고 준섭이 밖으로 나왔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불러 보세요.”
  민혜가 기타를 챙겨들고 준섭이 엉거주춤 거울 앞에 섰다. 민혜의 반주에 맞추어 <불 꺼진 창>을 부르다가 말고 준섭이 고개를 돌려 자탄하듯 물었다.
  “이 대목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죠? 어딘가 애매하죠?”
  민혜가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다.
  준섭이 선 채로 머리를 마구 긁어댔다. 그러다가 손바닥으로 뒷목덜미를 문질러대고 손가락으로 어깻죽지를 콕콕 눌러대기도 했다. 예전에 보지 못한 거동이었다. 민혜가 그저 무언가 성에 차지 않아서 그러려니 했다.
  조금 있다가 준섭이 민혜를 의식해서였는지 아니면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라도 했는지 자세를 바로잡았다. 한껏 목청을 돋우어 <불 꺼진 창>을 처음부터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노래 중간쯤에서 상청을 내지르다가 갑자기 무너지듯 고꾸라지더니 바닥에 잔뜩 웅크린 채로 숨을 헐떡였다. 민혜가 보기에 눈동자마저 풀려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덜컥 겁이 난 나머지 부리나케 병원으로 뛰어내려 온 것이었다.
  민혜가 말을 마치고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요 원장님. 준섭 씨 그러는 게 무슨 확실한 병인가요?”
 
*
 
  아무래도 그랬다. 그 날 준섭이 공황발작을 일으킨 게 분명했다.
  단, 처음에는 내가 준섭의 공황발작을 일과성--그러니까 잠깐 지나가는 것--으로 여겼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설 간호사와 의사 가운을 입은 나를 보고 나서 준섭의 발작이 금세 수그러드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민혜 말대로 어쩌면 그 ‘칸막이 방’이 환경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었다. 그 방이 창이 없는데다 방음시설까지 되어 있어서 아주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라면, 그런 환경에서는 아주 건강한 사람들도 폐기능이 저하되고 호흡이 가빠지게 된다. 이런 경우 심신의 지구력과 저항력이 동시에 떨어져서 간혹 일시적인 혼절이 초래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날 준섭의 증상이 그런 환경 요인 때문이었다면 그것이 차라리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민혜가 소상하게 들려준 앞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준섭의 증상이 그렇게 단순해 보이지 않았다. 준섭에게 상당히 오래 전부터 공황장애가 있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발작이 일어난 것 같았다. 사실 준섭이 그런 노랫말로 <불 꺼진 창>을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강박신경증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불 꺼진 창>에 대한 준섭의 집착이 민혜가 들려준 그 정도라면, 준섭의 공황장애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공황발작이 계속 발생할 여지가 다분히 있었다.
 
  공황이라는 것이 설명하기 어렵고 관련 용어들도 다소 애매하다.
  흔히 ‘패닉’이라고 하는 것이 공황에 해당하고 한의에서는 그것을 ‘뇌혈류 순환장애’라고 한다. 그 주된 원인은 단연코 정신적 스트레스다. 우리가 저마다 갖고 있는 내면의 스트레스가 축적되면 노이로제가 되고 그게 심화되어 막연한 불안감, 공포감, 위기감을 수반하는 신경증으로 전이되어 잠복하는 병증이 공황장애다.
  그런 만성적 공황장애 상태에서 갑자기 뇌신경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감과 공포감이 분출할 때 급기야 공황발작이 일어난다. 뇌혈류가 수많은 전선의 묶음이라고 가정할 때 거기에 과부하가 걸려 단락 내지는 방전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말할 수도 있다. 요컨대 갖은 불안감이 한꺼번에 뇌신경을 장악하고 그것이 여러 갈래로 가중되면서 공포감을 유발하고 위기감을 증폭시키게 되는 것이다.
  일단 공황발작이 일어나면 심신을 가눌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의식의 혼란과 더불어 엄청난 고통이 따르지만 그 고통의 실체를 말로 표현하기는 아주 어렵다. 한 마디로 말해, ‘지금’ 당장 ‘여기서’ 그 고통을 겪는 ‘나’가 있을 뿐이다. 발작을 겪은 당사자마저도 일단 발작에서 벗어나고 나면 그것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다. 지나간 고통의 잔상이 흐릿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 그 실체를 말로 표현하기는 어림도 없다. 게다가 공황발작의 실체적 증상이 환자마다 다르고 같은 환자에게서도 매번 다르게 나타난다.
  설 간호사 말대로 준섭처럼 자기도 모르게 가사를 개사하여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는 게 아무한테나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 또 달리 보자면 그게 아주 희귀한 일도 아니다. 예를 들어 주위 사람들이 이따금 시시콜콜한 일상사를 진부한 대중가요 멜로디에 맞춰 흥얼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시골 아주머니들이나 할머니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간 스트레스 해소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민혜가 말한 것처럼 준섭이 흥얼거리는 <불 꺼진 창>도 그것이 본인에게 얼마간의 성취감을 줄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것을 목청껏 불러 감정을 발산시키는 것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얼마간 해소시켜 주는 측면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천안함 관련 환경 요인으로서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할 때 준섭의 <불 꺼진 창>은 우선 차원이 다를 뿐만 아니라 그게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여지가 있었다.
 
  공황장애가 대개는 개개인의 일상사와 결부되어 있다.
  예를 들어 연애, 가정, 직장, 사업 등과 결부된 고도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오래 축적되다 보면 그것이 만성의 불안신경증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런데 민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준섭의 공황장애는 그 성격이 전혀 달랐다. 그것이 천안함 사고 및 그 희생자들과 아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민혜가 털어놓은 것처럼, 천안함 사고 이후 사회에 아주 억압적인 분위기가 확산되어 있는 게 사실이고 그것이 일종의 질식 상태를 유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민혜가 준섭의 노랫말을 제대로 깨닫고 나서 느꼈다는 ‘불안감’, ‘공포감’, ‘섬뜩한 전율’, ‘현기증’과도 직결된다. 준섭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자기 나름의 노랫말로 <불 꺼진 창>을 목청껏 부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준섭의 내면에 불안과 공포가 전혀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것은 <불 꺼진 창>에 대한 준섭의 유별난 집착이었다. 그 날 일어난 공황발작이 당장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 노래를 어서 빨리 진척시켜야겠다는 조바심, 그런데 나름으로 계속 다듬어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실망감과 좌절감, 이런 것들이 당장 준섭의 공황발작에 적잖은 요인으로 작용했을 터였다. 민혜가 말한 대로 준섭이 그 날 ‘다른 때에 비해 풀이 죽어 있었다’랄지 ‘유난히 터덕거렸다’라는 것이 바로 그런 조짐이 가시화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준섭의 경우 아까 말한 사회적 억압과 그에 따른 질식 상태에 유난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나아가서 그 질식 상태를 해소하는 데 스스로 앞장서거나 적어도 한 몫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쉽게 말해 이미 질식 상태에 빠진 채로 또 다른 질식 상태를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마치 진흙탕에 빠진 사람이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오히려 점점 더 깊이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이런 경우 공황장애를 유발한 상황 요인이 거시적인 만큼 그 증상도 훨씬 더 미묘하고 복잡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약물 치료는 물론이고 신경정신과 상담을 통한 치료에도 더 많은 제약과 한계가 따르게 된다.
  설 간호사의 말마따나 준섭이 그 날 진찰실에서 농담을 하고 내숭을 떠는 등 제법 쾌활한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민혜에게는 평소 교습실에서 봤을 때보다 오히려 더 나은 모습으로 비쳤을 수도 있다. 나 또한 그걸 보고 얼마간 안도했던 게 사실이고, 설 간호사가 ‘꼭 나이롱환자 같다’라는 말을 입에 담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것마저도 아직은 낙관할 수 없고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왜냐하면 진찰실에서 준섭이 보여준 그런 쾌활한 언행이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드물지 않게 수반되는 ‘조증’--시쳇말로 ‘조울증’--의 한 조짐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우울증이 심리적인 위축과 의기소침의 양상으로 나타난다면, 조증은 그와 정반대로 과장과 자기과시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달리 말해 준섭의 그런 쾌활한 언행이 만성적 공황장애 상태에서 우울증을 은폐하기 위해 그 반대급부로 나타나는 조증의 한 양상일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비관적인가요, 원장님?”
  민혜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물론 제가 지레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가볍게 생각하기보다는 그런 경우를 염두에 두고 미리 대처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쩌죠? 교습실에서 또 그런 일이 일어나면...”
  “글쎄요. 공황발작만 두고 보면 아까 보신 것처럼 아주 사소한 것을 계기로 금방 걷히는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신경안정제를 맞으면 일시적으로는 금방 가라앉습니다.”
  “그런데 그런 발작이 계속 일어나게 된다면서요?”
  “그렇습니다. 문제는 장기적으로 공황장애 자체를 치유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약이 많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약물 치료는 미봉책까지는 아니더라도 차선의 보완책에 불과하니까요.”
  “그럼 신경정신과 치료는 대개 어떻게 하는 건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 요인을 찾아내서 그것을 없애거나 줄여나가는 겁니다. 스트레스 요인이 되는 안팎의 상황을 개선해나가는 것이죠. 다음으로는 역시 환자 본인의 마음가짐과 의지가 중요하고요.”
  “준섭 씨 경우 그 상황이 당장 개선될 여지가 없잖아요. 듣고 보니 정말 간단한 일이 아닌 것 같네요. 어떡하죠?”
  민혜가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짓고 설 간호사가 다독이는 말을 했다.
  “실장님 너무 걱정 마세요. 바로 아래 원장님이 계시잖아요. 여기, 저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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