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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한 명의 선생과, 한 분의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게시물ID : freeboard_5947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태바리
추천 : 4
조회수 : 50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5/17 08:18:01
스승의 날을 지나며 선생님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문득 생각나는 분들이 계셔 적어봅니다.


제가 6학년 때, 가정형편이 어려운데 전교회장이 됐었죠.
돈 싸들고 오는 치맛바람 엄마들이 많았는데,
담임은 심지어 시험시간에 그런 애들에게 답안지를 보여주라고 했어요. ^^;;;
얼마나 가정적이신지, 매일 수업하다 말고 아들들 자랑이 시작되면 거의 수업의 반을
그 아들들 자랑을 들어야 했습니다. 좋은 대학 들어갔다고...

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들이 전교회장인데도 한번도 학교에 못 오셨지요.
결국 담임은 졸업을 얼마 앞두고 6년동안 모았던 제 저금통장을 가져가 선생님들 회식비로 쓴다고 했죠.
도장을 넘겨주고... 정말 회식비로 썼는지... 그런 돈으로 자기 아들들 대학을 보낸 건지...
어린 나이에도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절대로 학교에서 청소반장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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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꼭 그런 선생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고등학교 2-3학년때는 한 선생님께서 담임을 하셨는데,
처음 만났을 때, 출석부로 머리를 맞았죠.
출석 부르는데 키 큰 놈이 맨 앞에 앉아 너무 크게 대답을 한다고 말입니다.
눈이 나쁜데 안경을 살 수 없어 맨 앞에 앉았었던 건데 말이죠.

무뚝뚝하기가 이를 데 없는 분이셨습니다.
빼빼 말라 꼭 북한 사람처럼 생기셔서 우리가 늘 "따뜻한 남쪽나라, 김만철"이라고 불렀습니다.
한국지리, 세계지리를 가르치셨는데 가끔 문화유산에 관한 이야기 나오면 열폭하시던..ㅋㅋㅋ

제가 고3때 두분기 등록금을 못 냈었죠.
제 형편을 아시고는 대신 내 주셨습니다.
게다가 친히 부르셔서 형편은 어렵지만 희망을 잃지 말고 끝까지 힘을 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무뚝뚝한 말투로 말이죠.

덕분에 저는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대학에 진학해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평종합고등학교에서 교편잡으셨던 박재훈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 사람의 됨됨이는 외모의 번드르르함이나 말의 유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못난 제자,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 선생님께서 자랑스러워하실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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