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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노아의 방주
게시물ID : panic_28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가면
추천 : 34
조회수 : 404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08/08/30 18:45:02
나는 눈을 떴다. 
서기 2043년 인류 문명은 멸망했다. 2037년 무렵 퍼지기 시작한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는 멸망했다. 
바이러스의 이름은 '리브 바이러스'. 과학자들은 백신은 커녕 최초 발병 원인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감염경로를 모두 밝혀내진 못했으나, 혈액이나 타액을 통해서도 전염이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바이러스인 이 놈은 단 6년이란 짧은 기간만에 전 인류를 초토화시켰다. 눈부신 과학의 발전도 이 녀석을 당해
낼 순 없었다. 수천년 동안 이룩한 인류 문명이 무너지는데 걸린 시간은 6년. 그뿐이였다.

  멸망에 이르기 직전 인류는 그 동안 축적된 모든 기술과 자원을 모아 '노아의 방주'라 불리는 프로젝트를 완성시켰다. 
노아의 방주...그것은 거대한 우주선에 만 명의 사람을 냉동보존시켜 제2의 지구라 불릴 행성을 찾아 리브 바이러스를 피해 도피시키
는 프로젝트였다. 
  선택받은 만명의 사람들 그 중에 한명이 바로 나다. 나는 냉동보존된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눈을 떴다. 
  내가 눈을 뜬 이유는 일종의 불침번이라고나 할까. 이 우주선의 항법 시스템이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이 거대한 우주선의 운영을
위해서는 최소한 10여명의 사람이 깨어있어야 한다. 인류의 사활이 걸린 중대사를 모두 컴퓨터에만 맡길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10여명의 사람은 언제나 불침번으로 깨어있어야 한다는게 규칙이다. 불침번은 5명이 한 조로 2개 조로 나뉘며, 
두 조는 6개월의 시간차로 각각 1년씩 불침번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오늘 나와 같이 깨어난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총 5명으로
앞으로 1년동안 불침번의 임무를 수행하고 다시 냉동상태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외에도 지금 우주선에는 6개월 전부터 깨어있는 우리와 다른 제 1조의 불침번 5명이 존재한다. 
  
  "지금 깨어난 103호, 203호, 303호, 403호, 503호는 즉시 항법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내 캡슐에 달려 있는 스피커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나는 내가 냉동상태로 누워있던 캡슐에서 몸을 일으켰다. 주위에는 내가 누워
있던 캡슐 외에도 아직 냉동상태인 캡슐 99개가 놓여있었다. 이렇게 100개의 캡슐이 있는 방이 총 100개. 

  나는 항법실로 가기 위해 방을 나섰다. 통로에는 이미 나와 같은 불침번 조로 근무할 4명의 인원이 모여있었다. 
항법실로 가기 위해서는 '에덴 동산'이라고 불리워지는 방을 하나 지나가야 한다. 
 이 방은 자연 생태계를 재현시켜놓은 방이다.  지구에서의 생태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방으로 바닥에는 푹신한 흙이 깔려있고, 
각종 식물들이 자라고 동물들도 뛰놀며 심지어는 냇물까지 흐른다. CG이긴 하지만 푸른 하늘도 볼 수 있는 방이다. 
지구에서 살지 못하고 우주로 도망쳐온 우리에게 이 곳은 낙원과 같은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덴 동산'은 깨어있는 10명의 불침번들이 휴게소로 이용하는 용도 외에도 이곳에 있는 동식물들은 각종 귀중한 연구재료가 
되기도 하고, 완벽한 생태계가 구현된 이곳은 식량생산을 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우리 다섯명은 각자 간단한 소개를 한 뒤 '에덴 동산'으로 들어갔다. '에덴 동산'은 꽤나 넓어서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우리 옆 수풀이 부스럭 거리더니 대여섯 마리의 토끼가 순식간에 우리 앞을 지나쳐갔다. 마치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한 모습...
  우리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에덴 동산에 거대 육식 동물을 풀어두었을리가 없다. 
나는 권총이 달려있는 허리춤으로 손을 옮겼다. 하지만 이윽고 수풀속에서 튀어나온거는 고양이 한 마리였다. 
  그 모습에 303호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휴...뭐야 고양이였잖아."
  303호가 고양이를 쓰다듬으려는 순간 고양이가 303호의 손을 할켰다. 303호는 깜짝 놀라며 손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고양이는 
여전히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눈자위도 뒤집힌게 아무리 봐도 정상으론 보이지 않았다. 
  
  "...저건 마치 리브 바이러스 같잖아..."
  순간 고양이가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들려온 총소리와 함께 고양이는 피떡이 되어 나가떨어졌다. 
고양이에게 공격을 받았던 303호가 한 손에 권총을 들고 서 있었다. 
  "다들 뛰어.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 돼"
  만약...만약에 정말 리브바이러스라면...생각하기도 싫지만, 만약 정말 리브 바이러스라면...?

  우리는 전속력으로 에덴동산의 출구를 향해서 뛰었다. 워낙 큰 방이다보니 한참을 뛰어야 했다. 
어떻게 리브바이러스가 단 6년만에 지구를 초토화시켰을까...리브 바이러스는 보통 바이러스가 아니였다. 그건 마치...
마치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감염된 사람을 좀비화 시켜버린다. 좀비라고 해서 움직임이 둔할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것'들은 살아생전의 움직임을 그대로 보인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공격, 공격만을 한다. 마치 인류를 멸종시키는것이 그들의 
의무라도 되는양...
  
  당장이라도 수풀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다. 방금 전까지는 낙원처럼 생각되던 '에덴동산'이 순식간에 지옥도로 돌변했다. 
우리는 한참을 달려서야 항법실로 통하는 문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항법실에는 이미 제1조의 5명이 모여있었다. 

결론....그들은 에덴동산의 변화에 대해서 아는것이 전혀 없었다. 도대체 어째서 리브바이러스가 이 우주선에서 다시 발생한건지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 도대체 이 우주선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일단 303호를 격리시켜놓고 지켜봐야하지 않을까요?"
  차마 꺼내지 못하고 있던 말을 403호가 먼저 꺼냈다. 
  "다소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만약 리브 바이러스가 맞다면 고양이에게 긁힌 303호 역시 감염되었을 겁니다."
403호의 말대로 303호의 손등에는 고양이에게 긁힌 상처가 확연히 보였다. 
"303호. 미안하지만 403호 말대로 당신을 당분간 격리시켜놔야겠습니다. 인류의 존망이 달린 중요한 일이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303호는 고개를 숙인채 대답이 없었다.
"303호? 303호!"
계속된 부름에도 303호는 고개를 숙인채 반응이 없었다. 아니, 미약하지만 반응이 있다. 하지만 그건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인간의
목소리라고 부르기엔 어폐가 많았다. 303호를 중심으로 다들 재빠르게 흩어지며 303호에게 총을 겨눴다. 
"이미 전염된건가?"
"아직! 다들 303호가 먼저 공격하기 전에는 총을 쏘지 마세요. 확실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다들 303호에게 총을 겨눈채 303호의 동태를 살폈다. 303하는 고개를 들더니 머리가 아픈듯 머리를 흔들었다. 아직은 사람인건가?
"303호. 아직 사람이라면 대답하십시요."
  하지만 303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예전에 좀비에게서 들어봤던 그르릉 거리는 소리였다. 303호 아니 '그것'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전히 머리가 아픈듯 머리를 감싸쥐고 그르릉 거리고 있었다. 
  다들 어떻게 해야하는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누군가 먼저 방아쇠를 당겨주기를 기다리는 것인지도. 
나는 이미 이런 상황에서 망설이면 어떻게 되는지 겪어봤다. 이런 상황에서의 망설임은 피해를 크게 만들 뿐이다. 나는 여전히 머리
를 감싸쥐고 있는 '그것'을 향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래, 이젠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단지 좀비일 뿐이다. 
  방금 전까지 303호라 불리던 좀비는 내가 쏜 총에 맞더니 깜짝 놀라더니 별안간 지휘통제실 쪽 통로를 향해서 도망을 쳤다. 
그 모습에 정신을 차린 다른 사람들도 좀비를 향해서 총을 난사했지만 좀비는 총을 맞으면서도 지휘통제실쪽을 향해서 도망쳤다. 
"제길. 그 순간에 망설이면 어쩌자는 겁니까! 저건 단지 좀비일뿐입니다."
   
하지만 왜 우릴 공격하지 않고 도망을 간 거지? 그것도 하필 지휘통제실 쪽이라니. 좀비가 그 곳에 도착하게 해서는 안된다. 
물론 지휘통제실로 통하는 문을 열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진 않겠지만 그래도 유비무환이라고 했으니 그 전에 막는게 좋겠지. 
"좀비는 제가 추격하겠습니다. 한 분만 저를 따라오시고 나머지 분들은 앞으로의 대책을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403호가 내 뒤를 따라나섰다. 나는 사냥감을 추적하는 사냥꾼의 마음으로 총을 앞세워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다. 이건 단지 사냥일뿐이다. 더이상 저건 사람이 아니다. 죽여야 할 대상일뿐이다. 사람의 탈을 쓰고 있는 점이 기분 더럽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건 없다. 
  나는 이런 사냥에는 익숙하지 않던가. 지구에서 도망쳐오기 전 이미 나의 가족과 친구까지 내 손으로 처리했던 나다. 
이제 이런 우울한 기억따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 생각을 할때면 가슴 한쪽이 답답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익숙해지겠지. 이제 지구에서의 기억따위 지구와 함께 모두 날려버릴 수 있을터였다. 
  
  마침 하루뒤면 우주선은 태양계를 벗어난다. 그리고 그 시간에 맞춰서 지구에서는 대폭발이 있을것이다. 이것도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의 일환. 리브바이러스와 함께 지구를 정화하는 것이다. 지구의 곳곳에 설치된 수소폭탄을 이 우주선에서 원격으로 폭발시키
는 것이다. 폭발 후 지구는 방사능으로 오염되고 자연도 파괴되겠지만 리브바이러스도 같이 날라갈것이다. 어차피 리브바이러스로
인해서 지구에 더이상 생명체는 살아갈 수 없다. 모두 날려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먼 훗날
우리 자손들은 다시 지구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빌어먹을 리브바이러스. 모든 생명을 말살하는 그 바이러스에 대한 증오심이
이런 계획을 세우게 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 빌어먹을 바이러스가 지금 이 우주선 안에서 다시 피어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303호 아니, 좀비를 척살 할 것이다. 그리고 에덴동산을 정화하는 방법만 찾아내면 이 우주선은 다시 평화를
찾을 수 있을테고, 인류는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와 403호는 통로를 따라 계속해서 좀비를 추적했다. 갈림길이 몇번 나왔지만 좀비의 흔적은 좀비가 여전히 지휘통제실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503호. 좀비가 어째서 지휘통제실 방향으로 가는걸까요? 좀비는 항상 인간을 공격하기만 했지 이렇게 도망가는 좀비는 처음인데요."
403호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좀비의 상태에 대해서 내가 알 턱이 없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좀비를 죽여야 한다는 것.
"저도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요? 인류의 존망이 걸린 중요한 임무가 위험해지지 않도록 무슨 일이 있도록 좀비를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네. "

  403호는 생각보다 마음이 여린것 같다. 아무래도 이런 임무에는 적합하지 않은것 같다. 마음을 강하게 먹지 않으면 곤란하다. 
"403호. 만약 좀비가 된 것이 303호가 아닌 당신이었더라도 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신을 쐈을 겁니다. 마음을 강하게 먹으십
시요. 제가 좀비가 된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망설임 없이 저를 쏴야 합니다. 좀비가 된다면 더 이상 사람이 아닌겁니다."
"...알겠습니다!"

  추척끝에 지휘통제실에 다다르기 전에 좀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총을 꺼내들었다. 제길 이리저리 움직여서
머리를 맞추기가 힘들다. 젠장, 군인도 아닌 내가 제대로 된 사격 훈련을 받았을 턱이 없다. 
  총 세례를 받던 좀비는 결국 쓰러졌다. 제 아무리 좀비라도 물량 공세에는 어쩔 수 없겠지. 이제 죽은건가?
나는 깨끗한 뒷처리를 위해 확인사살을 할 필요성을 느꼈다. 총을 좀비의 머리에 겨눈채로 서서히 좀비에게 다가갔다. 403호는 내
뒤에서 약간은 겁에 질린듯 총을 든채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저 녀석 이번에도 총 한번 제대로 못 쐈다. 한심하긴...쯧쯧
  순식간이였다. 갑작스럽게 좀비가 내 발목을 움켜잡았다. 그와 거의 동시에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정확하게 좀비의 머리를
꿰뚫었다. 후...끝인건가?
  "괜찮으십니까?"
  403호가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심한 녀석 같으니라고. 나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다시 항법실로 돌아가죠."
나는 다시 앞장서서 항법실을 향해서 걸었다. 좀비 시체를 치우는건 나중 일이다. 시체를 치우다가 감염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해
하는 작업인 것이다. 아마도 좀비가 걸어온 모든 통로도 대대적인 살균절차를 거쳐야 하리라. 
  "괜찮으신 겁니까?"
403호가 다시 한 번 물어왔다. 아닌게 아니라 나는 어느새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아까 좀비에게 잡혔던 발목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네. 갑자기 흥분한 상태로 움직였더니 발목에 무리가 갔던 모양입니다."
발목이 자꾸 신경쓰였다. 발목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이 녀석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하지만 걸어갈수록 점점 상태가
안좋아졌다. 미미한 두통까지 몰려왔다. ...설마?
"후...잠시 쉬었다 가죠."
나는 걸음을 멈추고 통로벽에 기대앉았다. 앉은채로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발목부분을 살펴보았다. 옷이 살작 찢겨져
있었다. 그 틈으로 좀비의 피라도 튄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이대로 자살해야 하나? 아니, 어쩌면..어쩌
면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를 지도 몰라. 면역력이 있어서 좀비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잖아? 어떡해야하지?
  두통이 점점 심해졌다. 머리를 감싸쥐었다. 이건 아까 303호가 좀비가 될때랑 똑같잖아? 좀비가 되는게 이런 느낌이었나?
403호가 나를 이상하다는듯 쳐다본다. 
"503호. 괜찮은 겁니까? 많이 힘들어하시는것 같은데..."
  계속해서 머리가 아프다. 지금 말해봐야 목소리가 나올것 같지도 않다. 아마 내가 전염된걸 알게 되면 이 녀석은 나를 죽일까?
이 한심한 녀석이 나를 쏠 수 있을까? 아직 이성이 남아 있는데 죽고 싶지 않다. 내가 먼저 공격해서 이 녀석을 죽여버릴까?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녀석은 뭔가 낌새를 알아챈 듯 나와 서서히 거리를 벌렸다. 
"...503호?"
  어떻게 해야하지? 생각을 해야하는데 머리가 너무 아프다.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리브 바이러스에 걸린 지금에서야 알 수 있었다.
이건 보통 바이러스가 아니다...이건 사람을 죽이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이건 단지 병이다. 잠깐 아프고 낫는 감기처럼. 
일단 감염되면 좀비가 되지만 죽는건 아니다. 10년 정도 뒤에는 다시 예전처럼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사실을 바이
러스에 감염된 지금에서야 알게 되는거지? 머리가 아프다. 병에서 나으면 면역이 생기듯 리브 바이러스도 10년 뒤에 다시 사람이 
된다면 두 번 다시는 감염될 일이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려야 된다. 의식이 사라지고 완전한 좀비가 되기 전에. 빨리.
  "..그르르"
하지만 더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어느덧 나와 거리를 벌려놓은 403호는 내 머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사시나무마냥 덜덜 떨고
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나를 쏘지 못하리란 보장은 없다. 어떻게 이 사실을 알리지? 이제 곧 나도 좀비가 될 것이다. 이걸 알리지
않는다면 나는 죽는다.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나를 스쳤다. .......내가 죽는게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21시간 뒤에 지구에서 터질 수소폭탄..
막아야 한다. 몇 년만 지나면 사람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생명들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텐데...폭탄이 터지는것만은 막아야 된다. 
그들을 우리 손으로 죽일 순 없다. 크흑 내 친구와 가족들은...이미 내 손으로 죽였지만...난 살인을 한 건가? 
  더이상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는 수소폭탄의 폭발을 원격 제어하는 지휘통제실을 향해서 왔던 길을 다시 뒤돌아서 뛰었다.
뒤에서 총성 소리가 들렸다. 총알이 내 배를 꿰뚫었다. 분명 느낌은 났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이 좀비인가?
  계속해서 총성소리가 들렸다. 내 팔과 다리도 관통당했지만 신경쓰지 않고 계속 달렸다. 아까 좀비, 아니 303호를 내가 죽였던 
장소를 지나쳤다. 303호의 시체는 머리가 관통당한채 보기 흉하게 널부러져 있었다. 303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걸 내가 죽인거겠지, 젠장. 이성을 잃고 좀비가 되기 전에 할 수 있는데까지 해야 한다. 
  빨리 지휘통제실에 가서 폭탄의 폭발을 멈춰야 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이 우주선을 폭발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지구는 살려야한다
지휘통제실 문 앞이 지척이다. 순간 무릎이 날라가는 시원한 느낌과 함께 몸이 한 쪽으로 무너졌다. 오른쪽 다리가 무릎채 날아가
버렸다. 모든게 끝이다. 모든게...
  이제 21시간 뒤면 수십억의 사람과 함께 지구는 날라가는 것이다. 그럴수는...
의식이 희미해진다. 이젠 좀비가 되는건가...조금만 조금만 더 갔으면 되는건데. 더이상 방법이 남아있지 않다. 

아니 어쩌면....
403호가 쓰러져 있는 나에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힘들게 뛰어왔는지 숨을 몰아쉬는 소리도 생생히 들린다.
나에게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점점 조심스럽게 천천히 다가온다. 확인사살을 하기위함이겠지? 지금쯤 내머리에는 총이 겨눠져있겠지
최대한 가까이 다가올때까지 기다려야된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반드시!

403호의 기척이 느껴짐과 동시에 나는 필사의 힘을 다해 403호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손톱이 녀석의 발목을 파고들 정도로 세게 
녀석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총소리와 함께 머리가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해냈다.
403호 이제 이 녀석에게 맡기는 수밖에...

  403호는 503호, 아니 좀비를 제거하고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휴우...503호, 당신이 말했었죠. 당신이 좀비가 되더라도 총으로 쏴달라고."
403호는 좀비의 시체 앞에서 상기된 얼굴로 묵념을 하고는 뒤돌아섰다. 뒤돌아선 403호의 눈에 마중나온 103호가 보였다. 
"403호, 괜찮습니까? 무슨일이죠? 당신들이 너무 늦어서 제가 도우러 왔는데 503호는 어디간거죠? 설마..?"
403호는 우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네, 예상하신 바대로입니다. 503호도 좀비에게 전염되어서 제가 어쩔수없이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수고하셨습니다. 뒷처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쉬십시요."
403호와 103호는 항법실로 향했다. 
"403호. 근데 괜찮으신 겁니까? 많이 지치신것 같군요."
항법실로 향하는 403호의 뒷모습은 절뚝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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