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숲을 좋아한다.
먼저 숲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로운 바람이 좋고, 그 바람결에 맞춰 나부끼는 나뭇잎들의 속삭임이 좋다.
그리고 거목부터 잔목까지 촘촘히 자라나 내 시야를 가리고 있어....그 속으로 들어가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날 것 같은 그 느낌이 좋다.
"김병장님, 짬밥 버리는 곳에 고양이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의 재촉에도 점심을 준비하던 김병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무쇠 가마 속에 섞여있는 야채와 돼지고기를 열심히 휘젓고 있었다.
사회에 있을 때 요리와 관련없는 무슨 전문대를 다니다 왔다고 들었는데 어찌하여 취사병을 하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런데 확실한 건 그가 요리에 매우 능숙하다는 것이다.
그 거칠고 우람한 손으로 몇 가지 되지도 않는 재료로 만들어낸 요리는 항상 부대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또한 칼질까지 예술이다.
태어나서 과도로 사과 껍질을 5초 만에 매끈하게 벗겨내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왼손으로 사과의 위아래 오목한 곳을 잡고 조금씩 돌리며, 오른손으로 과도를 사과 표면에 가져간 후 요동치는 지진계의 바늘처럼
과도를 사정없이 좌우로 왕복운동시키더니 사과 모양을 잃지 않고 그대로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다.
실로 마술에 가까웠다.
근육질 몸에 덩치는 산처럼 우람하여 겉보기에 매우 거칠 것으로 보이지만 성격은 생각보다 내성적이다.
그러나 한번 성질을 냈다하면 부대 전체가 뒤집어질 정도로 파괴력이 컸다.
상병 때 고참을 패서 군기교육대에 갔다온 적도 있다.
김병장은 순간적인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본 것 중 하나는 식판 정리를 하던 후임병이 말길을 잘 알아듣지 못하자 도마질을 하고 있던 칼을 집어 던져버린 적도 있다.
그 무시무시한 정육점에서나 쓰는 무쇠칼이 연신 회전을 거듭하며 후임병 옆을 스쳐 취사장 벽에 박혀버렸다.
망나니 김병장.....
그 뒤로 후임병들 사이에서 그는 그렇게 통한다.
그가 앞치마를 두르고 도마 위에서 칼질을 할 때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무슨 명령을 내릴까 조마조마하여 지켜보게 되고, 최대한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몸 속에 금속성분이 들어오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눈에 띄게 불었음을 보고한 나는 김병장의 대답을 기다리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제 막 일병을 단 내가 그에게 대답을 독촉할 수 없지 않은가?
그것도 머리 짧은 망나니한테...
"얼마나 많은데?"
"방금 보고 온 것만 해도 대여섯마리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제서야 김병장은 삽자루 같은 주걱질을 멈추었다.
"**...어디 고양이 분양소라도 있는거야? 왜 이렇게 자꾸 늘어나는거야?"
"어떡합니까? 김병장님."
"어떡하긴 어떡해? 약을 놓든 덫을 놓든 해야지.
아...** 바빠 죽겠는데 별게 다 신경 쓰이게 만드네."
김병장은 나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명령했다.
"너, 이것 좀 젓고 있어. 나가서 확인 좀 해보게."
김병장은 나에게 삽자루같은 커다란 주걱을 넘겨주고 취사장을 나섰다.
나는 심기가 불편했다.
고양이들 입장에서 김병장은 저승사자나 마찬가지였다.
잔밥통에 서성거린다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 김병장에게 죽어간 고양이가 네다섯마리나 된다.
그것도 그냥 죽인 것이 아니다.
한 번은 고양이를 목 매달아 밤새 두들겨 패서 죽인 적도 있고, 한 번은 끔찍하게 목을 잘라버린 적도 있다.
그 중에 가장 끔찍했던 것은 덫에 걸려 바동거리는 고양이에게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던 때다.
그 역겨운 냄새의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양이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 같이 늘어가는 듯 보였다.
나는 그가 넘겨준 주걱을 받아들고 거대한 가마솥에서 익어가는 재료들을 열심히 휘저었다.
몇 번을 젓고 나서야 그가 얼마나 힘이 장사인지 깨달았다.
마치 거의 굳어가는 콘크리트 반죽을 삽으로 휘젓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올라오는 열기가 숨구멍을 틀어막는 것 같았다.
나는 취사병이 아니다.
우리 부대 취사병은 공식적으로 김병장 하나 뿐이고, 나머지는 소대별로 돌아가며 일주일동안 그의 일을 도와주는
도우미일 뿐이다.
이번 주는 내가 김병장과 함께 해야 한다.
모든 요리는 김병장이 하며, 그외 설겆이 같은 소소한 치다꺼리만 내가 하게 된다.
점점 배식 시간이 다가오는데 김병장이 들어오지 않았다.
괜히 불안했다.
고양이를 잡아 죽이고 내장이라도 꺼내 취사장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두려움 반, 걱정 반...
나는 가스불을 끄고 취사장 밖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나서자 예상과 달리 물끄러미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연신 담배를 빨고 있는 김병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앞에는 잔밥통 주변을 서성이는 고양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고양이 수가 벌써 열마리를 넘어선 것 같았다.
마치 동족을 죽인 것에 대한 분노로 항의 시위라도 온 것 같았다.
나는 소리없이 잔밥통 주변을 서성이는 고양이가 거슬렸다.
솔직히 그들의 행동이 거슬리는게 아니라 김병장에게 잡힐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빨리 도망치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무슨 또 험한 광경을 목격할지 몰라 나는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김병장은 고양이에게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의 초점은 나와 같은 곳에 모아진게 아니었다.
그가 시선을 두고 있는 방향은 그 뒤편의 어둑어둑한 숲이었다.
왠지 모를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자 나는 김병장을 재촉했다.
"김병장님, 배식시간 다가옵니다."
나의 말에도 김병장은 한발자국도 꿈쩍하지 않았다.
시선을 숲에 고정한 채 잠시 후 김병장은 입을 열었다.
"야..이창훈..."
"일병, 이창훈.."
"너...저 숲에 가본 적 있냐?"
"없습니다."
갑자기 그가 왜 이런 것을 묻는걸까?
김병장은 잠시 담배연기의 흡입을 멈추었다.
바람 때문인지 연기를 빨지 않았음에도 담배는 빠른 속도로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불씨가 필터까지 접근했음에도 김병장은 모르는 것 같았다.
무엇인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김병장은 그 곳을 향한 시선을 풀지 않았다.
기묘한 기운을 온 몸을 감싸고 돌았다.
특히 눈에 띄게 그 수가 불어난 고양이가 찝찝한 기분을 더욱 돋우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 번 김병장을 일깨웠다.
"김병장님, 배식시간 다가옵니다."
그러나 나의 재촉에 김병장은 엉뚱한 대답으로 응수했다.
"이 고양이들은 먹을 것을 찾아 온게 아냐."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망쳐 온거야. 뭔가를 피해서..."
내가 김병장의 정체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던 것은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김병장은 숲을 향한 시선을 풀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고기 다 볶았으면 퍼내서 배식판에 올려 놔."
"네.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취사장으로 향했다.
고기가 다 익었음을 확인한 나는 엄청난 양의 제육볶음을 배식판에 퍼내기 시작했다.
한 참을 퍼 내고 있던 그 때 나의 눈에 들어온 뭔가가 보였다.
150여명 정도가 먹을 수 있는 국을 끓일 수 있는 가스버너가 달린 커다란 조리기였다.
구형 오르간처럼 생긴 스테인레스 재질의 조리기이다.
뚜껑을 열면 안에 빈 공간이 있고 그 곳에 여러 재료를 넣는다.
그리고 뒷편에 설치된 가스버너를 켜서 가열하면 국이 되는 것이다.
보통 국이 다 끓여지면 열기를 식히기 위해 뚜껑을 열여놓는데, 뚜껑 위 선반에 놓여진 검은색 걸레가 눈에 들어왔다.
버너 주변의 이물질을 닦는 걸레인데 본래의 색깔은 검은 색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조리기 위의 선반도 조리기처럼 스테인레스 재질이라 미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설마...
불길한 예감은 적중해 버리고 말았다.
꿈틀거리듯 미끄럼을 타던 그 걸레가 국통안으로 몸을 던져버린 것이다.
"헉!!!"
나는 단말마 같은 숨죽은 비명을 지르고는 내 머리통보다 큰 국자를 들고 국통으로 달려갔다.
그 거대한 국통속에 담긴 것은 '배추우거지 된장국'이었다.
군대에서는 된장국을 간단히 '똥국'이라고 한다.
나는 국자를 이리저리 저어 들어올리며 똥국속에서 걸레를 찾으려 애썼다.
"뭐하냐?"
"예?"
김병장이 들어왔다.
"배식 준비해야지."
나는 놀란 가슴을 최대한 진정시키며 조용히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우리 부대는 밥이나 반찬은 본인이 식판에 담을 수 있고 국만 취사병이 배식한다.
밥과 기타 반찬들이 배식대 위에 놓여졌다.
멀리서 부대원들의 군가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쩔 줄 모르며 국통 앞을 서성이는 나를 바라본 김병장이 입을 열었다.
"뭐해 임마? 국 배식 준비 해야지."
"네. 알겠습니다."
김병장은 하루의 일과가 끝난 사람처럼 내 뒤에 멀찌감치 의자를 가져다 놓고 거기에 앉아 담배를 하나 입에 물었다.
나는 커다란 국자를 이용해 조리기에 담긴 국을 작은 국통에 조심스럽게 퍼 담았다.
물론 건더기는 퍼올릴 수가 없었다.
만일 그 시커먼 걸레가 나오면 내 뒤통수에 그 무쇠칼이 내리꽂힐지 모르기 때문이다.
배식이 시작되었다.
나는 국통 속의 국을 작은 국자를 이용해 병사들에게 한국자씩 배식을 했다.
걸레 국물이 섞여있다고 생각하니 역겨움이 밀려왔지만 지금은 내가 살아야 했다.
몇 분이 지나자 작은 국통이 바닥을 드러냈다.
나는 또다시 큰 국자를 이용해 조리기에서 국을 퍼냈다.
물론 국물만이다.
그리고 다시 배식.....
이렇게 반복하기를 서너번.....
그런데 갑자기 말년 병장 한 명이 배식판을 통해 머리를 내밀었다.
일명 미친 개로 통하는 김병장 킬러 최병장이었다.
마르고 시커먼 얼굴에 눈 밑에 칼을 맞은 건지 긁힌 건지 모르는 3센티미터 정도의 흉터 자국이 있는데,
그것 하나로도 최병장의 모든 이미지를 다 표현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무섭게 생겼다.
최병장은 김병장보다 4개월 선임인데 김병장을 왜 싫어하는지 이유는 잘 모른다.
그런데 항상 최병장은 김병장을 괴롭혀왔다.
만일 우리 부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면 이들 둘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하나씩 나눠 차지할 것이다.
최병장이 나에게 김병장을 찾았다.
"야...김창식이 어딨어?"
"왜... 왜 그러십니까?"
"닥치고 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미친개와 망나니 사이에서 나는 별로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단지 외줄타기 하듯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으며 목숨을 부지하는 것 뿐이었다.
불려온 김병장은 최병장에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오늘 국 메뉴 뭐야?"
"똥국입니다."
"그런데 왜 똥국에 건더기가 없어?"
"예? 우거지랑 여러가지 많이 넣었습니다."
"야..** 니 눈으로 봐! 뭐가 있나?"
최병장은 옆에 놓여있던 식판을 들이 밀었다.
건더기가 하나도 없는 국물.....
말없이 국을 바라보던 김병장이 나를 돌아봤다.
무서웠다. 그 눈빛...
취사장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될 듯한 기분이었다.
나무토막처럼 나는 얼어붙었다.
"너...**...어떻게 배식한거야?"
"그게...저.."
"꺼져, 배식은 내가 한다."
"제가 다시 하겠습니다."
"꺼져 **아."
그는 조리기로 다가가더니 팔을 걷어 올렸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언젠가 저 ** 이 곳에 집어넣어 국물을 우려내고 말거다."
그러더니 그의 우악스러운 손에 들려진 커다란 국자가 연신 조리기 속의 우거지를 퍼내기 시작했다.
그 우거지가 들어 올려질 때마다 나는 심장의 기능이 하나씩 마비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배식.....
작은 국통이 바닥을 보일 때마다 김병장은 나에게 보란 듯이 조리기에서 국통으로 건더기를 퍼올렸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몇 차례...
드디어 조리기 속을 휘젓던 국자를 따라 길고 시커먼 무언가가 따라 올라왔다.
그 걸레였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김병장도 어이가 없는지 부릅 뜬 눈으로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바빴다.
몇 초가 지났을까?
김병장이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바라보왔다.
김병장은 잠시 나를 노려보더니 입을 열었다.
"넌 못 본거다."
그러더니 국자에 걸려나온 그 시커먼 걸레를 조리기 안으로 깊이 쑤셔넣었다.
'이 **... 도대체 뭐하는 놈이지?'
나는 행여나 머릿속의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까봐 입을 굳게 다물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