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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운동주요사건 일지
게시물ID : humordata_5955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테르라인
추천 : 12
조회수 : 831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0/04/26 22:37:06
1980년 5월 17일
24시00분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광주 시내의 각 대학에 계엄군이 진주하여 학생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5월 18일
9시40분
계엄군이 전남대생 50여명의 등교를 저지했다.
10시15분
전남대생이 "계엄해제", "휴교령 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시휘를 벌이자 공수부대원들이 곤봉으로 진압, 이에 학생들은 금남로로 이동하기 시작헀다.
15시40분
유동 삼거리에 공수부대가 출동하면서 진압작전을 개시했다.
19시02분
계엄사령부는 광주의 통행금지시간을 저녁 9시로 앞당겼다.

5월19일
3시00분
증파된 11여단 병력이 광주역에 도착했다.
9시30분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시위진압에 맞서 누문동 파출소를 불태웠다.
10시00분
금남로에서 기민들의 수가 점점 불어나면서 공수부대원들과 투석전이 전개되었다.
14시40분
조선대로 철수헀던 공수부대가 다시 투입되어 진압작전을 전개했다.
15시00분
광주 시내의 기관장과 유지들이 대책회의를 갖고, 시위진압을 완화해달라며 계엄달국에 건의했다.
16시30분
계림파출수 근처에 서 조대부고생 김영찬이 계엄군의 총에 부상을 입었다.

5월20일
8시00
광주시내 고등학교 휴교조치가 내려졌다.
10시20분
가톨릭센터 앞에서 시위중이던 남겨 30여명이 속옷차림으로 공수부대원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했다.
18시40분
금남로에서 200여대의 택시가 일제히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차량시위를 벌였다.
20시10분
도청을 향하는 시위대들은 금남로, 충장로. 노동청 방면에서 공수부대 및 경찰과 대치했다.
21시 05분
노동청 쪽에서 시위대의 버스가 경창저지선으로 돌진하여 경찰 4명이 사망했다.
21시50분
광주의 실상을 왜곡보도하는 데 분노한 시위대가 광주MBC건물에 방화했다.
23시00분
광주역 광장에서 계엄군의 발포로 시민 2명이 사망했다.

5월21일
0시35분
노동청 방면에서 시위대 2만여명이 계엄군과 공방전을 전개헀다.
2시18분
광주 전역의 시외전화가 단절되었다.
4시00분
시민들이 광주역 광장에서 시체 2구를 리어카에 싣고 금남로로 향했다.
4시30분
시위대가 광주KBS건물에 방화했다.
8시00분
광주공업단지 입구에서 시위대가 20사단 병력과 충돌했다.
10시15분
실탄을 지급받은 공수부대원들이 전명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10시19분
광주세무서 건물이 전소했다.
11시10분
대형헬기 1대가 도청광장에 도착했다.
12시59분
시위대가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몰고 온 장갑차 1대가 도청광장으로 기습 진출했다.
13시00분
도청 스피커에서 애국가 울려퍼지면서 공수부대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13시20분
금남로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공수부대의 집중사격에 쓰러졌다.
14시15분
도지사는 경찰헬기를 타고 시위해산을 종용했다.
14시35분
시위대가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군용트럭과 장갑차 수십대를 탈취했다.
14시40분
시위대가 지원동의 탄약고에서 TNT를 탈취했다.
15시48분
공수부대원들이 시내 빌딩옥상에서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을 시작했다.
16시00분
화주, 나주 지역에서 무기를 획득한 시위대들이 도청 앞에서 공수부대와 시가전을 전개했다.
16시43분
대학생들이 전남대병원 옥상에 기관총(LMG) 2대를 설치했다.
17시30분
공수부대가 도청에서 조선대학교로 다시 철수했다.

5월 22일
9시00분
도청광장과 금남로에 시민들이 집결했다.
10시30분
군용헬기가 공중을 선회하며 경고전단을 살포헀다.
11시25분
적십자병원 헌혈차와 시위대 지프가 돌아다니며 헌혈을 호소하고 도청 옥상에는 검은 리본과 함께 반기가 게양되었다.
13시30분
시민수습위 대표 8명이 상무대 계엄분소를 방문하여 7개하으이 수습안을 전달했다.
15시08분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 5백여명이 광주에 도착했다.
15시58분
시체 18구를 도청광장에 안치한 채 시민대회가 개최되었다.
17시40분
도청광젱에 시체 23구가 더 도착했다.
21시30분
박승훈 신임 국무총이리가 "광주는 치안부재상태"라고 방송했다.

5월23일
10시00분
시민 5만여명이 도청광장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10시15분
학생수습위가 특공대를 조직하여 총기 회수작업을 시작했다.
11시45분
도청과 광장 주변에 사망자 명단과 인상착의 벽보가 게시되었다.
13시00분
지원동 주남마을 앞에서 공수부대가 소형버스에 총격을 가해 시민 17명이 사망했다.
15시00분
제1차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고, 계엄사의 경고문 전단이 시내전역에 살포되었다.
19시40분
최초 석방자 33명이 도청광장에 도착했다.

5월24일
13시20분
공수부대가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소년들에게 사격을 가했다.
14시20분
송암동에서 공수부대와 전교사부대 간의 오인 총격전이 발생헀다.
14시50분
제2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5월25일
11시00
김수환 추기경이 광주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메시지와 함께 구호대책비 1천만원을 광주시에 전달했다.
15시00분
제3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17시00분
재야인사들이 김성요 신부의 4개항 수습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21시10분
학생수습대책위원들이 광주지역 범죄방생 예방, 식량공급, 청소문제 등을 논의했다.

5월 26일
5시20분
계엄군이 화정동 쪽에서 농촌진흥원 앞까지 진출했다.
8시00분
시민수습대책위원들이 계엄군의 시내진입 저지를 위해 일명 '죽음의 행진'을 감행했다.
10시00분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14시00분
학생수습위원회가 광주시장에게 생필품을 보급 등 8개항을 요구했다.
15시00분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17시00분
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이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상황을 브리핑했다.
19시10분
게엄군의 공격 가능성이 대두됨에 따라 시민군은 어린 학생과 여성들을 귀가조치시켰다.
24시00분
광주지역의 시내전화가 일제히 두절되었다.

5월27일
3시0분
탱그를 앞세운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4시0분
도청 주변이 완전포위되었고, 금남로에서는 시가전에 전개되었다.
4시10분
계엄군 특공대가 도청 안에 있던 시민군에게 사격을 개시했다.
5시10분
계엄군이 도청을 비롯한 시내전역을 장악하고 진입작전을 종료했다.
6시00분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선무방송했다.
7시00분
공수부대가 20사단 병력에게 도청을 인계했다.
8시50분
광주지역의 시내전화가 다시 개통되었다.


출처 지식 eseaso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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