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사는 최근 <조선일보 역사 단숨에 읽기 1920~>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발행일이 <조선일보> 창간 84주년이 되는 날인 3월 5일이었다.
엮은이인 사사편찬실은 머리말에서 "굴욕의 시기도 없지 않았고 나라와 민족의 발전을 선도적으로 이끈 성취도 있었습니다"라며 "미래를 향한 무한전진(無限前進) …<중략> 힘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나온다는 믿음으로 100년을 바라보는 조선일보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과연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조선일보> 역사를 정직하게 기록해 놓았을까? 왜 갑자기 이런 책이 필요했을까? 조선일보사는 이 책을 전국 5000여 중·고교 및 언론학회 회원, 언론 유관기관에게 배송했다고 한다.
이번 간행물은 특히 '중·고교생들에게 조선일보의 역사와 본모습을 제대로 알려주자'는 취지로 중·고교장 앞으로 1권씩 보냈다고 한다.
<조선일보사보>에 따르면 책을 수령한 중·고교에서 "역사를 올바로 알려주는 책을 보내줘 고맙다"는 감사 전화와 더불어 "국사교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책을 더 보내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쇄도했으며, 이에 따라 책을 추가 인쇄해 중·고교로부터의 요구에 가능한 모두 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는 5월 16일 국립5·18묘지에서 '조선일보 친일진상 규명촉구 및 대국민 사과촉구 1천만명 서명운동 안티조선 총력투쟁 선포식'을 가진 바 있다.
지금은 전국을 순회하며 <조선일보>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회와 더불어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친일의 진상을 감추고 왜곡하는 <조선일보>와 사죄를 촉구하는 안티조선진영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일보 역사 단숨에 읽기>는 친일의 부분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72~75쪽을 보면 '중일전쟁과 강요당한 친일지면'이라는 제목으로 친일행적 자체는 부분적으로 시인하고 있다. 제호 위에 일장기를 올린 1940년 1월 1일자 사진까지 과감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동안 안티조선진영에서 끊임없이 제기한 친일진상이 널리 유포됨으로써 더 이상 은폐하는 게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수정된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강요에 의한 친일뿐이었을까? 또 설사 강요에 의한 것이면 사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흔히 비교하는 프랑스의 사례 하나를 보자. 나치의 프랑스 점령기간 중 슈투트가르트 방송의 프랑스어담당 보도국장으로 나치 선전에 광분했던 폴 페르돈네의 경우다.
"강요된 일입니다.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닙니다. 방송원고는 나치선전성의 상급관리가 선정합니다. 나치선전성은 그들이 선정한 원고를 방송선전국장에게 보내고 방송선전국장이 문제의 원고를 나에게 보냅니다. 나는 원고를 불어로 번역할 뿐입니다. 나는 기계적인 번역 노동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주섭일, <프랑스의 대숙청>, 95쪽)
"총독부의 탄압으로 조선일보 지면은 획일화되었지만 행간에는 민족정신이 살아 있었다."(74쪽)
이런 식으로 친일신문 <조선일보>는 민족지로 둔갑하는 것이다. 그러면 <조선>, <동아>의 선동에 현혹되어 일본군에 자원 입대하여 총알받이로 끌려간 청년들은 무엇인가?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 아무리 은폐하고 속이려 해도 진실은 드러나는 법이다.
<조선일보>가 <조선일보 역사 단숨에 읽기>를 중·고등학교에 살포하는 노림수가 있지 않을까. 보수적인 교장들을 단속하는 한편으로 학생들에게는 '접종효과'를 의도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조선>의 친일은 강요된 것이었으며, 전체적으로는 항일민족지였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안티조선진영의 공세에 대해 면역기능을 갖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진실게임'은 과연 어떻게 정리돼어야 할까.
친일진상규명법이 개정되어 <조선>과 <동아>의 친일행적이 소상히 밝혀져야 하며 그러한 내용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심판의 대상들이 지금까지 이 나라를 이끌어왔다는 것은 역사의 수치다. 이들을 역사적으로 심판하여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